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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만의 수학여행
-18세 시절의 추억, 경주를 찾아서-
창덕여고 졸업한지 45주년이라고 동기회에서 기념추억을 하기위한 여행이 국내외로 기획되었다. 일단은 미국 엘에이 쪽 동기들의 열화와 같은 관심으로 준비되고 있는 미국 서부여행 일정과 기념파티가 작년부터 짜여 지고 한국에서 떠나는 참석인원을 독려하던 차에 세기적 불황 때문인지 여차저차 참가인원이 다소 많지가 않음을 아쉬워하게 되었다.
또한 나도 어려운 형편을 무릅쓰고 갈 수 있는 처지가 안 되기에 불참하게 되니 면목은 없지만 가고 싶은데 갈 수 없는 그 사정도 이해하여 주기 바랄뿐이다. 가서 만나고 싶은 친구들 있지만 건강하게 살아있으면 언젠가 또 해후 할 날이 있을 거라 여기고 아쉬움을 접고 있다.
그래서 우리 국내의 동기들 행사로 이번 여름 6월 정기모임을 국내 일박여행으로 정했고 경주를 택했는데 초여름 夏至의 더위는 가뭄과 맞물려 뜨거운 날의 연속이었던 이즈음의 기온에 어느 정도는 인내를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마침 저 밑 제주도 아래로 부터 불어오는 태풍의 간접영향인지 이글거리는 태양 볕은 별로 없었고 구름이 낀 하늘이 바람 따라 우리가 가는 하늘을 적당히 가려주고 그리 힘들게 하지는 않았다.
하나투어의 진행으로 압구정동에서 시작한 29명의 18회 동기들의 고교졸업 45주년 국내여행을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오게 되었고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회장 총무를 비롯하여 임원진들의 여러 가지 아낌없는 수고와 배려가 있었음을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이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하기 위해서 서로서로 자발적인 봉사와 기부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친구들의 이런 모습에서 더욱 더 앞으로의 여생에 동창회가 갖는 의미를 밝게 해주었다.
또한 부산에 거주하는 박순자는 경주로 와서 합류하였는데 버스에서 이런 좋은 글을 프린트로 나눠 주었고 아주 마음에 와 닿는 글이라 여기에 옮겨 본다.
- 지금 하십시오. ―
지금 시작 하십시오!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루는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안 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곁에 있지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거든 웃어주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는 피고 가슴이 설레일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너무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부르십시오.
과거는 지나가고 미래는 신들의 개념
현재만이 당신의 것입니다.
- 찰스 스펄전 - (2012년 6월 20일 창덕여고 18회 경주 나들이 *박순자*)
경주의 고적답사는 우리가 고교 2년 때 단체 수학여행 온 곳이었는데 그 때의 같은 반 친구들과 45년의 세월이 흐르고 다시 찾아오니 편안함과 순수함으로 감회가 어렸다. 그동안 살아온 긴 그 세월이 한 순간의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갔지만 이곳의 역사 앞에서 우리들에 喜怒哀樂의 삶은 아주 작은 풀꽃향기에 지나지 않음을 느낀다.
이번엔 옛날에 가보지 못했던 양동 민속마을을 둘러봤는데 우리 선조들이 마을에서 늘 그렇게 살았을 아주 정겹고 한국스러운 옛 모습이 떠올라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신라시대 또는 조선시대로 돌아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에서 처럼.
제일 먼저 코스는 천년 문화의 역사가 담긴 서라벌(경주) 古都의 호국사찰인 우리의 대표적인 세계문화유산의 유적지, 불국사를 전문 해설가의 안내로 자세히 돌아보았다. 불국사의 그 아름다움이야 우리 한국 사람의 정신에 항상 깊게 새겨진 역사의 그림엽서이다.
정면의 모습을 보면 물질세계에서 붓다의 나라(佛國)로 건너가는 아름다운 다리, 청운교와 백운교가 있다. 불경에 따르면 부처님이 사는 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물을 건너고 또 구름 위로 가야하는데 이 다리는 바로 그것을 물질세계에 표현한 것이고 물을 건너려면 다리가 있어야하고 또 구름위로 가야하니 청운교(푸른 구름다리)와 백운교(흰 구름다리)라는 이름의 다리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이 다리를 올라가면 자하문이 나오는데 이 문을 들어서면 붓다의 나라가 된다고 한다.
