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기쁨주미 원문보기 글쓴이: 기쁨주미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창 1:27,28,
년초가 되면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 있습니다. 점집입니다. 왜? 운명이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면 운명이 바뀝니다.
어떤 교회에 아이를 몹시 타박하는 엄마 집사님이 있었답니다. 아이가 말을 안듣고 말썽을 부린다고... 툭 하면...매를 들고 구박하기 일쑤여서 교회안에...소문이 다 났답니다.... 이를 듣고 목사님께서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하고...기도하다가... 어느날 불쑥 그집을 찾아가서...그 집사님에게 다짜고짜... 제가 어제밤에 꿈을 꾸었는데...글쎄...이 아이가 커서 장관이 되어있는 겁니다.... 옆에 있던 그 아이에게 장관되면 날 좀 잘 봐줘라.... 웃으면서 그 말만 하고 돌아왔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뒤로 엄마의 행동이 바뀌었답니다. 구박은 커녕...그 아이를 귀하게 대하고...진짜 장관의 엄마가 된 것처럼...생각하고...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엄마의 행동이 바뀌자....아이의 행동도 자연스럽게 변화되기 시작했답니다....
인간은 그가 품은 생각에 의해 행동하고 인격이 형성되고 삶의 방향이 결정된다. 여러분 이런 사실을 아십니까? 자신이 품은 마음의 생각이 바로 자신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인본주의 심리학자 사무엘 스마일스는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쌓이면 성품이 되고 성품은 그 사람의 명운을 결정한다”라고 했다. 점은 1차원이다. 점과 점을 연결한 선은 2차원이 되고 선과 선이 연결된 공간은 3차원이 된다. 3차원은 공간과 시간,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 환경 속에서 경험하는 것을 인생의 전부인 것으로 생각한다. 4차원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생각ㆍ믿음ㆍ꿈ㆍ말’의 네 가지 영적 자원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3차원 인생의 한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공간을 뛰어넘는 영적인 세계가 있다. 이 세계를 인식하며 사는 사람이 4차원의 사람들이다.
Thinking is the Key!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생각하고 말을 하는 것이다. 동물에겐 생각하고 말하는 능력이 없지만, 사람에게는 생각과 말이 있기 때문에 문화와 예술이 있고, 창조와 발전도 있는 것이다. 원숭이가 동물 가운데 영리하다 하나 과학을 연구하지는 못한다. 그들에겐 지식을 축적하거나 전달할 수 있는 생각과 말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일 수 있는 분명한 이유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연에 법칙이 있듯이 세상 모든 것에는 법칙이 있다. 로마서 8장 2절은 죄와 사망의 법, 즉 ‘망하는 법’이 있고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생명과 성령의 법’이 있다고 말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법칙을 배우고 그 법칙을 따라 살아간다.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 가운데 생각의 법칙이 있다. 로마서 8장 6절과 7절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말한다. 이 말씀에서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의 차이가 있다는 전제가 성립된다.
인생의 미래를 성공적으로 바꾸길 원한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의 생각이 바뀌면 우리 자신이 바뀌게 된다. 인생을 바꾸는 근원이 ‘생각’이기 때문에 마귀의 1차 공격목표도 바로 생각이다. 불행을 행복으로, 행복을 불행으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이 생각이다. 생각이라는 열쇠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
생각은 바뀔 수 있다. 주후 4세기 때 교계의 큰 지도자였던 성 어거스틴이 완숙한 신앙의 경지에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자기가 죽어서 천국의 문앞에 도착해 있었다. 천국의 문지기가 어거스틴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어거스틴은 "나는 진실한 크리스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문지기가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머리와 생각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교훈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자 키케로의 사상과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것과 생각으로 그가 누구인지를 판단합니다." 소스라치게 놀란 어거스틴은 꿈에서 깬 후 굳게 결심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런고로 나는 그리스도인답게 하나님의 말씀에 전념하리라."
영어 “감사”(Thank)와 “생각”(Think)의 어원이 같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불평이 될 수도 있고 감사가 될 수도 있다.
