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더워요?
최봉호
에귀 뒤 미디(Aiguille du Midi)는 ‘정오의 바늘’ 로 해석되는 불어이다. 바위를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바늘모양이다. 바늘 같이 보이는 바위에 정오가 되면 태양이 바늘귀에 걸려 바위 아래에 그림자가 없어져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이 전망대는 3,842m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이십여 전에 이 전망대에서 사방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거무스름하게 뾰족뾰족 튀어나온 바위는 얼마 보이지 않았다. 사방 보이는 산봉우리 곳곳마다 만년설이 장엄하게 덮혀 있었다. 하강을 즐기기 위해 등에 스키를 매고 올라가는 젊은이들 모습도 많이 보였다.
눈에 흠뻑 파묻힌 그런 몽블랑 모습을 상상하면서 전망대에서 바라본 최근 몽블랑 사진을 살펴보았다. 전에 비해 하얗게 눈이 쌓인 부분은 상당히 줄어들었고, 거무튀튀한 바위 부분은 커졌음이 뚜렷하다. 하강을 즐기기 위한 스키를 맨 젊은이들은 보이지 않고, 모두들 케이블카를 이용해 전망대에 올라 경치 구경만 한다. 눈이 없는 구간이 있어 위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연상하여 올여름 무척이나 더웠음이 떠올랐다. 여느 추석 때는 그렇게 더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추석 때 성묘하다가 땀으로 목욕하기는 처음이었다. 산 어귀에서 잠깐 올랐는데 숨이 확 막혔다. 40도가 넘는 것 같았다.
40도 더위는 전에 경험한 적이 있다. 방콕 외곽지역인 논타부리 주에서 여름 한 철 체류한 적이 있었는데, 4개월 내내 더위에 힘들었다는 생각이 난다. 당시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숨을 헐떡거렸다. 나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 표정도 무척이나 지쳐 무기력하게 보였다. 태국에서는 절대 화를 내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화가 나면 즉시 자리를 피하는 게 낫지, 날씨도 무더운데 괜히 열을 내면 열 낸 사람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태국 사람들은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을 부러워한다. 특히, 눈에 대한 선망이 대단하다. 태국 친구가 한 얘기가 생각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더웠어요. 추운 게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어요.”
우리나라 9월은 가을로 접어드는 상큼한 계절이다. 어릴 적 여름방학 끝자락인 8월 말경에 원두막에서 잠자다가 새벽 서늘함에 떨었던 생각이 난다. 예전엔 9월 중순이면 완연한 가을의 시작이었는데, 올해 구월은 나의 기대를 깨고 너무나도 더웠었다. 태국에서 경험했던 것보다 더 더웠던 것 같다.
몽블랑에서 눈의 두께가 줄어든 것이나 우리나라에서의 9월 중순의 폭염경보 발령은 기후변화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는 증거다. 폭염경보는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일 때 발령되는 폭염주의보보다 한 단계 높은 경보다. 9월 중순 추석때 왠 폭염경보라니, 기후 위기가 닥쳤음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가 큰일이 아닌 그저 그런 남의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몽블랑과 올해 추석 성묘를 생각하니 남의 일 같지 않음을 새삼 느낀다.
첫댓글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유 작가님, 읽어봐주시고 멘트 주셔 감사합니다. 저는 11월 초/중순 2~3번 귀중한 수업에의 참여가 여의치 않아 말씀드립니다. 나중에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