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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1호: 영조을유기로연·경현당수작연도병(英祖乙酉耆老宴·景賢堂受爵宴圖屛)
서울역사박물관 2007.10.24
<영조을유기로연·경현당수작연도병>에는 크게 두 개의 행사장면이 실려 있다. 첫 번째 장면에 해당하는 병풍의 제 2·3·4폭에는 을유년(영조 41, 1765) 8월 18일 영조가 왕세손을 데리고 기로소(耆老所)를 방문하여 기로소 내의 영수각(靈壽閣)에서 전배례(展拜禮)를 행하고 그 옆에 위치한 기영관(耆英館)에서 기로신들에게 선온(宣醞: 임금이 신하에게 궁중의 사온서에서 빚은 술을 내리던 일)한 행사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장면인 제5·6·7폭은 그 해 10월 11일 경희궁의 경현당(景賢堂)에서 영조(英祖)의 망팔(望八)을 기념하여 수작례(受爵禮)를 행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병풍에 2개의 장면을 그린 사례는 매우 드문데, 기로소에서 영조를 접견한 기로신(좌목에 적힌 유척기 등 8명)들이 임금과 함께 자리했던 기로연을 기념하고 그 뒤에 열린 수작연도 함께 경하하는 의미에서 두 장면을 하나의 병풍에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제1폭에는 영수각에서의 전배례와 기영관에서 선온한 일 등에 대해 이정보가 기록한 서문이 있고 제8폭에는 좌목이 적혀있다.
1765년 8월의 영수각 전배와 기영관 선온을 내용으로 하는 궁중기록화로 장서각 소장의 <친림선온도>와 <영수각송>이 있으나 둘 다 화첩이며 기영관 선온 장면만이 그려진데 반하여, 이 작품은 대폭인데다 1765년 8월의 영수각전배례와 기영관선온, 그리고 1765년 10월의 수작례가 모두 그려져 있어 주목된다. 아울러 그림 수준과 화법 등에서 18세기 궁중회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제1532호 : 조선효종영릉재실(朝鮮孝宗寧陵齋室) 여주 세종대왕유적관리소
제1533호 :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海東八道烽火山岳地圖) : 고려대학교
전국 팔도에 있는 봉수대를 표시한 지도이다. 상단에는 붉은색의 전서체로 제목이 쓰여 있고, 각 지역 별로 백·적·황·갈·녹·청색의 동그라미에 지명이 적혀 있다. 전국에 분포되어 있는 봉수대는 산봉우리 위에 촛불처럼 그려져 있는데, 압록강과 두만강의 국경지대 및 경상도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지방의 읍치와 도서지역을 비롯하여 전국을 휘두르고 있는 산맥과 산봉우리 그리고 하계망이 자세히 그려져서 봉수의 간선로를 일목요연하게 알아 볼 수 있다.
이 지도는 조선시대 봉수로를 보여준다는 역사적 가치 외에도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풍부한 회화성이 돋보인다. 산악 표현은 태세가 있는 회화적 필선을 사용하였으며 청록색 안료를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이 지도의 제작시기는 1652년(효종 3)에 황해도 강음(江陰)과 우봉(牛峰)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김천(金川)이 있고 1712년(숙종 38)에 건립된 백두산 정계비(定界碑)가 없는 것으로 보아 17세기 후반 무렵으로 추정된다. 2m에 달하는 지도의 규모에 봉수로의 상세한 표현과 뛰어난 회화성이 돋보이는 17세기 후반의지도로 고지도 분야뿐만 아니라 회화사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하겠다.