과자가 맛없게 구워져서 오븐 탓만 한다고 맛있는 과자가 구워지는 것은 아니다. 과자를 맛있게 구우려면 요리법을 달리해야 한다. 환경 탓만 한다고 나의 불행한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 3차원의 삶을 4차원의 영적 요소로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인생의 열쇠인 생각을 바꾸어야한다. 망할 수밖에 없는 생각을 성공적인 생각으로 바꾸어야한다.
우리 인생을 지배하는 것은 환경이나 운명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생각에 달려 있는 것이다. 성경은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요셉은 노예에서 국무총리가 되었고, 목동 다윗은 기름부음 받아 왕이 되었다. 어부 베드로는 초대교회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핍박자 사울은 최고의 선교사, 사도가 되었다.
어떻게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문제는 타락한 인간이란 그릇 속에 부정적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미움과 분노, 공포와 불안, 슬픔과 좌절, 추하고 더러운 생각. 타락한 인간은 이러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체질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부정적인 환경에서 태어났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저주의 땅에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죽겠다, 힘들다, 괴롭다,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말들을 들으며 살아왔다. 우리 주위의 소식을 들려주는 신문과 뉴스를 보아도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이 많다. 이런 분노와 두려움, 부정적인 생각들을 바꾸지 않는다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다. 인간의 생각은 하나님이 역사하는 그릇이다. 부정적인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없다. 자신의 무능과 절망적 환경만 생각하는 인생의 배는 침몰하고 만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사람, 하나님이 복을 주셔도 받을 수 없는 사람, 바로 부정적 인간이다.
침대 공포증에 걸린 사람이 정신병원에 왔다. 침대에 자면 침대 밑에 누군가 있는 것 같고 침대 밑에 들어가자면 침대 위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아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오고 1년을 치료하면 고칠 수 있다고 의사가 말했다. 목사님이 이 소식을 듣고 10분 내에 이 공포증을 고쳐 버렸다. 침대 다리를 톱으로 잘라 버린 것이다. 불안하게 하고 실패로 몰아내는 그 무엇이 있다면 잘라 버려야 한다.
대체의 법칙 부정적인 것으로 물들어버린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법칙 가운데 생각을 지배하는 ‘대체의 법칙’(The Law of Substitution)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긍정적 생각이든 부정적 생각이든 한 번에 한 가지 생각만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미움을 생각하는 동안에는 사랑을 생각할 수 없고, 용서와 사랑을 생각하는 동안에는 미움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 이다. 그래서 부정적인 체질을 바꾸는 길은 긍정적인 생각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하며 사는 것이다.
좋은 생각을 하려고 하는데 나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때는 그 나쁜 생각과 맞서 싸우거나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된다. 그냥 그 나쁜 생각을 억지로 대적하려 하지 말고 행복한 생각,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체의 법칙이다. 믿음의 세계에서 대체의 법칙이란 사탄이 주는 생각대신 하나님의 방식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나라의 큰 도시에 성문이 있고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있었다. 들어가는 사람을 일일이 조사해서 선량한 시민은 들어가게 하고 나라에 피해를 가할 염려가 있는 사람은 못 들어가게 했다. 성문을 지키는 파수꾼이 철저한 검사를 시행한다면 나라에 피해를 끼치려고 하는 사람은 애초부터 성문으로 들어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 우리의 생각에 긍정적이고 복음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은 들어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영어로 ‘캔(can)’은 할 수 있다는 뜻도 있지만 ‘깡통’이란 뜻도 있다. 영어의 단어처럼 사람의 인생은 ‘할 수 있는’ 능력자도 될 수도 있고 ‘무능한’ 깡통도 될 수 있는 것이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생각 때문에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생각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숯덩이 인생에서 금강석 인생으로 변한 사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수식어로 미국의 모든 매스컴으로부터 칭송을 들었던 조엘 소넨버그(Joel Sonnenberg)라는 청년이 한국에 온 적이 있다. 길거리에서 조엘을 만난 사람들은 그의 기괴한 모습을 보고 모두 놀라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수군거리기도 한다. 1979년 9월 15일 생후 20개월 된 아기가 부모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타고 가다 40톤 트럭과 추돌하여 자동차는 금새 화염에 휩싸인다. 불길에 달아오른 아이의 몸에 물을 끼얹으니 “치익” 소리를 내며 하얗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숯덩이 같은 아이를 보며 엄마는 오열을 토했다. “얘야, 너 조엘 맞니?” 