또한 이 청운교 앞쪽에 계란형으로 동서 39.5m x 남북 25.5m의 연못 자리가 발견되었는데 그 물은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에서 부터 흐르는 물줄기를 절의 기단 밑으로 흐를 수 있도록 돌 홈통을 만들어 연못으로 떨어지도록 했다고 한다.
옆 언덕을 올라 불국사 境內를 들어가니 신라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다. 십여 년 전에 왔을 때 보수한다고 휘장이 쳐있어 아쉬웠었는데 이 날은 그 위엄이 불국사 경내를 한껏 돋보여준다.
한국 석탑의 원형이 된 석가탑(왼쪽)은 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전한 형태의 단순함으로 아무 장식 없이 돌덩이 몇 개 가지고 비례로만 최고의 미를 표현한다. 이와는 달리 다보탑은 한국 석탑사에서 보기 드문 매우 화려한 탑인데 이것은 인도의 탑을 모방해서 만든 때문이라고 한다. 서로 이질적인 양식을 추구하였으나, 한 공간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두 탑은 단순과 복잡, 절제와 화려의 대치를 통해 그 美를 돋보이고 있다고 하겠다.
우리는 자하문을 드나들며 청운교와 백운교를 내려다보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몸은 붓다의 나라에 들어와 있을지언정 정신은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 않으니 속세에 파묻힌 인간의 얇은 지혜는 오늘 해설사의 진지한 설명도 귓전으로만 맴돌 뿐이다.
중국의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과 일본 신사의 음산하고 기교적인 외향의 모습과는 달리 우리의 옛 사찰들이나 궁궐의 모습은 언제 봐도 싫증나지 않고 소박하고 정갈한 느낌의 모습이다.
나의 짧은 소견으로 불국사의 예술성을 이루 다 말할 수는 없으니 오래전 과거 우리 옛 조상들의 훌륭한 문화재를 더욱더 아끼고 보존하여 우리나라의 지혜로운 역사를 계승해 나가기를 바랄뿐이다.
이어서 통일신라시대에 토함산에 세워진 한국의 대표적인 석굴사찰 석굴암을 찾아보려고 버스로 이동하는데 두 명의 생기발랄한 여대생이 태워달라고 부탁하였는바, 돌아가는 기차시간에 쫓겨 석굴암 행 셔틀버스가 많이 기다려야 하므로 요청을 한 것이었다. 그 두 여학생은 감사하다고 각자 소개를 하며 한 친구는 수원 아주대생이고 한 친구는 전남대생인데 답사여행하면서 만나게 되었다하며 노래를 부르라 하니 한 친구는 사양 않고 선뜻 노래를 다 불렀다. 요즘 젊은이들의 유쾌하고도 능동적인 모습이었다.
우리는 학교 때 배운 석굴암 석불의 예찬을 상기하며 찬찬히 관람하고 나왔지만 보호 유리관을 통해 들여다 본 모습의 본존불상은 신비롭고 자애로운 미소를 띠며 언제까지나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다.
석굴암 대불
-청마 유치환-
목 놓아 터뜨리고 싶은 통곡을 견디고
내 여기 한 개 돌로 눈감고 앉았노라니
천 년을 차가운 살결 아래 더욱
아련한 핏줄, 흐르는 숨결을 보라.
목숨이란!
억만 년을 원 두어도
다시도 못 갖는 것이기에
이대로는 못 버릴 것이기에
먼 솔바람
부풀으는 동해 연잎
소요로운 까막까치의 우짖음과
뜻 없이 지새는 흰 달도 이마에 느끼노니
뉘가 알랴
하마도 터지는 통곡을 못내 견디고
내 여기 한 개 돌로
적적히 눈감고 가부좌 하였노니.
경주에 가면 또한 필히 들려야하는 유적이 안압지(임해전지·사적 제18호)이다.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정식 명칭은 임해전지(臨海殿址)이다.
안압지(雁鴨池)는 조선 초기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과 동격잡기 등에 기록됐는데, 조선의 묵객들이 폐허로 남겨진 임해전지에 기러기와 오리들이 날아들어 휴식하는 것을 일컬어 이름 지은 것이다. 신라 문무왕시대 왕궁에 딸린 연못으로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안압지와 주변 부속건물은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가 열린 곳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100여m 떨어진 곳에 보이는 토성이 신라의 궁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월성인데 지금은 평평한 들판만 덩그러니 남겨졌지만, 한가운데에 조선시대의 냉장고쯤으로 사용된 석빙고가 당대의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한다.
