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1.5.24일 미국 미네소타주 덜루스 출생 | 1982년 미국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 입성 |
1959년 미네소타대 입학 | 1985년 가사집 ‘가사:1962-1985’ 발표 |
1961년 미네소타대 중퇴 | 1988년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 등재 |
1961년 뉴욕 이주 | 1990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코망되르 수훈 |
1962년 데뷔 앨범 ‘Bob Dylan' 발표 | 1997년 미국 케네디센터 아너 수훈 |
1963년 2집 ‘The Freewheelin' Bob Dylan 발표(‘Blowin' in the Wind’ 수록) | 2000년 스웨덴 왕실의 ‘음악계 노벨상’ 폴라 뮤직 프라이즈 수상, 아카데미 최우수 주제가(영화 ‘원더보이스’ 중 ‘Things Have Changed') 수상 |
1964년 3집 ‘The Times They Are a-Changin'발표 | 2004년 비망록 ‘연대기, 제1권’, ‘가사집 가사:1962-2001’ 발표 |
1965년 6집 ‘Highway61 Revisited'('Like a Roling Stone' 수록) 발표 | 2012년 미국 대통령 자유의 메달 수훈 |
1970년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 음악학 박사 | 2013년 프랑스 레지옹도뇌르 수훈 |
1971년 산문시집『타란풀라』발표 | 2014년 가사집 ‘가사:1962년 이후’ 발표 |
1973년 싱글 ‘Knockin' on Heaven's Door' 발표 | 2016.10.13일 노벨문학상 수상 |
자료 : 동아일보, 2016.10.14일자. A2면.
발 딜런은 2016년에 발표한 37번째 정규 앨범까지 1억3000만여 장의 음반을 판매했다. 그런데 밥 딜런이 예상밖에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자 한국의 주요 음원 사이트와 서점가에서 인기가 치솟고 있다. 10월 14일 오전 10시 기준 밥 딜런의 히트곡 '녹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는 네이버뮤직 '해외 톱 100' 차트 3위를 기록했다.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와 '메이크 유 필 마이 러브'(Make You Feel My Love)는 나란히 8위와 9위를 기록하는 등 밥 딜런의 과거 노래들이 대거 순위권에 재등장했다. 서점가에도 노벨 문학상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특히 밥 딜런의 유일한 저서인 자서전『바람만이 아는 대답』(문학세계사, 2005.10.17)의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문학세계사의 발표에 의하면 지난 2016년 10월 13일 오후 8시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이후 10월 15일까지 3일간 주문량이 8000부를 넘어 지난 10년간 판매된 부수를 웃돌았다. 김요안 문학세계사 기획실장은 "통상 노벨문학상 수상의 반사효과를 1만∼2만부 정도로 본다. 밥 딜런의 경우 책보다 음반 쪽에 관심이 더 집중될 것으로 보고 추가 인쇄량을 정했다"고 말했다. 23년 만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미국의 출판 시장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10월 17일 아마존닷컴에 따르면 밥 딜런 관련 책 3권이 예술 관련 부문별 베스트셀러에 포함됐다. 1961∼2012년까지의 가사집을 모은 ‘더 리릭스’(The Lyrics)는 서정시, 대중지, 역사·비평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또 가사집에 사연을 더한 ‘밥 딜런: 올더송즈’(Bob Dylan: All The Songs)는 가곡·아트송 부문에서 1위, 히트곡에 알기 쉬운 해설을 붙인 ‘포에버 영’(Forever Young)은 어린이 대중지 부문 1위에 올랐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의 원작인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자서전 부문 베스트셀러 2위에 오르는 등 딜런과 노벨상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을 재확인했다.
밥 딜런이 첫째 부인에서 얻은 네 번째 자식인 아들 제이콥 딜런(Jakob Luke Dylan, 47세) 또한 미국의 유명 밴드 '월플라워스(The Wallflowers)'의 리더로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아버지 밥 딜런 정도의 전설은 아니지만, 아버지 후광 없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 손자인 파블로 딜런(Pablo Dylan)은 래퍼로 활동 중인데, 할아버지나 삼촌과는 달리 철저하게 언더 활동 중이라 정보가 매우 부족한 편이다.