그 사고로 몸의 85%가 3도 화상을 입어 50여 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치료과정에서 손, 발가락, 코, 입술, 귀는 모두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밤 낯을 가리지 않고 아이는 고통에 겨워 울어야 했다. “아저씨, 제발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고통을 잊게 해주기 위해 엄마가 예수님 얘기를 들려주면 “엄마,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보다 내가 더 아픈 것 같아요.” 그때마다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고 격한 눈물을 흘렸다. 울퉁불퉁한 자기 피부를 만지며 “내 피부는 언제 엄마 피부처럼 될까요?” 묻는다. “조엘,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엔 그렇게 살아야 할거야.” “그럼 언제 바뀌어요?” “천국에 가면.” “나 내일 천국 갔으면 좋겠어요.” 엄마의 가슴이 무너졌다. 이러한 아이가 감사와 꿈을 잃지 않고 자랐다. 손가락 발가락도 없는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축구 선수 농구 선수로 활약을 한다. 청소년 시절엔 산악 자전거와 클레이 사격 선수로 이름을 날린다. 드디어 미국 테일러 대학을 졸업한 뒤 신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전 세계인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다닌다.
사고 후 18년 만에 도주했던 트럭운전사가 체포돼 재판정에 출두했을 때 조엘은 가해자를 주저없이 용서한다. “저는 증오심으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증오는 또 다른 고통을 낳습니다. 대신 나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무한한 사랑에 감싸여 살아갈 것입니다. 저 가해자를 용서합니다. 그리고 내 외모에 대해 손가락질하는 세상도 기쁨으로 용서합니다.”
조엘이 매스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은 자신의 본분을 정확히 깨달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많이 빼앗겨서 많은 것을 줄 수 있어 좋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 실패와 손실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잃는 것보다 반드시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오늘 나의 승리는 내가 대단해서도 아니고 내 가족이 대단해서도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대단하신 하나님 때문입니다. 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하나님은 나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많이 생각하면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생각이 변하면 인생이 변한다. 롬8;6 바울이 말씀을 통하여 전하는 중심의 메시지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뜻이라고 말한다. 바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떠돌이 인생을 살다가 처형당해 죽은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죽기까지 사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보았을까? ‘범사에 감사’하란 그의 말로 비춰보아 자신의 인생도 감사의 인생이었을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생각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자신의 인생이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생각이 환경과 인생을 바꾸는 작업’이 시작된다.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바뀌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아름답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꾼다면 인생이 바뀌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은 좋은 생각 나쁜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 있고 사탄이 준 생각이 있고 내 마음대로 내 멋대로 일으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 하나님이 이끄시는 인생의 주인공들이 되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생각의 가닥을 잘 잡아 나가야 합니다.
복된 인생을 살아가시고 싶으십니까? 그러시려면 지금 내가 하는 작은 생각으로부터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이 작은 생각이 작은 행동을 낳고 이 행동이 나도 모르게 작은 습관을 낳습니다. 작은 습관들이 쌓이면 그게 삶이 됩니다. 그러기에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 했습니다. 태산이 아무리 높다 해도 지금 한 걸음 내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한 걸음이 생각입니다. 지금 이 일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는 장차 어떤 태산을 내 인생이 창출하느냐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몇 군데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생각을 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좋은 생각들이 몇 가지 뿐이겠습니까? 그러나 이 몇 가지 생각이 참 중요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삶을 풀어나가는 해결의 작은 시작이 될 줄 믿습니다. 몸이 병들고 마음이 상하고 영혼이 쇠잔한 우리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원리가 될 줄 믿습니다. 누가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들의 행복한 삶을 지탱하는 귀한 기준이 될 줄 믿습니다.