해설사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는 연못 둘레를 산책하듯 한 바퀴 휘돌아 나오는데 하늘의 흰 구름이 파란 하늘에 한가로이 떠있고 안압지와 어울리는 그림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안압지 밖의 넓은 벌판에 연꽃 재배지가 있어 시원한 녹색의 연잎 사이로 막 피어오르는 연꽃들의 봉긋한 분홍빛 봉우리는 수줍은 아가씨의 발그레한 볼연지 같았으며 눈부시게 희도록 겹겹이 벌어진 白蓮의 자태는 너무도 깨끗하고 고와서 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듯하였다.
이어서 오늘의 마지막 답사지가 있는 감포 바닷가로 차를 몰았다. 거기엔 내가 죽어 바다 밑에 묻으면 용이 되어 이 나라를 왜적에서 지켜 주리라 하던 문무대왕의 수중왕릉이 파도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한반도의 역사를 지켜오고 있었다.
우린 바닷가 모래밭으로 들어가 파도가 밀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파도는 꽤 높이 몰려와 단숨에 꺼져 버렸다. 친구들과 멀리 보이는 대왕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는 카메라에 담는 밀려오는 파도의 모습이 성에 안차 만족스런 임팩트가 될 때까지 여러 번 셔터를 눌렀다. 해변 가에 미역과 다시마를 파는 아줌마에게 몇몇이 보따리를 챙겼고 나도 미역귀를 한 봉지 사들고 감포 바닷가를 눈에 담았다.
이윽고 찾아간 저녁식사는 근처 감포 변의 횟집이었는데 파도치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해변을 아주 가까이 마주하고 있었고 십 수 년 전에 여름휴가를 맞아 임순이 부부와 함께 우리부부가 저녁도 먹고 자기도 했던 바로 그 집과 거의 같은 장소로 보였지만 이 집은 현대식 멋진 건물이었기에 아마도 느낌만 그러 하리라고 생각이 든다.
그 때 그 밤의 파도소리와 시원한 바닷바람, 모기와 친구하며 밖의 파라솔 의자에서 시원하게 들이켰던 맥주 한잔, 넷이서 노래방에 들어가 목청을 돋우었던 그 시간, 검푸른 파도가 우리가 자던 2층 방으로 밀려 올 듯 밤새 철썩이던 그 여름, 나 그때로 돌아갈래~~!
우리는 오늘밤 동숙을 하게 되는 팀원끼리 식사자리를 같이하고 동기들과의 이번 여행이 한층 더 우정을 쌓고 좀 더 활기찬 여생이 되는데 충분히 일조를 하리라보았다. 부산의 순자가 아낌없는 찬조의 일환으로 푸짐하게 준비해온 선물중 하나인 와인을 글라스에 따르고 찰랑거리는 부딪침을 가졌다.
이때 우리 회장 혜원의 건배선창은 ‘천만번 더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우리는 모두 '사랑해~♩!'를 외쳤다.
아주 맛좋은 와인은 몇 모금씩 목 안으로 들어가자 이내 얼굴들이 발그레해졌고 맛있는 자연산 생선회는 창문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따라 우리 친구들의 부드러운 우정과 함께 마음속으로 삼켜지고 소화되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비싼 와인을 도대체 얼마나 가져온 것인지 내 잔에 자꾸 채워졌다. 도수를 보니 14%다. 맥주 두 잔이(1000cc) 정량인 나에게 그렇게 멕여도 되는 거니?
배도 부르고 파도의 멋진 정취에 취기가 오른 우리들은 그 곳에 더 있다가는 감포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 신라의 대왕암과 같이 누워있는 희대의 역사적 호러물이 만들어질 듯도 싶어 다들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오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숙소를 찾아 경주 보문단지를 다시 들어갔다.
우린 예약된 한화콘도를 들어가 버스에서 집었던 창, 덕, 18, 기, 베, 레, 모 라는 글씨가 써진 쪼가리 한 장 씩 들고 각 글자마다 4, 5명의 똑같은 글자를 택했던 운명의 파트너와 방을 찾아 짐을 들여놓고는 이 감흥이 가시기 전에 지하의 노래방을 찾는다.
