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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스크랩 추석(秋夕),가배(嘉俳), 한가윗날, 가윗날
임광자 추천 0 조회 10 07.09.23 20:1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추석(秋夕),가배(嘉俳), 한가윗날, 가윗날                                    이길상

 

음력 8월 15일을 추석(秋夕)이라 하고 이 말은 중국의 용어이다. 예기(禮記)의 글귀 중, 봄의 아침은 해(朝春日)가, 가을의 저녁은 달(秋夕月)이 계절을 상징하는 자연의 순환 현상 중 으뜸이라고 보고 붙여진 이름이며, 또한 이날을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하는데, 초추(初秋)와 만추(晩秋)의 중간인 아주 좋은 계절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음력 8월 15일을 예부터 우리들은 가위, 혹은 한가위라 했다. 이것은 부족사회에서 행해진 일종의 집단노동 및 놀이인 길쌈(績麻)과 작희(歌舞百戱)를 가배(嘉俳)라 불렀다는 데서 비롯되었고 그 이야기가 삼국사기에 전해지고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2대 남해 차차웅이 재위 21년에 훙(薨)하고, 3대 유리 니사금이즉위했다. 이때부터 니사금이란 왕호를 사용하고 17관등을 두었으며, 6부의 이름을 고치고, 각각 성(姓)을 주었으며, 또한 가배가 행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원문은 이 글 끝에 붙였습니다)

 

- 유리니사금을 세우니 남해의 태자다. 모친은 운제부인이고 비는 일지갈문왕의 딸이다. (혹은 비의 성은 박씨고 허루왕의 딸이라고도 한다) 남해왕이 죽고 처음에는 유리를 마땅히 왕으로 세워야 하나, 대보탈해가 평소에 덕망이 있으므로, 유리는 탈해를 추천하고 왕위를 그에게 넘겨 주고자 했다.

 

탈해가 말하기를 신기대보(왕의 자리)는 용렬한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내가 듣기로는 성스럽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빨이 많다고 하니 떡을 씹어서 가려봅시다. (떡을 씹어본 결과) 유리가 이빨이 많았고 이에 좌우가 그를 받들어 세우고 이사금이라 불렀고 예부터 전하는 것은 이러하다.

 

김대문이 말하기를 니사금은 방언(方言)으로 치리(齒理 / 이빨)를 말하는 것이다. 옛날에 남해가 죽음에 이르러 아들 유리와 사위 탈해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은 후, 너의 박, 석 이성에서 연장자가 뒤를(왕위) 잇게 하라. (하였는데)후에 다시 김씨 성이 일어남에 3성(가운데) 이빨이 많은(齒長)자로서 왕위를 잇게하고, 그런 까닭으로 니사금이라 부르게 되었다. 라고 했다...........

 

9년 (서기 32년) 봄에, 6부의 이름을 바꾸고, 이에 성을 주었는데, 양산부를 양부로 하고, 李씨 성을(주고), 고허부를 사량부라하여 그 성을 崔, 대수부를 점량부(모량부라고도 함)라 하고 그 성을 孫, 간진부를 본피부라 하여 그 성을 鄭, 가리부를 한기부라 하여 그 성을 裴, 명활부를 습비부라 하여 그 성을 薛이라 하였다.

 

또 관직을 설치하니 17 등(급)이 있었는데, 1(등급)은 이벌찬, 2는 이자찬, 3은 잡찬, 4는 파진찬, 5는 대아찬, 6은 아찬.........17은 조위라 하였다.

 

왕은 6부를 정한 후, 가운데를 갈라서 둘로 나누고, 왕녀 두 사람에게 각각 부내 여자들을(거느리고) 편을 갈라서(만들어서) 7월 16일(旣望)부터 아침 일찍 큰 부(大部 / 큰 부족)의 뜰에 모여 길쌈(績麻 / 삼베)을(하게) 하여, 밤중(乙夜/ 2更)에 끝나게 했다.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功 / 길쌈의 양)의 많고 적음을 살펴서,진 쪽은 술과 음식을 차리고, 이긴 쪽에 보답했고, 이에 이르러 모두가 노래와 춤과 모든 놀이를 만들어(어울려) 졌는데 이를 가배(嘉俳)라 했다.