제1534호 : 서궐도안(西闕圖案) : 고려대학교
서궐(西闕)은 경복궁(北闕)의 서쪽에 있는 궁궐, 즉 경희궁(慶熙宮)을 의미한다. 1720년(광해군 12)에 영건된 경희궁의 원래 이름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1760년(영조 36)에 경희궁으로 개명하였다. <서궐도안>은 이 경희궁의 전경(全景)을 그린 그림으로, 국보 제249호로 지정된 <동궐도>와는 달리 채색이 가해지지 않은 밑그림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1829년 경희궁의 여러 전각이 화재로 소실되자 1830년 중건을 시작하여 1831년 완성하였는데, ·서궐영건도감의궤(西闕營建都監儀軌)·를 통해 경희궁 중건에 관한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다. 이 의궤와 <서궐도안>을 비교하면 부분적으로 차이가 발견되어 <서궐도안>은 중건 이전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서궐도안>은 수묵으로만 그리는 백묘(白描)의 계화(界畵) 양식으로 그린 것으로, 먹 아래에 는 밑그림이 남아 있는 부분이 있다. 산수 묘법과 나무를 그리는 수지법에서는 비수(肥瘦)가 있는 필치로 회화적 표현이 두드러진다. 건물은 자를 대고 윤곽선을 명료하게 긋고 있으며 각 건물의 지붕에 이름을 써 넣었다.
현재 대부분의 전각이 이건, 변용, 훼철되어 버린 경희궁의 옛 모습을 한눈에 살필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정밀하고 자세한 묘사로 복원의 토대가 되는 중요한 그림이다. 또한 작화 과정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는 밑그림이란 점에서도 주목된다.
제1535호 : 숙빈최씨소령원도(淑嬪崔氏昭寧園圖) : 한국학중앙연구원
제1536호 : 월중도(越中圖) : 한국학중앙연구원
유배지 영월(寧越)에 남겨진 단종(端宗)의 자취와 충신들의 절의가 깃든 장소를 8폭의 그림으로 제작한 화첩이다. 제1면은 단종의 왕릉인 장릉(莊陵)을 산도(山圖)의 형식으로 그린 것이고, 제 2면은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淸령浦)를 과감한 구도로 묘사한 일종의 실경산수화이다. 제 3면은 영월 객사의 관풍헌(觀風軒)을 계화(界畵) 형식으로 그렸으며, 제4면은 관풍헌 동남쪽에 위치한 자규루(子規樓)를 중앙에 그렸다. 제5면은 단종에 대해 절의를 지키며 숨진 사육신(死六臣)을 배향한 사당인 창절사(彰節社)를 가운데 배치하였고, 제6면은 단종의 시녀와 시종들이 순절한 낙화암(落花巖)을 산수화 형식으로 그렸다. 제7면은 영월읍 치소(治所)를 개화식 구도를 취한 회화식 지도의 형식으로 그렸으며, 제8면은 영월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각 면에는 오른편 윗부분을 위주로 화면에 등장하는 장소에 대한 간략한 기록을 적어 놓았다.
그림은 정교하게 그려졌으며 특히 밝은 색채를 많이 구사하여 화사한 인상을 준다. 매우 정교한 필치를 구사하여 경물을 정확하게 묘사하였으며 산악 표현과 나무 묘사에서는 진경산수 화풍의 여운이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그림의 화격이 높아서 어람용으로 추정된다. 제작시기는 <동궐도> 등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대략 19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제1537호 :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西北彼我兩界萬里一覽之圖) 국립중앙도서관
우리나라의 북부 지방과 만주지방을 그린 관방지도이다. 조선의 서북지역과 만주 일대를 묶어 피아지도를 만든 것은 대체로 영조때부터
이다. 지금 남아 있는 피아지도의 사본들은 복제된 시점이 서로 다를 수는 있으나, 대체로 영조대의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 지도 역시 그런 것들 중 하나이다. 만주 일대에 대한 지리정보는 ·성경지·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조선의 서북지대는 정상기의 동국지도가 관찬지도로 공인되기 이전의 정보들에 기초해 있다.
조선후기에 제작된 피아지도 중 가장 걸작에 속하는 지도이다. 북방 강역의 양강 일대를 그린 관방 지도로서 학술적인 가치가있으며 회화적으로도 매우 수준이 높다.
