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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안백성(修己安百姓)
자기를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으로, 군자가 자신을 닦아 할 도리를 일컫는 말이다.
修 : 닦을 수(亻/7)
己 : 자기 기(己/0)
安 : 편안할 안(宀/3)
百 : 일백 백(白/1)
姓 : 성 성(女/5)
출전 : 논어(論語) 헌문편(憲問篇)
子路 問君子한대
子曰 修己以敬이니라
자로가 군자에 대하여 물으니, 공자께서 "경(敬)으로 몸을 닦는 것이다"고 하셨다.
曰 如斯而已乎잇가
曰 修己以安人이니라
자로가 "이와 같을 뿐입니까?"고 하자, "자기를 수양하여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고 대답하셨다.
曰 如斯而已乎잇가
曰 修己以安百姓이니 修己以安百姓은 堯舜도 其猶病諸시니라.
다시 "이와 같을 뿐입니까?"고 묻자, 말씀하셨다. "자기를 수양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니, 자기를 수양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요(堯), 순(舜)임금도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셨다."
(憲問 45)
군자에 관해 묻는 자로(子路)의 질문에 공자는 '신중함으로써 자신을 수양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수기안인(修己安人)과 수기안백성(修己安百姓)은 흔히 수기치인(修己治人)으로 줄여 말한다.
공자는 군자의 학문 궁극적인 목표를 수기안인(修己安人)으로 보았다. '자기를 완성하고 남을 편안하게 하는' 군자란 사회, 정치적으로는 지도자와 리더이며, 교육적으로는 스승과 멘토를 가리킨다.
이 때문에 공자는 제자 자하(子夏)에게 "너는 군자다운 선비가 되어야지, 소인 같은 선비가 되지 말아라(옹야 11)"고 훈계하기도 한다.
군자란 과연 어떤 사람인가? 공자는 '논어'에서 바람직한 인격의 표상으로 군자를 제시한다.
공자가 말한 군자란, "매사에 공평무사하고 덕과 법을 중시하며 옳은 일에 민감하고 마음이 안정되어 있으며, 남의 단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장점을 칭찬하고,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남들과 조화를 이루며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면서도 겸손하고, 이치를 따르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반성하는 사람"이다.
반면 소인이란, "매사에 불공평하고 자신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상대방을 헐뜯고 분열을 조장하며, 평상 시 불안한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으며 타인의 단점만을 지적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거나 회피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군자와 소인을 도덕적인 의미로만 한정지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군자란 본래 고대사회에서 정치에 종사하는 사대부(士大夫) 계층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 서민(庶民)을 의미하는 소인과는 계급적으로 구별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처럼 특정한 계급과 계층 혹은 지도층 인사를 의미하던 군자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점차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특히 공자에게 이르러 군자는 비로소 신분을 지칭하던 개념에서 정치지도자의 내면적 자격요건인 '도덕적 완성' 혹은 '완전한 인격'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공자 제자 중에 자로는 성격이 가장 쾌활하고 조금은 성급했던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군자에 관한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자 공자는 "성왕(聖王)이었던 요순(堯舜) 임금도 어렵게 생각한 것을 네가 어찌 감히 쉽게 생각하느냐!"고 은근히 핀잔을 주었다.
이러한 공자와 자로와의 일화를 통해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군자의 길은 누구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자로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군자의 길이다. 이렇게 볼 때 군자의 길이란, 자신의 내면을 완성하고 그것을 널리 베풀어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둘째, 군자의 길은 쉽게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순 임금조차 부족하다고 생각할 만큼 어려운 것이 바로 '수기안인'이었던 것이다.
군자의 길은 학문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성인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道)를 얻는 것은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를 깨닫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이인 8)"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 論語 第14 憲問篇
45장 : 修己以安百姓
子路問君子, 子曰: 修己以敬,
자로가 군자에 대해 물었는데, 공자 가라사대 "몸을 닦되 공경으로써 하니라."
曰: 如斯而已乎.
(자로) 가로대, "이같이 할 뿐입니까?"
曰: 修己以安人.
(공자) 가라사대 "몸을 닦아서 (주변의) 다른 이들을 편안히 하니라."
曰: 如斯而已乎.
(자로) 가로대 "이같이 할 뿐입니까?"
曰: 修己以安百姓, 修己以安百姓, 堯舜其猶病諸.
(공자) 가라사대 "몸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히 함이니, 몸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히 함은 요순도 그 병되이 여기셨느니라."
(家苑 註 )
앞서서(자로편 28장) 자로는 공자에게 선비(士)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이때 공자는 '切切偲偲, 怡怡如也'로 답해주면서 벗과 형제에 대한 태도의 차이를 보태어 설명했다. 자공이 군자에 대해 물었을 때 간략히 대답한 것(위정편 13장)과 비교된다.
반면 자공이 선비에 대해 물었을 때(자로편 20장)는 네 단계의 문답이 오고 갔는데, 자공은 이미 시(詩)를 잘 알고 있었다(학이편 15장). 언어적 수사(修辭)능력이 탁월하다(선진편 2장). 능히 외교관으로서의 능력이 있었다(자로편 5장).
이에 공자는 자공에게 사신으로 나갈 때의 처신을 답해 주었는데, 자공이 다시 묻자 효(孝)와 제(弟)로 설명했다. 그리고는 자공이 또다시 묻자 언행(言行)으로 말해 주었다.
자로의 군자에 대한 물음은 자공의 선비에 대한 물음과 비교되는데, 여기서 공자는 비로소 자로에게 위정자로서의 자세에 대해 답해준다. 모두 세 단계의 문답인데 자로가 정치에 참여하기 전에 공자에게 자문을 구하는 문장인 듯하다.
공자는 자로가 어느 정도 선비의 자질을 갖췄다고 보고 또한 능히 천승의 나라에 그 군사를 다스릴 만하다고 보았기에(공야장편 7장, 선진편 25장) 수신(修身)을 강조하면서 물음의 단계에 따라 '以敬, 以安人, 以安百姓'의 세 단계로 답해준다.
공자는 정치를 하는데 고른 분배와 조화와 안정(均, 和, 安; 계씨편 1장)을 중요시하였기에 이 세 가지를 아우르는 안(安)을 거듭 강조하였다.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려면 백성들에게 널리 베푸는 즉 부(富)의 고른 분배가 전제되는 것이기에 앞서 자공의 물음에 대해서도(옹야편 28장) 공자는 '요순도 이를 병되이 여겼다'고 똑같이 답변했다.
그만큼 富의 분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사(政事)의 가장 큰 과제인데 만약 富의 양극화로 불균형이 심해지면 결국은 국가가 기울어지기 때문이다.
위정자가 정치를 잘 한다는 것은 富의 고른 분배인데, 이것이 고대사회에서는 정전법으로 나타났고, 이 제도를 제대로 유지하려면 위정자의 곧은 마음이 필요한데 그것이 주역 곤(坤) 괘에서 말하는 '경(敬)으로써 안을 곧게 함(敬以直內)요, 의(義)로써 밖을 방정하게 함(義以方外)'이다.
'속마음이 정성스러우면 바깥으로 드러난다(誠於中 形於外; 대학)'고 하였듯이 천지자연의 이치를 공경하듯 공경하는 자세로 수신의 도(道)를 세운다면(修身以敬), 이를 바탕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들부터 잘 다스려 편안하게 할 수 있고(修己以安人), 더 넓게는 백성들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修己以安百姓).
이것이 대학에서 말하는 8조목, 격물(格物), 지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시(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해당하는 것으로, 格物, 致知, 誠意, 正心이 修身以敬이라면, 齊家, 治國은 修己以安人이고, 平天下는 修己以安百姓에 해당한다.
하지만 安百姓 곧 博施濟衆(박시제중; 옹야편 28장)은 요순도 병되이 여기신 것이기에 쉽지는 않겠지만 최선을 다해 정사에 임하라는 공자의 자로에 대한 격려이다.
(朱子)
修己以敬은 夫子之言이 至矣盡矣로대 而子路 小之라
몸을 닦아서 써 공경함은 부자의 말씀이 지극하고 다했으되 자로가 작게 여김이라(대수롭게 여기지 않음이라).
故로 再以其充積之盛이 自然及物者로 告之하시니 無他道也라
그러므로 두 번째에 그 채우고 쌓임의 성대함이 자연히 물건에 미치는 것으로써 가르치시니(修己以安人) 다른 道가 없음이라.
人者는 對己而言이라
百姓則盡乎人矣라
사람(人)은 나를 상대하여 말함이라. 백성은 곧 사람을 모두 함이라.
堯舜猶病은 言不可以有加於此니 以抑子路하여 使反求諸近也라
요순도 오히려 병되이 여김은 '가히 여기(修己以安百姓)에 더할 것이 있지 않다는 것으로써' 말함이니, 이로써 자로를 억제하여 (자로로) 하여금 돌이켜 저 가까이에서 구하게 함이라.
蓋聖人之心은 無窮하여 世雖極治나 然이나 豈能必知四海之內이 果無一物不得其所哉리오
대개 성인의 마음은 끝이 없어 세상을 비록 지극히 다스리나 그러나 어찌 능히 반드시 사해의 안이 과연 한 가지 물건이라도 그 (각자 있을) 곳을 얻지 않음이 없다고 주장하리오.
故로 堯舜도 猶以安百姓爲病하시니 若曰吾治已足이라 하면 則非所以爲聖人矣라
그러므로 요순도 오히려 백성을 편안케 하는 것으로써 (그러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병되이 여기셨으니, 만약 '나의 다스림이 이미 족하다'고 말한다면 곧 이로써 聖人이 되지 못하는 바이라.
(程子)
君子는 修己以安百姓하여 篤恭而天下平이니 唯上下 一於恭敬則天地 自位하고 萬物도 自育하며 氣無不和하여 而四靈이 畢至矣라
군자는 몸을 닦아 이로써 백성을 편안히 하여 돈독하고 공순히 하여 천하가 평안해지니, 오직 상하가 공경에 한결같으면 곧 천지가 스스로 자리하고, 만물도 스스로 길러지며, 기운이 조화롭지 않음이 없어서(中庸 제1장,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네 신령 (용, 봉황, 기린, 거북; 禮記 禮運편)도 다 지극해짐이라.
此는 體信達順之道니 聰明睿知 皆由是出하니 以此로 事天饗帝니라
이것은 믿음을 체득하여 순함에 이르는 도이니, 총명예지(中庸 31장)가 다 이로 말미암아 나오니, 이로써 하늘을 섬기고 상제에 제사 지내니라.
孟子見梁惠王. 王曰: 叟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다. (그의 명성을 익히 듣고 있던) 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선생께서 (추나라에서 위나라의 수도인 대량까지) 천 리를 멀다 하지 않으시고 오셨으니, 또한 장차 내 나라에 어떤 이익을 주실 수 있겠는지요?"
孟子對曰: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맹자가 말하였다.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王曰, 何以利吾國; 大夫曰, 何以利吾家; 士庶人曰, 何以利吾身. 上下交征利而國危矣.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익이 될까 하시면, 대부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안에 이익이 될까 하며, 사(士)와 서인(庶人)들은 어떻게 하면 내 몸에 이익이 될까 생각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이익만을 취하려 한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萬乘之國, 殺其君者, 必千乘之家, 千乘之國, 殺其君者, 必百乘之家.
(만 대의 수레 전차를 갖고 있는) 만 승의 나라에서 그 군주를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천 승을 가진 공경의 집안이요, 천 승의 나라에서 그 군주를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백 승을 가진 대부의 집안이 될 것입니다.
萬取千焉, 千取百焉, 不爲不多矣.
만 승의 나라의 대부는 수레 전차 1천 량을 갖고 있고, 천 승의 나라 대부는 수레 전차 100량을 갖고 있으니, 이들 대부가 가진 것 역시 적다고 할 수 없습니다.
苟爲後義而先利, 不奪不饜.
그런데 만약 공의(公義)를 뒤로 하고 사사로운 이익을 앞세우는 풍조가 성행한다면, 이들은 임금이 가진 것을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未有仁而遺其親者也, 未有義而後其君者也.
어진 마음을 갖고서도 그 어버이를 버리는 자는 없었으며, 공의를 지키는 마음을 갖고서도 그 임금을 태만하게 대하는 자는 없었습니다.
王亦曰仁義而已矣. 何必曰利.
왕께서는 오직 인의만을 말씀하시옵소서. 하필 이익 따위를 말씀하십니까."
(해설)
일찍이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이 대목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었다.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맹자'를 읽다가 양혜왕이 맹자에게 '어떤 이로움을 주실 수 있겠는지요?'라고 묻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 이익이란 게 참으로 난을 불러 일으키는 단초가 되는 것이구나!' 공자께서도 이익에 대해서는 거의 말씀하시지 않으셨으니, 그것은 난리의 근원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이익을 본위로 행동하면 원한을 사는 일이 많다'고 말한 것이다.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이익을 좋아하는 폐해란 조금도 다를 게 없다."
