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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미라지나이트 입니다.
2011년 신묘년도 이제 5일후면 영원히 안녕을 고해야할 시기네요..
올해 마지막 연휴인 성탄절도 일요일에 끼어 날아가버리고 슬슬 한해를 마무리 지을 시기가 온듯 합니다.
요새 새롭게 정리중인 항공기가 있습니다. 바로 A-1 스카이레이더(SkyRader) 입니다.
A-1 스카이레이더는 미해군 최후의 왕복엔진(흔히 레시프로엔진(reciprocating engine) 전투기 라 부른다) 탑재 공격기라고 입니다.
본래 2차대전중 맹활약을한 SBD 돈트레스 급강하 폭격기의 후계기 성격으로 1944년 개발되었지만 등장때는 이미 2차대전이 종전.. 이후 한국전쟁을 통해 이용되다 뛰어난 성능과 높은 무장탑재량 그리고 엄청난 체공시간으로 베트남전까지 쓰인 특이한 전투기기 였습니다. 심지어 베트남전에서는 40년대 개발된 프롭기 주제에 제트전투기인 미그17을 3대나 격추하기도 하는등 특이한 이력을 가진 전투기였습니다.
이번시간에는 A-1 스카이레이더(SkyRader) 대해 알아보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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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스카이레이더(SkyRader)
필자가 본 베트남전 영화중에 보기드문 영화가 있다. 베트남전의 여타 영화들이 속칭 "땅개(보병)"를 주제로 한것에 비하여 항공모함을 주제로 다룬 "인트루더의 비행(한국 출시명 최후의 출격)"이 그것이다.
항공모함에서 출격하는 조종사가 정부의 폭격제한이나 부정확한 정보에 동료들이 전사하는데 전젱에 대한 회의를 느끼던중 다른 곳에서 전속온 선임 파일럿과 의기투합 정부의 제한을 무시하고 적 심장부를 타격한다는 내용이다.
91년도 작품인 만큼 솔직히 "위워솔져스'의 비행기 만큼의 컴퓨터 그래픽도 없어 수준이 처지지만 마지막 장면에 추락한 비행대장과 주인공을 구출하기 위해 출격하는 조종사 구조팀의 "스카이레이더"의 활약장면은 정말로 멋지다. 내가 아는 모 항공 사이트의 홈지기님은 주인공인 A-6인트루더 보다 마지막의 A-1스카이레이더가 더 멋졌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최후의 프로펠러 공격기인 "A-1스카이레이더"에 관한 것이다.
스카이레이더는 2차대전이 종전되던 무렵에도 아직 테스트 비행중인 기체였다. 결국 2차대전에는 참전하지 못한채 해군소속 공격기로 채용된 것이 이 기체의 시작이다. 시작은 비록 어중간하게 시작했지만 그 발자취를 볼때 대기 만성형의 기체였다고 본다.
2차대전이 끝난지 5년여가 흐른 50년부터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한국해안에 77기동함대가 구성되자 자연스럽게 스카이레이더도 한국전선에 파견되었다. 해군에 배치된 이 기체들은 B-29같은 대형타격기가 없는 해군에있어 매우 중요한 기체였다. 해병대가 장진호에서 지옥같은 철수를 할때도 해병대의 철수로를 따라 적이 매복한 능선을 쉴새없이 폭격하는 임무를 담당하고 북한의 전력망을 파괴하는 댐폭파작전 당시 항공어뢰를 투하 댐을 박살낸것도 이기체다(이 작전으로 당시 투입된 항공부대는 댐버스터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 스카이레이더 일러스트 검정색으로 칠해진 기체가 한국전 당시 스카이레이더이다. 이후 밝은회색으로 도색이 바뀌었다.
한국전 이후 스카이레이더는 미군의 항공전력제트화의 물결에 휩쓸리게 된다. 많은 수의 제트 함재기들이 생산되었고 시험평가되었으나 스카이레이더는 여전히 명맥을 유지할수 있었다. 이유는 제트엔진의 효율성등의 문제로 인해 스카이레이더와 같은 강력한 탑재력을 확보한 제트함재기가 개발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A-6인트루더가 대량생산된 이후에야 대체가 가능했다). 그런 까닭에 스카이레이더는 베트남전의 전반기 동안에도 여전히 해군의 중공격기 전력으로 최신예 팬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항모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다.
↖ 베트남전 당시의 항모 소속 스카이레이더의 모습...
↖ 1964년 8월 13일 미항공모함 USS Constellation(CVA-64)에서 발진하는 VA-145소속 A-1H 137-559
↖ 1964년 10월 30일 미항공모함 USS Constellation(CVA-64)에서 1000 Lb x 1, 500 Lb x 4, 250 Lb x 8 장착 후 대기하고 있는 VA-145소속 A-1H
베트남전 확전의 계기가 된 통킹만 사건의 복수작전인 "피스애로우"작전때도 스카이레이더는 선봉에 서서 북베트남군 어뢰정기지를 공격했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는 스카이레이더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아무리 탑재량이 많아도 북베트남의 현대화된 대공화력을 감당하기엔 무리였던 것이다. 이날 격추된 2기중 스카이레이더에 탑승한 새서 중위는 격추되어 전사하고 A-4스카이호크의 앨버레즈 중위는 포로가 되었다. 이후에도 잠시동안 스카이레이더는 북베트남에서의 근거리 공격이나 라오스등 방공망이 약한 지역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 1964년 9월 10일 미항공모함 USS Constellation(CVA-64)에서 출발 준비중인 VA-145소속 A-1J들
↖ 1964년 9월 10일 미항공모함 USS Constellation(CVA-64)의 캐터펄트에서 출발하고 있는 VA-145소속 A-1J 142-028
위 두사진은 피스애로우 작전당시의 모습이다. 이무렵만 해도 스카이레이더는 미해군의 주력 중공격기다. 스카이호크라는 공격기가 있긴 했으나 경공격기로 탑재량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미해군에서 스카이레이더가 철수한 것은 베트남전의 전반부가 끝날 무렵인 68년롤링선더 종료시점이다. 그전에도 최신항공기가 우선배치되는 대서양함대의 경우 신예A-6인트루더가 배치되었으나 생산량이 부족해서 태평양함대 전체에는 지급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롤링선더 종료로 해군전력이 약화된 그시점에는 인트루더가 본격적으로 배치되기 시작된 것이다.
