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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所望, hope)
①바라는 바. 기대(期待)하는 바. ②삼덕(三德)의 하나. 하나님에게 향한 변치 않는 사랑과 믿음이 그들을 예수의 재림(再臨), 미래의 행복, 곧 영생(永生)으로 이끌어 주리라고 바라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所 : 바 소(戶/4)
望 : 바랄 망(月/7)
(유의어)
염망(念望)
의망(意望)
가장 좋은 일에 대한 기대를 말한다. 성경에서 소망은 헬라 문학에서처럼 단순한 기대나 갈망이 아니라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소망의 하나님(롬 15:13)을 의지하는 것을 뜻한다.
더욱이 소망은 성령의 은사로서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특성 중 필수적인 요소로 소개된다(고전 13:8, 13). 사도 바울은 이를 '부르심의 소망'이라 표현하였다(엡 1:18). 이는 곧,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갖게 되는 영광스런 소망을 가리킨다.
'우리의 소원(所願)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지금은 거의 들을 수 없지만 1960~70년대 행사에서 자주 불렸던 '우리의 소원'이란 노래 가사다. 소원이, 간절하지만 이루기 힘든 목표를 상정하는 느낌이라면 소원은, 달성 가능한 목표를 바라보면서 온 힘을 다하는, 실천적 의미가 짙은 단어다.
소원이 실천적인 만큼 환난은 필연이다. 신약성경 27편 가운데 절반 정도를 집필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환난은 인내(忍耐)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所望)을 이룬다'고 썼다. 결국 인내라는 실천적 고난을 통해 소망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인내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부처의 수행기를 적은 입보살행론(入菩薩行論)은 '성냄과 불만보다 더한 죄가 없고, 인내만큼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없다'고 전할 정도다.
그래서 忍(참을 인)은 仁(어질 인)과 통하고, 논어(論語)의 핵심 개념이 됐다. 개인에겐 덕(德)을, 공동체엔 인본주의를 이루는 근간이 仁인 셈이다. 忍은 자신에게 가하는 고통이라는 점에서 省(살필 성)과도 연결된다.
공자(孔子)가 활약한 춘추(春秋)시대는 국가 통제력이 강화되는 시기였다. 주(周)라는 도시국가에서 출발해 춘추(春秋)와 전국(戰國)을 거쳐 진(秦)의 통일국가로 달려가는 과정이었다. 이웃 간 감시 시스템인 오가작통(五家作統)도 이즈음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자의 省은 이웃이 아닌, 나 자신을 향한 통제였다는 점에서 시대와 구별된다. 제자 사마경(司馬耕)이 군자(君子)를 묻자 공자는 "안으로 살펴(省) 거리끼지 않으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랴(內省不疚 夫何憂何懼)"고 답한다. 못난 사람을 보면 자기에게도 이런 못남이 있지 않나 자성하라(見不賢而內自省也)는 말도 했다.
소망(所望)의 절정은 베드로다. 광풍으로 요동치는 갈릴리 밤바다 위에, 두 발을 내디딘 자가 베드로다. 오직 예수에게만 소망을 두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베드로는 '오라!'는 예수 말 한마디만 믿고 바다로 내려섰다. 그 덕에 그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물 위를 걷는 인간이 될 수 있었다.
코로나19는 이제 우리에게 일상이 됐다. 영원히 코로나와 함께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떠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소망이다. 소망 속에 참고(忍), 살피며(省) 한걸음씩 나아간다면 코로나 따위는 소리도 흔적도 없이 소멸돼 버릴 것이다.
◼ 소망(所望)
사람은 누구나가 제각기의 가슴 속 깊이 소망을 간직하고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내일 역시 한결같은 소망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다소곳이 바라는 가운데 살아갈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소망 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러한 소망은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나 스스로의 마음의 작용입니다.
그래서 만일 이러한 소망이 없이 그저 되는 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보다 나은 삶을 바라지 않는 사람일 뿐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삶이란 아무 값어치도 없는 그야말로 허무하고 맹랑한 삶일 것입니다. 사람들의 착하고 아름답고 보람된 모든 일들은 그가 가슴 속에 간직한 소망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소망이란 우리들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서 꽃 피우고 열매맺게 하는 동시에 우리 인간사회를 살기 좋은 꽃동산으로 단장해 주는 것입니다.
소망은 참된 삶의 핏줄기와도 같은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이미 줄기찬 삶의 의욕을 상실한 인생의 허수아비와도 같은 사람입니다.
소망이란 생활력이 왕성한 곳에서 솟구쳐 일어나는 일종의 동력원입니다. 흙덩어리나 바윗돌 같은 생명이 없는 무기물의 세계에는 소망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무기물보다는 유기물이, 유기물 중에서도 우리 인간들이, 인간들 중에서도 혈기가 가장 왕성한 젊은이들에게 보다 강렬한 소망이 부풀어 오르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 입니다. 이 불길 같은 소망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의(義)에 살고 의(義)에 죽게 합니다.