생각 1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생각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간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하여 주신 이 생각은 우리들의 자존감의 뿌리가 되는 생각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귀한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불신자이건 신자이건 우월감으로 가득찬 사람이건 열등감으로 지금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건, 누구나 모두 사실은 하나님의 존귀한 피조물입니다. 위대한 존재입니다. 이 “내 존재의 위대의식”이 여러분의 생각의 뿌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알고 보면 사실은 왜 위대하다고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위대하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그 위대함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공통된 삶의 방향이 모두에게 주어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예수를 닮아가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나의 기질이 어떠하건, 나의 성품이 지금은 어떠하건, 나의 체질이 지금은 어떠하건, 관계없이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닮아가고 있습니다. 옆엣 분에게 이렇게 축복하십시오. “. 당신은 예수님을 날마다 닮아가고 계십니다.”
생각 2는 복된 자라는 생각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을 누리며 마음껏 즐거워한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이 생각은, 우리 안에서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의 뿌리를 내려 줍니다. 우리 몸을 둘러싸고 있는 이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쉬고 내쉴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복입니다. 감사한 일이죠. 다사로운 햇살을 우리가 누리며 그 밝음 안에서 무언가를 보며 살 수 있다는 것 이 하나 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의 복 안에서 걷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감사할 조건들은 당연시하고 잊어버리고 삽니다.
어떤 크고 멋진 빌딩 앞에 외제 승용차 하나가 서 있습니다. 그런데 비서인 듯한 사람 두 사람이 그 차에서 내리더니 그 건물의 최고급 요리집에서 그 차 있는 데로 한 상 가득 요리 최고급의 요리를 운반해 옵니다. 멀리서 가로수 밑에서 이 광경을 물끄러미 훔쳐 보던 부랑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 어디서 한 끼를 때울까 고민하던 사람입니다. 괜히 부아가 솟습니다. “야, 이 세상 참 공평치 못하군. 누구는 배를 쫄쫄 굶고 있는데. 저 차 안에 있는 사람은 뭐야? 무슨 복을 타고 났길래 차 안에서 저런 진수성찬 누린다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지요. 슬그머니 그 차 가까이 갑니다. 안으로 들여다 봅니다. “얼굴이나 한 번 보자.” 그런데 차 안에는요. 하반신이 보이지 않는 한 중년 신사가 앉아 있는 것입니다. 깜짝 놀란 이 부랑아의 가슴 속에 생각이 스칩니다. 어떤 생각일까요? “배가 고픈 건 불편하지만 난 불행하다 하면 안 되는구나. 에이. 나도 일하자. 열심히 살자” 그런 생각이 그 마음을 채우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다 다르게 만드셨고 다 다른 환경 속에 던져 두셨습니다. 그러나 찾아보면 무언가 우리가 소유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로 그것을 누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 복 마음껏 즐기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누구나 복의 환경으로 이끌기를 기뻐하십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축복하면 여러분. 아멘으로 화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 모두 부자가 되십시오. 아멘이십니까? 성품의 부자, 마음의 부자, 물질의 부자, 관계의 부자, 건강의 부자, 있는 것 족한 줄 아는 감사의 부자, 생각의 부자가 되십시오.”
생각 3은 생육 번성 충만자라는 생각입니다. “‘생육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나의 인생에 떨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을 나누며 공유하며 지경을 넓힌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하여 주신 이 생각은 진취성의 뿌리 번성의 뿌리가 됩니다. 이런 활기찬 생각이 여러분의 생각의 강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에는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에 갇혀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인색하고 이기적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편협하기도 하지만 복지부동, 결코 손해될 일에는 몸을 사리는 그런 처세를 지혜로운 처신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생육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라는 엄청난 축복을 우리 모두의 삶에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생육하는 나라요 번성하는 나라요 충만 충만해 가는 나라입니다. 여러분의 생각,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의 산업이 이런 충만의 에너지로 가득차기를 축원합니다.