아무리 큰 VIP방을 찾아도 거기엔 29명의 단체가 같이 흔들고 떠들 룸은 없었는지 몇 명은 자퇴하고 20명 미만이 찡겨 앉아 컴컴해서 눈에 잘 뵈지도 않는 노래책을 들쳐본다. 못한다고 그래봤자 흐르는 시간이 아까워 서둘러 한곡씩 부르고 빼고 흥을 돋우니 어디에나 이런 자리에 걸출이 나타나는 법, 원주에 사는 오경숙이 바로 그 친구다. 노래도 잘하지만 몸을 리듬에 맞춰 절묘하게 흔드는 기분파이며 분위기를 제대로 맞추는 데는 타의 추종이 불허이다.
이런 친구가 여태껏 어디 있다가 이제 나왔나 할 정도다. 내가 수 년 전부터 계속 동창회 소식을 보냈었는데. 강원도 지방에서 사업도 하고 그러다보니 서울의 동창회엔 못나왔고 이제 한 세상 살아보니 동창회가 그래도 제일 낫다 싶었는지 어쨌는지(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생각일 뿐) 지난 봄 부터 동기회에 나오고 미국여행도 간다고 하니 정말 반갑다. 아무쪼록 오래도록 즐겁게 만나고 우정을 나누길 바란다.
늦은 밤 11시가 다 되어 파하니 각기 자기 방들을 찾아 갔고 간단히 정리를 한 후 취침에 들어갔다. 각 호엔 방이 두개여서 우리는 두 명과 세 명의 조로 잠을 청하고 비교적 편안한 잠자리를 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좋은 곳에 묵게 된 배후에는 우리 총무인 한영주의 노고가 숨어 있다. 떠날 때 아침 김밥도 여행사에서 신경써주길 부탁하니 맛있게 먹게 되었고 친구들에게 좋은 음식과 숙박을 제공하기 위해 아들에게까지 부탁해서 이 곳을 예약했다고 한다.
나는 베개에 머리를 묻은 후 정신없이 한잠을 잤는가 했는데 옆에서 자던 영주가 기척하며 일어나니 영신이 목소리도 들리고 나도 이미 잠이 깨어 버렸다. 새벽 4시가 좀 안된 시각이다. 어차피 누워 있는다고 잠이 올 리 없으니 아예 일어나서 모두 거실로 나와 앉는다. 하릴없이 티브이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영주가 이 새벽에 커피나 한잔 마실까하니 셋은 다 그러자하고 인덕션에 불을 댕겼다. 안방에 있는 아순이와 상균이는 고요히 꿈나라에 가 있는지 조용했다.
우리 셋은 6시에 시작하는 사우나를 가기로 했는데 그동안 냉장고에 보관한 봉춘이의 정성스레 준비한 맛있는 인절미를 어떻게 친구들에게 나누어줄까 얘기하던 중에 밑의 마트에 가서 지퍼 팩을 사다가 몇 개 씩 담아 놓자하니 바로 영주가 그 새벽에 나가서 비닐장갑과 팩을 사왔다.
묵직한 찹쌀 떡 상자를 개봉했는데 한개 집어 먹어보니 말랑하고 고급스러운 솔내음 까지 맛이 그만이었다. 기사와 가이드까지 31봉지를 나누어 담아 다시 상자에 가지런히 담아놓고 보자기를 싸놓으니 이바지 음식 준비하는 듯 우린 셋이 흐뭇했다. 다시 냉장고에 넣어두고 6시가 되자 상균이와 아순이는 사우나를 안 간다고 해서 우리 셋만 내려갔는데 그 친구들도 우리가 새벽에 거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다 들었다고 한다. 새벽같이 일어나 떡 주무른 우리가 하여튼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나도 실은 귀찮아서 사우나를 안 가려 했는데 영주가 이 콘도가 경주에서 온천물이 제일 유명하다고 꼬드기는 바람에 그렇다면야 안 갈 수 없지 하고 따라 갔다. 사람도 별로 없었고 물도 깨끗하고 부드러워 따끈하게 몸을 푸니 개운하기는 했다. 근데 우리 친구들은 우리 셋 말고는 하나도 안 왔다. 웬일이니 온천물이 정말 좋았는데.
