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연등동벅수[麗水蓮燈洞-]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연등동에 있는 조선 후기 돌로 만든 장승.
개설
벅수는 나무나 돌에 사람의 얼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몸통에 이름을 새긴 장승이다. 장승의 기능은 마을 수호신이나 이정표, 가람 수호신, 벽사(辟邪) 등 다양하다. 여수 지역에 분포된 벅수에는 ‘남정중(南正重)’, ‘화정려(火正黎)’라는 명문이 있어 지역성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 한(漢)나라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역서(歷書)조에 ‘남정(南正)’과 ‘화정(火正)’은 관직명이고, ‘중(重)’과 ‘려(黎)’는 인명으로 남정과 화정이라는 관직을 ‘중’과 ‘려’라는 사람이 맡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화정은 불, 여름과 남쪽 바다를 지키는 신으로도 표현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토속 신앙과 결합되면서 나타난 변화로 보인다. 벅수가 서 있는 자리는 옛날 전라좌수영의 서문으로 통하는 주요 통로였다고 한다.
형태
여수 연등동 벅수는 서로 마주하고 있는 2기이다. 동쪽의 남성상에는 ‘남정중’, 서쪽의 여성상에는 ‘화정려’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도로 공사 때 하체가 일부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재질은 화강암이다. 남정중이 화정려보다 전체 길이와 둘레는 약간 크지만 머리길이는 화정려가 조금 길다. 남정중은 복두형 관모에 치켜진 눈썹, 달걀 모양의 눈, 길고 큰 자루병 코와 이가 드문드문 보이는 벌린 입, 양 갈래의 작고 뾰쪽한 턱수염이 있다. 화정려는 사방관형 관모에 올라간 눈썹, 길고 두툼한 귀, 길고 코볼이 넓은 매부리코, 왕방울 눈, 성긴 이가 보이는 벌린 입을 하고 있다. 머리·눈썹·콧수염·턱수염 등에 검은 칠을 한 흔적이 어렴풋이 보인다.
현황
여수 연등동 벅수는 다른 벅수와는 달리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명문이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화정려’ 뒷면에 ‘무신사월이십팔일오시립 화주□주사 김□승(戊申四月二十八日午時立 化主□主事 金□昇)’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로 미루어 김두하는 1788년(정조 12)에 세워졌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주사”라는 직위는 일제강점기 지방관리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당시 여수의 지주로 김한영의 동생 김한승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김한승은 1869년에 태어나 1907년에 여수군서리가 되었다. 비문을 쓰고 비석을 새기는 준비기간을 생각할 때 김한승이 주사일 때 이 일을 추진하고 1908년에 새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한승의 지역에서 영향력과 경제력을 감안할 때 비문에 보이는 “金□昇”은 “김한승”으로 보여진다. 김한승의 생몰기간 내에 도래하는 무신(戊申)은 1908년이 해당한다. 이로 미루어 연등동 벅수는 1908년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1990년 10월 10일 국가민속문화재 제22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여수 연등동 벅수는 옛 전라좌수영 서문으로부터 약 5리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점으로 보아 성문 수호와 읍락 비보(裨補)의 기능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얼굴의 비례에 비해 코가 크게 표현된 해안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조각의 특징이 나타나 있다. 이 벅수는 현대의 돌장승 제작자들이 정쪼기의 흐름을 공부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며, 원시 신앙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승정원일기』
『여수·여천향토지』(여수·여천향토지편찬위원회, 1982)
『여수시 문화재도록』(여수지역사회연구소, 2001)
엄길수, 「여수·여천 지역에 분포한 석장승 연구」(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4)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2024-05-10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