사마천이 이렇게 말한 것은 시공을 초월해 현재의 시점에서 봐도 그 의미가 새롭다. 사실 이 대목의 글은 본래 '맹자'라는 책의 첫 대목이다. 맹자는 왜 자신의 저작을 '이익'에 대한 논의로 시작했을까?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심이 모든 악행의 근원이고 모든 위기 상황의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불을 좇다 자기 몸을 불사르는 불나방처럼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작금의 현실이 이를 여실히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세칭 신자유주의라는 미명 아래 저질러지고 있는 모든 작태들의 근저에 깔린 것은 이익이다. 맹자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부르짖는다. "왜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何必曰利)?"
물론 맹자라고 모든 물욕을 나쁘게 본 것은 아니다. 인간 역시 유적 존재로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밥벌이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도 단순히 밥을 빌어먹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에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하기에 맹자는 매사에 진퇴를 신중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陳臻問曰: 前日於齊, 王餽兼金一百而不受; 於宋, 餽七十鎰而受; 於薛, 餽五十鎰而受.
맹자의 제자 진진(陳臻)이 물었다. "얼마 전에 제나라에 계실 때 왕이 황금 100일(鎰, 1일은 24냥쭝)을 보내왔을 때는 선생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송나라에서 70일을 보내오자 받으시고, 또 설나라에서 50일을 보내 온 것도 받으셨습니다.
前日之不受是, 則今日之受非也; 今日之受, 是則前日之不受, 非也. 夫子必居一於此矣.
지난번 제나라에서 받지 않으셨던 처사가 옳다면 이번에 받으신 것은 잘못되었고, 반대로 이번에 받으신 처사가 옳다면 지난번에 받지 않으셨던 처사가 잘못된 것이겠지요. 선생님께서는 이 가운데 어느 한쪽을 택하셨어야 하지 않을까요."
孟子曰: 皆是也. 當在宋也, 予將有遠行; 行者必以贐, 辭曰, 餽贐. 予何爲不受.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양쪽이 다 옳았다. 송나라에 있을 때에는 내가 먼 길을 떠나려 했다. 길 떠날 사람에게는 반드시 전별금을 주는 법이다. 송나라의 왕이 '전별금으로 드립니다'는 말까지 했으니, 내 어찌 받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
當在薛也, 予有戒心. 辭曰, 聞戒, 故爲兵餽之. 予何爲不受.
또 설나라에 있을 때에는 나의 신변이 위험해 주변을 경계해야 했다. 그런데 설나라 왕이 '신변을 경계하신다는 말을 들었기에, 그 무기를 장만하시라고 드립니다'는 말까지 했으니, 내 어찌 받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
若於齊, 則未有處也. 無處而餽之, 是貨之也. 焉有君子而可以貨取乎.
그러나 제나라에 있을 때에는 받을 명분이 없었다. 받을 처지가 아닌데도 황금을 보내 온 까닭은 재물로 환심을 사려는 것이다. 어찌 군자가 그런 재물을 받을 수 있겠느냐?"
孟子致爲臣而歸. 王就見 孟子曰: 前日願見而不可得, 得侍同朝甚喜. 今又棄寡人而歸, 不識可以繼此而得見乎.
맹자가 제나라의 객경 노릇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제의 선왕이 굳이 맹자가 있는 곳으로 손수 찾아와 말했다. "저는 예전부터 선생을 만나 보기를 원했지만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 뒤 (7년 동안이나) 한 조정에서 선생을 모실 수 있게 되어 매우 기뻤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과인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 하시니, 앞으로도 계속 만나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對曰: 不敢請耳, 固所願也.
맹자가 대답했다. "감히 그렇게 되기를 청할 수 없지만, 원컨대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나이다.
他日王謂時子曰: 我欲中國而授孟子室, 養弟子以萬鍾, 使諸大夫國人皆有所矜式. 子盍爲我言之.
얼마 뒤 어느 날 제 선왕이 신하인 시자(時子)에게 말했다. "나는 이 나라 수도 한복판에다 맹자를 위해 건물을 지어 주고, 그의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종이나 되는 녹봉을 줄 것이며, 여러 대부와 백성들이 모두 그를 공경하고 본받도록 하겠노라. 그대가 나 대신 이 기쁜 소식을 맹자에게 전해다오."
時子因陳子而以告孟子, 陳子以時子之言告孟子.
시자는 맹자의 제자인 진진에게 이 소식을 전하게 했다. 진진이 시자의 말을 맹자에게 고했다.
孟子曰: 然夫時子惡知其不可也. 如使予欲富, 辭十萬而受萬, 是爲欲富乎.
맹자가 듣고 말했다. "글쎄다. 대저 시자 따위의 인물이 그게 될 법이나 한 소린지 어찌 알겠느냐? 내가 만약 치부하기를 원했다면, 십만 종이나 되는 객경의 녹을 버리고 만 종의 녹을 받고 이걸 치부했다고 여겼겠느냐?
季孫曰; 異哉子叔疑. 使己爲政, 不用, 則亦已矣, 又使其子弟爲卿. 人亦孰不欲富貴. 而獨於富貴之中, 有私龍斷焉.
계손이라는 이가 이런 말을 했었다. '자숙의(子叔疑)의 행동은 참 묘한 데가 있어. 자기가 정치를 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그만두고 말 일이지, 또 자기 아들을 경으로 앉혔단 말이야. 인간이라면 그 뉘라서 부귀를 원하지 않겠는가마는, 자숙의는 부귀를 독차지하고도 사사롭게 농단하려 하는구나.'
古之爲市者, 以其所有, 易其所無者, 有司者治之耳.
예전의 저잣거리라는 것은 물건을 갖고 있는 이가 그것을 자기에게 없는 것으로 바꾸는 곳이었고, 관리는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게 하는 역할을 했지.
有賤丈夫焉, 必求壟斷而登之, 以左右望而罔市利.
그런데 어떤 천한 놈이 나타나 저잣거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언덕(壟斷)에 올라가 좌우를 둘러보며 저잣거리의 이익을 모두 독점했던 게지.
人皆以爲賤故, 從而征之. 征商自此 賤丈夫始矣.
사람들이 모두 그를 천하게 여겼고, 관리도 이놈에게 세금을 징수했다. 장사치에게 세금을 징수하는 법이 이 천한 놈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周霄問曰: 古之君子仕乎.
위나라 사람 주소(周霄)가 맹자에게 물었다. "옛날의 군자들도 벼슬을 했습니까?"
孟子曰: 仕. 傳曰; 孔子三月無君, 則皇皇如也, 出疆必載質. 公明儀曰; 古之人三月無君則吊.
맹자가 말했다. "벼슬을 했소. 전해 오는 기록에 이런 말이 있소이다. '공자께서는 석 달 동안이라도 자기가 섬길 임금이 없으면 불안하게 여기셨고, 한 나라에서 사직하고 다른 나라로 떠날 때에도 반드시 새 임금에게 바칠 예물을 싣고 가셨다.' (노나라의 현인인) 공명의(公明儀)도 이렇게 말했소. '옛사람은 석 달 동안 임금을 섬기지 못한 자를 찾아가 위로해 주었다.'"
三月無君則吊, 不以急乎.
(주소가 다시 물었다) "석 달 동안 벼슬을 못했다고 찾아가서 위로해 주는 것은 너무 조급하지 않습니까?"
曰: 士之失位也, 猶諸侯之失國家也.
맹자가 말했다. "선비가 관직을 잃는 것은 마치 제후가 나라를 잃은 것과 같소.
禮曰; 諸侯耕助, 以供粢盛. 夫人蠶繅, 以爲衣服. 犧牲不成, 粢盛不潔, 衣服不備, 不敢以祭. 惟士無田, 則亦不祭.
그래서 '예기'에서도 이렇게 말했던 것이오. '제후가 조상 제사에 쓸 쌀을 장만하기 위해 봄에 적전(籍田)을 손수 갈면 백성이 그를 도와 수확한다. 제후의 부인은 손수 누에를 치고 실을 뽑아 제사 드릴 의복을 만든다. 그런데 제후가 나라를 잃으면 제사에 쓸 희생물도 키우지 못하게 되고, 제사에 올릴 곡식도 깨끗하지 못할 것이다. 제사에 입을 옷도 마련할 수 없어, 결국 제사도 지내지 못할 것이다. 선비도 제사를 드릴 규전(圭田)이 없으면 역시 제사를 지낼 수가 없다.'
牲殺器皿衣服不備, 不敢以祭. 則不敢以宴, 亦不足吊乎.
(선비가 그 직위를 잃게 되면) 희생물이나 제물 그릇, 의복도 마련하지 못해서 제사를 지내지 못할 것이오. 또 제사를 마친 뒤에 베푸는 술자리도 열지 못할 테니, 이 또한 위로할 만한 일이 아니겠소?"
出疆必載質, 何也.
(주소가 다시 물었다) "공자께서 나라를 떠나실 때 반드시 예물을 싣고 가신 까닭은 어째서입니까?"
曰: 士之仕也, 猶農夫之耕也. 農夫豈爲出疆舍其耒耜哉.
맹자가 말했다. "선비가 벼슬살이를 하는 것은 마치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과 같소. 농부가 농사짓던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갈 때에 어찌 쟁기와 보습을 버리고 가겠소?”
曰: 晉國亦仕國也, 未嘗聞仕如此其急. 仕如此其急也, 君子之難仕, 何也.
주소가 다시 물었다. "우리 위(魏)나라에도 군자들이 많이 벼슬을 하고 있지만, 벼슬살이를 그렇게까지 긴급하게 여긴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벼슬살이가 만약 그처럼 긴급한 일이라면, 선생님 같은 군자께서 조정에 나와 벼슬하기를 꺼리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曰: 丈夫生而願爲之有室, 女子生而願爲之有家. 父母之心, 人皆有之.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내가 태어나면 그 아들을 위해 좋은 아내를 얻어 주기 원하며, 또 여자가 태어나면 그 딸을 위해 좋은 남편을 얻어 주기 원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오. 이런 심정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인 게지요.
不待父母之命, 媒妁之言, 鑽穴隙相窺, 踰牆相從, 則父母國人皆賤之.
그런데 부모의 지시나 중매쟁이의 혼담을 기다리지 않고 제멋대로 담에 구멍을 뚫어 서로 엿보거나 울타리를 넘나들며 서로 짝지어 놀아난다면, 부모나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런 남녀를 천하게 여길 것이오.
古之人未嘗不欲仕也, 又惡不由其道. 不由其道而往者, 與鑽穴隙之類也.
옛날의 군자들도 다 벼슬살이를 원치 않은 것은 아니지만, 바른 도리를 따르지 않고서는 벼슬하길 싫어했소. 바른 도리를 따르지 않고 벼슬하러 가는 것은 마치 남녀가 담에다 구멍을 뚫고 서로 엿보는 것과 같은 짓이오."
彭更問曰: 後車數十乘, 從者數百人, 以傳食於諸侯, 不以泰乎.
제자 팽갱(彭更)이 맹자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천하를 주유하실 때) 뒤에 수십 대의 수레를 거느리고 수백 명의 제자가 따르게 하면서 제후들을 차례로 찾아다니며 향응을 받으시는 것은 분에 넘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으시는지요?"
孟子曰: 非其道則, 一簞食, 不可受於人; 如其道, 則舜受堯之天下, 不以爲泰. 子以爲泰乎.
맹자가 말했다. "물론 도리에 맞지 않는다면, 한 소쿠리의 밥도 얻어 먹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도리에 맞기만 하다면야, 순 임금이 요 임금으로부터 천하를 물려받은 일도 과분하다고 여길 게 없는 법이지. 그런데 자네는 그 일이 과분한 것이라 생각하는가?"
曰: 否. 士無事而食, 不可也.
팽갱이 말했다. "아닙니다. 선비로서 하는 일도 없이 남에게 얻어먹기만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씀드린 것일 뿐입니다."
曰: 子不通功易事, 以羨補不足, 則農有餘粟, 女有餘布. 子如通之, 則梓匠輪輿皆得食於子.
맹자가 말했다. "자네가 (나라를 다스리되) 백성이 만든 물건들을 유통시키고, 각자의 일을 분담해 만들어 낸 물건을 서로 바꿔 쓰며, 남는 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지 않는다면, 농사짓는 사람은 곡식이 남아돌고 옷 짜는 여자는 옷감이 남아돌 것이네. 그러나 자네가 물품을 서로 바꿔 쓰도록 해 준다면, 목수들이나 수레 만드는 사람들도 모두 자네 덕분에 먹을 것을 얻게 될 게야.
於此有人焉, 入則孝, 出則悌, 守先王之道, 以待後之學者, 而不得食於子, 子何尊梓匠輪輿而輕爲仁義者哉.
