파위교 (외 1편)
김명리
해질 녘, 저 박명의 시간
여름꽃 향기 더없이 짙어지는 블루 아워에
물골안 파위교로 날아드는 뭇 새들은
봄꽃 나무 텅 빈 가지 흔든다
매화말발도리, 매화말발도리…
납작한 부리 뱃바닥 붉은 새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방꽃차례로 운다
저녁 해의 불꽃 이내 흩어지고
서둘러 잎 내고 꽃 피우던 여름꽃 진다
체로금풍의 시절이 머지않았으니
여름의 핏자국들 이내 희미해지리
우리도 끝내 자욱이 돌아서리라
대오를 벗어난 새 한 마리 안 보이는
적막한 하늘 아래
어느 꽃의 붉은 꽃잎, 푸른 꽃받침이
저다지 낮게 고요히 덜컹거리는지
슬픔이 서로 다른 빛깔로 마중 와 있는 파위교
밤의 해변에서
새벽 두 시 바다에 이르렀다 휘황한 밤이다
잠들지 않은 아이들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불꽃놀이 한창인 속초 해변을 맨발로 걸었다
부서진 조가비들이 사람의 맨발보다 먼저
아얏, 비명소리를 지르는 밤의 해변
먼 바다 고깃배들의 탐조등 등빛 쪽으로
봉두난발 파도소리, 내 마음의 철천지원수들
희희낙락 떠내려가는 소리
영금정 누각 위로
어둠이 방동사니풀처럼 휘청거릴 때
내몰하는 파도의 저 이백 미터 상공 위로
막사발만한 달이 떴다
캄캄해져라, 마저 캄캄해져라
확 채어서 그대로 내동댕이치고픈 상현(上弦)
⸻계간 《모:든시》 2018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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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리 / 1959년 대구 출생. 198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시집『물 속의 아틀라스』『물보다 낮은 집』『적멸의 즐거움』『불멸의 생이 여기 있다』『제비꽃 꽃잎 속』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