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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가져야 할 3가지 영적자산(요이1:1-3)-2013.9.22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산들이 있다면, 성도가 영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자산들도 있습니다. 성도에게 반드시 가져야 할 세 가지의 영적 자산이 필요합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필요한 자산은 당연히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진 성도가 세상에서 성도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영적 자산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와 긍휼과 평강입니다. 이 세 가지는 주로 헬라인들이나 히브리인들이 사용하던 인사법입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인 아들 디모데를 향하여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간구했습니다(딤전1:2, 딤후1:2).
험한 세상에서 성도가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려면 최소한 이 세 가지는 반드시 가지고 살아야 할 자산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지요. 은혜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시는 가장 크고 위대한 최고의 선물이라면, 긍휼은 그런 은혜받은 내가 타인에게 베푸는 선물이요, 평강은 내가 내 자신에게 베푸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공급해주십니다. 때문에 성도된 우리가 이 세 가지의 영적 자산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은 물론이거니와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이 훨씬 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우리안에 이런 자산이 풍성하게 들어 있으면 신앙생활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성도에게 이런 자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교회와 성도안에 이런 영적 자산이 풍성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합니다. 성도는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산이 없고, 세상 사람들이 즐겨하는 자산만 가득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세상이 즐거워하는 자산은 돈과 명예와 권세, 건강과 출세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믿는 성도라고해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믿음의 성도된 우리는 반드시 이런 영적 자산을 충만히 소유해야 합니다.
본문은 사도 요한이 택하심을 입은 교회와 성도에게 당부하는 편지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안에 거하는 모든 자들에게 띄우는 편지입니다. 내용은 진리안에 거하여 진리를 실천하고, 진리를 수호하라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진리는 변치않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그런 진리를 따르고 진리대로 살려면 반드시 이런 영적 자산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입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 자산을 우리의 인격안에 담아야만 진리를 지키고, 진리를 따르고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진리안에 살기를 원하신다면 반드시 이 세 가지 영적 자산을 우리의 인격안에 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격안에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려면 반드시 진리를 소유한 인격이어야 합니다. 분명히 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임과 동시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때문에 진리의 인격을 소유한 자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영적 자산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소유한 인격이어야 합니다. 사랑을 담을 수 없는 인격은 이런 영적 자산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자산을 소유하기 원하시면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인격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인격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수납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인격을 가진 자만이 영적 자산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도가 가져야 할 세 가지 영적 자산은,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요, 그것을 담을 수 있는 인격자여야 합니다.
그것을 담을 수 있는 인격자는 진리를 소유한 인격자요,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인격자입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라는 영적 자산은 이 땅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는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어지는 하나님의 자산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영적 자산을 풍성하게 소유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에 구체적으로 은혜와 긍휼과 평강의 자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첫 번째 영적 자산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첫 번째 영적자산은 은혜입니다. 은혜가 없으면 성도가 아닙니다. 은혜는 하늘 위에서 내려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혜는 아무 공로나 자격이 없을지라도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한마디로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호의입니다(시103:10). 만일에 우리의 죄악을 따라 하나님이 공의로 다스리신다면 세상에 남아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급적이면 당신의 공의의 법을 집행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냥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십니다. 전적인 은혜로 말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필요한 영적자산은 은혜입니다. 은혜는 시대를 초월합니다. 환경과 민족을 초월합니다. 무릇 호흡하는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상에 은혜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지 하나님의 은혜아래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단절되면 인간 세상은 더 이상 유지가 안됩니다. 지금까지 창조이래로 하나님의 은혜가 끊어졌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비록 한 사람에게라도 당신의 은혜는 끊임없이 공급되고 있었습니다. 남은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말입니다.