밥 딜런은 기사도 보통 이상으로 잘 작성했고 촌철살인식의 말도 잘 하기로 유명했으며, 신랄하면서도 예리한 그의 발언들은 그를 히피 세대의 대변인으로 자리 잡게 했다. 하지만 그런 인기와 달리 그의 행동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아웃사이더(Outsider) 적인 면모가 많았다. 이런 독단적이고 개인적인 행동들 때문에 인생사가 심각하게 우여곡절이 많은 편이다. 이혼도 자주 했고, 마약도 하고, 주변 사람들과 불화도 심했다.
밥 딜런은 음악적으로 뿐 아니라 음악외적인 이미지와 행동양식 면에서도 동시대 및 후대의 뮤지션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썬글래스를 쓰고 담배를 꼬나물고 늘 티꺼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건방진 이미지와 수수께끼 같고 냉소적인 행동방식을 통해 쿨한 락뮤지션 이미지의 원형을 만들어낸 원조가 바로 밥 딜런이다.
역대 록 뮤지션들 중에 섹시한 스타일로 쿨한 이미지의 원조 스타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1935-1977)라면, '지적인' 스타일로 쿨한 이미지의 원조가 바로 밥 딜런이다. 특히 벨벳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의 록의 '전설'로 불리는 루 리드(Lou Reed, 1942-2013)가 밥 딜런의 그런 이미지를 모방하며 이미지 스타일과 언행방식의 롤 모델로 삼았다는 점은 꽤 유명하다.
대중음악의 노랫말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서 1990년대 이후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러 차례 올랐다는 말이 있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다.
1960, 1970년대에는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과 관계가 있을 정도로 유명했지만, 최근 20대 경관에게 노숙자취급을 받아서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트리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애플 컴퓨터 제품에 이름이 딜런이라는 것 때문에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는데, 미국 언론에서도 딜런 토머스(Dylan Marlais Thomas, 1914-1953) 지인들도 문제시하지 않은 일이라고 비웃음을 들었다.
외국에서는 비틀즈(The Beatles),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와 함께 본좌 뮤지션으로 평가받는 것과는 달리 번안된 "Blowin' In The Wind"가 국내에서도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언어 문제와 앨범에 담긴 미국적인 향취 때문에 의외로 대한민국에서 밥 딜런 자체의 인기는 그리 높지 않다. 유명하지만 유명하지 않다라는 모순적인 표현이 잘 어울린다고 할까. 그래도 '아임 낫 데어' 같은 영화 때문에 일반 대중의 밥 딜런에 대한 인지도가 조금씩 늘고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가창력은 그저 그런 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목소리가 나쁘다. 성량이 부족하고 웅얼웅얼거리며 부르는 노래는 위악적 가창이라 부를만 하다. 하지만 독특한 창법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가수들이 많은데 리메이크 가수의 목소리로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밥 딜런의 원곡이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였던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
부랑자를 연상시키는 겉모습과는 달리 부동산을 여러 개 소유한 부자인데다 개인주의자라 한대수와 같이 '쇼 비지니스를 이용할 줄 아는 가식쟁이'라며 까거나 싫어하는 포크 뮤지션들이 제법 있는 듯 하다. 사생활 면에서도 평가는 좋지 않다. 여성편력이 매우 심해서 이 여자 저 여자 돈 대주느라 열심히 돈 번다는 이야기까지 나돌고 있다.
3. 밥 딜런의 문학과 음악세계
노벨문학상은 세계 곳곳에서 수여되고 있는 수많은 문학상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상금이 많은(10억여 원) 세계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문학상이다.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 T. 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OM, 1888-1965),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 등 기라성 같은 시인과 소설가들이 받은 상이자, 레프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1828-1910),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 1860~1904) 같은 세계 문학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대문호들도 못 받은 상이 바로 노벨문학상이다.
2016년 10월 13일 스웨덴 한림원은 “밥 딜런이 위대한 미국의 노래 전통 속에서 새로운 시적(詩的) 표현을 창조해왔다”면서 1960년대 인권·평화 운동의 상징으로 이름난 미국 포크 가수 밥 딜런(Bob Dylan, 75세)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1901년 노벨 문학상이 첫 수상자를 낸 이후 대중음악 가수가 이 상을 받은 것은 115년 만에 처음이다.
