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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개회예배 설교
은혜로운 솔로몬의 판결
왕상3:23~28
금번정기 한성노회는 아주 중요한 성노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초대교회 때 예루살렘 총회에서도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 가정에서 복음을 전한 것이 큰 문제가 되어서 총회를 하였으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하여 더 성숙한 교회로 성장한 것처럼 우리 노회도 이번 진통으로 하여금 더욱 성숙하고 성장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노회가 성숙한 노회가 되려고 하면 하나님의 바른 뜻으로 노회의 결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은혜로운 솔로몬의 재판과 같이 우리 한성노회도
열왕기상서 3:23~28절을 본문으로 삼아 은혜로운 결의가 되어지길 원하여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재판에 앞서 일천번제를 드린 후 솔로몬의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솔로몬에게 말했습니다. ‘네게 무엇을 줄까, 너는 구하라’ 그러자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를 주시어 하나님의 백성을 지혜로 다스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것은 유명해 지거나 부요해지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진리를 바르게 깨닫고, 순종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백성들이 순종하도록 다스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지혜를 받고난 후 첫 사건으로 기록된 것이 한 아이를 두고 두 여인이 서로 자신의 아들이라고 다툰 사건입니다. 두 여인은 서로가 죽은 아이는 네 아이고 산 아이가 내 아이라고 주장하여 판결이 되지 않아 솔로몬은 산 아이를 반으로 나누려고 하자 친 어머니는 자기의 아들을 뺏기더라도 살리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헤아려 슬기롭게 재판하였습니다. 그 사건을 들어
은혜로운 솔로몬의 재판이라는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누고자 합니다.
첫째 : 재판을 받은 아이와 같은 솔로몬
솔로몬의 재판 사건은 노회원 모두가 잘 알고 있으리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재판을 통해 두 여인의 인생을 관심이 있게 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명 재판을 바르게 보기 위해서 두 여인의 인생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솔로몬 왕의 재판을 받은 두 여인의 직업은 창기였습니다. 그들은 한 집, 한 방에서 같이 생활했습니다. 두 여인들은 삼일 간격으로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사정이 똑같으니 서로 이해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이 행복하고 만족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었기에 죄의식을 가지고, 언제든지 심판을 받을 인생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직업 때문이었으며,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아들들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아이의 아버지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모성애를 느끼게 할지는 몰라도 마음 한 곳에는 늘 죄의식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창기는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창기들이 아들을 낳아서 기른다는 것은 그 육체는 살았다고 하나 실상은 영혼이 죽은 인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신 22:21) 그 처녀를 그의 아버지 집 문에서 끌어내고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 집에서 창기의 행동을 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행하였음이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서 악을 제할지니라
율법에 비춰 보았을 때 두 여인은 죽은 목숨에 불과합니다. 솔로몬이 그런 여인들에 대해 어떻게 재판할 것인지, 그리고 살아있는 아이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이 재판은 솔로몬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기 시작하는 시발점에 발생한 것으로 매우 중요한 재판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율법대로 다스린다면, 그 여인들과 산 아이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이 그 재판을 할 수 있는 재판관으로서 자격이 있을까요? 정의로운 법으로 재판을 해야 할 재판관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한다면 재판할 자격이 없어집니다. 재판관은 불의하지 않고 죄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솔로몬과 두 여인은 죄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왕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본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의 부모님인 다윗과 밧세바의 범죄를 인해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나단과 솔로몬이 다윗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재판을 받을 두 여인과 다윗의 아내 밧세바나 모두 같은 죄인입니다. 산 아이나 솔로몬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죄인입니다.
다윗이나 밧세바는 모세의 율법으로 판단한다면, 그들은 모두 맞아 죽을 죄인일 따름입니다.
신22:22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24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안에 있으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다윗과 밧세바는 율법에 따라 돌에 맞아 죽어야할 죄인들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다윗과 밧세바의 범죄의 결과 태어났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재판하는 두 여인의 아들처럼 죄악의 결과로 태어났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제 자신을 볼 때 부족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노회장에 대하여 부족한 부분을 말씀하신 분이 있는데 그 분들은 저를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제대로 알았다고 하면 더 심하게 말했을 것입니다.
저는 형편없는 사람입니다. 바울도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볼 때 죄인의 괴수라고 하였는데 제자신이 어떠하겠습니까?