하지만 여기 한 사람이 있어 집 안에 들어와선 효도하고 밖에 나가선 공손하며, 선왕의 도를 지킴으로써 후학들에게 그 도를 잘 전하고 있는데, 자네가 (그 사람은 실제로 뭘 하는 게 없다고 여겨) 먹을 것을 얻지 못한다면, 자네는 목수나 수레 만드는 사람만을 존중하고, 인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경멸하는 게 되지 않겠나?"
曰: 梓匠輪輿, 其志將以求食也; 君子之爲道也, 其志亦將以求食與.
팽갱이 말했다. "목수나 수레를 만드는 사람은 처음부터 먹을 것을 구할 뜻으로 일을 한 것입니다. 군자가 인의의 도를 실천하는 것 역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입니까?"
曰: 子何以其志爲哉? 其有功於子, 可食而食之矣. 且子食志乎? 食功乎.
맹자가 말했다. "자네는 어째서 무슨 목적이니 하는 것을 따지고 있는가? 그들이 자네에게 공이 될 만한 일을 했고 따라서 그에 따른 보수를 줄 만하면, 그들에게 그에 마땅한 보수를 주어 먹고살게 하면 되는 것일세. 자네는 목적을 보고 보수를 주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구체적인 공적을 보고 보수를 주겠는가?"
曰: 食志.
팽갱이 말했다. "저는 그들의 목적을 보고 보수를 주겠습니다."
曰: 有人於此, 毁瓦畵墁, 其志將以求食也, 則子食之乎.
맹자가 말했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고 하세. 그 사람을 불러 담장을 고치게 했는데, 일이 서툴러 오히려 기왓장을 깨뜨리고 담장에 흠집을 냈네. 하지만 이 사람이 그리한 것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다네. 그럼에도 자네는 이 사람에게 보수를 주겠는가?"
曰: 否.
팽갱이 말했다. "안 주겠습니다."
曰: 然則子非食志也, 食功也.
맹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도 역시 목적을 보고 보수를 주는 게 아니라, 공적을 보고 보수를 주는 것일세. (다만 자네는 인의의 공적을 보는 눈이 없을 뿐이지)"
禹稷當平世, 三過其門而不入, 孔子賢之.
하나라 우 임금이나 주나라 후직은 태평성대를 살았음에도 백성을 돌보느라고 바빴다. 그래서 (우 임금의 경우) 자기 집 문 앞을 세 번이나 지나치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공자는 이들을 현인이라고 칭찬하셨다.
顔子當難世, 居於陋巷, 一簞食, 一瓢飮, 人不堪其憂, 顔子不改其樂, 孔子賢之.
안회는 혼란한 시기에 처해 누추한 골목에 살았는데,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만족하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런 고생을 감내하지 못했겠지만, 안회는 오히려 끝까지 자기가 즐거워하는 생활을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공자는 그를 현인이라고 칭찬했다.
孟子曰: 禹稷顔回同道. 禹思天下有溺者, 由己溺之也; 稷思天下有餓者, 由己餓之也, 是以如是其急也.
맹자는 이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 임금이나 후직과 안회는 같은 도리를 지켰다. (치수에 힘썼던) 우 임금은 천하의 백성 가운데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마치 자기가 빠진 것처럼 생각했다. (농경을 담당했던) 후직은 천하의 백성 가운데 굶주린 자가 있으면 마치 자기가 굶주리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들이 맡은 임무는 그처럼 긴급한 것이었다.
禹稷顔子, 易地則皆然.
우 임금이나 후직, 안회가 서로 그들이 처한 상황을 바꾸었다 해도 (우 임금과 후직은 안회처럼 안빈낙도 하고, 안회는 우 임금이나 후직처럼 긴급하게) 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今有同室之人鬪者, 救之, 雖被髮纓冠而救之, 可也.
지금 한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 싸운다면, 그들을 말려야 한다. 비록 머리가 산발이 되고 갓끈이 떨어져 나갈지언정 그들을 말려야 한다.
鄕隣有鬪者, 被髮纓冠而往救之, 則惑也, 雖閉戶可也.
하지만 이웃집에서 싸움이 났는데도 머리가 산발이 되고 갓끈이 떨어져 나갈 지경으로 말린다면 이는 괜한 참견이 될 것이다. 그때는 창문을 닫고 상관하지 않는 게 옳다."
(해설)
맹자는 생계를 위해 벼슬길에 나아가더라도 끝내 자존심을 지켰다. 군자에게는 생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삶의 지향이 있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떳떳할 수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맹자의 생각을 그의 육성으로 생생하게 들어 볼 일이다.
孟子曰: 仕非爲貧也, 而有時乎爲貧. 娶妻非爲養也, 而有時乎爲養.
맹자가 말했다. "벼슬은 가난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지만, 때로는 가난 때문에 하는 수도 있다. 아내는 시중들게 하기 위해 맞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 시중들게 하기 위해 맞는 수도 있다.
爲貧者, 辭尊居卑, 辭富居貧. 辭尊居卑, 辭富居貧, 惡乎宜乎. 抱關擊柝.
다만 가난 때문에 벼슬하는 자는 높은 자리를 사양하고 낮은 자리에 있어야 하며, 부귀를 사양하고 청빈하게 살아야 한다. 높은 자리를 사양하고 낮은 자리에 있어야 하며, 부귀를 사양하고 청빈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문지기나 야경꾼 정도라면 좋을 것이다.
孔子嘗爲委吏矣, 曰; 會計當而已矣. 嘗爲乘田矣. 曰; 牛羊茁壯長而已矣.
공자께서도 예전에 창고를 지키는 위리라는 벼슬을 지내신 적이 있었는데, '나는 회계만 정확하게 맞췄다'고 말씀하셨다. 또 동산을 지키(며 목축을 관리하)는 승전이라는 벼슬을 지내신 적도 있었는데, '나는 소와 양이 살찌고 잘 자라게 했을 뿐이다'고 말씀하셨다.
位卑而言高, 罪也. 立乎人之本朝, 而道不行, 恥也.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나라의 큰일을 논하는 것은 (참월의) 죄이다. 또한 조정의 요직에서 벼슬하면서도 왕도 정치를 행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萬章曰: 士之不託諸侯, 何也.
만장이 맹자에게 물었다. "사(士)가 제후에게 의탁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孟子曰: 不敢也. 諸侯失國, 而後託於諸侯, 禮也; 士之託於諸侯, 非禮也.
맹자가 말했다. "감히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제후가 나라를 잃고 다른 제후에게 의탁하는 것은 (대등한 신분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예에 합당한 것이지만, 일개 떠돌이 사가 제후에게 의탁하는 것은 (신분의 차이가 있으므로) 예에 맞지 않는 것이다."
萬章曰: 君餽之粟, 則受之乎.
만장이 다시 물었다. "그 나라 임금이 곡식을 보내오면 받아도 됩니까?"
曰: 受之.
맹자가 말했다. "받아도 된다."
受之何義也.
만장이 다시 물었다. "받아도 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曰: 君之於氓也, 固周之.
맹자가 말했다. "임금이 자기 나라 백성을 구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曰: 周之則受, 賜之則不受, 何也.
만장이 다시 물었다. 구제하는 것은 받고, 봉록으로 하사하는 것은 받지 않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不敢也.
맹자가 말했다. "감히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曰: 敢問其不敢, 何也.
만장이 다시 물었다. 감히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감히 물어도 되겠는지요?"
曰: 抱關擊柝者, 皆有常職以食於上. 無常職而賜於上者, 以爲不恭也.
맹자가 말했다. "문지기나 야경꾼은 모두 일정한 직분이 있기 때문에 군주로부터 녹을 받아먹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일정한 직분이 없는데 군주로부터 봉록에 해당하는 것을 하사받는 것은 불공한 것이다."
曰: 君餽之則受之, 不識可常繼乎.
만장이 말했다. "임금이 곡물을 보내오면 받아도 된다고 하셨는데, 늘 계속해서 받아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曰: 繆公之於子思也, 亟問, 亟餽鼎肉. 子思不悅.
맹자가 말했다. "(그건 좀 생각해 볼 일이다) 노나라 목공이 자사에게 자주 안부를 물었고, 또 그때마다 삶은 고기를 보내왔다. 그러나 자사는 좋아하지 않았다.
於卒也, 摽使者出諸大門之外, 北面稽首再拜而不受, 曰: 今而後知君之犬馬畜伋. 盖自是臺無餽也.
마침내는 목공이 보낸 사자에게 손짓하여 대문 밖으로 나가게 하고, 북쪽을 향해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을 하고는 보내온 물건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임금이 나를 개나 말처럼 키우고 있다는 것으로 알겠다.' 그 뒤부터 목공은 사자를 시켜 삶은 고기를 보내지 않았다.
悅賢不能擧, 又不能養也, 可謂悅賢乎.
한 나라의 임금이 (말로만) 현인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등용하지도 않고 또 제대로 모시지도 못한다면, 현인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曰: 敢問國君欲養君子, 如何斯可謂養矣.
만장이 다시 물었다. "임금이 군자를 모시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제대로 모실 수 있겠습니까?"
曰: 以君命將之, 再拜稽首而受. 其後廩人繼粟, 庖人繼肉, 不以君命將之.
맹자가 말했다. "처음에 임금의 명으로 예물을 보내 주면, 군자는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그 예물을 받는다. 그 다음부터는 창고지기가 곡식을 대고 푸줏간에서 고기를 대는데, 임금의 명령으로 보내지 않는 것이다.
子思以爲鼎肉使己僕僕爾亟拜也, 非養君子之道也.
자사는 '삶은 고기를 보내 나로 하여금 귀찮게 자주 머리를 숙이도록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 참으로 군자를 모시는 게 아니라고 여겼던 것이다.
堯之於舜也, 使其子九男事之, 二女女焉.
요 임금은 순에게 자기의 아홉 아들을 시켜 그를 스승으로 받들게 하고, 두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었다.
百官牛羊倉廩備, 以養舜於畎畝之中, 後擧而加諸上位, 故曰 王公之尊賢者也.
또 백관과 소, 양 그리고 창고를 다 구비하여 순이 논밭에서 농사짓는 것을 잘 모시도록 하였다. 그 뒤에 순을 다시 등용하여 높은 자리에 올렸다. 그러므로 말하노니, 이것이야말로 왕공 된 자가 현자를 우러르는 도리인 것이다."
萬章曰: 敢問不見諸侯, 何義也.
만장이 맹자에게 물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제후를 만나러 가시지 않는 까닭은 어째서 입니까?"
孟子曰: 在國曰市井之臣, 在野曰草莽之臣, 皆謂庶人, 庶人不傳質爲臣, 不敢見於諸侯, 禮也.
맹자가 말했다. "도읍에 살고 있는 선비를 시정의 신하라 하고 초야에 살고 있는 신하를 초망의 신하라 하는데, 이들을 모두 서인이라고 부른다. 서인이라면 예물을 바치고 군신 관계를 맺지 않는 한 공연히 제후를 만나러 가지 않는 게 예이다."
萬章曰: 庶人, 召之役, 則往役; 君欲見之, 召之, 則不往見之, 何也.
만장이 다시 물었다. "서인은 임금이 불러서 부역을 시키면 가서 부역을 하면서도, 임금이 보고 싶다고 부르면 나아가 만나지 않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
曰: 往役, 義也; 往見, 不義也. 且君之欲見之也, 何爲也哉.
맹자가 말했다. "서인이 가서 부역을 하는 것은 의무이고, 나아가 만나는 것은 의무가 아니다. 너는 임금이 보고 싶어 하는 까닭이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느냐?"
曰: 爲其多聞也, 爲其賢也.
만장이 말했다. "만나려 하는 이가 견문이 넓고 현명하기 때문이겠지요."
曰: 爲其多聞也, 則天子不召師, 而況諸侯乎.
맹자가 말했다. "그의 견문이 넓기 때문이라면 (마땅히 그를 스승으로 모시되), 천자라도 스승을 불러서 오라고 할 수 없는데, 하물며 제후임에랴?
爲其賢也, 則吾未聞欲見賢而召之也.
또 현명하기 때문이라면, 나는 여태껏 임금이 현명한 사람을 보고 싶어서 불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繆公亟見於子思, 曰; 古千乘之國以友士, 何如?
노나라 목공은 자사를 자주 찾아가 만났는데,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옛날 천승지국의 임금이 선비를 벗으로 사귈 때에는 어떻게 했습니까?'
子思不悅, 曰; 古之人有言曰, 事之云乎, 豈曰友之云乎.
자사는 그 말을 듣고 불쾌하게 여기며 이렇게 말했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스승으로 모신다고 했을 뿐, 어찌 벗한다고 했겠습니까?'
子思之不悅也, 豈不曰; 以位, 則子君也, 我臣也, 何敢與君友也. 以德, 則子事我者也, 奚可以與我友.