제1538호 :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 : 국립중앙박물관
제1539호 : 봉래유목(蓬萊遺墨) : 연세대학교
제1540호 : 청자표형주자(靑磁瓢形注子) : 호림박물관 : 2007.12.31 지정
고려시대(12세기)의 조형적 특징을 보이는 표주박 형태의 청자 주자(注子)이다. 표주박 형태의 병에 참외같은 골 주름 여덟 줄을 깎아내고, 물대는 둥글고 넓은 박 잎을 대롱처럼 말아 붙여 만들고 손잡이는 박 넝쿨을 꼬아 붙인 것 같이 만들었다. 뚜껑 역시 작은 박 잎을 엎어 놓은 형태처럼 만들었으며 밑바닥도 굽을 별도로 깎아내지 않아 마치 표주박의 밑둥을 연상되는 모습으로 만들었다. 청자의 몸통과 물대, 손잡이는 서로 균형을 이루면서 안정감을 보이고 있어 세련미를 더한다.
이 주자는 12세기의 전형적인 비색 청자 중 하나로, 각각의 구성요소들이 이상적으로 조화된 청자 조형의 표본적인 모델이다. 유약과 태토의 경우에도 약간 반투명하면서 깨끗한 담록색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담녹색 계통의 청자 가운데서도 가장 빼어난 유태의 상태를 보이고 있다. 고려시대 12세기의 표형주자를 대표하는 형태로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제1541호 : 분청사기상감모란유문병(粉靑沙器象嵌牡丹柳文甁) : 호림박물관
양감이 좋은 15세기의 전형적인 분청사기 형태에 특징적인 상감문양이 장식된 병이다. 어깨와 아랫도리에는 흰 선상감으로 연판문대를 돌리고, 그 사이 동체 중심에는 모란과 버드나무를 엇갈려 4곳에 배치하였다. 앞·뒷면에는 각기 모양이 다르게 모란을 큼직하게 장식하고 그 사이에는 늘어진 버드나무를 흰 선상감으로 도안화시켜 베풀었다. 특히 강하게 추상화된 매우 율동적인 모란문을 면상감으로 처리하고 검은 윤곽선을 돌려 대담하게 표현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약은 회록색을 띄고 광택이 좋으며 굽바닥에 모래를 받쳐 구웠다.
대담한 추상성을 보이는 문양의 창의성이 현대적 디자인 감각과 상통하는 놀라운 경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기형과 문양 모두 분청사기 특유의 미학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수작이다. 분청사기의 미학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며, 15세기 전반 경의 상감분청사기 전성기의 무르익은 감각을 창의적으로 구현한 점을 볼 수 있어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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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2호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2008.3.12
제1543호 :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권제9~10(詳校正本慈悲道場懺法 卷第九~十)
수덕사 성보박물관, 2008.3.12
이 책은 1316년(고려 충숙왕 3) 8월에 보현사 비구 석연이 주선하여 변산에서 개판된 불교 의식집이다. 『자비도량참법』은 양의 무제가 찬수한 뒤에 대양의 천감연간(502∼519)에 고승들이 번잡한 곳을 없애고 핵심이 되는 요지를 촬록하였으며 또 여러 경전에서 묘어를 선택하여 모았다. 세월이 지나는 사이에 본문에 착오와 와전이 생겨나자 원대에 이르러 내용을 대교(對校)하고 심정(審訂)하여 다시 정리하였으므로 상교정본이란 말을 붙이게 되어 그것이『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이다. 이『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은 일종의 참회문의 총서라고 할 만큼 여러 경전에 들어 있는 참회의 방법과 내용들을 일정한 체계로 엮어 낸 참법서이다.
본문에는 피휘 결획이 있어 고려본의 특징이 나타나 있고 권10말에는 간행사항과 간행에 참여한 사람들이 수록되어 있어 불교의식뿐만 아니라 불교사 및 서지학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제1544호 : 나주심향사건칠아미타여래좌상(羅州 尋香寺 乾漆 阿彌陀如來坐像)
이 불상은 고려 말 조선 초에 특히 많이 조성된 건칠불상 중 하나이며, 점토나 석고로 만든 원형을 제거한 탈활(脫活) 건칠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고려후기 불상의 특징인 이국적이면서도 단엄한 얼굴표정을 지니고 있으며, 왼쪽 어깨 위에 부채살처럼 흘러내린 세밀한 잔주름은 13세기 후반에 조성된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276년), 화성 봉림사 목조아미타불좌상(1362년 이전) 등에서도 확인되는 공통된 특징이다. 나주 지역에서는 이 불상 외에도 불회사와 죽림사 등 여말선초에 조성된 건칠불이 전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조형적 완성도가 가장 높다. 더욱이 이 불상은 현재 알려진 건칠불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작품 중 하나로 중요성을 지닌다.