밥 딜런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명곡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Knocking' on Heaven's Door)'와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을 발표하며 작사와 작곡은 물론, 노래까지 도맡아서 20세기 미국 대중음악의 대표적 '음유시인'으로 꼽혔다. 어릴 적에는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Jean Nicolas Arthur Rimbaud, 1854-1891)의 시(詩)를 즐겨 읊던 문학 소년이었다.
사라 다니우스 한림원 사무총장은 밥 딜런의 노래를 "귀를 위한 시"라고 표현하며 "50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Homeros, BC800?-BC750)와 사포(Sappho, BC 612?-?)는 노래로 불릴 것을 의도하고 시적인 텍스트를 썼는데, 밥 딜런도 똑같은 길을 걸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중음악 평론가 김작가씨는 "밥 딜런은 사랑 타령에만 머물렀던 대중음악에 저항 정신을 가미해서 예술성과 사회성을 결합시킨 창조적 혁신가"라면서 "평생 음악적 혁신을 멈추지 않았던 밥 딜런을 팝 음악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순수문학가가 아니어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례는 종종 있다. 1953년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 전 영국 총리는 수필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철학가들도 종종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908년 독일 철학자 루돌프 크리스토프 오이켄(Rudolf Christoph Eucken, 1846-1926), 1927년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1859-1941), 1950년 영국 철학자이자 사회비평가인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 ) 등은 철학 작품으로 상을 받았다. 1902년 독일 고전학자 테오도어 몸젠(Theodor Mommsen, 1817-1903)은 <로마의 역사>라는 역사서로 수상했다.
전통적으로 노벨 문학상은 문학작품 이외에도 인문학 작품을 두루 수상 목록에 포함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이러한 전통은 사라졌고 시, 소설, 희곡 등 전통 문학 분야에 상이 집중됐다. 지난해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 68세)가 산문 <체르노빌의 목소리>로 상을 받은 것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신용관은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마치 스티브 잡스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만큼 어이가 없는 난센스라고 보고 있다. 그가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터무니없다(absurd)’고 보는 이유는 다음 4가지다.
첫째, 문학은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온전히 언어(문자)의 구축(構築)으로 이뤄진다. 시-소설 같은 문학작품이 위대해 질 수 있는 건 그것이 순전히 언어로만 직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대중가수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에 대해 일부에서 “문학의 경계를 넓힌 듯하다”는 엉뚱한 소리도 나오던데, 이는 문학의 경계 확장이 아니라 문학의 ‘존재 기반 포기’에 해당한다.
‘노래(song)’는 리듬과 멜로디로 이뤄진 ‘곡(曲, music)’이 우선인 장르다. 영어로 ‘작곡(作曲)’이, ‘작문(作文)’을 뜻하는 ‘composition’임을 유의해야 한다. ‘작사(作詞)’는 영어로 ‘lyric’인데 이 단어는 원래 ‘수금(lyre)의 반주로 노래하는’에서 유래했다. 다시 말해 노래에서 가사는 절대로 곡에 우선할 수도, 곡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도 없다.
딜런을 통상 ‘음유시인(minstrel)’이라 일컫던데, 음유시인과 ‘시인(poet)’은 엄연히 다르다. ‘minstrel’은 중세의 음악가를 일컫는 말이다. 즉, 음유시인의 방점은 시인이 아닌 음악이다.
둘째, 위대한 문학은, 뭉뚱그려 말하자면, 인간 또는 세계(사회)에 대한 통찰을 담는다. 그런데, 딜런이 쓴 가사에 인간 또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나 시각이 있는가? 노벨상 한림원도 이를 의식했는지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Knocking’on Heaven’s Door)’와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in the Wind)’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리 대단한 내용이 담겨있다는 느낌을 우리는 받을 수 없다.
셋째, 대중가수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고급한 문학작품을 고대하고 있는 전 세계 문학 독자들에 대한 ‘우롱’이다.
