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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악산>- Korea 100대명산 김천 黃嶽山 설산설경 ~천년고찰 직지사 story- 02, 2025년 2월 2일 100명산~98회차, 기록 한문희총대장, |
이 시대 白頭大幹과 명산명소를 탐사하고 있는 자유인의 英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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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直指寺)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이다. 이름은 신라시대인 418년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를 창건한 후 황악산 직지사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절을 지으라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과 무염대사가 머물렀던 심묘사에 부속된 절로 남종선의 가르침인 '직지인심'을 표방한 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 능여대사가 이 절을 세울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량하였다고 해서 직지사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645년 자장율사가 중창한 이래로 930년, 936년에 천묵대사와 능여대사가 각각 중창하여 대가람이 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사명대사가 출가하여 득도한 절로도 유명하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비로전·약사전·극락전·응진전·명부전 등이 남아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금동6각사리함(국보 제208호), 석조약사불좌상(보물 제319호), 대웅전앞3층석탑 2기(보물 제606호), 비로전앞3층석탑(보물 제607호), 대웅전삼존불탱화 3폭(보물 제670호), 청풍료앞삼층석탑(보물 제1186호) 등이 있다. 직지사대웅전삼존불탱화 보물 제670호. 비단 바탕에 채색. 영산회상도 세로 600cm, 가로 300cm. 약사불회도와 아미타불회도 각각 세로 610cm, 가로 240cm. 대웅전에 모셔진 약사불·석가모니·아미타불상의 후벽에 걸려 있는 3폭의 탱화로 중앙에는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그 좌우로 약사불회도(藥師佛會圖)·아미타불회도(阿彌陀佛會圖)가 각각 배치되어 있다. 화기(畵記)에 따르면 1774년(영조 20)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삼불탱화는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했는데 주로 대웅전에는 석가모니·아미타불·약사불의 삼신불을 배치하고, 대광명전에는 비로자나·노사나·석가불의 삼신불을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먼저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하는 장면으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고 있으며 그 주위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비롯한 8대보살, 10대제자 그리고 이들을 지키는 사천왕과 팔부중의 천부신장상이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군도(群圖) 형식을 이루고 있다. 약사불회도는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는 약사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8대보살과 범천, 제석천이 겹겹이 서 있으며 그 아래쪽으로는 협시보살인 일광·월광 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본존불 위로 10대제자 이외에 약사불의 권속인 십이신장(十二神將)이 표현되어 있어 다른 탱화보다 훨씬 복잡한 구도를 보여준다. 아미타불회도는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을 나타낸 그림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비롯하여 8대보살이 화면을 빽빽이 메우고 있으며, 명부의 구제자인 지장보살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 3폭의 불화는 거의 유사한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본존불 중에서 석가모니만 법의를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걸치고 그외에는 모두 통견(通肩)으로 입었다. 또한 머리 위에 장식된 2개의 계주(髻珠), 작고 조그마한 이목구비의 처리, 광배 안에 표현된 물결무늬, 법의의 장식문양 등에서는 조선 후기 불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양식적 특징과 유사한 점이 발견된다. 이러한 형식의 삼불회탱화로는 쌍계사 삼불회탱화(1781)와 보경사 삼불회탱화(1778) 등을 들 수 있는데 특히 보경사 탱화는 1폭에 삼불이 그려졌지만 배치와 구도는 군도 형식을 따르고 있다. 직지사석조약사불좌상 보물 제319호. 총높이 161cm, 상높이 126cm. 광배와 불신은 같은 돌로 만들어졌으나 사각형의 대좌가 원래 함께 있었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머리와 큼직한 육계는 소발로 표현되었으며 얼굴은 심하게 마멸되어 세부표현을 전혀 알아볼 수 없다. 어깨는 둥근 편이며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갔으나 가슴은 볼륨감 없이 빈약하게 처리되었다. 법의는 우견편단으로 걸쳤으며 옷주름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간략하게 흘러내리면서 결가부좌한 다리의 중심으로 몰려 있어 형식화되어 있다. 