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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렉이란?
(삼상15:17-31, 시51:15-19)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15:22)
사울왕이 아말렉과 전쟁을 앞두고 선지자 사무엘을 찾아가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 제사하고 기도해서 응답을 받았습니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노소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3) 하고 전했습니다. 진멸하는 이유는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하나님이 벌하신답니다.
과연 전쟁에 근래에 보기 드문 대승을 했습니다. 살진 소를 잡아오고, 아말렉 왕 아각을 사로잡아 왔습니다. 신하들 간에 이 승리를 후손에게 알려야 한다고 사울왕의 전쟁을 기념하는 비도 세웠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의 음성이 사무엘에게 임했습니다.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11). 그래서 사무엘이 어찌된 일인가 하고 아침 일찍 왕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사울왕이 대답하기를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와 아각을 끌오 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20,21)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진멸을 명하셨고, 사울은 왜 살렸고,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모든 승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에 행한 일’(2)이란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출17:8) 로 시작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처음 맞는 전쟁이었습니다. 홍해를 금방 지났고, 싸온 물이 떨어질 때였으니 미쳐 정신을 차리지도 못했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산 꼭데기에서 팔을 들어 기도하게 하시고, 아론과 훌이 그 팔을 받쳐 들을 때에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전쟁 후에 하나님은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하셨습니다. 모세가 제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라고 감사의 노래를 부를 때, 하나님은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고 맹세하셨습니다.
사울이 한 전쟁도 승리의 원인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맹세가 이루어 진 것입니다. 모세가 한 전쟁도 순전히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질렀다(13)고 했지만, 모세가 해가 지도록 손을 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2). 지도자가 손만 든다고 전쟁에 이기겠습니까? 모세가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데기에 서리라”하면서, 금방 홍해를 가르고 반석을 쳐서 물을 낸 지팡이를 들고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제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 여호와는 나의 깃발(문자적 의미), 여호와는 정복자(요세푸스),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70인역)하고 고백을 했습니다.
사울은 이것을 잊었습니다. 자기의 승리인 줄 알고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있는 생명의 승리는 온전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누구나 다 그렇듯이 죽음의 위험은 누구다 당하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님5’에서 처음 죽음의 고비를 넘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후에서 군대에서, 오토바이를 타다가, 자동차를 타다가 수많은 고비를 넘겼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가 산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숨 살아서 감사하면 그 외의 것은 그냥 감사합시다.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의 후손입니다.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서 낳았으니”(창36:12). 르비딤 주변을 떠도는 유목민이었는데, 난데없이 이스라엘 자손이 홍해를 건너와 장막을 치고 며칠 머무니까 여기서 같이 먹고 살 것이 없다고 쳐서 없애려고 한 것입니다. 르비딤에서 뿐 아닙니다. 40년 광야노정 내내 괴롭혔고(신25:17-19), 가나안에 정착해서도 사사 애훗시대에(3:13), 사사 기드온 시대에(6:3), 이후 사울왕 시대에까지 이스라엘을 무덤히 괴롭혔습니다. 그렇게 괴롭힌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신25:18)였습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네 성으로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는 간담이 다 녹았습니다(수1:9). 그러나 아말렉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군사를 홍해에서 수장하고 걸어서 건넌 것을 알고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는 것과 반석에서 물을 내서 먹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손수 귀하여기시고 인도하시는 백성들을 그윽히 괴롭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으려고 백 쓰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려고 백을 써도 살까말까인데, 죽으려고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백성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니 진멸을 당해서 마땅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으리라”(창12:3) 하셨습니다. 바울은 “주는 나를 돕는자시니 내가 무서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히13:6)하고 담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편에서면 우리의 적들은 하나님이 진멸하십니다. 이것이 인생을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합시다.
아말렉은 물신(物神)을 섬겼습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으로 에서처럼 하나님의 것을 귀하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장자의 명분도 야곱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팥죽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아말렉은 불신(不神)과 물신(物神)의 대명사입니다. 사울도 이런 아말렉을 상대로 싸우다가 어느덧 자기도 모르게 적과 닮아가고 말았는지, 하나님의 명령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백성들의 마음에 들려고 왕 아각을 사로잡아오고, 살진 소를 잡아 오기도 했습니다. 사울은 불신과 물신이 모두 빠지고 말았습니다. 호랑이를 상대해서 싸우다가 보면 자신도 모르게 호랑이를 닮아 간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신25:19)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13)고 하면서 나쁜 가축만 죽이고 살진 좋은 소는 잡아왔습니다. 왕을 백성들이 원한다고 생포해 왔습니다. 물신을 섬긴 것입니다.
또 자기의 불순종을 백성들 핑계를 댔습니다.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하여’ 왕 아각도 백성의 사기를 위하여 잡아 왔습니다. 백성들을 위해서랍니다.
‘멸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으로 …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했는데, 어디 드릴 것이 없어서 멸할 것 중에서 하나님께 드릴 것을 찾습니까? 가인이 드린 것과 같습니다. 멸할 것 중이서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중한 것을 드려야 합니다.
물신에 빠지면 이렇게 하나님을 보는 눈이 어두워져서 분별을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종교의식을 지키는 것보다 낫습니다.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51:17). 예수님께 간 사람, 나사로, 삭게오, 마리아, 등 상한 심령마다 위로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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