만일에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가 끊어진다면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는 원리가 주님의 은혜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이후로 한번도 당신의 은혜를 완전히 거두어 가신 적은 없습니다. 심지어 노아의 홍수 심판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노아의 여덟 식구에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생명체를 보존하시는 특별한 은혜를 거두지도 아니하셨습니다.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취하여 방주로 인도하사 구원하시는 은혜를 베풀고 계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유황불로 심판받던 소돔과 고모라성을 보십시오. 언뜻 보기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단절된 것 같지만, 실상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가정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혜는 아무리 포악한 시대라 할지라도 완전히 이 땅에서 사라지거나 단절된 것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은혜입니다. 우리는 그런 은혜를 누리고 살면서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은혜에만 집착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는 지구촌 모든 곳에 쉬지않고 공급되고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보이는 은혜도 있고 보이지 않는 은혜가 있을 뿐이요, 느끼는 은혜가 있고 느끼지 못하는 은혜가 있을 뿐입니다. 성도의 믿음에 따라서 누리는 은혜가 있고 누리지 못하는 은혜가 있을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인정하든지 안하든지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는 24시간 지속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성도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속에 강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비참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가치를 모릅니다. 아예 은혜와 상관없이 사는 듯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기보다는 세상이 제공하는 얄팍하고 싸구려 은혜로만 살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은혜를 빙자하여 세상 사람들보다 더 얄팍하고 상스럽게 살아갑니다. 목회자의 이름으로 자기 배를 채우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속이며, 교회의 이름으로 편법을 도용합니다. 어찌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부도덕한 소수의 종교인들에 의해서 농단을 당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특별히 성도답게 살아가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성도가 가져야 할 필수적인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절대 성도답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은혜가 없으면 영적 생활 자체가 힘들고 지칩니다. 은혜가 없으면 어떤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은혜라는 영적 자산을 반드시 소유해야 합니다. 지금 내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지를 확인해 보십시오.
(2) 두 번째 영적 자산은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믿음의 성도에게 두 번째로 필요한 영적 자산은 긍휼입니다. 긍휼이라는 말은 죄를 지은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동정심, 오래 참으심입니다. 쉬운말로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입니다. 긍휼도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의 한 방편이지만, 긍휼하심이 없다면 어느 누구도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이 없으면 우리가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긍휼은 무엇이 먼저라고 주장할 성질이 아닙니다. 마치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말장난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긍휼하심이 하나님의 은혜의 한 방편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으로는 긍휼하심이 은혜받은 성도에게 반드시 필요한 영적자산이라는 말입니다. 은혜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전적으로 수납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받은 긍휼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낼 줄 압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은 자는 다른 지체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베풀 줄 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아드리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지 못합니다. 고기도 먹어본 자가 맛을 알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은 자가 자기 친구에게 긍휼을 베풀지 못한 사례가 나옵니다. 마태복음18장에 나오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이야기입니다(마18:23-35). 일만 달란트를 빚진 자가 있었습니다. 주인이 빚진 자에게 자기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팔아서 빚을 갚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빚진 자가 엎드리어 절하며 참아달라고 하소연합니다. 그때 주인이 빚진 자를 불쌍히 여겨 탕감을 해줍니다. 종에게 긍휼을 베풀어 준 것입니다.
그는 신이 나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왠 일입니까? 길에서 자기에게 빚진 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그를 붙들어 목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빚을 갚으라고 독촉했습니다. 그러자 그 빚진 자가 역시 엎드리며 간구하여 조금만 참아달라고 하소연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를 붙잡아 감옥에 가뒀습니다. 그때 그 사건을 지켜보던 사람이 일만 달란트를 탕감해준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다 고했습니다. 주인은 그 못된 종을 다시 붙잡아 이렇게 말하며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마18:33). 한마디로 너는 나로 인하여 긍휼을 입었거든 너는 긍휼을 베풀 수 없더냐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을 제대로 알지 못한 사람이요, 수납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말로 하나님의 긍휼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긍휼에 대한 무지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전적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런 긍휼을 베풀지 못합니다. 자기는 아무 공로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긍휼하심을 입었는데 다른 지체에게는 율법적인 잣대를 들이댑니다.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무지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긍휼은 세상이 말하는 불쌍함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세상이 말하는 긍휼은 모든 주체가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기 기준으로 긍휼을 베풉니다. 그리고 자기의 의가 드러납니다. 때로는 그것으로 자신의 의로움을 뽐내기도 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 긍휼을 베풀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자신을 긍휼로 포장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긍휼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어떤 조건이나 댓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긍휼의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자기의 의로움이 전혀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베푸는 긍휼입니다. 때로는 자기의 의로움이 나타날까봐 신분이나 이름을 숨깁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그리고 자기 기준으로 긍휼을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에 긍휼이 필요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됩니다. 사실 세상의 긍휼은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에게는 긍휼이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긍휼에 대한 가장 큰 착각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 없는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긍휼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때문에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을 모든 이에게 나타내어야 합니다. 긍휼은 성도가 이 땅에서 성도답게 살아가는 영적인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긍휼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긍휼하심을 나타내야 합니다. 만일 우리안에 긍휼하심이 없다면 우리는 분명히 냉랭한 믿음 생활만 할 것입니다. 믿음의 성도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충만히 채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긍휼하심을 모든 이에게 나타내야 합니다. 어찌보면 성도가 세상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긍휼인지 모릅니다. 은혜도 자신이 누리며, 평강도 자신이 누리지만, 긍휼은 다른 이에게 베푸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세 번째 영적 자산은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믿음의 성도가 가져야 할 세 번째 영적 자산은 평강입니다. 평강은 마음에 흔들림이나 치우침이 없고 갈등이 없는 고요한 평정심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불안함이나 두려움이 전혀 없는 가장 평온한 상태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평강을 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세상은 두려움의 바다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리봐도 저리봐도 두려움의 바다가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험한 세상에서 자신의 심령의 평안함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마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안전지대가 없습니다. 어찌해야 좋을지 어디가야 좋을지 알 수 없는 지뢰밭 같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어 불안합니다. 그래서 평화가 없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온갖 두려움을 공급합니다. 건강에 대한 두려움, 물질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는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까지 모든 것이 두렵기만 합니다. 사실 세상 어디를봐도 안전한 곳도 없고, 평안이 없습니다.