오른손은 무릎에 대고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으나 다리 위에 놓인 왼손은 약함을 들고 있어 일반적인 항마촉지인과는 약간 다르며 손과 무릎이 밀착되지 않아 마치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 어색한 느낌을 준다. 광배는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주형거신광배인데 2줄의 선으로 구분된 두광과 신광에는 당초무늬를 조각하고 그 바깥쪽으로는 화염무늬를 장식했으나 선이 굵고 생동감 없이 처리되었다. 이 불상은 불신에 비해 머리와 무릎 부분을 크게 표현하여 전반적으로 균형감을 이루지 못하고 빈약한 체구나 어색한 손의 위치, 간략한 옷주름 표현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과는 차이를 보이므로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다음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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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 제일가람 황악산문(직지사)
황악산을 오르는 산문이며 천년고찰 직지사 일주문으로 웅장한 건축미가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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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황악산과 천년고찰 직지사의 배치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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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악산(黃嶽山 (1111m) 백두대간의 중심 脈으로 100재 명산이며 군립공원으로 천년고찰 직지사를 품고 있다(김천소재),
♠황악산은 해발 1,111m 비로봉을 중심으로 백운봉(770m), 신선봉(944m), 운수봉(740m)이 치솟아 직지사를 포근히 감싸준다. 산세는 평평하고 완만하며 비단같이 부드러운 편이며, 초입 일대 계곡 양쪽으로 늘어선 노송과 참나무가 하늘을 덮어 장관을 이룬다. 이 산은 김천시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소백산맥 가운데 위치한다.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이라고도 불렀으나 직지사의 현판 및 택리지에는 황악산으로 되어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깊은 계곡에 옥같이 맑은 물,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화가 아름답다.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 민주지산, 남쪽으로 수도산과 가야산, 동으로 금오산, 북으로는 포성봉이 보인다. * 황악산의 참 멋 100%로 즐기기 * 서남쪽에 연봉을 이룬 삼도봉(三道峰:1,176m)·민주지산(珉周之山:1,242m)과 함께 소백산맥의 허리부분에 솟아 있다. 주봉(主峰)인 비로봉과 함께 백운봉(770m)·신선봉(944m)·운수봉(740m)이 치솟아 있으며, 산세는 평평하고 완만한 편이어서 암봉(岩峰)이나 절벽 등이 없고 산 전체가 수목으로 울창하다. 특히 직지사 서쪽 200m 지점에 있는 천룡대로부터 펼쳐지는 능여(能如)계곡은 대표적인 계곡으로 봄철에는 진달래, 벚꽃, 산목련이 볼 만하고 가을철 단풍 또한 절경을 이룬다. 그밖에 내원(內院)계곡과 운수(雲水)계곡의 경관도 뛰어나다. 북쪽의 괘방령(掛傍嶺)과 남쪽의 우두령(牛頭嶺)을 통해 영동군과 김천시를 잇는 지방도가 지난다. 정상에서는 서쪽으로 민주지산, 남쪽으로 수도산과 가야산, 동쪽으로 금오산, 북쪽으로 포성봉이 보인다. 등산시에는 직지사와 운수암을 거쳐 주능선에 도달하는 3~5시간 정도 되는 산행을 하게 되는데, 계곡길은 가파르지만 능선길은 경사도 완만한 편이다. 겨울의 설화(雪花)와 가을의 단풍이 아름다운 산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대한민국구석구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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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절기 직지사 경내의 이모저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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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인심 견성성불 (直指人心 見性成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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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大雄殿) 신라시대 대웅전의 규모에 대해서는 미상이나 고려 이후 조선 초기,적어도 정종대까지는 2층 5간의 특수한 건물이었던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사적기에 대웅대 광명전이라 하였는데 명칭부터 특이하여 혹시 당시에는 석가모니불과 비로자나불을 동시에 봉안했는지 알 수 없다. 대웅전은 임진왜란때 소실되었으나 선조 35년(1602) 사승 인수,명례 등에 의하여 중창되었다. 현 건물은 이로부터 150여 년 후인 영조 11년(1735) 중건되었으며 당시 중건에는 주지 수변화상,전 주지 설운 종익 그리고 태감화상을 비롯하여 산중 대중의 협력과 시주로써 이룩 되었다. 그 관계자는 상대목 동래 운수사의 치백과 도목수 설인을 비롯하여 목수 20여 명과 야장,개와공,도감,그리고 화사,총찰도감,도와도감등 50여 명의 산중대중과 900여 명의 시주가 참가하고 있는데, 이 명단은 중창 상량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들은 주지 녹원 화상에 의하여 연목 교체 및 기와를 번와(1969.3.1~1970.11.30) 할 때 확인 되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대웅전의 주위 석축 및 축대를 새로 조성(1973.4.10~1975.6.20)하여 필역 하였다. 