불 같은 소망이 그들 가슴 속에 활활 불타고 있는 까닭에 불의를 묵과할 수 없고, 대의(大義)를 위해 서슴없이 소의(小義)를 버리게 합니다. 그것이 곧 젊음의 표상입니다.
소망이란 나의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나 혼자만의 공리주의가 아닙니다. 소망이란 요행이나 사행(射倖)이 아닙니다. 소망은 나를 보다 참되게 정화하고 이웃을 보다 화목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불순한 야망이나 사악한 욕망이 섞여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참된 뜻에서 소망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야망이요, 욕망입니다.
참된 뜻의 소망은 높은 이상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범속한 물질적 향락이나 육체적 탐락(耽樂)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참된 소망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며, '나'가 아니고 '너'를 위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들의 소망에는 한도가 있습니다. 이상(理想)에 한도가 없듯이 어제 바라던 소망이 이루어지면 내일에는 다시 더 큰 소망을 쫓습니다. 현재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현재에 만족하면서 보다 높은 내일의 단계로 비약하는 소망을 간직하여야 합니다. 나의 새로운 생활이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발전이 바로 이곳에서 약속됩니다.
'큰 소망은 큰 인물을 만든다'는 영국의 속담도 있습니다만, 사랑과 믿음으로 가득찬 소망을 가슴 속에 끌어안고 하루하루를 줄기차게 살아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비관이나 절망은 우리들의 주변에서 멀리 도망쳐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저 하루 하루의 삶이 생기에 가득 차고 즐겁기만 할 것입니다. 소망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것이 삶의 참모습입니다.
▶️ 所(바 소)는 ❶회의문자로 음(音)을 나타내는 戶(호; 집을 나타냄, 소)와 도끼(斤)로 찍은 그 곳이라는 뜻이 합(合)하여 '곳'을 뜻한다. 나무를 베는 소리를 일컬은 것이었으나 나중에 處(처; 곳)대신 쓴다. ❷형성문자로 所자는 '곳'이나 '지역', '지위', '위치', '얼마'와 같이 다양한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所자는 戶(지게 호)자와 斤(도끼 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所자는 본래 도끼로 나무를 찍는 소리를 뜻했던 글자였다. B.C 470년경의 시가집인 시경(詩經)에는 '벌목소소(伐木所所)'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여기서 所所란 '나무를 찍는 소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所자는 본래 나무를 찍는 소리를 뜻하기 위해 戶자는 발음요소로 斤자는 의미요소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후에 '장소'나 '자리'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所(소)는 ①바(일의 방법이나 방도) ②것 ③곳, 일정한 곳이나 지역 ④처소(處所) ⑤관아(官衙), 어떤 일을 처리하는 곳 ⑥지위(地位), 자리, 위치(位置) ⑦장소(場所)를 세는 단위(單位) ⑧기초(基礎) ⑨도리(道理), 사리(事理) ⑩경우(境遇) ⑪얼마 ⑫쯤, 정도(程度) ⑬만일(萬一) ⑭있다, 거처(居處)하다 ⑮~을 당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곳 처(處)이다. 용례로는 수입이 되는 이익을 소득(所得), 일정한 기관이나 단체에 속함을 소속(所屬), 들려 오는 떠도는 말을 소문(所聞), 가지고 있음 또는 그 물건을 소유(所有), 있는 곳이나 있는 바를 소재(所在), 매우 귀중함을 소중(所重), 어떤 일에 있어서 의미나 의의를 가지거나 쓸모가 되는 바를 소용(所用), 요구되거나 필요한 바를 소요(所要),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바를 소위(所謂), 바라는 바나 기대하는 바를 소망(所望), 원함 또는 원하는 바를 소원(所願), 몸에 지님 또는 지닌 것을 소지(所持),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옳다고 믿고 그에 따라 하려고 하는 생각을 소신(所信), 마음속에 품고 있는 회포를 소회(所懷), 어떤 일이 이루어지거나 일어나는 곳을 장소(場所), 사는 곳을 주소(住所), 보초가 서 있는 곳을 초소(哨所), 사업을 벌이고 있는 곳을 업소(業所), 사람이 살거나 임시로 머물러 있는 곳을 처소(處所), 몸 가운데에 목숨에 관계되는 중요한 곳을 급소(急所), 무덤이 있는 곳을 묘소(墓所), 머물러 묵는 곳 또는 숙박하는 곳을 숙소(宿所), 원하던 바를 이룬다는 말을 소원성취(所願成就), 나아가는 곳마다 적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소향무적(所向無敵), 능통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을 무소불능(無所不能), 못 할 일이 없음 또는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는 말을 무소불위(無所不爲), 알지 못하는 바가 없다는 뜻으로 매우 박학다식 하다는 말을 무소부지(無所不知), 열 사람의 눈이 보고 있다는 뜻으로 세상 사람을 속일 수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십목소시(十目所視), 어떤 일에 적당한 재능을 가진 자에게 적합한 지위나 임무를 맡김을 적재적소(適材適所), 훌륭한 소질을 가지고도 그에 알맞은 지위를 얻지 못한다는 말을 부득기소(不得其所),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리지 못할 생각이나 평범하지 않는 생각을 이르는 말을 비이소사(匪夷所思) 등에 쓰인다.