한화콘도의 아침식사 뷔페도 비교적 괜찮게 차려져있었고 흑임자죽이 고소했다. 모두들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항상 시간 전에 버스를 탔다.
시간을 딱딱 맞춰주니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2일차 일정 첫 순서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이 된 경주 양동마을로 찾아갔다.
해설에 의하면 이 양동 마을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있는 민속마을로 경주에서 형산강을 따라 동북쪽으로 20km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 2010년 7월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전통 민속마을 중 가장 큰 규모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이 마을은 조선시대 초기에 입향(入鄕)한 이래 월성 손(孫)씨와 여강 이(李)씨가 양대 문벌을 이루고 서로 협조하며 500여년의 역사를 이어왔다.월성 손 씨의 종가인 서백당과 여강 이 씨의 종가인 무첨당(보물 411호)을 비롯하여 관가정(보물 422호), 향단(부물 412호) 등 조선시대 양반주택들과 하인들이 살았던 초가집들, 그리고 이향정, 심수정 등의 정자와 서당인 강학당 등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옛 건물들이 조선시대부터 이어온 민속과 함께 잘 보존되고 있다. 현재 이곳은 중요민속마을 지정 이후 엄격한 고증에 의해 보수·관리되고 있어 본래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해설사로 나온 사람은 그 마을에서 태어난 분으로 아주 자세하고 유익한 정보와 설명을 곁들여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우리를 인도해 주었다. 경주를 갈 때는 항상 불국사 석굴암 등 유명 유적지를 찾아 몇 번이고 관람을 하였지만 이번에 민속마을을 일정에 넣은 것은 참 좋았다. 정말 유서 깊은 명가의 마을들을 돌아보며 한국적인 면을 제대로 보고 온 시간이었다. 그 두어 곳에서는 '짝패, 라는 드라마에도 나왔고 종종 민속드라마와 영화에 등장을 하였다고 한다. 나 어릴 적 고향의 할아버지 댁 큰 기와집과 지금은 개발로 사라진 시댁 고향집의 돌담길, 열린 큰 솟을대문으로 보이는 안채의 넓은 대청마루가 생각났다.
양동마을을 돌아보며 동네 한 바퀴 도는 프로그램은 우리가 옛 시대의 사극에 나오는 한 양반마님이 되어 대청마루에 앉아도 보고 또는 한 아낙이 되어 동네 어귀 우물가에 두레박으로 물을 짓는 한 풍경을 그려봄직도 하였다. 기와집 뒷담을 끼고 언덕 넘어 올라가면 또 다른 대갓집이 그 대대로의 가문을 지키고 있었을 것이고 손 씨와 이 씨의 집성촌에서 배출된 몇몇의 이름 있는 현존 유명인사의 이름도 거론되었다. 설명을 다 듣고 내려와 밑에서 올려다 본 양동마을은 참 동네그림이 아름다웠고 자연스런 명품마을의 모습을 풍겼다. 서울의 북촌 마을과는 또 다른 지방에 상류사회의 자연스런 풍치의 옛 모습이며 그 고전을 그대로 보존하고 후대에 보여주는 민속 문화 자료이다. 간간히 외국인 그룹들이 관람을 하며 설명을 듣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정겨운 초가집 담가에 키 큰 접시꽃 몇 그루들이 옛날에도 이렇게 피어 있을 듯이 붉게 미소를 지으며 지나가는 우리의 눈길을 끈다.
점심은 시내의 경주박물관 근처에 있는 이풍녀 구로쌈밥집을 갔는데 갖가지 쌈과 반찬들이 한상 가득 차려지고 맛있고 푸짐하게 먹었으며 순자가 가져온 수박으로 시원하고 달콤한 후식을 즐겼다. 순자는 이 점심을 같이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치고 부산에서 마중을 온 기사와 함께 돌아갔다. 서울에서 온 친구들을 위하여 성의를 다해 접대를 하고 싶어 한 이 친구의 마음씨가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항상 품위 있는 모습의 순자에게 늘 건강하고 종종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 식당에선 이름을 걸고 찰 보리빵과 경주 빵을 만들어 팔고 있었는데 나는 보리빵을 두 상자 샀다. 황남 빵이 경주의 특산품이기에 그것도 가서 한 상자 샀는데 동기회에서 전 인원을 기념선물로 한 상자씩 사 주어 네 상자를 들고 오느라 무거워 혼났다. 손자들이 있으니 몇 개라도 먹여 볼 요량으로 샀다.
