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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오씨 대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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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댁 손자 글방 스크랩 포대화상(布袋和尙)
오대댁(병연) 추천 0 조회 197 09.10.27 16:4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지난 10월 18일 일요일 정선 고한 백운산 등산을 한 뒤

적멸궁과 수마노탑을 보러 근처 정암사(淨巖寺)에 갔다.

 

정암사(淨巖寺) 일주문을 지나 가볍게 경사진 언덕을

50 미터쯤 올라가면 꼭 (*)금복주 영감 같이 생긴 석상이 하나 있다.

 

 

 

 

깎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지, 가뜩이나 흰 돌이 반짝반짝 빛난다.

장소가 절인데다가 까까머리를 했으니 스님이 분명하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도록 웃고 있는데, 볼은 터질듯하고

귓볼은 어깨 밑으로 한참 내려오도록 쳐져 있다.

 

겉옷을 팔뚝 중간까지 벗어 붙인 바람에 맨 살이 다 드러나

젖꼭지와 배꼽까지 보이는데 배는 불룩 튀어나왔다.

 

스님 오른쪽 (사진 왼쪽)으로 팔꿈치를 올려 놓고 있는 것은

안석(案席) 같이 보이지만 실은 보따리니, 군대 용어로 따블 백이고

한자로 포대(布袋), 일본말로 후꾸로다.

 

대머리, 눈, 눈썹, 볼, 턱, 코, 목덜미, 젖꼭지, 어깨, 튀어나온 배하며

보따리까지 각진 데라곤 하나도 없이 온통 둥글다.

 

일행이 저게 뭐냐고 묻는데, 길게 말할 형편이 아니라

포대화상(布袋和尙) 이라고만 대답하였다.

 

그랬더니 의사 친구 하나가 저런 체형은 불가능하고 어쩌고 한다.

의학적으로 따지면 그 사람 말이 맞겠지만 멋이라곤 없다.

 

 

다시 포대화상으로 돌아가서, 중국인들은 칠복신(七福神) 중 하나로

여기고 있으니 식당 같은 데 가면 모셔 놓은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포대화상(布袋和尙)

 

법명은 계차(契此), 활동 시대는 당나라 말기(唐末)-오대(五代) 초기다.

 

늘 지팡이 끝에 자루-따블백을 메고 다녔다.

위 사진같이 앉아 있을 (坐像) 때는 보따리를 옆에 내려놓고 기대지만

입상(立像)일 때는 지팡이에 맨 형태로 나온다.

그 보따리-자루 안에 동냥해서 받은 온갖 것-음식까지 넣고 다니다가

중생이 원하면 다 내어주었다고 포대스님으로 불렀다.

또 길흉화복이나 날씨를 맞추는 능력-교회 용어로 달란트가 있었다고 한다.

 

일기예보하니 레인메이커(The Rain Maker) 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캐더린 헵번은  노처녀다.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을 몰라서 남자들을 만날 꿈도 꾸지 못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마을 보안관 게리 쿠퍼를 사랑한다.

계속 가물어 땅이 타 들어가던 어느 날 사기꾼 버트 랑카스터가 나타나서

100달러를 내면 비를 내리게 해주겠다고 한다….…

…..나중에 들통나니 다른 것은 몰라도 하늘이 혹시 비 내리게 하는

재주는 내게 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는 둥 헛소리 하던 대사가 기억난다.

 

 

포대화상은 그런 사기꾼 부류는 아니고,

아무튼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듯 하다.

 

서기 916년 악림사(岳林寺)라는 절에서 입적(入寂)하는데

이때 다음과 같은 게송(偈頌)을 남긴다.

 

미륵진미륵, 분신천백억, 시시시시인, 시인자부식

(彌勒眞彌勒, 分身千百億, 時時示時人, 市人自不識)

 

셋째 구절은 시시시시 하고 시가 네 개나 겹쳤으니

나쁘게 보면 말장난,  좋게 생각해 한문 특유의 묘미 있는 표현이다.

해석은 다음과 같다.

 

미륵이 참 미륵이니 백천억으로 몸을 나눈다.

때때로 세인들에 보여주지만 세인들은 스스로 알지 못하네

 

 

이 세상에 미륵이 있는 것을 포대화상 자신이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는

풀이도 가능하겠지만, 중국사람들은 포대화상이 실은 미륵보살의 화신

이었는데 자기네들이 몰랐다는 식으로 받아 들였다.

 

이렇게 포대화상은 미륵보살의 화신이 된 데다가

보따리에서 뭘 꺼내 대중이 원하는 대로 준다는 산타크로스 이미지

비슷한 것까지 겹쳐, 재물과 복을 주는 복신(福神)으로 변한다.

 

그리하여 중국 송나라 이후 포대화상 그림이나 조각이 널리 유행한다.

우리나라도 고려 때부터 포대화상을 그리기 시작하였으며

조선조에서도 인기 있는 소재였다.

 

포대화상 그림의 특징은 배가 불룩하고 이마는 주름 졌는데

환한 미소를 짓고 있으며 보따리는 옆에 놓고 기대거나 지팡이에 맸다.

 

지금 열리고 있는 간송미술관 도석전에도 포대화상 그림이 석 점 나와 있다.

 

 

한시각(韓時覺)의 포대화상(布袋和尙),

 

 

 

사진: 지본수묵 29.0x118.0cm, 위로 글씨가 들어가 118cm나 되는

상당히 긴 그림이지만 화상(和尙) 부분만 잘라서 올렸다.

 

머리털은 없다.

웃옷은 넉넉하고 바지는 헐렁한 데 등에는 상징인 길다란 자루를 맸다.

중국 포대화상은 위 정암사 석물처럼 가슴을 다 드러낸 데 비해

이 그림은 어느 정도 여몄다. 왼쪽 글씨 설탄(雪灘)은 한시각의 호(號)다.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의 포대흠신(布袋欠伸)

(欠은 하품 흠이니 포대화상이 기지개를 켜다는 뜻이다.)

 

 

 

 

사진 : 지본담채 27.2x22.8cm

 

천하를 정처 없이 떠도는 행각승(行脚僧)이 봄볕 따사로운 날

늙은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즐긴 다음 잠을 깨고 나서

그래도 미진한 듯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해대고 있는 모습이다.

 

가야 할 곳도 가야 할 시간도 정해진 것이 아니니 느긋할 수 밖에 없다.

곁에 있는 보따리 하나가 그의 현재 형편을 소리 없이 설명해 주고 있다.

-간송문화도록-최완수 선생 해설 중에서

 

 

 

위 두 그림에서 보다시피, 포대화상 이야기 자체는 중국에서 건너왔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중국과는 다른 우리 나름이 개성을 가지고 진화했는데

정암사 포대화상은 요즈음 중국 것을 그대로 카피 떠 온 기분이 든다.

 

 

(*)금복주(金福珠)

 

대구, 경북 지방에 금복주라는 소주가 있다. 특이하게 구슬 주()를 쓴다.

이 글을 쓰면서 그 병에 포대화상 닮은 영감이 그려져 있던 생각이 나서,

찾아보니 과연 처음 디자인 할 때 포대화상 이미지를 빌려 왔다고 한다.

 

 

 

사진: 금복주 병.

인터넷에서 찾은 것인데 지금 파는 병도 이대로 인지는 모르겠다.

 

영감이 왼손(사진 오른쪽)에 술이 담겼을 호리병 또는 주머니를 잡고,

오른손엔 방망이를 들었다. 포대화상만은 아니고 달마대사와 인도의

무슨 신() 이미지를 같이 합성해서 만든 도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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