자사가 불쾌하게 여기매, 사실은 이렇게 말하려 했던 게 아니었을까? ‘지위로 따지자면 당신은 임금이고 나는 신하이다. 내 어찌 임금과 벗할 수 있겠느냐? 또 덕으로 따지자면 당신이 나를 섬겨야지, 어찌 나와 벗할 수 있겠나?’
千乘之君, 求與之友而不可得也, 而況可召與.
천 승의 나라 임금도 현명한 선비와 벗할 수 없는데, 하물며 제후가 나를 불러 만나 볼 수 있겠느냐?
齊景公田, 招虞人以旌. 不至, 將殺之.
제나라 경공이 사냥을 나갔을 때 (장대 끝에 꿩의 깃털을 꼽은) 정(旌) 기를 흔들어 산림지기를 오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가 오지 않자 경공은 그를 죽이려고 했다.
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 孔子奚取焉. 取非其招不往也.
공자께서는 '지사는 언제나 도랑에 굴러 떨어져 죽을 각오가 되어 있고, 용사는 언제나 자기 목을 잃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그를 칭찬하셨는데, 어떤 점을 높이 사서 그랬겠느냐? 올바른 방법으로 자기를 부른 것이 아니라고 해서 임금에게 가지 않았던 산림지기의 태도를 높이 산 것이다."
曰: 敢問招虞人何以.
만장이 물었다. "그렇다면 산림지기를 부를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曰: 以皮冠, 庶人以旃, 士以旂, 大夫以旌.
맹자가 말했다. "군주가 산림지기를 부를 때는 (사냥할 때 먼지나 비와 눈을 피하기 위해 예관 위에 덧쓰는) 피관(皮冠)을 흔들어야 한다. 군주가 서인을 부를 때에는 장식이 없는 전(旃)이라는 붉은 깃발을 사용하고, 사(士)를 부를 때는 방울 달린 기(旂)라는 쌍룡이 그려진 깃발을 사용하고, 대부를 부를 때에는 앞서 말한 정(旌)을 사용하는 게 올바른 방법이다.
以大夫之招招虞人, 虞人死不敢往.
그런데 대부를 부르는 정 기를 가지고 산림지기를 불렀으니, 그 산림지기가 죽을지언정 감히 갈 수 있었겠느냐.
以士之招招庶人, 庶人豈敢往哉.
만약 사를 부르는 기를 가지고 서인을 불렀다면, 서인이 어찌 감히 가겠느냐?
況乎以不賢人之招招賢人乎.
하물며 현명하지 못한 사람을 부르는 방법으로 현명한 사람을 부를 수 있겠느냐?
欲見賢人而不以其道, 猶欲其入而閉之門也.
임금이 현명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면서도 올바른 방법으로 부르지 않는다면, 마치 들어오라고 하면서도 문을 닫아 놓은 것과 같다.
夫義, 路也; 禮, 門也. 惟君子能由是路, 出入是門也.
대저 의는 길이요, 예는 문이다. 오직 군자만이 이 길을 걷고, 이 문을 드나들 수 있는 것이다.
詩云; 周道如底, 其直如矢. 君子所履, 小人所視.
'시경'에도 이런 시가 있다. '주나라의 길은 숫돌같이 평탄하고 화살처럼 곧아라. 군자가 밟고 가면 소인들이 보고 따르네.'"
萬章曰: 孔子, 君命召, 不俟駕而行. 然則孔子非與.
만장이 다시 물었다. "공자께선 임금이 부르시면 수레에 말을 매기도 전에 서둘러 가셨다는데, 그렇다면 공자께서 잘못하신 것인가요?"
曰: 孔子當仕有官職, 而以其官召之也.
맹자가 말했다. "공자께선 그때 마침 벼슬을 하시어 관직을 맡고 계셨다. 그러니 그 관직에 맞게 소환되어 가신 것이니라."
孟子謂萬章曰: 一鄕之善士, 斯友一鄕之善士.
맹자가 만장에게 말했다. "한 고을에서 훌륭하다 인정받는 선비는 역시 한 고을에서 훌륭하다 인정받는 선비와 벗할 수 있고,
一國之善士, 斯友一國之善士.
한 나라에서 훌륭하다 인정받는 선비 역시 한 나라에서 훌륭하다 인정받는 선비와 벗할 수 있다.
天下之善士, 斯友天下之善士.
온 천하가 훌륭하다 인정한 선비도 역시 온 천하가 훌륭하다 인정한 선비들과 벗할 수 있다.
以友天下之善士爲未足, 又尙論古之人.
온 천하가 인정하는 훌륭한 선비들과 벗하고도 여전히 성에 차지 않으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옛 성현들을 추론하며 벗 삼으면 된다.
頌其詩, 讀其書, 不知其人, 可乎. 是以, 論其世也, 是尙友也.
그들이 쓴 시를 읊고 그들이 쓴 책을 읽으면서도 그들의 사람됨을 모른대서야 되겠느냐? 그런 식으로 그들이 살아갔던 시대를 논구하는 것이야말로 옛 성현과 벗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孟子曰: 有天爵者, 有人爵者.
맹자가 말했다. "천작, 즉 하늘이 내려 준 작위도 있고, 인작, 즉 임금이 내려 준 작위도 있다.
仁義忠信, 樂善不倦, 此天爵也; 公卿大夫, 此人爵也.
인의충신이라는 덕성을 갖추고 선행을 즐기되 싫증을 내지 않는 것이 바로 천작이고, 공경대부와 같은 세속적인 관직이 바로 인작이다.
古之人脩其天爵, 而人爵從之.
옛사람들은 천작을 닦는 데만 전념했으니, 인작은 그에 따라 저절로 뒤따랐다.
今之人脩其天爵, 以要人爵. 旣得人爵, 而棄其天爵, 則或之甚者也, 終亦必亡而已矣.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천작을 닦음으로써 인작을 구한다. 게다가 일단 인작을 얻으면 천작을 버리니, 그 미혹됨이 매우 심하다. 그러다가는 끝내 인작마저도 잃게 될 것이다."
孟子曰: 欲貴者, 人之同心也. 人人有貴於己者, 弗思耳.
맹자가 말했다. "존귀하게 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이다. 사람마다 그러한 존귀함을 자기 안에 갖고 있는데, 그걸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人之所貴者, 非良貴也. 趙孟之所貴, 趙孟能賤之.
사람들이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인간 본래의 존귀함이 아니다. 조맹과 같은 재상이 존귀하게 만들어 준 이는 바로 그 조맹이 다시 그를 천하게 만들 수 있다.
詩云; 旣醉以酒, 旣飽以德.
'시경'에 이런 시가 있다. '사람이 술에 취할 수도 있고, 덕으로 배가 부를 수도 있다.'
言飽乎仁義也, 所以不願人之膏粱之味也.
인의라는 덕성으로 배가 부르면 다른 사람의 고량진미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다.
令聞廣譽施於身, 所以不願人之文繡也.
아름다운 평판과 널리 알려진 명예가 내 몸에 가득하면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입는) 수놓은 비단옷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다."
陳子曰: 古之君子, 何如則仕.
제자 진진이 맹자에게 물었다. "옛날의 군자는 어떠한 경우에 벼슬을 했습니까?"
孟子曰: 所就三, 所去三.
맹자가 말했다. "나아가 벼슬하는 경우가 세 가지 있고, 벼슬에서 물러나는 경우도 세 가지가 있다.
迎之致敬以有禮, 言將行其言也, 則就之. 禮貌未衰, 言弗行也, 則去之.
(가장 좋기로는) 임금이 예의를 갖추어 경의를 표하며 맞아들이고 군자의 말을 받아들여 장차 실천하겠다고 말하면 물론 벼슬에 나아간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도) 예우는 그대로지만 군자의 말을 실천할 의지가 없다면 벼슬에서 물러난다.
其次, 雖未行其言也, 迎之致敬以有禮, 則就之. 禮貌衰則去之.
그 다음으로는 군자의 말을 받아들여 실천하지는 않지만 임금이 예의를 갖추어 경의를 표하며 맞아들이는 경우에도 나아가 벼슬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 예우가 시들해지면 벼슬에서 물러난다.
其下, 朝不食, 夕不食, 飢餓不能出門戶.
그 다음으로는 군자가 아침도 못 먹고 저녁도 못 먹어 굶주린 나머지 문밖에도 나서지 못하는 경우이다.
君聞之, 曰; 吾大者不能行其道, 又不能從其言也, 使飢餓於我土地, 吾恥之.
임금이 그런 사정을 듣고 말한다. '나는 거창하게 그가 말하는 도를 실천하지 못하고, 또 그가 말한 것을 따를 수는 없지만, 내 영토 안에서 군자가 굶어 죽어 간다는 것은 나의 치욕이다.'
周之, 亦可受也, 免死而已矣.
그리하여 구제해 준다면, 또한 벼슬을 받아도 좋다. 그러나 죽음을 면할 정도에 그쳐야 한다."
孟子曰: 附之以韓魏之家, 如其自視欿然, 則過人遠矣.
맹자가 말했다. "(晉나라 육경 가운데 가장 큰 집안인) 한씨나 위씨 집안의 재산을 주더라도 그것을 담담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는 분명 보통 사람을 훨씬 뛰어넘는 인물일 것이다."
孟子曰: 有事君人者, 事是君則爲容悅者也.
맹자가 말했다. "임금을 섬기는 이들이 있다. 임금을 섬기되 임금의 비위를 맞추려는 자들이다.
有安社稷臣者, 以安社稷爲悅者也;
사직을 안정시키는 이들도 있다. 사직이 안정되는 것으로 자족하는 자들이다.
有天民者, 達可行於天下而後行之者也.
천하의 안위를 걱정한다고 우기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자기의 도를 온 천하에 행할 수 있게 될 때에만 그 도를 행하는 자들이다.
有大人者, 正己而物正者也.
(이런 자들과는 스케일이 다른) 대인도 있다. (자기를 둘러싼 주변 상황과는 무관하게) 자기를 바르게 함으로써 주변의 모든 사물이 바르게 되는 사람이다."
孟子曰: 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맹자가 말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천하의 왕 노릇 하는 것은 그 안에 들어 있지 않다.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어버이가 다 살아 계시고 형제들도 탈 없이 지내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
仰不愧於天, 俯不作於人, 二樂也.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고, 땅을 굽어보아도 한 점 부끄러움 없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천하의 뛰어난 인재들을 얻어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다시 말하건대)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되, 천하에 왕 노릇 하는 것은 그 안에 들어 있지 않다."
孟子曰: 廣土衆民, 君子欲之, 所樂不存焉.
맹자가 말했다. "나라의 영토를 넓히고 인구를 늘리는 것은 군자가 바라는 바이나, 군자의 즐거움은 그 속에 들어 있지 않다.
中天下而立, 定四海之民, 君子樂之, 所性不存焉.
세상 한가운데 당당히 서서 사해의 백성을 안정시키는 것은 군자가 즐거워하는 바이나, 그 자신의 본성이 그 속에 들어 있지는 않다.
君子所性, 雖大行不加焉, 雖窮居不損焉, 分定故也.
군자가 본성으로 여기는 것은 자신의 뜻이 크게 실현되었다 해서 더 늘어나는 것도 아니요, 영락하고 빈궁하게 살아간다고 해서 더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 나름의 깜냥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君子所性, 仁義禮智, 根於心.
군자가 본성으로 지니는 '인의예지'는 마음에 뿌리를 둔 것이다.
其生色也, 睟然見於面, 盎於背, 施於四體. 四體不言而喩.
그것은 우리 몸에 형색으로 나타나는 것이니, 그 기운이 맑고 순결하게 그 얼굴에 드러나고, 등이나 뒤태에도 넘쳐 나며, 사지에 퍼져 약동한다. 사람의 몸은 무어라 달리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됨을 다른 이들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孟子曰: 孔子, 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
맹자가 말했다. "공자께서는 동산에 올라가 보시고 노나라를 작게 여기셨고, 태산에 올라가 보시고는 천하를 작게 여기셨다.
故觀於海者難爲水, 遊於聖人之門者難爲言.
그러므로 큰 바다를 본 사람은 (시냇물만을 본 사람 앞에서) 물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렵고, 성인의 문하에서 배운 사람은 (시골 서생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觀水有術, 必觀其瀾.
대저 물을 보는 데에도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큰 물결을 보아야 한다.
日月有明, 容光必照焉.
해와 달은 그 고유의 밝은 빛을 두루 비춰 준다.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가득 채우지 않고서는 앞으로 흐르지 않는다.
君子之志於道也, 不成章不達.
그러므로 군자가 도에 뜻을 두되, 스스로 자기 수양을 다해 빛을 내지 않으면 통달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孟子曰: 鷄鳴而起, 孶孶爲善者, 舜之徒也. 鷄鳴而起, 孶孶爲利者, 蹠之徒也. 欲知舜與蹠之分, 無他, 利與善之間也.