한 번은 60대 할머니가 우리 교회를 나왔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몇 번 나오더니만 악수를 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부족해서 악수를 못합니다. 그래도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낳도록 회춘이 된 것입니다. 청년과 같은 기력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37년 후에 사라가 죽고 난 후에 그두라를 후처를 얻었습니다. 남자는 나이 137세가 되어도 힘만 있으면 결혼을 하구나 생각할 때 나는 60대는 청춘이니 조심해야겠다. 해서 악수를 못해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의 남녀의 문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잠언서 기자도 인생은 남녀의 문제입니다.
(잠 30:18-20) 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19) 곧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 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 (20) 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의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남녀의 문제에 아무도 자신할 수 없습니다.
좌우에 날선 검과 같아서 우리의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살아 있는 말씀 앞에서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이성문제에 대하여 자신만만합니까?
다윗이 한순간 범죄한 원인은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지 않아 범죄한 것입니다. 다윗은 회개할 때 내게서 성령을 거두어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배운 대로 한시적인 유기로 인해서 한 순간 단 몇 분 안에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주 떠나가시면 자기의 생명이 헛되기 때문에 성령만은 거두지 말라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이성 문제 자신이 있습니까? 주님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끌고 온 바리새인들에게 향하여 죄 없는 자들이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할 때 어른으로부터 젊은이들이 물러갔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자 합니까? 아니면 의롭게 살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여 정죄를 한다고 하면 바리새인들보다 더 의롭지 못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연약하여 늘 넘어지기 쉬우니 근신하고 서로가 붙들어 주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노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 : 그 사건을 재판할 이유
산 아이를 두고 두 여인이 서로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왕이 재판해야할만큼 중요한 일 같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쟁에 나가면 수십만 병사들이 죽고 아사왕은 구스의 백만 군사를 진멸하였습니다. 그런 일에 비교하면 창기의 아들을 두고 친모를 가리기 위해 재판을 한다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고 중요한 일 같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 사건을 사소하게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매우 중요한 재판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한 치도 소홀함이 없이 재판을 진행하여야할 이유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재판을 해야 할 중요한 이유는 창기의 아들이라도 이스라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출신신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한 생명이 천하보다 더 귀하기 때문에 그 재판을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또 다른 재판을 해야 할 이유는 산 아이를 두고 재판을 하는 것은 왕에게 재판을 받기까지 절차를 밟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지방법원을 거치지 않고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받은 전례는 없습니다. 지방에서 고등법원, 고등법원에서 대법원으로 가는 절차를 밟는 것처럼 솔로몬 왕에게 재판을 받기까지 절차가 있었을 것입니다.
먼저 십부장에게 가서 재판을 못하니 오십부장, 오십부장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백부장, 천부장 그리고 대제사장의 재판에서 해결하지 못한 것을 솔로몬 왕이 재판을 하게 되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그 아이의 재판의 문제로 분명 둘 중에 한 사람은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 심지어는 대제사장까지 희롱하는 것입니다. 그 결국은 이스라엘 을 통치하는 왕까지 희롱하는 일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모든 정치와 법을 희롱하는 것입니다. 그 재판을 솔로몬이 반드시 진실을 규명하고 재판을 해야 할 사명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재판을 한 것입니다.
이 사건의 전말을 간략하게 말씀을 드리면 두 여인은 삼일 간격으로 각자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들은 엄마의 마음으로 아들을 사랑하고 귀중하게 길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한 여인이 자는 도중에 아이를 깔아 누워 아이가 깔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자다 말고 일어나 그 사실을 안 뒤 상대방의 산 아이와 자기의 죽은 아이를 바꾸었습니다. 상대 여인은 그런 줄도 모르고 자고 일어나 보니 자기 아이가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죽은 아이를 자세히 보니 자기의 아들이 아닌 것입니다. 그 시비를 재판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 노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것이 좋다고 잘못된 것을 덮어나가고 은혜로 한다고 해서 여러 가지 문제를 묵인한다는 것은 직무유기가 되는 것입니다.
노회는 교회를 보호하고 지교회의 사역하는 목사님을 보호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이번 성노회에 목회자와 지교회를 보호하고 진리를 세우기 위해서 솔로몬과 같은 은혜로운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셋째 : 진실을 밝힌 재판
재판을 바르게 하려고 하면 사실과 진실을 분별해야 합니다. 사실을 모르고 재판을 할 수 없습니다.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데 그 사건을 보고 진실히 가려내야 합니다.
두 여인은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가지고 산아이가 서로 자기의 아들이라고 논쟁하였습니다.