이참에 친구들은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풍기를 들러 인견 옷을 파는 곳에 가고 싶다는 의견을 내어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그러려면 마지막 일정의 경주박물관에서 시간을 다소 촉박하게 관람을 하기로 하여 다들 눈도장 정도의 역사유물을 관람하였다. 나는 혜원과 태희와 함께 박물관 경내 끝에 있는 곳까지 달려가 석탑유물을 찾아보았고 고고관에 들러 금관과 각종 보물, 유물을 슬라이드 보듯 돌아다녔다. 안압지주변의 출토된 유물을 따로 전시해놓은 안압지 관도 들러서 눈도장을 찍고 부지런히 나오니 한 낮의 더위에 목이 탔다.
천년 고도의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을 겨우 단 한 시간도 안 되게 돌아보는 우리의 관람 수준이 허하기 짝이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두 시간을 본들, 또는 하루를 뚫어지게 관찰한들 훗날 금관이나 기억날까 뭐 특별한 다른 것이 기억날 리가 있을까. 내 수준이 그렇다는 말이다.
이렇게 부지런을 핀 덕택에 시간을 충분히 확보한 우리 버스는 기사와 가이드의 아량으로 인삼과 인견으로 유명하다는 풍기를 향해 달렸다. 밖은 뜨거운 마른 더위가 고속도로를 덮고 있어 에어컨의 위력도 별로 소용없듯이 더위를 느꼈는데 그 절정에 이르렀다고 생각된 순간 갑자기 차창 밖으로 시원한 물줄기가 내리치더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다들 덥고 나른한 오후의 낮잠을 즐기는지 일정 외의 목적지를 양념으로 들려야하는 스케줄에 쾌속으로 질주하며 흔들리는 버스 안은 어인 일로 수다 떠는 커플도 없이 조용하였다.
후덥지근하게 나른하던 나는 창문에 스치는 빗줄기를 직접 맞는 듯이 시원하게 느껴졌고 조금만 더 오래 쏟아졌으면 하고 그렇게 원했는데 아마도 5분도 미쳐 안 오고 다시 도로는 하얀 마른 시멘트 길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야말로 사막의 신기루처럼 홀연히 나타났다 그대로 사라진 몇 줄기의 스쳐간 구름의 눈물인 셈이다.
대개의 친구들은 비가 왔는지도 모를 것 같았다. 어쨌든 이렇게 쌩쌩 달려서 풍기를 들어와 인견 집에 들어가니 동대문 옷가게 공장 집에 들어 온 듯 어수선하고 복잡한 곳에서도 나름 쇼핑에 귀재들은 있어서 몇 가지씩 사서 한 보따리씩 계산하고 나도 속옷 나부랭이 몇 개를 샀다. 약간은 가게의 레벨에 성이 안찬 친구들의 한 번 더 요청으로 조금 더 세련된 가게를 다시 들러 또 이것저것 구경하고 사고했다. 이제는 모두들 여한이 없는 심정으로 버스를 올랐을 터이니, 아침부터 풍기 타령을 했던 차라 두 곳의 쇼핑기회를 주었는데 그만하면 됐을 것이다.
이제 돌아가는 버스의 밋밋한 시간에 앞자리에 앉아 가던 검색의 달인인 임순이가 아이패드의 위력과 휭거 터치의 빠른 놀림으로 유모어 모음집을 뒤져서 모두에게 재미있는 웃음을 터지게 한다. 가이드에게 넘겨진 몇 가지 낭송을 적어보자.
* 여자 나이를 산에 비유하면...
10대= 금강산 : 함부로 올라가면 총 맞아 죽는다.
20대= 설악산 : 사시사철 올라가도 색다른 맛이 난다.
30대= 지리산 : 골짜기도 깊고 물도 억수로 많다.
40대= 북한산 : 이놈저놈 다 올라가도 된다.
50대= 남산 : 가까이 있어도 잘 안 올라간다.
60대= 동산 : 산 같지도 않아서 안 올라간다.
