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만나] 2019년 6월 23일 시편 119:129~144 말씀의 빛을 경험하자.
요절(130절) 내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시편 119편은 말씀을 주제로 계속 설명하고 있는데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씀의 빛을 경험하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통하여 ‘말씀의 빛’을 경험해야 합니다. 말씀은 ‘영혼의 빛’입니다. 말씀은 우둔한 마음을 흔들어 깨우는 빛이며, 마른 영혼을 적시는 은혜의 단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의 빛’을 경험해야 합니다.
■ 예수님은 누구신가?
사도요한은 [요 1:9]에 예수님은 ‘참 빛’이라고 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요 3:19]에도 예수님을 ‘빛’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예수님을 ‘빛’, 곧 ‘참 빛’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 스스로도 자신을 ‘생명의 빛’이라고 소개합니다. [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말씀이 육신”(요 1:14)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이 시대에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빛을 비추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의 빛’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말씀을 빛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1) 말씀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130절).
130절 말씀을 직역하면 “당신의 말씀의 문은 빛을 줍니다”입니다. ‘페다흐’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장막이나 성전의 ‘출입구’ 혹은 일반 가정이나 도시의 ‘대문’이나 ‘성문’을 뜻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어서 보이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문이 열리면 우리가 그 집안이나 성 안으로 들어가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열리면 우리는 그 말씀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오묘함과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의 문을 여실 때에야만 우리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어리석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130절에 ’우둔한 사람‘이란 단어는 우리는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 의미는 ’왜곡됨에 그 마음을 쉽게 여는 자‘, ’단순한 자‘, ’마음이 열려 있는 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남의 이야기에 쉽게 빨려 들어가 그것을 믿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우둔하고 어리석기에 우리에게는 말씀의 문이 열려져야 지혜로워 집니다. 말씀의 문이 열려지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모해야 합니다. 131절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2) 주의 얼굴이 비취어야 합니다(135절)
말씀의 빛을 경험하려면 주의 얼굴이 비취어야 합니다. 시편에는 이와 같은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의 모습을 마치 구름 속으로 숨었다가는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는 태양에서 그 이미지를 가져온 것으로 보입니다. 광야시대의 모세도 민족적인 축복을 선포할 때 이와 유사한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민 6: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는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 말씀의 빛을 경험한 사람들의 특징은?
말씀의 빛을 경험한 자들은 129절에 보니 주의 증거들이 ‘놀랍다’고 고백합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경탄에 빠지게 됩니다. 130절에 보니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합니다. 즉 지혜롭게 됩니다. 진정한 지혜는 말씀의 빛을 경험해야 찾아옵니다. 또한 133절에 어떤 죄악도 자신을 주관하지 못하게 됩니다. [시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또한 말씀의 빛을 경험한 사람들은 140절에 말씀을 사랑하게 됩니다. 말씀 사랑은 참된 성도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또한 141절에 말씀을 잊지 않습니다. 자신이 대적들에게 비난과 조롱을 받고 멸시를 당하더라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경건함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또한 말씀의 빛을 경험한 사람들은 143절에 주의 말씀을 ‘즐거움’으로 삼습니다.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상식적으로 ‘환난과 우환’은 고통의 시간들이며 각종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의 시간들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에 집중하지 않고,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인입니다. 이 세상의 형통을 기쁨으로 삼는다면, 고통의 시간에는 당연히 슬픔과 절망과 불평으로 지배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형통이 삶의 기준이 아니므로 말씀의 빛을 경험한 사람은 환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말씀에 집중하며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습니다.[찬양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 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반복) 난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리라(하박국 3: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