솔로몬은 그 율법으로 재판을 내렸습니다. 솔로몬은 율법에 따라 창기의 아들은 죽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두 여인에게 똑같이 나누어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세상 기준으로 합당한 재판으로 보기 힘듭니다. 대한민국 법원에서 살아있는 사람을 칼로 잘라 나눠 가지라고 하면 방송과 신문에 대서필로 보도 될 것입니다. 이것은 재판이 아니라 살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산 아이도 율법에 따르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 자신이 일천 번 죽어야 하는 것처럼 그 산 아이도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천 번제라는 것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솔로몬 자신이 완전히 죽어야 할 죄인이라는 고백입니다. 성경에서 천이나 만은 만수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고 하는 것은 실재 사울이 백만명을 죽이고 다윗이 일억 명을 죽였다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모두 물리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천 번제도 율법 앞에서 완전히 죽어야할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판결문은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율법에 따라보았을 때, 우리는 모두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 영적 판결문 앞에 산 아이의 친모는 모성의 본능으로 아이를 살려 달라고 자비를 구합니다. 죽게 된 아들을 두고 차마 보지 못하여 제발 아이를 죽이지만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어머니의 심정은 모든 죄와 허물을 뒤집어쓴다 해도 아이를 살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여인은 내 것도 되지 말게 하고 네 것도 되지 말게 하옵소서! 왕의 현명한 판단으로 아이를 반으로 나누어 달라고 했습니다.
(왕상 3:26) 그 산 아들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청하건대 내 주여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다른 여자는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이 정도 되면 우리는 누가 아이의 친모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를 살리려고 하는 여인이 친모이고, 죽이라고 하는 여인은 가짜입니다. 혹자는 이 재판을 모성의 심리에 의한 것으로만 판단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율법으로 재판한 것입니다. 율법으로 재판하니 모성의 심리, 모성애가 드러난 것입니다. 이 사건을 심리적으로 재판한 것이라고 여기면 성경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심리적인 재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국 송나라에 계만영이라는 사람이 쓴 당음비사에 나옵니다. 그 내용은 형과 동생이 함께 살고 있는데 형은 아들을 낳지 못하고 동생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로 인해 아버지의 재산을 동생이 상속받게 되어 형이 동생의 아들을 자기의 친아들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동생은 자기의 아들을 형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하니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아들이 동생의 아들이라고 증거 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재판관은 아들을 세우고 아들 양쪽에 어머니라고 하는 자들을 서게 하고 아들의 손을 잡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이라고 하는 사람은 힘껏 잡아당겨서 아들을 차지한 사람이 진짜 엄마라고 재판을 내렸습니다. 친 엄마는 아들이 찢겨질까봐 잡아당기지 못합니다. 이것은 모성의 심리로 재판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친 엄마가 누구인지 재판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솔로몬의 재판이 이런 정도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솔로몬의 재판에 관한 기록된 내용이 성경 말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재판은 하나님의 지혜인 율법을 시행하는 재판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 율법으로 재판하여 복음이 아니면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계시한 재판입니다. 이 재판, 이 사건이 하나님이 말씀으로서 성경이요 하나님의 재판으로서 진실한 재판 진리의 재판이라고 믿습니다.
솔로몬의 내린 그 칼날이 산 아이의 머리에 서게 될 때 이삭의 목을 치려는 칼과 같고, 자신의 머리에 내리칠 칼로 여긴 것입니다. 자신도 창기의 아들과 같기 때문에 하나님의 칼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 칼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에게 내리는 칼이라는 것을 성령으로 깨닫게 됨으로 말미암아 솔로몬 왕은 하나님의 지혜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림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다 죽어야 합니다. 율법으로 죽어야 할 것을 그 재판을 통하여 온 천하에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할 때 산 어머니가 그 아들을 살리려고 하는 것을 보고 산아이의 어머니를 분별하여 주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지혜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영적으로 모두가 다 죽어야 할 죄인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을 통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다스리고 그 앞에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것과 같이 여기고 그 백성들이 복종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는 지옥에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고는 바르게 재판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할 죄인이다, 솔로몬과 같이 일천 번 죽어도 마땅한 죄인이라고 고백할 때 성령의 다스림을 받고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아 죽을 영혼이 살아나는 은혜를 누릴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솔로몬의 재판의 말씀을 들은 것처럼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판단하여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때 솔로몬의 시대와 같이 평강의 시대를 누린 것처럼 한성노회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노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우리 한성 노회가 한국에서 가장 복음적이고 또한 성경에 깊은 비밀을 주신 것을 믿습니다. 오늘 말씀만 해도 하나님께서 노회원들을 사랑해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믿습니다.