70대= 에베레스트 산 : 올라가서 살아서 내려 올 수 없다. ㅋㅋㅋ
후에 휴대폰 메시지에 보내준 웃기는 내용을 다 적으려니 글자 옮겨 적기도 쉬운 일은 아니라 아쉬워도 이것만 적기로 하자. 근데 평소 순진하기로 이름난 나로서는 위의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이해 불가라고 하면 바보라고 소문나려나 모르겠다. 하여튼 모두들 다 재미있다고 웃었으면 된 거다. 임순이가 차멀미를 심하게 하고 머리가 어지러워 나를 뒤에다 팽개치고 앞에만 앉아있더니 이렇게 재미있는 시간을 만들어도 주는구나.
이번에 어쩐 일로 카메라도 안 가져간 내게 자기 카메라를 통째로 넘겨 다소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기도 했는데 또 다른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이번여행을 아주 단순무식으로 머리를 텅비어놓고 즐기려고 했던 내게 무슨 어림도 없는 소리냐는 듯 기본에 충실하게 임무를 맡겨준 턱이 되기도 했다. 이래서 임순이 카메라에 둘이서 신나게 닥치는 대로 찍은 사진들 과연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올지 의문이나 아무렴 어떠랴. 시간을 즐겼으니 만족한다.
고속도로도 별로 막힘이 없이 티브이 화면에서 울리는 조용남의 쇼를 보며 이젠 우리 일정의 마무리에 아침에 얌전히 나누어 놓은 봉춘이의 맛있는 찹쌀떡을 냉장고에서 꺼내 나누어 주고 남은 간식들도 꺼내 먹고 마시고 정리를 하며 갔다. 이번 여행에서 최소한 1, 2 킬로는 몸무게가 불어 갈게 분명하다. 큰일 났다. 다이어트 5일에 완전 도로 아미타불이다.
그리고는 중부 고속도로에서 영동 고속도로를 나가 휴게소가 잘된 곳으로 유명한 덕평 휴게소를 들르니 7시가 조금 넘어 간 시간에 우동을 또 저녁으로 한 그릇씩 시켜 먹는다. 아무리 배불러도 국물이 시원한 우동 한 그릇이야 또 어떠랴하고 모두들 맛있게 후루룩 마시고 차를 올라타니 금방 죽전 간이 정거장에 도달할 추세다.
이윽고 이번 여행의 무사한 마침을 감사하며 회장 혜원의 마무리 인사와 함께 모두들 즐거웠던 추억을 공유하며 박수를 쳤다. 이번여행을 위해 애쓴 임원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고 여행 출발할 때 출출한 김에 맛있게 먹었던 석은이의 시루떡, 얌전한 이바지 찹쌀떡의 봉춘이, 와인과 떡 과일 등 좋은 글과 넉넉한 마음까지 겸비한 순자, 아낌없는 마음으로 찬조성금을 내준 상은이, 혜정이, 태희, 지현이 등 모두에게 감사를 드린다.(소개 빠진 사람 없나?)
이번에 참가한 친구들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들이 되었기를 바라면서 나를 포함 혜원, 태희, 현태 이렇게 넷이 죽전에서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먼저 내렸다.
2012. 6. 21. 목요일 임향빈
(장문의 글 일필휘지로 쓰느라 더위 먹을 지경인데 읽는 사람도 지루하지 않았을래나 모르겠다. 어쨌든 즐거웠었다고 쓴 이야기이다. 읽어줘서 땡큐~`)
첫댓글 나 순자야여행담 너무 잘했어 똑똑하네 내사진도 멋있구 사랑해 고마워
기행문 잘 읽었다
어찌나 자세히 썼는지...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추억에 사로잡혔었지.
장문을 완성하느라 수고 많이 했다. 고마워...
향빈아 내가 같이 갔나봐?
눈에 선 하다
너희들 사진으로나마 대하니 넘 좋다 보고싶은 친구들
이제 방금 경주여행후기 향빈의글 읽어보았어.
우리 여러좋은 친구들 너무너무 감사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요^^
예전에도 정리 정돈 잘 하는 세련된 글솜씨에 한 없는 찬사를 보냈었는데 점점 더 빛이 나는 듯 아름답구나.
앞으로도 잘 부탁해~~ 수고 많이 했어.....
우리도 8월 23일부터 여행 떠나지 ~ 롱 ~. 고 2 때 경주여행가서 찍은 사진 다시들여다보니 ~
45년만에 만날 그리운 친구들 볼날이 얼마 안남았네 ~
향빈이 글솜씨가 대단하다. 수고했다.
오늘도 많이 웃고 즐거운 시간 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