그동안 노벨문학상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 새뮤얼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 다리오 포(Dario Fo, 1926-2016) 같은 희곡작가들에게도 수상의 영광을 안겨왔다. 희곡은 무대 공연을 전제로 한 각본이지만, 주지하다시피 순전히 읽히기 위한 작품으로도 사랑받아 왔다. 하지만, 노래 가사는 곡과 어울릴 때에만 그 가사의 울림이 제대로 전달된다는 속성이 있다.
넷째, 이런저런 복잡한 논의를 차치하더라도 밥 딜런의 가사 자체가 그렇게 대단한 수준이 아니다. 웬만한 문학작품을 읽은 중학생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수준의 글일 뿐이다. 심지어 팝 음악계에는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74세, 비틀스), 폴 사이먼(Paul Simon, 75세)과 아트 가펑클(Art Garfunkel, 74세),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 82세) 등 딜런의 가사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와 울림 가득한 정서를 품은 가사를 써낸 백전노장들이 허다하다.
번역가인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 또한 스웨덴 한림원의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은 “코미디처럼 느껴진다. 문학이라는 큰 배가 타이타닉호(Titanic호)가 돼가는 것 같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딜런의 수상에 대해, 영화로도 만들어진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의 영국 작가 어빈 웰시(Irvine Welsh)는 “내가 딜런의 팬이기는 하지만, 이번 수상은 노망나 횡설수설하는 히피의 썩은 전립선에서 짜낸 노스탤지어에 주는 상”이라며 신랄하게 비꼬았다.
영국 작가 하리 쿤즈루(Hari Kunzuru)도 “오바마에게 ‘부시와 다르다’는 이유로 노벨평화상을 준 이래 가장 설득력 없는 노벨상 수상(the lamest Nobel win)”이라고 비판했고, 미국 작가 제이슨 핀터(Jason Pinter, 37세)는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으면, 스티븐 킹 (Stephen Edwin King, 69세)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라야 한다”고 비평했다.
아무튼 201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노래하는 음유시인 밥 딜런은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는데, 그의 노랫말은 미국의 고등학교와 대학의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문학학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깊은 울림을 갖고 있는 그의 가사 때문에 몇 해째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미국의 음악계와 학계에서 ‘딜런 읽기’는 실제로 교양필수 과정으로 인식되어 있다. 밥 딜런은 록의 40년 역사에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비틀스(The Beatles) 그리고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와 함께 최정상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밥 딜런은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 그리고 롤링 스톤즈와 비교해 볼 때 대중들의 인기가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밥 딜런은 노랫말에 반전, 평화 등 메시지를 담아 그들과 차별화와 특화를 기함으로써 세계 음악사와 문학사에 영원히 빛나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2005년 8월, 영국의 잡지 <언컷>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세상을 바꾼 가장 뛰어난 대중문화 작품’은 밥 딜런의 노래였다. 최근 100년간의 음악, 영화, 책, TV프로그램을 망라한 모든 대중문화 작품 중에 밥 딜런의 노래 ‘Like a Rolling Stone’이 1위를 차지한 것이다. 그 이유로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지친 삶을 다독여주는 시적인 열정 등 밥 딜런의 인간적인 매력이 많은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밥 딜런이 직접 쓴 최초의 자서전인『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g in the wind)』(문학세계사, 2005.10.17)에는 그간 알려지지 않은,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과 솔직한 내면 고백이 커다란 울림이 되어 흐르고 있다. 글쓰기에 남다른 재능을 지닌 밥 딜런이기에 그가 직접 쓴 자서전은 2004년 뉴욕타임스가 뽑은 올해 최고의 책에 선정되고 내셔널 북 어워드(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를 수상하였다.