넷째 : 살리려고 하는 어머니
엄마가 자기의 태로 낳은 아들이 솔로몬 왕이 재판대로 칼날에 반 토막 날 것을 어떻게 보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자신이 대신 죽어 아들을 살리고 싶은 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내가 아이를 대신 죽어도 좋으니 아이를 살려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친모를 판단하여 산 아이를 돌려주게 하였습니다.
그 어머니의 마음과 솔로몬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나도 저 아이처럼 죽어야 할 아이인데 하나님께서 살려주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가르쳐 준 기도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용서하여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하는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마음을 상징한 것입니다.
아이가 살아있을 때에는 서로가 각자의 어머니 역할을 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죽고 난 다음에는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가 갈렸습니다. 친 엄마는 내가 죽어도 아이를 살려야 하겠다는 그런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내가 죽어도 어머니의 일을 다 할 때 친 어머니로서 아이도 살고 엄마도 살게 된 것입니다. 이 재판에서 우리 주님의 심정을 이 어머니의 심정으로 예언한 것입니다. 주님은 죄인을 위해서 대신 죽어주시고 구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친모는 이 아이를 제발 살려만 주시고 저 엄마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아니면 네 것도 되지 말고 내 것도 되지 말고 반으로 나누라고 하겠습니까? 이 재판이 이 정도 되었다고 하면 그 참관한 자들이 모두가 다 판단을 내렸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판단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판단하면서 지금 노회를 보고 어떻게 판단을 내리실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한 노회가 반 토막이 되어 분노회를 하기를 원하십니까? 분노회가 되는 것은 주님의 몸이 반으로 쪼개지는 것으로 차마 보지 못하여 지금까지 참아온 것에 대하여 함께 동참해야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재판이 나기 전에는 사실을 서로 주장하여 어떤 것이 진실인지 분별을 못하였다고 하면 말씀을 듣고 판결이 났다고 생각하면 중간 입장에서 서겠습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한성노회를 분노회가 되든지 말든지 상관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섬기는 교회는 지교회입니다. 지교회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교회를 나누기를 원하십니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회를 지키고 보호할 한성노회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한성노회를 사랑한다면 어머니처럼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경우가 있어도 노회를 나눌 수 없는 어머니의 마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비유를 든다고 하면 리브가의 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에게 축복을 주기 위해서 저주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저주는 내가 받고 축복은 아들이 받고, 죽더라도 내가 죽고 너는 복을 받고 살라던 그 어미의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창 27:2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13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죄인들을 향하여 기도하기를,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솔로몬은 왕으로 권세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으로 그 아이를 살려준 것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율법으로 다 죽어야 하지만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슴에 품고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동하여 두려워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왕상 3:28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솔로몬의 재판을 받은 친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 모두도 어머니의 심정으로 노회가 하나가 되도록 품어야 합니다. 노회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 솔로몬과 같이 은혜로운 판단을 받은 것처럼 산 아이를 위해 죽고자 하는 심정으로 주님의 몸이신 노회를 하나로 이루시길 바랍니다.
매듭짓는 말씀
어머니는 내가 저주를 받아서라도 교회와 가정을 축복받게 하는 리브가의 심정이어야 합니다. 내가 행복하고 내가 즐거울 때도 어머니이지만, 내가 죽게 되더라도 아이를 살리려는 어머니가 우리노회에서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하면 솔로몬의 재판을 받아 진실한 어머니의 역할을 하시기 바랍니다.
솔로몬의 마음을 산 아이의 어머니 마음을 같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 마음을 산아이의 엄마의 마음을 통하여 설명하였습니다.
(마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저 병아리를 품는 암탉은 하나님의 창조한 본능으로 병아리를 품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하면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본성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받았습니다. 그 본성, 그 인격으로 노회를 품지 못한다고 하면 미물에 닭보다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은혜로운 재판을 받았으니 우리가 섬기는 교회에서나 노회에서 어머니의 역할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에서도 바울처럼 해산의 수고를 할 때 우리 한성노회가 더욱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여 새 생명을 풍성하게 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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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멘~~노회장님의 말씀에 언제나 은혜를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
박목사님의 설교는 성령의 조망 그리고 사무치는 열정감 사랑으로 우리 시대의 탁월한 말씀의 선지자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지연웅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