제1545호 : 나주불회사건칠비로자나불좌상(羅州 佛會寺 乾漆 毘盧遮那佛坐像)
제1546호 : 구례천은사금동불감(求禮 泉隱寺 金銅佛龕)
불상을 모시기 위해 나무나 돌, 쇠 등을 깎아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작은 규모로 만든 공간을 불감(佛龕)이라 한다. 불감은 그 안에 모셔진 불상의 양식뿐만 아니라, 당시의 건축 양식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43.3㎝ 높이의 금동불감으로 정면 전체를 여닫이식 문으로 구성하여 예배나 의식 때만 열어서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좌우 문 안쪽면에 칼을 든 인왕상이 1구씩 돋을새김되어 있는데 정교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다. 정면 벽에는 중앙에 비로자나삼존상과 주위에 10대 제자상을 돋을새김하였다.
비로자나불상은 전형적인 8각의 연꽃무늬 대좌 위에 앉아 있다. 손은 양 손을 가슴에 올리고 왼손 검지손가락을 오른손이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당시의 비로자나불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손모양이다. 얼굴이나 신체는 단아하며 대좌는 비교적 정교한 편이어서 격조 높은 조각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좌우 벽에는 꽃무늬들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고, 천장에도 여러 무늬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어 화려하고 장엄한 부처님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입구 문을 열면 좌우에 금동불 2구가 모셔져 있는데, 위로 향한 연꽃무늬와 엎어놓은 연꽃무늬로만 구성된 고려말 조선초의 전형적인 대좌 위에 앉은 같은 수법의 불상이다. 흔히 나옹화상의 원불(願佛)로 알려져 있으며, 불감 뒷면에 불상은 신승, 불감은 김치, 박어산 등이 만들었고, 박씨 부부가 시주하였으며, 신음 등 네 승려가 참여하였다는 내용의 기록이 있어 흥미를 높여 주고 있다.
이 불감은 삼신불과 삼세불의 도상이 융합되어 도상적으로 매우 의미 있을 뿐만 아니라 여말선초의 조각, 회화, 금속공예, 건축양식, 문양 등을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되어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9호에서 2008년 3월 보물로 승격지정되었다.
제1547호 : 해남대흥사금동관음보살좌상(海南 大興寺 金銅觀音菩薩坐像)
이 상은 윤왕좌(輪王坐)의 보살상으로 금동불로는 규모가 비교적 큰 편이다. 보살상의 세부 표현과 양식은 전반적으로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계승하고 있으나, 길죽하면서도 부은 듯한 얼굴모습, 유두를 두드러지게 표현한 점, 몸 전면에 영락이 표현되지 않은 점, 몸을 감고 있는 천의자락의 선이 다소 경직되게 표현된 점 등은 조선전기의 특징으로 여겨진다.
이 보살상은 조선 전반기의 금동상으로서 규모가 큰 편이고 보관 등에 다소 파손된 부분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원래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이 크기가 큰 윤왕좌의 보살상은 조선 전기 보살상 중에서는 그 예가 드물며, 신체의 균형이 좋으며 자연스럽게 처리된 옷 주름 등 조각기법이 매우 우수한 금동보살상이다.
