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 작은 하우스에 나무들이, 지도자 없는 패잔병처럼 지맘대로 자라고 있었다. 우린 그동안 무얼 했느냐면, 블루베리 큰 하우스의 풀을 뽑고, 복숭아나무 가지치기를 하다가 여름이 너무 무더워서 빈둥거렸다. 작은 하우스의 난장판인 모양새를 두고 볼 수 없었다. 심하게 쓰러진 가지를 자르고, 굵은 주 가지는 세워서 묶었다. 나무보다 더 크게 자란 풀도 뽑고, 크게 자랄 가능성이 희박한 잔가지도 잘라 주었다.
농부가 된 지 4년 차인 지금도 초보티를 벗지 못한 우리들이다. 땡볕에 비닐하우스 속에서 작업해야 할 상황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줄줄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으며, 가지를 자르고, 풀을 뽑고, 자른 가지들을 밖으로 빼내느라 사흘이 걸렸다. 겨우 100평 하우스인데 왜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렸냐고 물으면... 너무 더운 한낮에는 비닐하우스 속에 가만히 서 있을 수도 없어서 이른 오전과 늦은 오후에만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나마 작업을 마치고 나니 비로소 나무들이 숨을 쉴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고 났을 때처럼, 단장을 마치고 나니 나무들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 드나들기 어렵던 통로가 훤해졌다. 큰 하우스에 주력하느라 신경을 덜 썼던 시간들이 후회되었다. 이제는 통로도 시원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자주 드나들면서 잘 살펴봐야겠다.
우리가 신경 쓰지 못하는 사이에 풀들은 반드시 자라난다. 화분의 주인인 나무의 키를 넘어설 만큼 크게 자란 풀을 보면 아연실색이다. 꼼꼼하게 풀을 뽑는다고 하는데도 발견하지 못한 몇 포기가 제가 주인인양 커다랗게 자라난 모습을 보면 정말 어이가 없다. 나무의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큰 풀들을 뽑아낸다.
"왕건이 있다."
무슨 산삼을 발견한 것도 아닌데 여기 보라며 서로를 불러 댄다.
"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
"그러게요. 어쩌다가 저 녀석을 놓쳤을까요?"
"벌써, 씨까지 맺혔어요. 조심해서 잘 뽑아야겠네요."
소란이 잦아들고 한동안 할 말을 잃는다. 우리가 어느 결에 또 놓친 풀들이 없는지 한 바퀴 돌아보게 된다. 며칠 후에 보면 또 다른 왕건이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일을 하고 또 하고, 그런 삶이 무한반복 되는 것이 농부의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날씨가 상상이상으로 더운 여름이었다. 내년에는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더운 공기가 천장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환풍기를 설치하려고 구입해 놓고도 설치하지 못했다. 나무의 끝이 열피해를 입어서 타들어간 것들이 있었다. 서둘러 환풍기를 설치해야 한다. 천장이 높고, 블루베리 나무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작업이 수월치 않을 것 같다. 나무를 배치하기 전에 미리 환풍기까지 설치를 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묘목으로 키웠던 1000주 이상의 블루베리 나무도 살려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기상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농사는 기후변화에 민감하기에 대비책이 시급하게 되었다. 비닐하우스 속에 열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런저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내 속이 걱정과 열기로 가득 찰 것이다.
올해의 여름도 따가운 햇살과 내 속에서 발산하는 열기로 인해 보이는 곳은 물론, 보이지 않는 곳까지 화상의 자리가 깊다. 여름 동안에 내가 해 내야 할 일들이 여러 가지 겹쳐서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던 탓이다. 보람도 컸지만, 무리를 한 탓에 한 동안 몸살을 앓았다.
나무의 성장에 방해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으니 눈에 보이는 풀들은 내 손으로 뽑아내고, 수분과 열관리, 영양관리에 더 신경 써야겠다. 나무의 미래가 우리의 미래라는 생각을 요즘에야 하게 되었다.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수확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들도 나도, 진짜 초보를 벗어나 프로가 되어야 할 시기라서 기대와 긴장이 함께 드는 시간들이다. 예행연습은 이제 모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