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성경적인 세계관만이 인생을 바로 이끌어 간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아하스가 다윗의 길, 곧 약속이 있는 길을 버리고 북이스라엘 열왕의 길을 선택하여 행한 일이 나옵니다. 즉 그는 이방 사람, 특히 인신 제사를 드렸던 암몬 사람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아 행하였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 이와 같은 가증한 행위 때문이었는데, 아하스는 어리석게도 자신과 나라를 망하게 할 이 제도를 끌어들인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가치관이 성경과 신앙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님을 잘 알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옳고 그름을 정확히 분별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약속 있는 삶을 살려고 하면 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져야 합니다. 뿌리가 거룩해야 가지도 거룩한 법입니다(롬11:16). 나무가 좋아야 열매도 좋은 것처럼 죄로 오염되고 타락한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진 이들에게서는 훌륭하고 거룩한 삶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가시나무가 포도를 내지 못하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는 것과 똑같습니다(마7:16), 아하스는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 주는 세계관이라는 바탕이 없었으므로 방향을 잘못 잡고 달음질한 것입니다. 롱펠로우의 지적처럼 인생의 성패는 방향을 어디로 잡는가가 좌우합니다. 방향을 잘못 잡은 이들은 열심히 달음질할지라도 성공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이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점검하고 자신이 서 있는 바탕도 확인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한다”라고 하였습니다(고전 9:26), 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간다”라고 하였습니다(빌 3:14), 그렇습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삶의 방향이 확실합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세계관이 확실하다는 말입니다. 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지지 성명을 내고 주변 여건이 그것을 뒷받침할지라도 이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기꺼이 행하지만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은 대세가 아무리 그쪽으로 기울지라도 단호히 거부합니다. 이것이 바른 세계관, 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진 성도다운 삶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교훈합니다(고전10:31). 하지만 성경적인 가치관이라는 바탕이 없이는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가치관의 바탕은 무엇입니까? 성경에 그 바탕을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의 삶의 척도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아하스와 같지 아니하고, 반드시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