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유교의 엄격한 형식주의는 예와 악을 중시했다. 우리나라 종묘에서는 제례악이 있고 각 시대별 향악이 맥을 이어 왔다. 조선시대 기층민중 광대가 출연하는 탈춤을 향유하고 후원한 계층은 양반이었다. 나는 어려서 받은 영향과 커서 관심 분야가 전통에 있다 보니 자연히 유교문화에 익숙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타고 나길 가창과 가무에 소질이 없어 여가 여흥에는 숙맥이다.
스스럼없는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가도 이차 자리 옮겨가길 머뭇거린다. 어쩌다 여자 동창생한테 손목을 잡히다시피 노래방에라도 가는 날이면 마렵지 않은 용변을 핑계대어 비상 탈출해 휑하니 집으로 일찍 돌아오고 말았다. 친구들은 내 체질을 잘 아는지라 다음부터는 붙잡아 볼 생각 아예 않는다. 장이 동석한 동료들과 회식 자리에서도 나는 눈치 보질 않고 때가 되면 자리를 떴다.
음주는 어느 정도 되나 가무가 전혀 되지 않는다. 이런 나는 동이족 유전인자 가운데 가무가 빠진 돌연변종이지 싶다. 연륜에 따라 세월이 흐르다 보니 가족의 울타리가 소중할 때가 있다. 아들 녀석만 키워 삭막하지만 두 녀석이 부모를 위해 거금 투자한 티켓으로 명성황후 오페라를 감상한 적 있다. 진주에 사는 여동생 내외가 창원 오라비를 찾아와 코믹 뮤지컬을 감상하기도 했다.
내가 운전을 하지 못해 출퇴근길은 동료가 운전하는 차에 얹혀 다닌다. 이렇게 신세만 지는 형편에 하루는 동료로부터 성산아트홀 초대권을 증여 받았다. 동료의 처는 도청민원실 자원봉사자로 열심히 활동하는 분이다. 창원시청에 주관하는 예술행사에도 적극 동참한다고 들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보다 권위 있는 국내외 문화공연 정보가 빨라 티켓 구하기 쉬웠던 모양이었다.
독일 알토 에센 발레단이 내한하여 성남 대구 울산 창원 네 개 도시를 돌며 공연했다. 음악에 문외한인 나는 록그룹 퀸이 어떤 이들인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퀸은 1971년 영국에서 결성된 탄탄한 정상급 밴드로 20년 가까이 활약한 록그룹이었다. 독일의 알토 에센 발레단의 공연은 퀸의 팝송과 발레가 절묘하게 만나 조화를 이룬 격정의 무대였다. 록그룹 배경영상까지 삼차원이었다.
무대 막이 오르자 선명한 유니온 잭 영상에서 록그룹 이름인 퀸을 문자로 그려냈다. 우리 부부가 앉은 자리는 성산아트홀 대극장 맨 첫 줄이었다. 도입부부터 경쾌한 록 음악에 맞추어 좌우 객석과 뒤쪽의 관중들은 무용수와 호응해 간간이 박수를 보내주었다. 맨살 배꼽을 드러낸 남녀무용수들은 균형 잡힌 몸매로 세련된 동작을 펼쳤다. 까치발 발레리나를 가까이서 보긴 처음이었다.
안무가는 무대 위 남녀 무용수들을 좌우대칭으로 배치했다. 너른 무대에 꽉 차게 등장한 여러 무용수들은 박진감 넘친 율동을 선사했다. 직업인으로써의 무용수들은 몸 자체가 악기였다. 배경화면에 록그룹의 열정적 영상이 비추어지는 사이 음악이 흐르고 무용수들은 립 싱커처럼 보였다. 갈비뼈와 이두박근이 드러난 남자무용수였다. 우아한 의상으로 아름답게 분장한 여자무용수였다.
2부 첫머리는 스무 명 남짓 앳된 발레리나의 우정출연으로 장식했다. 형형색색 티셔츠를 입은 우리나라 아가씨들이었다. 내가 워낙 발레에 문외한이라 그렇지 난해한 줄거리는 아니지 싶었다. 무대는 실내에서 해변으로 바뀌면서 다소 괴기스런 장면도 연출되었다. 후반부 대미는 무대를 꽉 차게 장식한 거대한 팔다리 조형물 앞에서 펼친 무용수 연기는 입체파 미술품을 감상하는 듯했다.
우리 부부가 앉은 자리는 맨 앞이었다. 웅장한 음향으로 무용수들 숨소리까지 감지할 수 없었지만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었다. 분장과 의상은 물론 표정까지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눈물은 거짓이 있어도 땀은 거짓이 없다고 했다. 연기 중간에도 그랬지만 연기 끝내고 고별인사를 위해 무대에 선 무용수들의 옷은 땀에 젖어 있었다. 막이 내릴 때까지 관중은 한참동안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09.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