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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바이블 49 헬라파와 히브리파
▶ 초대 교회의 분열
#사도행전 6장에 따르면 예루살렘 초대교회에 약간의 문제가 일어난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사도행전 6장 1절]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이 본토 유대인들에게 푸대접을 받게 되자 불만이 생긴다.(개역한글판에는
애매모호하게 번역되었으나 공동번역판에는 "식량을 배급받을 때마다 푸대접을 받았기 때문이었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헬라파 유대인이란 앞서 언급한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을 말한다.
얼핏 보기에는 별 특별한 내용이 없는 것 같지만 이 구절은 초대교회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전해주고 있다. 즉 여기서 알수 있는 것은 예루살렘의 원시 기독교공동체가 한 가지 성향을 지닌
동질집단(a homogeneous community)이 아니라 선명히 구별되는 두 계열의 사람들이 섞여 있는
이질집단이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초대 교회내에는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이라는
두개의 집단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사도행전 5~6장에 보면 #예루살렘 유대교적 기독교
공동체 (The Jewish-Christian Community in Jerusalem) 초창기에는 #베드로와 요한을 중심으로 한
히브리파 기독교인이 지도권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과부구제 문제로 야기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7집사가 선출되었는데 이들은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였다. 이들 7집사의 이름을 살펴보면 모두 헬라 이름이고
그들 중의 하나인 니골라는 안디옥 출신의 이방인으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도행전 6장 3~4절에서는 새로뽑힌 7집사에게 식량배급을 맡기고 자신들(사도)들은 기도와
전도에만 힘쓰겠다고 말한다. 아마도 당시 초대교회의 실질적인 힘은 본토 출신 히브리파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나 여겨진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지도권은 차츰 바뀌어 간다.
헬라 출신 유대인들은 본토 출신 유대인들과는 달리 유대교적인 전통이나 율법에 대해 어느 정도
자유로웠고, 특히 할례에 대해서는 자유스러운 입장에 서 있었다. 이에 비해 #히브리파 기독교인들은
유대교라는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초대교회의 헬라화된 유대인들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에 비해 여성인권에 대해 다소 나은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여성들이 자유롭게 수건을 벗고 지도력을 발휘하자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5절에서 여성이 머리에 수건을 벗는 자유로운 행위에 대해서는 무조건 써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한다. 이는 유대 사회의 전통에 어긋나지 않고, 자유주의자들의 문제를 벗어보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유재인 / 바울서신에 나타난 여성 이해 / 서울신학대학원, 1994]
애찬식의 음식문제 역시 "서로 다투니 집에서 먹고 오라"고 원천봉쇄하고 나선다.
바울이 이토록 세세한 규정을 짓고 있는 것은 당시의 고린도 교회는 예언하는 자나 방언하는 자들과,
이방인들에 의해 퇴색되어 가고 있었는데, 이런 문제를 바르게 조절해 줄 것을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
요청한 것이다. 고린도 전서는 그렇게 형성된 것이다.
[the new thompson annotated-chain reference bible]
초기에는 히브리파가 초대교회의 지도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으나, 기독교가 헬라 지역으로 점차
퍼져 나가는 후기에는 헬라파 기독교인들이 이방인 선교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7집사중 한명이었던
빌립은 사도행전 8장에서 사마리아 전도를 하며, 특히 사도행전 21장 8절 이하에서
그를 전도자(Evangelist)라고 기록하고 있다. 식량배급의 문제를 일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7집사들은
나중에는 사도들과 동등한 역활을 하게된 것이 틀림없다. 즉 사도가 유대본토 출신들의 지도자였다면
7집사는 헬라 출신 유대인들의 종교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헬라파와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주축이 된 초대교회는 7집사중 하나였던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서
갈림길에 서게된다. 사도행전 11장 19절에서 스테반이 순교하자 신도들이 각 지역으로 흩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11장 22절에서는 예루살렘교회는 건재한듯이 묘사되고 있다. 즉, #히브리파
기독교인은 박해를 받지 않고 유대땅에 남았고 이방인에 대해서는 유대교의 율법인 할례를 받아
그들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 들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같은 일은 다음의 구절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사도행전 15장 1~2절]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사도들이 안티오키아로 와서 이방인들도 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시비를 걸자 격렬한 논쟁이 일어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안디옥 교회의 대표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야고보의 주재 하에 회의를 갖게 된다. 바울서신이나 그 밖의 전승들은 #야고보를
예루살렘의 유대교적 기독교 공동체의 지도자로 부각시키고 있다. 아마도 베드로 같은 사도들은
시리아나 소아시아 등지로 흩어지고, 예루살렘 기독교 공동체는 야고보가 단일 지도체제를 형성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회의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바리새파 기독교인들은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도행전 15장 5절]
야고보의 주재하에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할례 논쟁은 결국 이방인들에게 할례 없이 복음을 전해도
된다고 결론 내려졌다.
그러나 이방인들의 수용문제는 이 회의에서 끝나지를 않았다. 할례의 문제 때문에 베드로 분파와
바울분파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갈라디아서 2장이 증거해준다. 바울의 편지중 하나인 갈라디아서
2장에는 바울이 바나바와 그리스인 디도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왔다. 거기서 바울은 할례를 강요받는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2장 7절에는 베드로는 할례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바울은 할례받지 않은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도직을 임명 받았음을 알게된다.