 

이때 진 편의 여자 하나가 일어나 춤추면서 탄식하여 말하기를 회소회소라고 했는데, 그 소리가 애절하고 단아하여 뒷날 사람들이 그 소리로서 노래를 짓고 이름을 회소곡이라 했다. -

 

이상의 글이 삼국사기에 실려있는 내용이다.

가배라는놀이가 유리니사금 9년부터 시작했다면, 이것은 서기 32년(단기 2365년)에 해당하기때문에 기원 1세기로서 지금부터 2천여년 전후가 된다. 이 시기 세계사에 등장된 중요 면면들을 살펴보면,

 

중국에서는 전한(서한)이 외척 왕망이 세운나라 신(新 / 8 ~ 23)에게 망하고, 유씨 한조의 후예 유수가 여러 호족들의 도움으로 한을 부흥하고 낙양에 도읍하여 후한(동한 / 25 ~220)을 성립시켰으며,

 

고대문명의 발상지 오리엔트에서는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550 ~ 330 BC)가 알랙산더대왕에게 멸망된 후 헬레니즘 세계로 불리고 있었으나, 이란 인이 세운 파르티아(Parthia /BC 247 ~ AD 226)가 수도를 크데시폰으로 옮기고 이 지역을 석권, 동서무역을 독점하여큰 위세를 떨쳤고 실크로드라는 육로 무역로가 이때부터 더욱 활기를 띠어 중국에서는안식(安息)국이라 불렀다.

 

지중해세계에서는 도시국가 로마가 팽창을 거듭, 공화정이 무너지고 제정이 시작되어(BC27) 그들의 군대가 이르는 곳마다 정복하고, 정복지를 속주로 만들고 총독을 두어 통치했는데, 유다 족의 마음의 고향 팔레스타인도 로마의 속주가 되었고, 메시아를 열망하던 유다 족에게 예수가 나타나 그의 복음을 전파하다가 33년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형으로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이시기한반도 동남 쪽 진한의 땅에는 크고 작은 나라가 12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경주지방에는 사로국(斯盧國)이 6부족 연맹 체로 성장, 박혁거세를 세워(BC 57) 거서간이라고 했고, 2대 남해를 지나 3대 유리 때에 이르러 그 세력이 커지자 6부의 이름을 고치고 부족장에게는 성씨를 주었으며 왕호도 거서간에서 이사금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때부터 가야가 멸망하는 6세기 중엽까지를 원삼국시대, 혹은 성읍국가시대, 초기 삼국시대 아니면 삼국시대등으로 학자들에 따라 이름을 다르게 사용하고 있어서 이 시대 명칭이 매우 모호하다.

 

 분명한것은 훗날 신라나, 백제, 고구려가 되는 모체가 이시기에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이 세 나라 이외에도 많은 나라들이 있었기에 엄격한 의미에서 삼국시대라고는 할 수 없다.

 

유리왕때 처음으로 시작되거나 사용되었다는, 니사금(尼師今), 가배(嘉俳), 회소(會蘇)가 이두(吏讀)식 표기라면, 우리말은 무엇일까?

 

니사금은3대 유리 왕부터 18대 실성 왕까지(삼국유사에는 16대 을해 왕까지) 300년 이상 왕호로 사용되었는데, 이런 유제가 왕을 지칭하는 보통 명사가 되고, 언어의 변천 과정에서 니사금(떡을 씹어서 생긴 이빨 자국 / 연장자)이 잇금으로, 다시 임금으로 변화되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가무(歌舞) 백희(百戱)를 가배라 했다면, 그 유희 중 가배라는 말이 가장 많이 등장했던것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리랑, 동동, 치나(칭여나 / 쾌지나) 칭칭, 도라지,등을 비롯한 속요나 농요, 혹은 민요 등과 어울려 지는 각종 놀이에서 쉽게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지금도 경상도 방언에서는 지역에 따라 "보다"라는 말을 가배(개배) 혹은 갑내라는 말로 많이 쓰여지고 있다. 그런 가배(그런가 봐), 안 그런 가배(안 그런가 봐), 니가 젓는 가배, ....이겼는 가배(네가 패했나 보다, .....이겼나 보다) 등, 그렇다면 이런 것과 혹시 연관이 있지 않을까?...

 

집단적인 유희나 농요, 상두꾼의 장송 등의 노랫말은 노리패의 우두머리가 즉흥적으로 선창을 하면 뒤따라 많은 사람들이 계속적인 같은 말로 화답한다. 따라서 노래의 제목은 있어도 그 내용은 즉흥적으로 만들어 부르기 때문에 없다.