밥 딜런의 자서전
1965년 뉴욕, 밥 딜런은 스물다섯의 겨울을 관통 중이었다. 미네소타의 촌스럽던 유태인 청년은 이제 예술을 욕망하고 있었다. 그는 시적인 노래를 작사해 <‘Blowin' in the Wind’>이란 곡명으로 불렀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진정한 인생을 알게 될까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 백사장에 편히 쉴 수 있을까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게 될까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포크 트리오 피터 폴 앤드 메리(Peter Paul & Mary)가 반전(反戰) 메시지를 담은 딜런의 곡 ‘Blowin' in the Wind’를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려놓으며 딜런은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포크 음악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평단과 대중은 그를 ‘포크의 영웅’을 넘어 ‘우리 세대의 대변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밥 딜런의 노래와 가사는 길을 걷는 사람의 읊조림이다. 그는 언제나 길 위에 있고 그 길을 따라 끊임없이 옮겨다니며 조용한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건넨다. 그의 노랫말에서 단어를 가져온다면, 구르는 돌이 만드는 길과 소리와 자유로움을 저절로 떠올리게 된다. 구르는 돌이 나뭇잎을 스칠 때, 도시의 페이브먼트(pavement)를 지날 때, 전쟁의 폐허 더미와 부딪칠 때의 소리들. 평범한 듯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의 노랫말은, 세계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과 문학 작품에 대한 광범한 독서에 기반하고 있다.
밥 딜런은 스코틀랜드 시인 딜런 토머스(Dylan Marlais Thomas, 1914- 1953)를 좋아해서 로버트 지머먼(Robert Allen Zimmerman)에서 밥 딜런(Bob Dylan)으로 개명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 T. 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OM, 1888-1965),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 등 그가 접했던 작가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곳곳에서 언급했다. 안톤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 1860-1904)의 단편소설에 근거해서 앨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가장 적합한 가사를 얻기 위해서 뉴욕 공공도서관에 틀어박혀 신문을 미친 듯이 읽어가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밥 딜런과 관련된 두 가지의 장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하나는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전기기타를 메고 나왔던 밥 딜런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반전과 평화를 노래하는 가수였던 밥 딜런이 사회 참여 대열에서 이탈했을 때의 모습이다. 전기기타는 포크 순수주의를 배반하는 상징이었고, 존 바에즈(Joan Baez, 75세)는 대중의 대변인이 되라며 밥 딜런을 비판하는 노래를 발표한 바 있다. 포크 음악에 대한 애정이 거짓이었고 반전평화운동은 진정성이 결여된 행동이었던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자서전에서 그는 세상의 오해에 대해 별다른 변명을 내놓지 않았다. "포크 뮤직 무대는 아담이 에덴동산을 떠나야 했던 것처럼 내가 떠나야 하는 파라다이스"였으며, "나는 어떤 주의나 누구의 대변인이 아니고 음악가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포크 음악과 반전평화운동 모두 그가 걸어왔던 길이고, 애정을 가지고 스스로 만든 자신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의 모습이 구속이나 억압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면, 어쿠스틱 기타만 써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정이 구속이 되고 자유를 노래해야 한다는 요구가 역설적이게도 억압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밥 딜런의 선택은 바람과 같은 자유로움이었다. 그는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움직여 나갔다. "길 바깥은 위험했고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몰랐지만 아무튼 나는 그 길을 따라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세계는 신이 주관하지도 않았지만 악마가 주관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처럼 밥 딜런은 자유롭게 굴러다니는 돌이었고, 언제나 길 위에 있었고, 길을 따라 끊임없이 움직였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지금도 그는 구두끈을 고쳐 매고 있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밥 딜런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에 만족하거나 연연하지 않고 지금도 열심히 시적인 노래를 작사하면서 열광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공연에서 별다른 말 없이 노래만 부르는 건 밥 딜런의 '전매특허'이다. 2010년 3월 31일 첫 내한 공연 당시에도 그는 2시간 동안 멤버 소개 이외에는 아무런 말 없이 앙코르를 포함해 18곡을 불렀다. 그것이 바로 밥 딜런의 매력이다.