맹자가 말했다. "닭이 울면 일어나서 부지런히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순 임금의 무리이다. 닭이 울면 일어나서 부지런히 이익을 추구하는 자는 도척의 무리이다. 순 임금과 도척으로 나뉘는 것은 별 게 아니다. 이익을 탐하는가 선행을 실천하는가, 그 차이뿐이다."
孟子曰: 柳下惠不以三公易其介.
맹자가 말했다. "유하혜는 삼공의 벼슬로도 자기의 절개를 바꾸지 않았다."
孟子曰: 食而弗愛, 豕交之也; 愛而不敬, 獸畜之也. 恭敬者, 幣之未將者也. 恭敬而無實, 君子不可虛拘.
맹자가 말했다. "음식만 먹이고 사랑하지 않으면 돼지로 대하는 것이다. 사랑하면서도 공경하지 않으면 짐승으로 기르는 것이다. 공경하는 마음은 예물을 보내기 전부터 지녀야 한다. 공경한다고 하면서도 그 실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군자를 헛되이 머물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孟子曰: 好名之人, 能讓千乘之國. 苟非其人, 簞食豆羹見於色.
맹자가 말했다. "이름 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천 승의 나라를 사양함으로써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심으로 그럴 만한 인품을 갖춘 자가 아니라면, 한 소쿠리의 밥과 한 사발의 국과 같은 것에도 자신의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萬章問曰: 孔子在陳, 曰; 盍歸乎來! 吾黨之士狂簡, 進取, 不忘其初. 孔子在陳, 何思魯之狂士.
만장이 맹자에게 물었다. "공자께서 진(陳)나라에 계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어찌 노나라로 돌아가지 않으랴! 내 고향 노나라 선비들은 과격하고 또한 진취적이다. 내 어찌 그 초심을 잊을쏘냐!' 공자께서는 진나라에 계시면서 왜 노나라의 과격한 선비들을 생각하셨을까요?"
孟子曰: 孔子, 不得中道而與之, 必也狂獧乎! 狂者進取, 獧者有所不爲也. 孔子豈不欲中道哉. 不可必得, 故思其次也.
맹자가 말했다. "공자께옵서는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를 바르게 지킬 사람과 함께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앞뒤 가리지 않는 호방한 기질을 갖고 있는 광자(狂者)나 강직한 인품을 가진 견자(獧者)와 함께 하겠다. 광자는 진취적이고 견자는 행해서는 안 될 일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자께서 어찌 도를 바르게 지킬 사람을 바라지 않으셨겠느냐마는 그런 사람을 얻을 수가 없었기에 그 다음가는 사람이라도 생각하셨던 것이다."
敢問何如斯可謂狂矣.
만장이 물었다. "감히 묻건대 어떤 이들을 광자라고 합니까?"
曰: 如琴張曾晳牧皮者, 孔子之所謂狂矣.
맹자가 말했다. "금장이나 증석, 목피와 같은 이들이 바로 공자께서 말씀하신 광자들이다."
何以謂之狂也.
만장이 물었다. "어째서 광자라 이른 것입니까?"
曰: 其志嘐嘐然, 曰, 古之人, 古之人. 夷考其行, 而不掩焉者也. 狂者又不可得, 欲得不屑不潔之士而與之, 是獧也, 是又其次也.
맹자가 말했다. "그들이 지향하는 바는 몹시 커서 '옛 성현이여! 옛 성현이여!' 라고 되뇌고 다니지만, 평소 그들의 행실을 살펴보면 그 말을 다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들 광자를 얻지 못하면, 정의롭지 못한 일은 강직한 인물이라도 얻어 더불어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바로 견자로 광자 다음가는 인물들이다.
孔子曰; 過我門而不入我室, 我不憾焉者, 其惟鄕原乎? 鄕原, 德之賊也.
공자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셨지. '내 집 문 앞을 지나치되 내가 사는 집 안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내가 서운해하지 않을 사람은 오직 향원 놈들뿐이다. 향원이야말로 덕을 해치는 위선자들이지.'"
曰: 何如, 斯可謂之鄕原矣.
만장이 다시 물었다. "어떤 사람을 향원이라고 부릅니까?"
曰: 何以是嘐嘐也. 言不顧行, 行不顧言. 則曰, 古之人, 古之人. 行何爲踽踽凉凉. 生斯世也, 爲斯世也, 善斯可矣. 閹然媚於世也者, 是鄕原也.
맹자가 말했다. "이놈들은 광자에게는 '어째서 저리도 허풍을 치고 있는지? 말은 행동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행동은 말을 돌아보지 않는구나. 그러면서 무슨 옛 성현이여, 옛 성현이여 하는 말들을 하고 다니는지' 라고 말하고, 견자에게는 '어찌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않고 혼자서만 쌀쌀맞게 살아가나'고 말하지. 이왕 이런 세상에 태어났으니 이 세상과 어울려 살아야 좋은 일이지 하고 말하면서, 음흉하게 세상에 아첨하는 자들이 바로 향원이다."
萬章曰: 一鄕, 皆稱原人焉, 無所往而不爲原人, 孔子以爲德之賊, 何哉.
만장이 다시 물었다. "한 고을의 사람들이 모두 그를 점잖은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어딜 가든지 점잖은 사람으로 통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공자께서는 그 사람들을 덕을 해치는 자라고 평하셨으니 어째서인가요?"
曰: 非之無擧也, 刺之無刺也, 同乎流俗, 合乎汚世, 居之似忠信, 行之似廉潔, 衆皆悅之, 自以爲是, 而不可與入堯舜之道, 故曰 德之賊也.
맹자가 말했다. "이 악질적인 위선자 놈들은 비난하려 해도 들춰내기가 어렵고 공격하려 해도 공격할 게 없을 정도로 잘 포장되어 있다. 이놈들은 타락한 세속에 잘 동화되어 있고, 더러운 세상과 잘 영합한다. 평소 충성과 신의가 있는 것처럼 처신하며, 청렴결백한 것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들을 좋아하고 스스로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위선자들은 요 임금과 순 임금의 도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기에 그들을 덕을 해치는 자라고 하는 것이다.
孔子曰; 惡似而非者.
공자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럴듯하면서도 속은 그렇지 않은 사이비가 가장 미운 법이다.
惡莠, 恐其亂苗也.
가라지를 미워하는 까닭은 곡식의 싹을 어지럽힐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惡佞, 恐其亂義也.
간사하고 영특한 자를 미워하는 까닭은 의를 어지럽힐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惡利口, 恐其亂信也;
말 잘하는 자를 미워하는 까닭은 신의를 어지럽힐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惡鄭聲, 恐其亂樂也.
정나라의 음란한 음악을 미워하는 까닭은 올바른 음악을 어지럽힐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惡紫, 恐其亂朱也.
자줏빛을 미워하는 까닭은 주홍빛을 어지럽힐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惡鄕原, 恐其亂德也.
내가 향원을 미워하는 까닭은 구분하기 어려운 사이비이기 때문에 덕을 어지럽힐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君子反經而已矣. 經正, 則庶民興; 庶民興, 斯無邪慝矣.
군자는 만세불변의 도로 돌아갈 뿐이다. 도가 바로잡히면 백성이 모두 분발할 것이고, 백성이 분발하면 향원과 같은 사특한 자들이 없어질 것이다.'"
(해설)
이 모든 글들에서 맹자의 기개를 느낄 수 있고, 맹자가 말한바 군자의 지향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공자에 대한 글이 대체로 차분하고 공자의 언행이 차근차근한 데 비해 맹자는 마치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듯 거침이 없다.
齊人有一妻一妾而處室者, 其良人出則必饜酒肉而後反.
제나라 사람 가운데 아내와 첩을 거느리고 하는 일 없이 살아가는 자가 있었다. 그 남편 되는 자는 밖에 나가서 날마다 술과 고기를 실컷 먹은 뒤에 돌아오곤 했다.
其妻問所與飮食者則盡富貴也.
그 아내가 "누구와 함께 먹고 마셨느냐?"고 물으면, 모두가 돈 많고 벼슬 높은 사람들이라 하였다.
其妻告其妾曰: 良人出, 則必饜酒肉而後反; 問其與飮食者, 盡富貴也, 而未嘗有顯者來. 吾將瞯良人之所之也.
그래서 아내가 첩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바깥양반이 밖에 나가면 언제나 술과 고기를 실컷 먹은 뒤에 돌아오기에 '누구와 함께 먹고 마셨느냐?'고 물으니, 모두가 돈 많고 벼슬 높은 사람들 뿐이었다네. 그런데 여태껏 그렇게 잘난 이들이 우리 집에 찾아온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내일은 내가 이 양반이 가는 곳을 몰래 뒤따라가 알아보려네."
蚤起, 施從良人之所之, 徧國中無與立談者.
아내는 아침 일찍 일어나 남편이 가는 곳을 먼발치에서 쫓아갔다. 남편은 온 성안을 돌아 다녔지만, 같이 서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卒之東郭墦間, 之祭者, 乞其餘. 不足, 又顧而之他, 此其爲饜足之道也.
마지막으로 동쪽 성 밖에 있는 무덤 사이에서 제사 지내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이 먹고 남은 것을 구걸하여 먹었다. 그러고도 양이 안 차면 다시 둘러보다가 다른 곳을 찾아가서 얻어먹었다. 이게 바로 그가 실컷 먹고 마시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其妻歸, 告其妾曰: 良人者, 所仰望而終身也, 今若此.
그의 아내는 집으로 돌아와서 그 첩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남편이란 죽을 때까지 우러러 받들고 의지해야 할 사람인데, 이제 보니 그런 꼴이라니!"
與其妾訕其良人, 而相泣於中庭. 而良人未之知也, 施施從外來, 驕其妻妾.
그러고는 첩과 함께 남편을 원망하면서 마당 가운데서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다. 그러나 남편은 그것도 모르고 거드름 피우며 밖에서 돌아와, 아내와 첩에게 으스대었다.
由君子觀之, 則人之所以求富貴利達者, 其妻妾不羞也, 而不相泣者, 幾希矣.
군자의 눈으로 볼 때 부귀와 영달을 추구하는 이들치고, 그 아내와 첩들이 부끄러워하지 않거나 서로 부둥켜 안고 울지 않을 이 몇이나 있으랴.
(해설)
제나라에 한 남자가 있다. 그에게는 한 명의 아내와 한 명의 첩이 있다. 흔히 '제인유처첩(齊人有妻妾)'이라는 숙어로 잘 알려진 이야기다.
평소 별로 하는 일 없이 무위도식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이 밖에만 나가면 잘 먹고 들어온다. 이를 궁금하게 여긴 아내가 남편의 뒤를 밟으니 남의 초상집을 전전하며 술과 밥을 얻어먹고 들어왔던 것이었다.
중국의 소설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중국 소설의 기원 가운데 하나로 꼽기도 한다. 분량은 얼마 안 되지만, 그 안에 이야기적인 요소가 풍부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이야기 문학의 하나로 보는 것이야 소설 연구자들의 몫일 터이고, 맹자가 이것을 비유로 들고 싶었던 것은 분명하다. 나라에서 녹을 먹고산다고 하는 이들의 행태가 바로 이 제나라 남자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건 명분이야 거창하다지만, 실제 행위는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밥과 술을 빌어먹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배불리 먹었다고 만족해 하지만 실상은 자기보다 힘센 호랑이의 위세를 빌어 잠시 허세를 떠는 여우 새끼의 모습을 빼닮은 것(狐假虎威)이다.
사실상 제나라 남자의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밥을 빌어먹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러고 사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조차 자각을 못하는 데 있다.
누군가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문제를 문제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면, 그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뭐가 문제인지조차 모르고 있다면, 그땐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 군자의 길
공자가 어느 날 제자들과 길을 가다가 서로 길이 어긋나 헤매이고 있을 때 제자들이 스승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돌아다니다가 어느 노인을 만나 여차여차 하며 스승의 행방을 물어본다.
제자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노인은 아~당신들의 말을 듣고 보니 아마 동문(東門)에 앉아 계시는 분이 맞은 것 같은데 용모는 성인같이 생겼는데 몸이 피로하여 초라한 모습이 꼭 상가지구(喪家之狗; 초상집 개)와 같이 비쩍 말라 있는데 그분 같더라 한다.
제자들이 급히 찾아가 보니 스승인 공자가 그곳에서 계신다. 그래서 아까 그 노인이 했던 말을 그대로 전달하자 공자는 웃으면서 말한다. "초상집 개(喪家之狗)와 같다는 말은 맞으나 성인과 같이 생겼다는 말은 과찬으로 맞지가 않구나" 그랬다.