▶️ 望(바랄 망/보름 망)은 ❶상형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盳(망)과 통자(通字)이다. 기지개를 켠 사람 위에 강조한 눈의 모양을 본떠 멀리 바라보다의 뜻을 나타낸다. 또는 (형성문자) 臣(신; 내려다 보는 일)과 壬(정; 사람이 바로 서다, 바로 자라는 일)로 이루어진 글자 망(臣+壬)은 높은 곳에서 훨씬 먼 곳을 바로 바라보는 일, 朢(망)은 달이 해와 멀리 마주 보는 만월(滿月) 때, 望(망)은 같은 글자이나 발음을 똑똑히 나타내는 亡(망)을 글자의 부분으로 삼은 것이다. 나중에 朢(망)은 만월, 望(망)은 바라보는 일이라고 나누어 생각하였다. ❷상형문자로 望자는 '바라다'나 '기대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望자는 亡(망할 망)자와 月(달 월)자, 壬(천간 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人(사람 인)자에 目(눈 목)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바라보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본래의 의미는 '망보다'나 '엿보다'였다. 후에 의미가 확대되면서 '바라다'나 '기대하다', '바라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글자도 크게 바뀌었는데, 금문에서는 人자가 壬자가 되었고 月자와 亡자가 더해졌다. 여기서 亡자는 발음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望(망)은 (1)상대편의 동태를 미리 알기 위해 먼빛으로 동정(動靜)을 살피는 일 (2)명망(名望) (3)천망(薦望) (4)망(朢). 지구(地球)가 태양(太陽)과 달의 사이에 들어 셋이 거의 일직선 상에 있을 때의 달의 모양. 이때에 달 반구(지구 쪽을 향한) 전체가 햇빛으로 환하게 비침. 만월(滿月). 망월(望月) (5)음력(陰曆) 보름을 이르는 말. 망일(望)日) 등의 뜻으로 ①바라다, 기다리다 ②기대(期待)하다, 희망(希望)하다 ③그리워하다 ④바라보다 ⑤망(望)보다, 엿보다 ⑥원망(怨望)하다, 책망(責望)하다 ⑦보름, 음력(陰曆) 매월 15일 ⑧전망(展望), 풍경(風景) ⑨풍채(風采: 드러나 보이는 사람의 겉모양) ⑩명성(名聲), 명예(名譽) ⑪희망(希望), 소원(所願) ⑫부끄러워하는 모양 ⑬제사(祭祀)의 이름 ⑭천망(薦望: 벼슬아치를 윗자리에 천거하던 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바랄 기(冀), 바랄 희(希), 원할 원(愿), 원할 원(願)이다. 용례로는 주위의 동정을 살피려고 세운 높은 대를 망루(望樓), 바라던 것 이상의 것을 망외(望外), 멀리 바라봄을 망견(望見), 고향을 그리고 생각함을 망향(望鄕), 달을 바라봄을 망월(望月), 멀리서 그 대상이 있는 쪽을 향하여 절함을 망배(望拜), 한 가지 소망을 이루고 나서 다시 그 밖의 것을 바란다는 말을 망촉(望蜀), 쉰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나이 마흔 하나를 일컫는 말을 망오(望五), 예순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나이 쉰 한 살을 일컫는 말을 망륙(望六), 여든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나이 일흔 한 살을 일컫는 말을 망팔(望八), 아흔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나이 여든 한 살을 일컫는 말을 망구(望九), 백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나이 아흔 한 살을 일컫는 말을 망백(望百), 멀리 바라봄 또는 앞날을 내다봄을 전망(展望), 앞일에 대하여 기대를 가지고 바람을 희망(希望),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낙심함을 실망(失望), 모든 기대를 저버리고 체념함을 절망(絶望), 바라는 바나 기대하는 바를 소망(所望), 남이 한 일을 억울하게 또는 못마땅하게 여겨 탓함을 원망(怨望), 원하고 바람 또는 그 원하는 바를 원망(願望), 널리 바라봄 또는 바라다 보이는 경치를 조망(眺望), 부러워함을 선망(羨望),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간절히 바람을 갈망(渴望), 가능성 있는 희망을 가망(可望), 잘 되기를 바라고 기대함을 촉망(屬望), 크게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는 희망을 야망(野望), 열렬하게 바람을 열망(熱望), 허물을 들어 꾸짖음을 책망(責望), 어떠한 일이나 대상을 절실하게 여겨 원하거나 바라는 것을 요망(要望), 구름을 바라보며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타향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를 생각함을 일컫는 말을 망운지정(望雲之情), 넓은 바다를 보고 탄식한다는 뜻으로 남의 원대함에 감탄하고 나의 미흡함을 부끄러워 함을 이르는 말을 망양지탄(望洋之歎), 구름을 바라보며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타향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를 생각함을 일컫는 말을 망운지회(望雲之懷),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수레 덮개를 서로 바라본다는 뜻으로 앞뒤의 차가 서로 잇달아 왕래가 그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관개상망(冠蓋相望)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