다시 녹원 화상에 의하여 재차 연목 및 기와가 번와(1979.10.25~1980.1.14)되었고, 1980년 8월에는 부분적으로 고색금단청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직지사 대웅전은 경북유형문화재 제 215호였는데, 2008년 9월 3일 보물 제1576호로 지정되었다. 출차: 직지사, 후불탱화는 영조 20년에 조성되었다. 중앙에 석가,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불을 봉안하였다.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약사 불회도(藥師佛會圖),아미타불회도(阿彌陀會圖) 3점은 모두 보물 670호로 지정되었다. 내부 또한 아름다운 채색벽화로 가득하다. 대웅전(大雄殿) 벽화(壁畵) 대웅전 중건 당시의 벽화로 구름위의 선인(仙人,오른쪽)과 용을 탄 관세음보살 그리고 문수동자상이 그려져 있다. ►대웅전은 2008년 지정된 보물로 지정, 대웅전 내부 중앙의 수미단(보물, 2015년 지정)에는 석가모니불,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후불탱화로는 영조 20년에 조성된 삼존불탱화(보물, 1980년 지정)가 있다. |
►관음전(觀音殿): 관음전은 일명 원통전이라고도 하며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이다. 협시로는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이 있으나 이들은 대부분 후불탱화로 나타난다. 대승불교가 낳은 수많은 보살 중에서 관세음보살만큼 대중의 신앙대상이 된 보살도 드물다. 모든 중생의 애환을 대자대비로 거두어 주는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근기에 맞게 32응신으로 화현하여 중생을 구제한다. 관음전(觀音殿) 내 관세음보살(觀世音普薩):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내재해 있음을 나타내는 연꽃을 들고 미소를 짓고 있다. |
►극락전(極樂殿): 극락전은 서전(西殿)이라고도 하며,사적기에는 서전암(西殿庵)이라 하였다. 즉 큰 절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으므로 이를 암자라기보다는 서전 또는 극락전이라 일러왔다고 하겠다. 극락전은 주지 혜창 화상에 의하여 중창(1984.10.17~1986.5.26)되었다. 건물은 정면 7간, 측면 4간의 팔작지붕이며 총 59.64평으로 비교적 큰 건물이다. 1999년 새롭게 개원을 하여 현재 천불선원으로 사용 중이다. ►약사전(藥師殿) 약사전은 동방유리광정토를 표출시킨 법당으로 약사여래가 봉안되어 있다. 아미타신앙이 사후의 신앙을 기본으로 하는 반면에 약사여래신앙은 현실적 이익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약사여래는 인간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여 줄 뿐만 아니라 죽음을 물리치는 힘을 갖고 있는 부처로 대중의 신앙대상이 되었다. 왼손에는 약사여래의 특징적 모습인 약합을 들고 있다. |
►비로전(毘盧殿): 고려 태조때 능여 조사에 의해 처음 세워진 비로전은 천불상을 모시고 있으므로 천불전이라고 한다. 임진왜란떄 병화를 모면한 3동의 건물중 하나로 근년에 개수하였다.정면 7간,측면 3간의 맞배지붕이며 크기는 53평에 금단청을 하였다. 천불상도 같은 시기에 조성되었으며 과거,현재,미래의 삼천불 중 현겁 천불을 모신 것으로 1992년 개금 불사가 완료되었다.또한 비로전 앞에는 수령 500년이 넘는 측백나무가 있다. 동자상(童子像): 천불상 중 독특하게 벌거벗은 동자의 모습을 한 불상으로 법당에 들어가 첫눈에 이 동자상을 보면 옥동자를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천불상(千佛像): 비로전 내의 천불상은 많은 전설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모습이 제각기 다르다.불상의 재료는 경주 특산인 옥돌을 사용하였는데 ,그 모습은 사방의 모든 부처님을 모셔놓은 듯 장엄하다. |
►비로전은 천불전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에 경잠(景岑)이 경주의 옥석(玉石)으로 만든 천불상과 1852년(철종 3)에 조성한 석가모니불 ·
비로자나불 · 약사여래, 1886년(고종 23)에 조성한 신중탱화(神衆幀畵)가 모셔져 있다. 이들 천불상 가운데에는 나아상(裸兒像)이 있는데,
첫 눈에 이 나아상을 보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김병연(金炳淵), 삿갓 선생의 황악산에서 전해오는 이야기, 김병연은 조선 후기의 시인으로 호가 난고(蘭皐)이니, 속칭 김삿갓이다. 선천부사 김익순(金益淳)의 손자인데 홍경래(洪景來)난에 조부가 항복하여 가문이 몰락되자, 벼슬을 단념하고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고 방랑생활을 하면서 풍자와 해학으로 퇴폐하는 사회를 개탄, 저주, 조소하는 기발한 시를 쏟아 놓았다. 아래 시는 구전되는 말로는 직지사의 중과 글짓기 내기를 하여 지는 편의 이빨을 뽑기로 하고 지었다는데 결국 그가 이겼다 한다. 발치직지승:拔齒直指僧 金烏橒積烏頭白(금오운적오두백) 금오라 했는데 눈이 쌓여 까마귀 머리가 희구나 黃岳花開鶴頭紅(황악화개학두홍) 황악이라는데 꽃이 피어 학머리가 붉구나 秋風嶺上春花怪(추풍령상춘화괴)추풍인데 영상의 봄꽃은 괴이하고나 直指由中路曲何(직지유중노곡하) 직지라 했는데 산중 꼬부랑길은 웬말인가? |
> 삼성각 : 경내 제일 상단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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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산행 수고들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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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여 다시 한번 – 트럼펫연주-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