그래서 이때부터 상가지구(喪家之狗)란 말이 생겼다 하는데, 초상난 집에서는 분주하여 경황이 없다. 그래서 주인은 개밥 주는 것을 잊어 버린다. 그러기에 말을 못하는 개는 제대로 먹지 못하여 비쩍 말라 말은 못하고 다만 주인의 눈치만 살핀다는 뜻으로 상가지구(喪家之狗)라 한다.
그렇다. 아무리 성인(聖人)이라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초상집 개같이 비쩍 말라 이리저리 눈치만 보게 되는 것 같이 보인다. 그래서 맹자는 공자의 이런 모습을 보고 "지혜가 있다 한들 때를 타는 것만 못 하느니라" 했으며,
또한 장자는 "태어나는 것도 때에 따라 오는 것이요, 죽는 것도 운명에 따라 순응해 가는 과정이다"고 한 것은 아무리 천하에 영웅호걸도 때를 타고나지 않으면 아무리 기상을 펴보고자 발버둥 쳐봐도 뒷다리 잡힌 개구리마냥 어찌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칠삭동이 한명회는 모습은 왜소한 체격에 단신(短身)으로 거기다가 이목구비(耳目口鼻)의 생김새는 마치 메주를 아무렇게나 쥐어 짜놓은 것처럼 못생겼지만 그에게는 지략과 권모(權謀)가 가득하여 때를 잘 만나 세조의 안목에 들어오기에 커다란 빛을 발한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만난 공자는 그 노인이 볼 때 상가 집 개처럼 초라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날 공자가 고인(古人)들의 지혜를 듣고자 학식이 풍부하고 덕망이 있으며 또한 옛날일 들을 많이 알고 있다는 그의 선배 노담(老聃)이라는 사람을 찾아 낙양으로 갔다. "선배님! 예(禮)에 대한 고견을 듣고자 찾아 왔습니다.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며 정중하게 인사를 올린다.
노담은 공자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내가 어찌 자네에게 무슨 말을 들려 주겠는가! 그러나 요즘의 군자들은 기회만 잡으면 세상에 나와 출세나 하려고 하고 그렇지 못하는 경우에는 속세를 떠난 듯 숨을 죽이고 살아가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네. 진정으로 훌륭한 군자는 스스로의 재능을 마음속 깊이 감추어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마치 텅 빈 가게와 같은 법이네.
그래서 군자란 훌륭한 인격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의 얼굴 표정은 바보같이 보이는 것이네! 행여 자네도 그 무엇인가를 남에게 잘 보이겠다는 생각과 마음이 지나치면 큰 뜻을 버리는 것이니 그러한 욕심스런 생각을 버리시게나!"
그러자 공자는 뜨끔했다.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느낌이며 자신을 질책하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자를 따라간 제자들은 가뜩이나 기대를 하고 따라 갔는데 좋은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침울하게 돌아오는 공자에게 투덜대며 묻는다. "스승님! 무슨 이야기를 들었습니까? 무엇을 버리라 하는지요."
공자는 눈을 감으며 조용히 말한다. "새는 하늘을 잘 날기에 화살에 맞고 물고기는 헤엄을 잘 치기에 낚시에 걸리며 짐승은 잘 달리기에 덫에 걸린다. 그러나 용(龍)은 풍운(風雲)을 타고 하늘로 오르기에 볼 수가 없으며 화살에 맞거나 낚시에 덫에 걸리는 일이 없는 것이다. 군자가 지나가는 자리는 바람과 같아 흔적이 없고 오물을 뒤집어써도 젖지를 않는 법이다. 나는 오늘 용(龍)을 만났노라. 노담은 진정한 용(龍)같은 존재로다"며 감탄을 하였다.
그래서 현자(賢子)는 현자를 알아보지만 우자(愚子)는 현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우자(愚子)만 보이는 것이다. 요즘 시쳇말로 개 눈에는 개만 보이는 것이다. 장님에게는 아름다운 색채가 보이지 않고 귀머거리는 향기로운 음률을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노인은 공자를 몰라보고 상가 집 개처럼 생겼더라고 했던 것이고, 공자는 노담을 용(龍)같은 사람으로 보았던 것이며, 자신이 아직은 노담처럼 용(龍)같은 사람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함을 깨달아 더욱 정진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현자(賢子)는 그 재능을 숨기고 용처럼 풍운을 타고 날기에 나타나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으며 뽐내지를 않지만 그 스스로 빛이 나기에 뭇 사람들이 빛을 바라보는 것이지만 우자(愚者)는 조그마한 재능을 자랑하고 뽐내며 자신만이 잘나고 최고라는 착가에 사는 것이다.
산에 나는 나물은 가꾸지 않아도 스스로 자라며 들에 사는 새는 기르지 않아도 스스로 살건만 그 맛은 모두가 향기롭고 맑듯이 사람도 세상의 법에 물들지 않고 군자에 길을 가면 그 맛은 향기롭고 뛰어난 것이다.
◼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은 곧 자신을 위한 길이다
모든 일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
신독이란 '자신이 혼자 있을 때 삼가는 것'을 말한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에서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대부분의 사람이 신호를 잘 따른다. 그러나 보는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신호에 따르지 않고 건너거나,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길을 건너는 사람이 많다. 이는 신독하는지 안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간단한 사례 중 하나다. 신독을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편해지고,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
여기서 핵심 내용과 개념들을 정리하면서 유학의 전체적인 공부 방법과 중용과의 관계를 간단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유학에서는 수신을 크게 강조하며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그 의미는 '자신의 몸을 수양해서 남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이 말은 '대학'에서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팔조목을 두 개의 틀로 나누어 한마디로 말한 것이다.
수기 부분은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등이며, 치인은 제가, 치국, 평천하를 말한다. 사시(四時)를 포함한 자연 현상을 관찰해 중용에 이르게 된 내용들을 대학의 팔조목에 대입해 수신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격물은 사계절과 하루의 사시가 움직이고, 동서남북 네 방위에 따라 만물이 살아가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다음은 가장 복잡하고 내용이 많은 치지의 과정이다.
천(天)은 중(中)을 이룬 상태에서 원형이정의 사덕(四德)을 운행하는데 이것이 천도다. 그러한 천도는 사시를 비롯한 모든 천체를 운행하고, 세상 만물의 삶을 좌우한다. 자연의 사시 운행의 특성과 일치하는 인의예지라는 성(性)이 천명에 의해 인간에게 부여되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천(天)과 자연 현상처럼 항상 중(中)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것은 희로애락과 같은 감정이 욕심에 의해 발생해 인의예지를 침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은 중을 유지하는 성(性)과 한쪽으로 치우치는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이 감정에 치우쳐서 인의예지를 실천하지 못할 때에 질서가 문란해져서 사회가 혼란하게 된다. 따라서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감정을 인의예지의 중에 맞춰 상황에 따라 조절해 나가야 한다. 이와 같은 조절이 중절(中節)이며, 자신의 마음과 인간관계가 중에 근접한 상황이 화(和)다.
중화(中和)를 이루어 나가기 위한 바람직한 길이 도인데, 천도가 우주만물의 질서를 유지하고 생명을 보전하듯이, 중화를 이루는 도의 실천은 인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인간관계에서 상생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중화를 이루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모든 상대적인 관계를 권도(權道)에 의해 수시로 맞춰 나가는 것을 중도(中道)라고 하며, 잠시라도 그 중도를 잃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큰일까지 적용하는 것을 중용이라고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알아내는 것이 치지의 과정이다.
성의와 정심은 자신의 몸에서 도가 떠날 것을 예방하는 계신공구와 혼자 있을 때 정성을 들여서 스스로 만족할 정도로 자신을 속이지 않는 신독의 의지를 갖는 것이다. 특히 성(誠)이라는 것은 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을 인의예지라는 성(性)에 맞추어 조절해 중화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 자세다.
성의와 정심은 격물치지에 의해 천도에 따른 도를 알게 된 이후에 마음을 조절해 가는 과정이다. 수신은 상대방을 대할 때에 성의와 정심의 마음 상태를 유지하면서, 혼자 있을 때나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할 때나 항상 충서의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또한 사시의 현상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을 대할 때 시간과 공간에 따라 격물치지를 하여 지속적으로 수신해 나가야 한다.
수신을 기본으로 생각하는 유학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이다. 위기(爲己)는 위할 위(爲) 자와 몸 기(己) 자가 합쳐져 이루어진 단어다. 유가의 경전에서 몸 기(己) 자는 신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뜻하고, 사람 인(人)은 타인을 말할 때가 많다.
위기지학이란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라는 의미인데, 자신을 위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남에게 보이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몸소 실천하기 위한 공부라는 의미다. 따라서 신독의 의미가 담긴 개념이다.
위기지학은 모든 행위의 결과에 대한 원인을 자신의 행동에서 찾는다. '논어' 안연 제1장에는 공자도 이에 대해 말한 내용이 나온다. 안연이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가 "극기복례(克己復禮), 즉 자기를 극복하고 예(禮)를 회복하는 것이 인을 행하는 것이다. 하루라도 극기복례를 한다면 천하가 인으로 귀의한다. 인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고 대답했다.
안연이 "그 상세한 조목을 묻고 싶습니다"고 하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동하지 말아야 한다." 안연은 이 말을 듣고 "제가 비록 모자라지만 이 말씀에 따르고 싶습니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길흉화복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모든 일은 결국 내 탓이다. 따라서 남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해 남을 비방하거나 원망하기에 앞서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공자는 "군자는 잘못을 나에게서 찾고, 소인은 잘못을 남에게서 찾는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다운 사람은 모든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서울 교구장이었던 때에 천주교 신자들은 자동차 뒷면에 '내 탓이오'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 당시의 교통문화는 불법 끼어들기와 신호 위반 등이 행해지고, 차를 세워 놓고 길거리에서 언쟁을 하는 일을 자주 볼 수 있었던 시기였다.
이때 천주교 전국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에서 '내 탓이오' 캠페인을 벌여 큰 반향을 일으키고, 교통문화를 선진화하는 데 이바지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이 캠페인을 벌인 사람들에게서 군자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다.
君子, 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군자는 평소 그 위치에 따라 행하고, 그 밖을 원하지 않는다.
素富貴, 行乎富貴.
素貧賤, 行乎貧賤.
素夷狄, 行乎夷狄.
素患難, 行乎患難.
君子, 無入而不自得焉.
부귀하면 부귀하게 행하고, 빈천하면 빈천하게 행하고, 오랑캐라면 오랑캐답게 행하고, 환란이 있는 상황이라면 환란에 처한 사람답게 행하는 것이니, 군자는 들어가는 곳에 따라 자득하지 못함이 없는 것이다.
在上位 不陵下.
在下位 不援上.
윗자리에 있으면 아랫사람을 능멸하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으면 윗사람을 잡아 당기지 않고,
正己而不求於人 則無怨.
자기 몸을 바르게 하고 남에게서 구하지 않으면 곧 원망이 없을 것이다.
上不怨天, 下不尤人.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는 타인을 탓하지 않는다.
故 君子, 居易以俟命; 小人, 行險以徼幸.
그러므로 군자는 평이함에 거하여 명(命)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한 것을 행하면서 요행을 바란다.
子曰: 射有似乎. 君子, 失諸正鵠, 反求諸其身.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활쏘기는 군자와 같은 것이 있으니, 정곡(正鵠)을 잃으면 돌이켜 자신의 몸에서 구하는 것이다."
(중용 제14장)
군자는 평소 그 위치에 따라 행하고, 그 밖을 원하지 않는다. 부귀하면 부귀하게 행하고, 빈천하면 빈천하게 행하고, 오랑캐라면 오랑캐답게 행하고, 환란이 있는 상황이라면 환란에 처한 사람답게 행하는 것과
군자는 평이함에 거하여 명(命)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한 것을 행하면서 요행을 바란다는 의미는 부귀하게 된 것도 자신이 만든 것이고 그것을 누리는 것도 자신이며, 가난하게 된 것도 자신이 만든 것이고 그것을 감내하는 것도 자신이라는 뜻이다.
훌륭한 문화를 누리지 못하게 된 것도 자신이고, 환란이 있게 된 것도 자신이 만든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주변 상황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환란을 만든 것이 자신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러한 상황을 벗어나는 노력은 자신이 해야 한다. 따라서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옛것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본받아 지금 시기에 시중(時中)해 적용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공자는 그렇게 행동한 사람이었다. '논어' 헌문 제41장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
자로가 석문에서 머무르기 위해 그곳 성문을 지나려고 하는데, 성문지기인 신문(晨門)이 "어디에서 왔는가?"고 물었다. 자로가 "공자님 문하에서 왔소"라고 대답하자, 성문지기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행동하는 사람이구나!"고 말했다.