제1548호 : 구례화엄사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求禮 華嚴寺 木造毘盧遮那三身佛坐像)
화엄사 대웅전에 모셔진 삼존불은 화엄사상의 삼신불인 비로자나, 노사나, 석가불을 표현한 것인데, 도상면에서 법신, 보신, 화신(응신)을 나타내는 매우 귀중한 예이다. 이러한 삼신불은 불화에서는 많이 보이지만 조각으로는 드문 편이다. 특히 보관을 쓴 노사나불이 조각으로 남아 있는 이른 예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삼신불상은 크기가 거대하고 단순하고 깊이의 강약이 느껴지는 굵직한 옷주름의 표현은 한층 상의 중후함을 더해 주고 있다. 특히 『화엄사사적기』(1697년 간행)에 의하면 1636년 조각승 청헌, 영이, 인균, 응원 등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약했던 17세기의 대표적인 승려장인들이 공동으로 제작한 상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화엄사 대웅전은 삼신불상은 조성연대를 짐작할 수 있고, 도상이나 양식면에서 17세기의 기준이 되는 불상으로 높은 의의가 있는 상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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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9호 : 순천송광사목조석가여래삼존상및소조16나한상일괄(順天 松廣寺 木造釋迦
如來三尊像 및 塑造十六羅漢像 一括)
송광사 응진당에는 석가여래삼존상을 비롯하여, 아난·가섭존자 그리고 16나한, 제석천, 범천, 인왕, 사자를 모두를 갖춘 27구의 상들이 봉안되어 있다. 미륵보살입상을 제외한 26구의 상들은 17세기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응원(應元)을 비롯한 조각승들이 조성한 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자상(使者像) 대좌의 명문을 통해서 1624년(인조 2)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존상은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로 구성된 수기삼존형식으로 조선시대 삼세불상의 대표적인 도상이다. 본존상은 수종사 불감에서 발견된 15세기 금동불좌상과 같은 조선전기의 조각전통을 계승하면서 얼굴표정이 온화하고 신체가 부드럽고 양감이 강조되었으며,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어 17세기 전반기 조각으로서는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십육나한상들은 목심소조(木心塑造)로 제작되었는데, 지금까지 전해오는 고려와 조선전기의 16나한상 조각이 온전하게 전해지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이 송광사 16나한상들은 16존이 모두 갖춰져 있어 그 가치가 더욱 높다.
제1550호 : 여수흥국사목조석가여래삼존상(麗水 興國寺 木造釋迦如來三尊像)
이 삼존상은 흥국사 대웅전의 주존불로 모셔져 있는데, 협시 보살상의 보관 뒷면에는 각각 자씨보살대명숭정(慈氏菩薩大明崇禎), 제화보살대명숭정(提花菩薩大明崇禎)이라는 명문이 타출기법으로 새겨져 있다. 따라서 이 삼존상이 수기삼존상(授記三尊像)으로 17세기 전반의 숭정연간(1628~1644)에 조성된 것으로 알 수 있다.
이 삼존상은 조각수법이 매우 뛰어나서 양감이 잘 표현되었으며, 손과 발의 표정이 잘 살아있고, 옷 주름이나 장신구의 표현도 유려하다. 불상은 17세기 조각의 단순함을 잘 반영하고 있고, 두 보살상은 자연스러운 자세와 장대한 신체비례를 보여준다. 17세기 전반의 상으로 이와 같은 크기의 보살상을 동반한 삼존불이 드물고, 도상과 양식면에서도 조선후기 불교조각을 대표하는 상으로 평가된다.
제1551호 : 진천영수사영산회괘불탱(鎭川 靈水寺 靈山會掛佛幀)
영수사 괘불은 『묘법연화경』에 의거하여 석가모니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청문중을 중심으로 그린 영산회상도로서, 1653년 명옥(明玉)을 비롯한 4명의 승려화원들이 그렸다. 석가모니의 대좌 앞에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사리불을 비롯하여 좌우에 시립한 많은 권속의 묘사는 조선후기 영산회상도 중에서도 영산회상을 가장 장엄하고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특히 밝은 채색과 유려한 필치, 다양하면서도 능숙한 인물묘사가 돋보인다.