 

흥이 무르익어 진편의 한 여인이 일어나 춤추면서 애절하고 단아하게 불렀다는 회소곡 역시 어떤 노래 말이었는지 내용이 전하는 것은 없다.

 

....우리편이 젓는 가배 노래라도 하소하소(회소회소), 어쩌다가 젓는 가배 - 억울한 말 -하소하소,- 소리라도 - 하소하소,- 춤이라도 하소하소, - 시애미 흉 - 하소하소,- 시집험담 -하소하소....혹시 2천년 전후 신라의 여인들이 누가 선창으로 말을 메기면 여러 명이 동시에 하소하소로 화답, 하고 이렇게 노래 말을 이어 가면서 흥겹게 놀은것은 아닌지?

 

嘉俳나 會蘇를 우리들은 가배, 회소로 발음하지만 한자의 원음은 이것과는 다르고, 그 변천과정 역시 체계적인 연구가 없는 본인으로서는 다만 추측일 뿐,

 

학계에서는 가배에 대한 해석을 대략 다음 두 가지로 하고 있다. 첫째 가배를 가분(가운)으로 보고 가운데를 의미하는 것으로 계절적으로 8월 15일은 가운데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둘째 가배를 갑다로 보고 갚는다는 뜻으로, 진 편에서 이긴 편에게 갚는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으나 어느 것도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정월 보름이 일 년 농사가 잘되기를 비는 예축적 의미가 있다면, 8월 15일은 수확이라는 결과에 만족하고 베풀어준 모든 음덕에 보답하는 경사스러운 감사의 축제라고 볼수 있으며, 이것이 다시 조상에게 이어지고, 여기에 만월(滿月)인 보름달은 소원을 들어주는 주술적 신앙까지 겹쳐, 단순한 유희로 시작된 가배가 조상숭배로 바뀌었을 것이다.

 

대체적으로 추석은 삼남지방, 그것도 농촌지대에서 크게 성행하였고, 지금도 상대적으로 이 지방은 다른 지방과 비교해서 큰 명절로 되어 있다. 묘소는 벌초를 하고 성묘하며 조상에게 제사도 올리는데, 이런 의례도 지방에 따라서는 제사(祭祀)라고도 하고 다례(차례 / 茶禮)라고도 하여 용어를 달리 하는데, 제사든 차례든 본질은 조상숭배와 관련된 것이다.

 

가가예문(家家禮文), 제사든 차례든 의례에 참석하고, 성묘를 하기 위해서, 혹은 이런 저런 각가지 사연을 안고 고향을 찾기 위해 올 추석도 민족 대 이동의 긴 행렬은 넓은 도로를 메울 것이다......(즐거운 추석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 권제일(卷第一), 3 유리니사금(三 儒理尼師今)

 

儒理尼師今立 南解太子也. 母 雲帝夫人 妃日知葛文王之女也. (或云 妃姓朴 許婁王之女) 初南解薨儒理當立 以大輔脫解素有德望 推讓其位 脫解曰 神器大寶 非庸人所堪 吾聞聖智人多齒試以餠서之(서=口+筮/입구 변에 점서=씹을 서) 儒理齒理多 乃與左右奉立之 號尼師今古傳如此 金大問則云 尼師今方言也 謂齒理 昔南解將死 謂男儒理壻 脫解曰 吾死後汝朴昔二姓 以年長而嗣位焉 其後金姓亦興 三姓以齒長相嗣 故稱尼師今

 

九年春改六部之名 仍賜姓 楊山部爲梁部 姓李,高墟部爲沙梁部 姓崔, 大樹部爲漸梁部(一云牟梁)姓孫, 干珍部爲本彼部 姓鄭, 加利部爲漢祇部 姓裴, 明活部爲習比部 姓薛.又設官有十七等一伊伐찬(餐) 二伊尺찬 三잡찬 四波珍찬 五大阿찬....十七造位.王旣定六部 中分爲二使王女二人 各率部內女子 分朋造黨 子秋七月旣望 每日早集大部之庭績麻 乙夜而罷至八月十五日 考其功之多少 負者置酒食 以謝勝者 於是歌舞百戱皆作 謂之嘉俳 是時負家一女子起舞歎曰 會蘇會蘇 其音哀雅 後人因其聲而作歌 名會蘇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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