또 헌문 제42장에는 이런 일화가 있다. 공자가 위나라에 머무를 때에 옥(玉)을 나무에 매달아 놓고 두들기면서 연주를 하는 경(磬)이라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이때 삼태기를 메고서 지나가던 사람이 말했다. "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아직도 천하에 있구나!" 그리고 잠시 있다가 "탕탕하는 소리가 비천하구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두면 될 것이다. 물이 깊으면 옷을 벗고 건너고, 물이 얕으면 옷을 걷고 건너야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자 공자는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그 사람에 대해 말하기를 "과감할 정도로 세상일을 잊고 사는구나! 그렇게 산다면 어려울 것이 없겠구나!"고 탄식했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면서 자신을 등용할 제후를 찾아 나선 것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아 그 결과를 자신과 백성 모두 향유하기 위해서였다.
유학은 남뿐만 아니라 자신도 이롭게 하라고 가르친다
공자는 세상을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질서를 바로 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벼슬을 해서 직접 정치에 관여하거나, 제자들을 교육해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한편으로는 기회가 되면 언제나 정치에 관여하려고 했다. 그러나 가망이 없고, 무도한 군주가 있는 곳에서는 벼슬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논어' 위령공 제6장에는 공자의 그러한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 공자는 "사어(史魚)는 정직하구나!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도 화살처럼 곧으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도 화살처럼 곧도다. 거백옥(蘧伯玉)은 군자구나!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벼슬을 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거두어서 감추어 두는구나"고 했다.
공자는 제후국 가운데 비교적 가망이 있는 곳에서 하루빨리 질서를 회복해 그것이 다른 곳으로 파급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자신을 등용하고자 하는 제후가 무도하다고 판단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제후를 떠나 버렸다. 이와 같이 중용의 도는 초야에 묻혀서 도를 닦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진취적인 도라 할 수 있다.
또한 "활쏘기는 군자와 같은 것이 있으니, 정곡(正鵠)을 잃으면 돌이켜 자신의 몸에서 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민족은 예전부터 활을 잘 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계 올림픽에서 양궁 경기가 열리면 온 국민은 즐겁게 그 경기를 즐긴다. 남녀 양궁의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가 우리나라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양궁 선수들은 체력 훈련도 강하게 하지만 정신력을 키우기 위해 명상도 자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주변 상황에 동요되지 않고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양궁은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이 과녁에 도달한 위치에 의해 점수가 결정되지만, 과녁에 도달할 때까지의 모든 책임은 선수에게 있는 것이다. 자세와 집중력, 그리고 외부의 바람이나 온도, 습도 등을 모두 종합해 화살을 날리는 것은 선수의 마음과 행동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올림픽에 나간 선수들이 자신이 목표로 한 점수를 받지 못한 것도 자신의 탓이며, 금메달을 획득해 영예를 누리는 것도 자신에게 달렸다.
이와 같이 수신은 인간관계에서 도덕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행위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가 경전에서 수신을 유독 타인을 다스리는 덕목으로 집중적으로 설명하는 까닭은 옛날 사대부의 궁극적인 목표가 자신이 수양을 통해 터득한 도리를 정치에 직접 관여해 백성에게 베풀어서 질서를 유지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의 수신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갈등과 부조화를 없애기 위한 것이므로 남을 다스린다는 것보다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논어 헌문 제45장에 그러한 관점이 잘 표현되어 있다. 자로가 군자에 관해서 물어보자, 공자가 "경(敬)으로써 수신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러자 자로가 "이와 같은 것뿐입니까?"고 말하자, 공자는 "수신을 해서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수기안인(修己安人)을 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러자 자로가 또다시 "이와 같을 뿐입니까?"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몸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니, 몸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요순임금도 오히려 어렵게 생각하셨다."
경(敬)이라는 것은 시종일관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시종일관하는 것으로 수신을 한 이후에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군자이며 사람다운 사람이다. 남을 편안하게 하면 인간관계가 원만해지고, 자신 역시 편안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논어에서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용어는 없고, 수기안인(修己安人)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수기치인은 수기안백성(修己安百姓), 즉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며 쉬운 일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나만 편하고자 하는 것은 욕심이지만, 남을 편하게 하는 것은 덕(德)이다. 그러나 자신이 편하고자 하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화를 이룰 때에 나와 남과의 편안함도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되고 중도를 유지해야 한다.
살신성인과 같은 대의(大義)를 제외하고, 남과 내가 모두 편안하게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무조건 나를 희생해서 타인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은 이론에 불과한 공부이며, 실천이 가능한 공부가 될 수 없다.
도는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따라서 모든 부귀와 명예의 결과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가난한 것도 본인의 탓이고 부유한 것도 자신의 탓이다. 가난하다면 그것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부자라면 그것을 누려야 한다. 단,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중용을 유지하면서 편안해하고, 누려야 한다.
논어 자한 제18장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산을 만드는 것에 비유해서 말해 보면, 마지막 한 줌의 흙을 쏟아붓지 않아 산을 못 만들고 중지한 것도 내가 중지한 것이며, 평지에서 한줌의 흙을 처음 쏟아붓고 산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도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산을 못 만들어서 생기는 불이익은 물론 자신의 몫이다. 그러나 산이 만들어져서 얻게 될 이득도 자신의 몫이 되어야 중화를 이루는 세상이 될 수 있다. 유학은 무조건적인 자신의 희생만을 요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알고 있다면 유학의 가르침을 단편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사물을 대할 때는 언제나 입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충서(忠恕)는 남이 나를 판단하는 것에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다. 충(忠)은 자신의 마음에 중심을 잡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마음에 중심을 잡는 주체는 바로 나이고, 상대방을 배려해 행동하는 것도 나다.
그러한 판단은 상대방만을 생각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나, 그리고 주변의 모든 여건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중용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충서의 결과는 오직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천도가 만물이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를 실천하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상생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상생과 상극은 결국 모두 소멸해 버리는 음양오행의 원리처럼, 내가 실천하는 도가 일방적으로 상대방만을 위한 일이 된다면, 중용의 원래 목적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원리를 이해하면 중용을 하는 것이 그렇게 불편하거나 손해 보는 일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되어 보다 적극적으로 충서를 실천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충서를 행하는 것은 가족에서부터 시작된다. 천도가 하나의 중심을 갖고 공간을 형성한 것처럼 가족이나 사회의 구성도 자신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방향성이 있다.
'대학'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충서를 말하고 있다. "윗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처럼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고, 아랫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처럼 윗사람을 섬기지 말며, 앞사람에게 싫었던 것처럼 뒷사람에게 힘을 가하지 말고, 뒷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처럼 앞사람을 따르지 말며, 오른쪽에 있었던 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처럼 왼쪽 사람을 사귀지 말고, 왼쪽에 있었던 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처럼 오른쪽 사람을 사귀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혈구지도(絜矩之道)라고 말한다."
혈구라는 것은 헤아릴 혈(絜) 자와 네모 자 구(矩) 자로 구성된 단어다. 따라서 혈구(絜矩)란 네모난 자를 갖고 재는 방법이다. 그래서 혈구지도란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기 위해 스스로를 척도로 삼는다'는 의미다.
충서의 마음이 각자 상황에 따라 혈구지도로 작용되는 것이다. 권도가 중화를 이루기 위한 중요성을 무게를 인용해서 중용을 이루는 방법이라면, 혈구지도는 중화를 위해 자신을 중심으로 자를 재어서 상대방의 입장에 따라 중용을 이루는 방법이다.
이러한 인간관계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가족관계다. 가족관계에서 모든 행실의 표준은 자식의 부모님을 향한 효도다.
예전부터 효는 백행지본(百行之本), 즉 모든 덕행의 근본이라고 말하며 중요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효를 실천하는 것은 부모가 나에게 준 생명에 보답하는 기본 행위로, 천(天)이 인간에게 생명을 준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 도라는 의미와 맥락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 修(닦을 수)는 ❶형성문자로 俢(수)는 고자(古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攸(유, 수)와 사람의 몸이나 사물을 털고 정돈한다(彡; 터럭삼) 하여 닦다를 뜻하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攸(유)는 사람이 내를 가다, 시내의 흐름, 길다의 뜻이다. 터럭삼(彡; 무늬, 빛깔, 머리, 꾸미다)部는 장식하다, 정돈하는 일, 사람의 몸이나 사물을 정돈하다, 다스리는 일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修자는 '닦다'나 '연구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修자는 攸(바 유)자와 彡(터럭 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攸자는 몽둥이로 사람을 때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修자는 이렇게 사람을 때리는 모습을 그린 攸자에 彡자를 더한 것으로 여기에서 彡자는 땀이나 피를 흘리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 修자는 누군가를 피가 나도록 때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修자는 본래 누군가를 '다스리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였다. 그러나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덕이나 품행을 '기르다'라는 뜻이 파생되면서 지금은 '닦다'나 '연구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修(수)는 ①닦다, 익히다, 연구하다 ②꾸미다, 엮어 만들다 ③고치다, 손질하다 ④다스리다, 정리하다 ⑤갖추다, 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 ⑥도덕, 품행을 기르다 ⑦길다, 높다 ⑧뛰어나다 ⑨행하다, 거행하다 ⑩뛰어난 사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배울 학(學), 갈 연(硏), 익힐 련(練), 익힐 습(習),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인도할 도(导), 끌 인(引), 가르칠 교(敎), 가르칠 훈(訓), 가르칠 회(誨)이다. 용례로는 새로 고쳐서 정돈함을 수정(修整),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서 고침을 수정(修正), 말이나 글을 다듬고 꾸며서 보다 아름답고 정연하게 하는 일을 수사(修辭), 나라와 나라 사이에 교제를 맺음을 수교(修交), 악을 물리치고 선을 북돋아서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아 수양함을 수신(修身), 고장난 데나 허름한 데를 손보아 고침을 수리(修理), 학문이나 기예를 닦음을 수행(修行), 도를 닦음을 수도(修道), 학업을 닦음을 수학(修學), 낡거나 허름한 것을 손보아 고침을 수선(修繕), 학업이나 실무 따위를 배워 익힘을 수습(修習), 서적 등의 잘못을 고침을 수정(修訂), 용언에 딸리어 그 뜻을 좀더 자세히 설명함을 수식(修飾), 심신을 단련하여 품성이나 지식이나 도덕을 닦음을 수양(修養), 일정한 기간에 정해진 학과를 다 배워서 마침을 수료(修了), 마음과 몸을 잘 닦아서 단련함을 수련(修鍊), 자신의 몸을 닦음을 수기(修己), 사이 좋게 지냄을 수호(修好), 학문 따위를 연구하고 닦음을 연수(硏修), 학문의 과정을 순서를 밟아서 닦음을 이수(履修), 잘못된 곳을 고치어 수정함을 개수(改修), 반드시 학습하여야 함을 필수(必修), 한 번 배웠던 과정을 다시 배우는 일을 재수(再修), 낡은 것을 보충하여 수선함을 보수(補修), 책의 저술 또는 편찬을 지도 감독함 또는 그런 사람을 감수(監修), 낡고 헌 것을 다시 손대어 고침을 중수(重修), 자기의 몸을 닦고 집안 일을 잘 다스림을 일컫는 말을 수신제가(修身齊家), 내 몸을 닦아 남을 교화함을 일컫는 말을 수기치인(修己治人), 선악의 인을 닦아서 고락의 종말을 느낌다는 말을 수인감과(修因感果), 얼굴을 벽에 대고 도를 닦는 것을 이르는 말을 면벽수도(面壁修道), 학문을 전심으로 닦음으로 공부할 때는 물론 쉴 때에도 학문을 닦는 것을 항상 마음에 둔다는 말을 장수유식(藏修遊息) 등에 쓰인다.
