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개 사유'가 뭐길래... 왜 차별금지법에 나라가 들썩이나
찬반 각각 10만명 국민청원 등 첨예대립 양상… 정치권 곧 논의 재개
2일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차별 금지’와 관련한 정반대의 국민 청원(請願) 두 개가 올라와 있다. 하나는 차별금지법 제정 청원이고, 다른 하나는 차별금지법과 비슷한 평등법에 대한 반대 청원이다. 각각 국민 10만명의 동의를 받아 찬반이 팽팽하다. 차별금지법은 정의당이, 평등법은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것이다.
지난 6월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간사가 위원장 직무대리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에서도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정반대의 집회가 나란히 열렸다. 국민의힘 당사 앞에선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제정 촉구 기도회’를, 국회 정문 앞에선 청년 단체 청년진평연이 ‘제정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차별을 금지한다는 법 하나에 왜 대한민국이 들썩이는 것일까.
◇성별·종교 등 23가지 명시한 ‘차별금지법’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작년 발의한 차별금지법이다. 헌법에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지만, 실생활에서 공공연히 차별이 발생하고 있고 구제 수단도 마땅치 않다며 새롭게 만든 법안이다. 이 법안은 성별, 학력, 출신 국가, 고용 형태 등 차별 금지 사유 23개를 거론하고 있다. 합리적 이유 없이 이를 근거로 고용, 교육 등에서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을 차별로 보고 금지한다. 민주당도 지난달 차별 금지 사유 21개를 담은, 비슷한 내용의 평등법을 발의했다.
◇'동성애' ‘학력’ 차별 금지 반대 거세
23개 사유 중 가장 논란이 분분한 것은 ‘성적지향(性的志向)’이다. 이 법안에 등장하는 성(性) 관련 차별 금지 사유는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등 3가지다. 성별은 남성·여성 등이고, 성별정체성은 주어진 성과 무관하게 본인이 느끼는 성별을 뜻한다. 성적지향은 이성애, 동성애 등 누구에게 끌리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보수 성향의 단체나 기독교 단체 등에서 특히 반발한다. 한국교회총연합회는 “성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는 것에 동의하지만, 동성애를 정상화 혹은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성소수자 단체들은 “동성애는 찬성, 반대의 문제가 아니며 일상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만큼 법 제정이 꼭 필요하다”고 맞선다.
‘학력’도 뜨거운 감자다. 교육계와 재계(財界)를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교육부는 해당 법안에서 ‘학력’을 삭제해달라는 공식 의견을 국회 법사위와 법무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학력은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성취 정도가 달라지는 만큼 합리적 차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연합회도 “학력이나 고용 형태 등을 차별 금지 사유로 규정하는 것은 사기업의 자율 경영을 제약한다”며 “불합리한 차별이 아닌, 합리적 차이까지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건 역차별을 낳는다”는 입장이다. 반면 법안을 대표 발의한 장혜영 의원 측은 “학력은 노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고 반박한다.
◇이중 처벌, 입증책임 전가도 논란
차별금지법안의 처벌, 입증 책임에 대한 조항도 의견이 분분하다. 차별 행위를 당한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그 행위가 고의·악의적이면 2~5배의 징벌적 배상도 가능하다. 실질적 제재 효과를 높이겠다는 취지지만 이중 처벌이란 반론이 있다. 또 차별 행위가 있었다고 피해자가 주장하면, 그런 행위가 없었다는 것을 상대방이 입증하도록 한 부분도 논란거리다.
법 제정 찬성 입장인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는 “차별과 혐오가 화두인 우리 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은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다는 상징적 의미로서 필요하다”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걱정 때문에 소모적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반대 입장인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는 “무엇을 차별로 볼 것인지조차 모호한 상황인 만큼 더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14년간 번번이 폐기… 이번엔 통과될까
차별금지법은 2007년 이후 국회에서만 7번 발의됐지만,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회기 만료로 폐기돼왔다. 이번에는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작년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도 여전히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종교계 반발이 큰 데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여야가 법안 심사를 진행하지 않은 탓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시급한 현안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이후에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야당 측도 “아직 입법 단계에 이르기에는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지난달 14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차별금지법 제정’ 청원 글이 10만명 동의를 넘어서며 법안 논의가 탄력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10만명 동의를 받은 청원은 소관 위원회에 청원 원문(原文)이 회부되고, 관련 법안도 의무적으로 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처리에 소극적이었던 민주당도 지난달 16일 차별 금지 내용을 담은 평등법을 발의했다.
법사위는 넘어온 국민 청원과 함께 장혜영 의원의 차별금지법, 민주당의 평등법 제정안 등을 논의해야 한다. 평등법 공동 발의자이자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박주민 의원은 “그간 여러 어려움으로 인해 논의조차 되지 못했지만 이제는 다를 것”이라며 “빠른 시일 내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페이스북에 “국회가 열린 마음으로 국민 청원에 화답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법사위 소속의 한 야당 의원은 “법안을 제정하려면 공청회부터 해야 하는데 구체적인 일정이 정해진 것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