영수사 괘불은 제작시기가 1653년으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다는 시기성, 사리불이 청법자로 등장하는 가장 빠른 괘불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비록 부분적으로 후대에 수리한 흔적이 보이지만 17세기 영산회상도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제1552호 : 해남대흥사영산회괘불탱(海南 大興寺 靈山會掛佛幀)
색민(色旻)이 으뜸화원을 맡아 조성한 괘불로서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비롯하여 왼쪽에는 여의를 든 문수보살을, 오른쪽에는 연꽃을 든 보현보살을, 그리고 석가모니불의 두광 좌우로 관음보살과 아미타불을 배치하여 오존도(五尊圖) 형식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도상적 특징은 내소사 괘불을 비롯하여 안정사 괘불, 청곡사 괘불, 운흥사 괘불, 다보사 괘불 등 18세기 호남지역에서 성행한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에 근거한 도상을 간략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괘불은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구도와 다소 살찐 듯한 인물표현, 다양하면서도 화려한 문양 등은 색민이 스승인 의겸(義謙)의 화풍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선행 도상과 화풍을 잘 계승하고 있는 귀중한 작품이자 색민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제1553호 : 순천선암사서부도암감로왕도(順天 仙巖寺 西浮屠庵 甘露王圖)
선암사 감로왕도는 1736년 의겸(義謙)이 으뜸화원을 맡아 그린 작품으로 화기에 “서부도전하단도(西浮圖殿下壇圖)”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서부도전에 봉안하기 위하여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상단에는 칠여래와 관음, 지장보살, 인로왕보살, 중단에는 한 쌍의 아귀와 제단, 하단에는 육도 제상을 그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감로왕도에서 주목되는 점은 상단에 그려진 칠여래가 중단과 하단에 비해 비중 있게 그려진 점인데, 이는 수륙재(水陸齋)를 통하여 중생들을 영가천도(靈駕遷度)하는 감로도의 기능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된 것으로 여겨진다.
황색 바탕위에 녹색과 적색을 주조로 한 차분한 색조와 안정된 필치, 차분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육도제상의 장면은 화승 의겸의 역량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판단된다.
제1554호 : 순천선암사33조사도(順天 仙巖寺 三十三祖師圖)
이 작품은 『조당집(祖堂集)』에 근거하여 가섭존자부터 중국의 육조 혜능 스님까지 33명의 조사를 11폭으로 나누어 그린 선종 33조사도로서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33조사도이다. 원래 총 11폭으로 조성되었으나 현재는 7폭만이 남아 있는데, 1753년에 은기(隱奇)를 비롯한 5명의 승려화원이 그린 것으로 18세기 중반 불화 속에 수묵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던 의겸의 화풍을 계승하고 있다. 여기에 묘사된 33조사의 도상은 중국 명대의 화보(畵譜)인 『삼재도회(三才圖會)』, 『홍씨선불기종(洪氏仙佛奇蹤)』을 모본으로 하고 있어 조선후기 화보의 전래와 불화 도상 간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도 중요하다.
현존하는 유일한 33선종조사도라는 희귀성과 함께 도상의 구성방식과 정취한 필치 등에서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다.
제1555호 : 담양 용흥사 동종(潭陽 龍興寺 銅鍾)
높이가 102㎝인 이 종은 조선시대 주종장(鑄鍾匠) 중 김애립(金愛立), 김성원(金成元) 등과 함께 사장계(私匠系)를 대표하는 김용암(金龍岩)이 주가 되어 1644년에 주성한 종으로, 규모도 비교적 클 뿐만 아니라 비례감과 조형성이 뛰어나다. 또한 종 고리로 쌍룡(雙龍) 대신 활력 넘치는 사룡(四龍)을 채용하여 특이함을 보이고, 종신에 시문된 각종 문양의 표현에서도 세련미가 넘쳐 난다
따라서 이 종은 다른 조선 후기 범종에 비해 뛰어난 조형미와 문양 표현 등의 주조기술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제1556호 : 여수 흥국사 동종(麗水 興國寺 銅鍾)
조선시대 주종장 가운데 김용암(金龍岩)·김성원(金成元) 등과 더불어 사장계(私匠系)를 대표하는 김애립(金愛立)이 순천 동리산의 대흥사 종으로 1665년에 주성하였으며, 높이가 121㎝나 되는 대종에 해당한다. 종의 외형은 상부가 좁고 아래로 가면서 약간씩 벌어져 마치 포탄과 같은 모습을 하였다. 간단하면서도 힘이 있는 쌍룡(雙龍)을 종 고리로 삼고 천판에는 큼직한 연화문대를 돌렸다. 천판과 만나는 종의 어깨부분에는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이 둘러져 있으며, 몸체에는 연곽대와 보살상 및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전패(殿牌)가 마련되어 있다. 종신에 새겨진 문양은 전반적으로 섬세하고 화려하며 잘 정돈된 느낌을 보여준다. 이 종은 사인비구와 버금가는 기술적 역량을 지녔던 김애립 범종의 특징을 잘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인 동시에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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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7호 : 고흥 능가사 동종(高興 楞伽寺 銅鍾)
현존하는 김애립(金愛立)의 작품 가운데 가장 뒤늦은 시기인 1698년에 제작된 작품이지만,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종신의 전체적인 외형은 상부가 좁고 아래로 가면서 점차 넓게 벌어져 여수 흥국사 동종과 유사하며, 용뉴는 쌍룡(雙龍)으로 구성되었다. 연곽대와 연곽대 사이에는 4구의 보살입상이 유려한 모습으로 부조되었고, 종신 한쪽에는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전패(殿牌)가 마련되었다.