생각 4는 정복자라는 생각입니다. “‘땅을 정복하라’라고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을 다스리며 극복하며 장악한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하여 주신 이 생각은 돌파력의 뿌리, 담대함의 뿌리, 투지의 뿌리가 됩니다. 이런 적극적이고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생각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물결치며 흘러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다가 무슨 문제만 생기면 덜컥 겁을 먹고 곧장 염려와 근심. 두려움과 의심 속으로 빠져 드는 게 우리 인간의 모습이지요. 믿음이 있는 분들도 문제가 생기면 그 대단한 것 같던 믿음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기도 합니다. 환경이 그만큼 우리들에게는 파도처럼 심각하게 두렵고 또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님이 더 크십니까? 환경이 더 큽니까? 누가 더 크냐? 누가 더 주도적이냐? 누가 더 근원적이냐? 생각하면 해결의 실마리가 풀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땅을 정복하라” 땅을 정복하고 환경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것이 우리들의 존재요 사명이요 특권임을 암시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도와 주시겠다는 창조주 아버지의 사랑이 뒤에 숨어 있음을 놓치지 마세요. 정복의 뱃장을 여러분 모두 소유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생각 5는 다스리는 자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존엄과 권위를 가진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하여 주신 이 생각은 나아가 우리들의 성실함의 뿌리가 됩니다. 책임감의 뿌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다스림의 권세와 다스리는 자의 활기찬 생각이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나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선물하신 이 세상에서, 창조의 질서를 거꾸로 알고 살아가기가 쉽습니다. 우리에게 소유하라고 주신 만물을 소유하기는 커녕 거기에 끌려다니고 지배당하기 쉬운 우리들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내 뜻대로 부리려고 하고 액세사리 정도로 달고 다닐려고 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들의 아버지요 우리들의 왕입니다. 반면에 천하 만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우리들의 관리대상입니다. 하나님 제일 위-그 다음에 우리-그리고는 저 발 밑에 만물. 이런 분명한 창조의 위계질서가 철저하게 확립될 때 하나님이 우리들의 삶에 부어주시는 기쁨이 극대가 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멘이십니까?
생각 6은 기쁨을 입은 자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지으시고 심히 기뻐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늘 호흡한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하여 주신 이 생각은 치유의 뿌리가 됩니다. 회복의 뿌리가 됩니다. 이런 생각이 여러분의 생각의 숲을 일구기를 축원합니다. 여기까지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요 축복을 몰고 오는 여섯 가지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기뻐하신다는 생각을 붙들고 계십니까?
살다 보면 물론 슬프고 힘들 때가 많습니다. 고독할 때도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우울증의 증세가 나를 덮을 때도 많습니다. 자녀를 양육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부부가 한 가정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배를 타고 항해하여 간다는 것 이것은 기적입니다. 이렇게 어울려 살다 보면 참 힘들고 어렵고 섭섭하고 억울한 일들이 늘 생기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런 삶의 한 가운데를 향하여 하나님은 창세기 1장 31절을 던져 주십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심히 좋아하셨다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 인간까지 지으시고 그렇게 천지창조의 손길을 다 마치시고는 기뻐하셨다는 것. 보통 기뻐하신 것이 아니라 심히 좋아하셨다는 것.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우리는 하나님의 심히 기뻐하심을 입은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괴로운 일이 있다 하더라도 감옥에 갇힌 것과 같은 절박한 일이 생기더라도 기도하면서 그 기쁨을 잃지 않는 것. 힘들고 어려운 역경의 터널을 지난다 하더라도 감사하면서 그 기쁨을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나는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라도 이 기쁨 끝까지 붙들겠다 늘 그렇게 생각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생각의 새로운 물줄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의 심령에 쏟아지게 된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심령에 새로운 생각들이 새롭게 자리잡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나는 복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생육 번성 충만하여 땅을 정복하며 만물을 다스리는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무한한 기쁨을 입으며 누리며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깊이 깊이 깨달아 가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MR:아름다운피아노연주 : BlessedFeas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