몇 년 전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유머 시리즈 가운데 ‘무서워 시리즈’가 있었습니다. 아마 나이가 드신 분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도 웃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먼저 공포의 대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무섭나(I)'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상대방이 공포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무서워유(you)', 요즈음 남자들은 여자들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무서운걸(girl)', 또 반대로 여자들은 남자들이 무서워서 ‘무섭군’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매일 매일의 삶이 너무 짜증나고 무서운 나머지 ‘무섭데이(Day)'라고 합니다. 또 비 오는 날이면 더욱 무섭다하여 ’무섭지비‘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다 두렵다고 해서 ’무섭다(all)'고 합니다. 그만큼 세상이 흉흉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평강을 선물로 받은 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현상중에 하나가 평강입니다. 은혜받으면 평안합니다. 그리고 긍휼하심을 받으면 평안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요동을 쳐도 평안합니다. 험한 파도가 엄습해도 평안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긍휼과 평강은 다 같은 맥락에서 한집 식구와 같고, 떨어질 수 없는 친구와 같습니다. 때문에 독립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장 되는 것이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영적 자산을 소유해야 합니다. 우리를 성도답게 하는 영적 자산이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성도는 내적인 평강을 소유해야 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정말 평안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심령에 평강이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스러운 신앙생활을 못합니다. 우리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머물려면 반드시 평강을 소유해야 합니다. 평강은 우리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잘 관리하고 보존하는 자산입니다. 은혜받았음에도 평강을 누리지 못하면 은혜가 상실됩니다. 많은 성도들이 평강을 잃어버리고 은혜를 모른 채 살아갑니다.
가끔씩 성도들로부터 잠을 못 잔다는 말을 듣습니다. 사실 잠을 못자는 것도 일종의 평강의 상실입니다. 평안하면 단잠을 잘 수 있습니다. 평강을 깨뜨리는 것이 있기 때문에 단잠을 자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근심이나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평강은 그런 것들이 우리안에서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막아줍니다. 두려움이 우리안의 평안을 깨뜨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평안으로 두려움을 이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평안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니까 잠을 제대로 못자는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잘 팔리는 약이 무언지 아십니까? 의외로 정신계통의 신경제라고 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가장 큰 질병 가운데 하나가 정신계통의 질병입니다. 인공적 주거환경은 더욱 좋아지고 있지만, 정신적 환경은 오히려 악화된 것입니다. 미국 국립정신건강 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의 4분의 1이 각종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넥스(Xanax)라는 신경안정제가 항생제나 피임약을 제치고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 중의 하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안에 평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평강의 왕이시고,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서26:3“주께서는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적극적으로 신뢰하는 자에게 완전한 평강으로 지켜주십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평강을 깨뜨리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의 세친구도 풀무불속에서 평강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돌에 맞아 죽어가던 스데반도 심령의 평강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을 믿는 절대적인 믿음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안에 주어진 평강을 깨뜨리는 것은 원수마귀입니다. 절대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평강이라는 자산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우리안에 하나님의 평강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깁니다. 평강은 성도를 성도답게 하는 가장 탁월한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적 자산을 소유하여 내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이들에게 평강을 유통하는 종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울러 우리 모두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라는 세 가지 영적 자산을 소유하여 세상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2013.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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