즉, 베드로와 바울은 서로 다른 사도직을 부여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갈라디아서 2장 12~16절에서 또 다시 이방인들의 할례문제가 제기되자 바울은
베드로를 비난한다. 갈라디아서 2장 12절에 의하면 베드로는 이방인 교우(헬라파 기독교인)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야고보가 보낸 할례파 사람들이 나타나자 그들을 두려워하여 식사(예배의식인
주의 만찬으로 추정)를 그만두고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이것을 안디옥 사건이라고도 일컫는데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예루살렘 종교회의 이후로 추측된다. 제임스 던은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는 이방인의 할례 문제가 현안으로 되어 있으나, 적어도 바울이 전하는바에
의하면 안디옥 사건에는 이 문제가 이미 타결된 것이 전제가 되어 있다. 따라서 안디옥 사건은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James D. G. Dunn / "The Incident at Antioch (Gal. 2:11-18)," / JSNT 18(1983) / P.57]
#갈라디아서 2장13절에 바울은 할례파를 두려워하여 자리를 피한 바나바와 그들을 가르켜
위선자(개역한글판에는 "외식하는 사람들")라고 비난한다.
결국 바울은 이러한 바나바와 심한 다툼 끝에 갈라서게 된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사도행전 15장 35~41절]
제임스 던(James D. G. Dunn)에 의하면 이 사건을 계기로 바울은 베드로와 오랜 동역자 바나바와
결별하게 되었고, 안디옥교회의 후원도 끊어져 직접 돈을 벌면서 전도를 하는 독자적인 선교사가 된
것이라고 추측한다. 결국 이 사건 이후 바울은 기존의 선교지였던 시리아와 소아시아를 버리고
유대 율법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지 않는곳으로 선교를 하게 된다.
사도행전 15~16장에 의하면 바울은 제2차 선교여행 때 시리아, 길리기아, 더르베, 루스드라, 프리지아,
갈라디아, 드로아를 거쳐 마케도니아의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두 도시에서 선교활동을 벌인다. 그 후에
바울은 아테네를 거쳐 고린도로 내려가 1년반동안 머무른다. 그 후에 바울은 에베소로 떠나는데
이곳에는 세례요한의 세례밖에 모르지만 구약으로 예수를 증거한다는 #아볼로라는 사도와
세례요한에게 세례받은 사람들이 주축이 된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다. 에베소의 기독교 공동체는 바울이
창립한것이 아니었지만 헬라사상과 영지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던 초대교회로 추정된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바울 공동체들은 헬라적 사상 영향 아래에서 세워진 교회들이다.
이 #바울 공동체는 팔레스타인에 자리잡은 유대교적 기독교 공동체와 신학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AD 50년대 초반에 바울공동체가 겪은 갈라디아 사건과 고린도 사건은 바로 이러한 신학적인 대립에
의해 야기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초대교회 안에 존재하는 유대주의자들
(Judaisers)이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방인 기독교인들에게 할례와 율법준수를
강요했다는 점이다. 당연히 무할례의 복음을 기초로 하고 있는 바울의 신학과 강렬히 대치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도들간의 분쟁은 보편적인 구원론과, 유대적인 구원론의 교리논쟁이었는가?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할례라는 문제를 표면적으로 내세웠을 뿐이고,
실상은 두세력간에 주도권을 두고 벌어진 분쟁에 지나지 않는다.
즉, 할례를 제외하고는 헬라화된 유대인들에도 율법은 철폐 되지 않았던 것이다.
바울교파가 로마에 널리 전파된 후에도,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할례를 제외한 대부분이 유대적인 율법을
지키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피에 대한 율법이다. 구약의 율법에서는 피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다.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레위기 17장 10~11절]
"그 피를 흘리고 흙으로 덮을찌니라....(중략)....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중략)....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 [레위기 17장 13~ 14절]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 채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창세기 9장 4~5절]
이러한 율법이 그대로 신약에도 등장한다는 것은 주목해 볼만한 일이다.
바로 할례문제로 논쟁을 벌이는 두 교파를 향해 야고보가 다음과 같은 중재안을 내놓았던 것이다.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15장 29절]
보다 확실한 공동번역판의 동구절은 다음과 같다.
"다만 우상에게 바쳐서 더러워진 것을 먹지 말고, 음란한 행동을 하지 말고,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먹지 말라고 편지를 띄웠으면 합니다." [사도행전 15장 29절 / 공동번역판]
여기서 목매어 죽인 것은 피를 빼지 않은 고기를 말한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구약의 율법을 준수하려고 했다. 로마 시대에 박물학자인
플리니우스와 2세기의 의사인 아레타이우스는 사람의 피가 간질 치료약 이었다고 말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원형 경기장의 놀이판에서 사악한 범죄자들의 생피를 게걸스럽게 취하여....(중략)....
자기들의 간질을 고치려고 가져가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시오"라고 말하면서,
그런 사람들과 기독교인들을 대조하여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인들은 동물의 피조차 식탁에 올리지
않는다....(중략)....기독교인들을 시험할 때에 그대들은 피가 가득 들어 있는 소시지를 그들에게 제공한다.
물론 그대들은 (그것이) 기독교인들에게 금지된 것임을 알고 있다."
여기서 이상한 괴리감을 느끼실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초대교회의 사람들은 어째서 할례는 거부하면서, 나머지 구약의 율법은 준수하려고 했는가?
다른 율법은 모두 지키면서, 할례 때문에 사도들간에 격렬한 다툼이 일어나 교회가 분열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교리논쟁이 아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은 #헬라파 기독교인들과 히브리파
기독교인들의 주도권을 가지고 교권다툼을 한 것이라 추측된다. 그렇지 않다면 할례는 거부하면서,
이방인들은 지키기 어려운 편협한 유대인의 다른 율법들을 지키는 모순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초대교회를 이룬 두 세력간의 주도권 다툼일 뿐이다.
적그리스도 작[출처] 안티바이블 그 -49, 헬라파와 히브리파|작성자 천리아허상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