▶️ 己(몸 기)는 ❶상형문자이나 지사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본래 구불거리는 긴 끈의 모양을 본떴고, 굽은 것을 바로잡는 모양에서 일으키는 일의 뜻으로 쓰인다. 일으키다의 뜻은 나중에 起(기)로 쓰고, 己(기)는 천간(天干)의 여섯번째로 쓰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己자는 '몸'이나 '자기'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여기서 말하는 '몸'이란 '나 자신'을 뜻한다. 己자의 유래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사람이 몸을 구부린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굽의 있는 새끼줄을 그린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己자와 결합한 글자를 보면 새끼줄이 구부러져 있는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다만 己자가 단독으로 쓰일 때는 여전히 '나 자신'이라는 뜻을 가지게 된다. 己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상용한자에서는 뜻과 관련된 글자가 없다. 다만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새끼줄이나 구부러진 모양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으니 상황에 따른 적절한 해석이 필요하다. 그래서 己(기)는 ①몸 ②자기(自己), 자아(自我) ③여섯째 천간(天干) ④사욕(私慾) ⑤어조사(語助辭) ⑥다스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여섯 번째를 기사(己巳), 열여섯째를 기묘(己卯), 스물여섯째를 기축(己丑), 서른여섯째를 기해(己亥), 마흔여섯째 기유(己酉), 쉰여섯째를 기미(己未)라 한다. 그리고 자기의 물건을 기물(己物), 자기 마음을 기심(己心), 자기가 낳은 자녀를 기출(己出), 자신의 의견이나 소견을 기견(己見), 자신의 초상을 기상(己喪), 자기의 소유를 기유(己有), 자기의 물건은 기물(己物), 제 몸이나 제 자신 또는 막연하게 사람을 가리키는 말을 자기(自己), 자기 이익만 꾀함을 이기(利己), 자신의 몸을 닦음을 수기(修己), 안색을 바로잡아 엄정히 함 또는 자기자신을 다스림을 율기(律己), 자기 몸을 깨끗이 함을 결기(潔己), 몸을 가지거나 행동하는 일을 행기(行己), 신분이나 지위가 자기와 같음을 유기(類己), 자기를 사랑함을 애기(愛己), 자기 한 몸을 일기(一己), 자기에게 필요함 또는 그 일을 절기(切己), 자기가 굶주리고 자기가 물에 빠진 듯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겨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함을 일컫는 말을 기기기익(己飢己溺), 중종때 남곤 일파 조광조 등을 쫓아내어 죽인 사건을 일컫는 말을 기묘사화(己卯士禍), 기미년 3월1일 일제에 항거하여 일어난 한국의 독립운동을 일컫는 말을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 자기 스스로를 돌이켜 봄을 일컫는 말을 자기관찰(自己觀察), 모든 사고와 판단과 행동을 자기 중심으로 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자기본위(自己本位), 자기의 이해와 쾌락과 주장을 중심으로 삼고 남의 처지를 돌보지 않는 주의를 일컫는 말을 애기주의(愛己主義), 자기 존재를 인정 받으려고 남에게 자기를 과시하는 심리적 경향을 일컫는 말을 자기과시(自己誇示), 스스로에게 황홀하게 빠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자기도취(自己陶醉), 자신의 생활은 검약하게 하고 남을 대접함에는 풍족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약기유물(約己裕物) 등에 쓰인다.
▶️ 安(편안 안)은 ❶회의문자로 사람이 무릎꿇고 깍지끼어 신을 섬기는 모습의 女(여자)가 건물의 지붕, 신을 모시는 곳을 뜻하는 집(宀) 안에 있는 모양으로 편안함을 뜻한다. 安(안)은 사람이 사당에서 신을 섬기는 일, 나중에 女(녀)를 여자라 생각하여 安(안)은 집속에 여자가 고요히 앉아 있는 모양에서 평안함이라 설명하게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安자는 '편안하다'나 '편안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安자는 宀(집 면)자와 女(여자 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갑골문에 나온 安자도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다. 安자는 여자가 집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편안하다'나 '안정적이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安(안)은 성(姓)의 하나로 ①편안(便安) ②편안하다 ③편안(便安)하게 하다 ④안존(安存)하다(아무런 탈 없이 평안히 지내다) ⑤즐거움에 빠지다 ⑥즐기다, 좋아하다 ⑦어찌 ⑧이에(乃), 곧 ⑨어디에 ⑩안으로, 속으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편할 편(便), 편안할 녕(寧), 편안 강(康), 편안할 온(穩), 편안할 정(靖),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위태할 위(危)이다. 용례로는 편안히 보전함을 안보(安保), 편안하여 탈이나 위험성이 없음을 안전(安全), 일이나 마음이 평안하게 정하여 짐을 안정(安定), 근심이 없고 편안함을 안이(安易), 편안하고 한가함을 안일(安逸), 걱정이나 탈이 없음을 안녕(安寧), 걱정이 없이 마음을 편안히 가짐을 안심(安心), 평안함과 평안하지 아니함을 안부(安否), 정신이 편안하고 고요함을 안정(安靜),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몸이 괴롭거나 아프거나 힘들거나 하지 않고 편하여 좋음을 편안(便安),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림을 치안(治安), 위로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함을 위안(慰安), 안전을 유지하는 일을 보안(保安), 오래도록 평안함을 구안(久安), 무사히 잘 있음을 평안(平安), 웃어른에게 안부를 여쭘을 문안(問安), 편안한 때일수록 위험이 닥칠 때를 생각하여 미리 대비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안거위사(安居危思), 구차하고 궁색하면서도 그것에 구속되지 않고 평안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감을 일컫는 말을 안빈낙도(安貧樂道), 자기 분수에 만족하여 다른 데 마음을 두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안분지족(安分知足), 평화롭고 한가하여 마음 내키는 대로 즐김을 일컫는 말을 안한자적(安閑自適), 편안한 가운데서도 늘 위험을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늘 스스로를 경계하여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어려움에 대처함을 이르는 말을 안불망위(安不忘危), 편안히 살면서 생업을 즐김을 일컫는 말을 안가낙업(安家樂業), 마음 놓고 있을 집과 사람이 지켜야 할 바른 길이라는 뜻으로 인의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안택정로(安宅正路), 어찌 그러치 않으랴 또는 마땅히 그러할 것이다란 뜻으로 하는 말을 안득불연(安得不然), 확실한 안심을 얻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안심결정(安心決定), 반석과 같이 든든하여 위태함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안여태산(安如泰山), 조용하고 편안하게 아무 일 없이 지냄을 일컫는 말을 안온무사(安穩無事), 부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빈자를 구하여 물품을 베풀어 줌을 일컫는 말을 안부휼궁(安富恤窮) 등에 쓰인다.
▶️ 百(일백 백, 힘쓸 맥)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흰 백(白; 희다, 밝다)部와 一(일)의 뜻을 합(合)하여 일백을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百자는 '일백'이나 '백 번', '온갖'과 같은 수를 나타내는 글자이다. 百자는 白(흰 백)자와 一(한 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百자는 白자가 부수로 지정되어는 있기는 하지만 글자의 유래가 명확히 풀이된 것은 아니다. 百자의 갑골문을 보면 타원형 위로 획이 하나 그어져 있고 가운데로는 구멍이 있었다. 이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있지만, 아직은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百자가 아주 오래전부터 '일백'이라는 수로 쓰인 것을 보면 이것은 지붕에 매달린 말벌집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말벌집 하나당 약 100여 마리의 말벌이 있으니 그럴듯한 가설이다. 그래서 百(백)은 열의 열 곱절. 아흔 아홉에 하나를 더한 수(數). 일백(一百) 등의 뜻으로 ①일백(一百) ②백 번 ③여러, 모두, 모든 ④온갖 ⑤백 배 하다 그리고 ⓐ힘쓰다(맥) ⓑ노력하다(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백 번째의 대 또는 오래 이어 내려오는 여러 세대를 백대(百代), 백 갑절을 백배(百倍), 여러 가지의 일이나 온갖 일을 백사(百事), 백 대의 수레를 백승(百乘),백 사람이나 갖가지로 다른 많은 사람을 백인(百人), 어떤 수를 백으로 나눔을 백분(百分), 언제든지 이김을 백승(百勝), 여러 가지로 많이 나옴을 백출(百出), 많은 가족 또는 여러 가지 변명을 백구(百口), 일반 국민을 백성(百姓), 여러 학자들이나 작가들을 백자(百子), 높고 낮은 모든 벼슬아치를 백관(百官), 온갖 과일을 백과(百果), 온갖 방법이나 갖은 방법을 백방(百方), 모든 것 또는 여러 가지를 백반(百般), 백 년을 기다린다 해도 황하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오랫동안 기다려도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백년하청(百年河淸),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위태로움이 극도에 달함을 일컫는 말을 백척간두(百尺竿頭), 백년을 두고 하는 아름다운 언약이라는 뜻으로 부부가 되겠다는 약속을 일컫는 말을 백년가약(百年佳約), 먼 앞날까지 내다보고 먼 뒷날까지 걸쳐 세우는 큰 계획을 일컫는 말을 백년대계(百年大計), 부부가 서로 사이좋고 화락하게 같이 늙음을 이르는 말을 백년해로(百年偕老), 백 번 꺾여도 휘지 않는다는 뜻으로 실패를 거듭해도 뜻을 굽히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백절불요(百折不撓), 남편과 아내가 되어 한평생 같이 지내자는 아름다운 언약을 일컫는 말을 백년가기(百年佳期),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는 뜻으로 싸울 때마다 번번이 이김을 일컫는 말을 백전백승(百戰百勝), 많은 전투을 치른 노련한 장수란 뜻으로 세상일에 경험이 많아 여러 가지로 능란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백전노장(百戰老將), 백일 동안의 천하라는 뜻으로 짧은 기간 동안의 영화 또는 단명한 정권을 일컫는 말을 백일천하(百日天下), 언제나 깍듯하게 대해야 하는 어려운 손님이라는 뜻으로 사위를 두고 이르는 말을 백년지객(百年之客), 백 번 쏘아 백 번 맞는다는 뜻으로 계획이 예정대로 들어맞음 또는 무슨 일이든지 생각하는 대로 다 들어 맞음을 일컫는 말을 백발백중(百發百中), 해롭기만 하고 하나도 이로울 것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백해무익(百害無益), 좋다는 약을 다 써도 병이 낫지 않음이나 온갖 약이 다 효험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백약무효(百藥無效), 온갖 요괴가 밤에 돌아다닌다는 뜻으로 못된 악인들이 때를 만나 제멋대로 날뜀을 이르는 말을 백귀야행(百鬼夜行) 등에 쓰인다.
▶️ 姓(성씨 성)은 ❶형성문자로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계집 녀(女; 여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生(생, 성)으로 이루어졌다. 어떤 집 여자(女子)로부터 태어난 같은 혈족의 이름, 나중에 집안 이름 곧 성(姓)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姓자는 '성씨'나 '백성'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姓자는 女(여자 여)자와 生(날 생)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生자는 초목이 올라오는 모습을 그린 것을 '날 것'이나 '태어나다'는 뜻이 있다. 生자와 女자로 이루어진 姓자는 '태어남(生)은 곧 여자(女)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고대 인류가 모계사회를 근간으로 시작됐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모계사회에서는 여자만이 姓을 가질 수 있었고 자신의 성은 딸아이에게 대물림됐다. 이는 생식 능력이 있던 여성이 신성시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이 낳은 글자가 바로 姓자이다. 그래서 姓(성)은 출생(出生)의 계통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름 앞에 붙이는 칭호이다. 곧 한 혈통을 있는 계레붙이의 일컬음이다. 아버지에게서 자식에게 전해져, 한 겨레붙이와 다른 겨레붙이가 구별됨. 이름 위에 붙임. 곧 김(金), 박(朴), 이(李) 등을 일컫는 말로 ①성(姓), 성씨(姓氏) ②백성(百姓) ③겨레, 씨족(氏族) ④아들, 낳은 자식(子息) ⑤타고난 천성(天性)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성과 이름을 성명(姓名), 성을 높여 부르는 말을 성씨(姓氏), 후손을 이르는 말을 성손(姓孫), 남의 성명을 높이어 이르는 말을 성함(姓啣), 일반 국민 또는 관직이 없는 사람들을 백성(百姓), 다른 성을 이성(異姓), 한 씨족이나 동족 또는 같은 성이나 성씨가 같음을 동성(同姓), 아버지의 성씨를 부성(父姓), 성을 고침을 개성(改姓), 흔하지 않은 썩 드문 성을 벽성(僻姓), 대역죄를 저지른 사람을 부를 때 그 성은 빼고 이름만을 부름을 거성(去姓), 고치기 이전에 가졌던 본디 성을 본성(本姓), 한 고을에 토착하여 살다가 없어진 성씨를 망성(亡姓), 처음 인사할 때 서로 성과 이름을 일러줌이나 첫 대면의 인사를 교환함을 일컫는 말을 통성명(通姓名), 성명을 초들어서 말함 즉 입에 올려 말함을 거성명(擧姓名), 모든 백성을 일컫는 말을 만백성(萬百姓), 시골에서 사는 백성을 일컫는 말을 촌백성(村百姓),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촌락을 일컫는 말을 집성촌(集姓村), 세 번 성을 바꾼다는 뜻으로 즉 외손녀가 자식을 낳음을 일컫는 말을 삼역성(三易姓), 성명을 알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성명부지(姓名不知), 음양설에 토대하여 성명 판단에 관한 것을 연구하는 학문을 일컫는 말을 성명철학(姓名哲學), 성명을 분석하여 그 사람의 운명이나 길흉을 판단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성명판단(姓名判斷), 같은 성씨의 숙모라는 뜻으로 고모를 달리 이르는 말을 동성숙모(同姓叔母), 부부 사이의 정을 일컫는 말을 이성지락(二姓之樂), 성이 다른 남자와 여자가 혼인을 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이성지합(二姓之合), 같은 성에다 같은 관향으로 성도 같고 본도 같음을 일컫는 말을 동성동본(同姓同本), 같은 성에 이름도 같음을 일컫는 말을 동성동명(同姓同名), 성이 같은 사람끼리는 혼인을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불취동성(不娶同姓)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