4. 나가는 말
이상 고찰한 바와 같이 미국의 대중가수인 밥 딜런(Bob Dylan, 75세)은 노랫말을 시적으로 잘 표현하는 데에 성공하여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순수문학을 하는 문인들은 의외로 대중가수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자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밥 딜런(Bob Dylan, 75세)의 노랫말이 그렇게 대단한 수준이 아닌데다가 세계 음악계에는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74세, 비틀스), 폴 사이먼(Paul Simon, 75세)과 아트 가펑클(Art Garfunkel, 74세),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 82세) 등 딜런의 가사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와 울림 가득한 정서를 품은 가사를 써낸 백전노장들이 허다한데, 왜 스웨덴 한림원이 밥 딜런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밥 딜런(Bob Dylan, 75세)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알려되자 지금 전세계에는 밥 딜런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밥 딜런의 자서전인『바람만이 아는 대답』(문학세계사, 2005.10.17)과 음반의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고, 밥 딜런의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밥 딜런의 대표곡인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Knocking' on Heaven's Door)'와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의 가사를 보고 실망했다. 솔직히 말해 밥 딜런의 노랫말은 지금 KBS부산총국 ‘뮤직토크쇼 가요1번지’에서 매주 화요일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소개하고 있는 한국의 트로트 명곡의 노랫말과 비교해 보면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 칼럼니스트인 신용관도 “웬만한 문학작품을 읽은 중학생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수준의 글일 뿐이다.”라고 혹평했다.
실제로 한국의 유명 작사가와 작곡가들의 작품이 외국 유명 작사가와 작곡가들의 작품보다 훨씬 더 감미롭고 문학성과 예술성이 뛰어나 한국인들의 심금을 더 많이 울린다. 왜냐하면 한국의 노랫말은 일제 강점기의 인권 탄압과 수탈, 국토분단과 통일, 한국전쟁, 베트남 한국군 파병, 독도 영유권 분쟁, 서민들의 팍팍한 삶, 한국 사회의 유행 등 한국의 역사와 문화, 시대 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것은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대중음악가들도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매주 일요일 오후 MBC에서 방영하고 있는 복면가왕 프로를 보면 한국 대중가수들의 가창력과 노랫말이 밥 딜런의 가창력과 노랫말보다 훨씬 더 문학적이고 예술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고 있는 K-팝의 한류 열풍을 보면 한국 대중가수들의 가창력과 노랫말이 이미 세계 수준으로 올라와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한국인들이 KBS부산총국 ‘뮤직토크쇼 가요1번지’나 MBC의 '복면가왕' 프로를 감상하고 긍지와 자부심을 갖기 바란다. 더 나아가서 밥 딜런의 유명세에 주눅 들지 말고 과감하게 노벨문학상에 도전하여 머지않아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배출되기를 기원한다. 특히 고은 시인은 2016년 10월 12일 현재 배당률이 13대1로 5위를 차지해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으니, 더욱더 걸작 창작에 매진하여 한국 국민들의 오랜 숙원이자 노벨문학상 수상 한을 가까운 장래에 꼭 풀어주길 기대한다.
<참고문헌>
1. 밥 딜런 지음/양은모 옮김,『바람만이 아는 대답』, 문학세계사, 2005.10.17.
2. “밥 딜런”, 나무위키, 2016.10.13일자.
3. 임희윤, "문학의 반열 오른 반전-평화 노랫말… 기타 든 음유시인", 동아일보, 2016.10.14일자. A2면.
4. 박해현/김성현, “그의 노래, 귀를 위한 詩다”, 조선일보, 2016.10.14일자. 1-2면.
5. 이윤정, "노벨 문학상 115년 역사에 가수는 처음", 경향신문, 2016.10.14일자. 2면.
6. 연합뉴스, "'노벨문학상' 수상 밥딜런 60년대 반전운동 기수에서 20세기 대중음악 상징으로", 금강일보, 2016.10.15일자.
7. 김동식, “자유롭게 구르는 돌… 밥 딜런은 늘 과거를 버리고 떠났다”,조선일보, 2016.10.15일자. A18면.
8. 신용관, “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터무니없다고 보는 4가지 이유는? 다음엔 미드나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받을 수도...” 조선일보, 2016.10.15일자.
9. 김성현, "노벨문학상 밥 딜런, 날 내버려 둬", 조선일보, 2016.10.15일자.
10. 김인구, “3일간 8000부...밥 딜런 자서전 국내 주문폭주”, 문화일보, 2016.10.17일자. 23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1950년대 이전의 대전문학사" 등 77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시부문 신인작품상, <한비문학>․<오늘의문학> 문학평론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