이 종은 용뉴의 웅건한 표현과 단정한 보살입상, 세부 문양의 정교함 등 김애립 범종의 완숙한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17세기를 대표하는 범종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수작이다.
제1558호 : 순천 선암사 동종(順天 仙巖寺 銅鍾)
높이가 120㎝에 이르는 비교적 대형 작품에 속하는 이 종은 종신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1700년(강희 39) 조계산 선암사 대종으로 800근의 중량을 들여 개주(改鑄)한 것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이 때 새로이 주조된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김상립(金尙立)의 아들 김수원(金守元), 도편수(都片手) 김성원(金成元), 부편수(副片手) 김효건(金孝建), 김성원의 아우 김섬태(金暹泰) 등 18세기에 활동했던 김상립과 그의 아들 등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어 당시 김상립을 중심으로 한 사장계(私匠系)의 활동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첫 번째 작품으로 의미가 깊다. 이 종은 종의 형태가 조선후기의 전형을 이루고 있음은 물론, 활기찬 쌍룡뉴와 유곽대, 보살상과 왕실 안녕을 기원하는 문구가 담겨 있는 전패 등 각 부의 문양이 세련되는 등 전체적으로 조형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제1559호 :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紺紙銀泥大方廣佛華嚴經)
고려 충숙왕(忠肅王) 복위(復位) 5년(1336)에 감색의 종이에 은니로 쓴 사경으로, 동진(東晋)의 불발타라(佛跋陀羅)가 한역한 대방광불화엄경 60권본인 진본(晋本) 권 28·29·38과 당나라 실차난타가 한역한 80권본인 주본(周本) 권24·53·56·60 등으로 모두 7권 7첩이다.
권60의 권말에 있는 사성기(寫成記)에 따르면 경주 기림사 주지 선지(善之)가 전 밀직부사(密直副使) 상호군(上護軍) 임서(任瑞)와 지직운산(知識雲山)이 함께 발원하였으며, 한역된 진본·주본·정원본(晋本·周本·貞元本)의 삼본 화엄경 180권을 모두 필사한 것 가운데 7권 7첩임을 알 수 있다.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사경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제1560호 : 도성도(都城圖)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규장각 소장 <도성도>는 한양의 전경(全景)을 회화식 지도로 표현한 작품으로, 목멱산(남산)을 위쪽 중심에 두고 삼각산과 도봉산을 아래쪽에 넓게 펼쳐둔 채 도성의 전모(全貌)를 원형구도로 담고 있다. 지도의 위쪽이 남쪽인 이러한 구성은 다른 ‘도성도’와 구별되는 특성인데, 남쪽을 바라보며 정사를 보는 왕의 시각에 맞추어 그린 것으로 어람용으로 추정된다. 구성, 필법, 준법, 수지법, 채색 등 일반적인 산수화에서 사용되는 모든 기법을 충실하게 구사하면서 회화적인 표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작품으로 18세기 유행한 정선(鄭敾, 1676-1759)의 진경산수화풍을 따르고 있으며 회화성이 탁월하다. 종묘 오른쪽에 정조대의 호위군대로 1785년에 설치되어 1802년 폐지된 장용영(壯勇營)이 보여 이 작품의 제작시기 또한 그 사이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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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한민국 보물 52 (제1531호 - 제1560호) |작성자 김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