그전까지 스카이레이더는 주로 남쪽에 고정배치된 항모1척에서 주로 라오스 공습이나 지상병력의 공중지원을 하였다.
예를 들면 북부 라오스 근처의 특수부대 캠프가 공산게릴라나 월맹군의 습격을 받을때 제트기는 의외로 도움이 안된다. 탑재량도 상대적으로 적고 무엇보다 속도가 빨라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경험많은 월맹군이나 베트콩들은 제트기가 지원나오면 접전거리를 줄이기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든다. 그러면 오폭을 우려한 미군제트기들은 지원을 할수 없기 때문이다. 이럴경우 스카이레이더의 활약이 시작되는 것이다. 제트기에 비해 느리지만 장갑으로 보호되는 스카이레이더는 웬만한 소화기사격에는 꿈적도 않고 탑재한 엄청난양의 무기를 서서히 전장을 체공하며 가공할 화력을 퍼붓는 것이다. 오죽하면 나중에는 월맹군 문서에 스카이레이더가 날면 무조건 흩어지고 바닥에 엎드리라는 지침이 내릴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외에 스카이레이더의 눈에 띄는 활약이 있다면 미그기를 격추한 것이다. 미해군소속의 공격대 스카이레이더 4대가 북베트남에서 격추된 조종사를 구출하는 작전을 지원나갔다가 현장에서 미그기와 교전끝에 격추시킨 것이다. (이는 프로펠러기가 제트기를 격추한 특이한 사례로 한국전 당시 해군 코르세어가 미그기를 격추한 사건이래 보기드문 경우다.) 물론 1대1로 교전하였다기 보다는 여럿이 보여준 팀웤에 미그기가 당한 것이지만 영광스런 스카이레이더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 미그기를 격추한 스카이레이더와 동일한 비행대대 소속의 기체이다.
↖ 1965년 6월 20일 MIG-17을 격추시킨 VA-25(USS Midway) 소속 A-1 Skyraider NE 577 이미지
↖ 1965년 6월 20일 MIG-17을 격추시키는 VA-25(USS Midway) 소속 A-1 Skyraider NE 577 기록화
↖ 1965년 6월 20일 MIG-17을 격추시킨 뒤 미그기 킬마크를 그려넣은 VA-25(USS Midway) 소속 A-1 Skyraider NE 577
(그위를 보면 배를 침몰시킨 킬마크도 그려져있네요)
↖ MIG-17을 격추시킨 VA-25(USS Midway) 소속 A-1 Skyraider 파일럿 Charles W. Hartman와 Edwin A. Greathouse(팔을 들고있는 두사람 차례대로)가 동료들에게 어떻게 미그기를 격추하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저 부러워하는 시선~)
↖ 작전중인 USS Constellation(CVA-64)소속 A-1
↖ 전설적인 탈출스토리로 유명한 뎅글러 소위(좌측끝)....
라오스에서 대공포 진지 공격도중 격추되었다. 불시착한 기체에서 탈출했으나 라오스 게릴라에 체포되어 라오스 포로수용소에서 장기간 억류생활을 했으며 사살당하기 직전 수용소내 다른 미군포로들과 탈출 라오스를 횡단하여 태국접경에서 미군헬기에 구조되었다. 함께 탈출했던 포로들은 모두 실종되었고 그중 마지막까지 뎅글러와 함께 도피생활을 하였던 헬기 조종사 출신의 포로는 라오스 원주민에게 살해되었다.
라오스에서 탈출하면 십중팔구는 목숨을 잃기에 조종사들은 차라리 북베트남지역에서 포로가 되기를 희망했다. 당시 라오스 게릴라는 미군포로를 살해하기로 악명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종전후 라오스에서 귀환한 포로는 10명이 채 되지 않았으며 더구나 스스로 탈출에 성공한 포로는 뎅글러가 유일하다. 뎅글러는 이후 그 경험을 "라오스탈출"이라는 책으로 펴내기도 하였다.
이렇듯 베트남전에서 대활약한 스카이레이더는 전반전인 롤링선더가 종료한후 A-6인트루더로 교체되면서 미공군 특수작전대와 남베트남공군으로 잉여기체가 넘어갔다. 다음편부터는 베트남전의 후반부까지 맹활약하며 사실상 스카이레이더의 전설을 만든 미공군 소속 스카이레이더를 소개하고자한다.
미공군의 스카이레이더는 베트남전부터 소요가 생겼다. 애시당초 미공군은 월남군을 교육시키기 위해 T-28트로이얀을 투입하였다. 당초 월남군교육 목적과는 달리 미군은 파트타임으로 작전에도 참가하였고 격렬한 작전 도중 노후화된 이들 기체에 균열발생으로 미공군은 스카이레이더를 해군으로 부터 도입하였다. 해군은 스카이호크 비행대로 교체중이라 그 잉여분이 제공된 것이다.
이후 미공군이 직접 참전한 65년 이후에는 조종사 구조지원 필요성으로 스카이레이더의 추가 도입이 요구되었고 일부 자체 보유 T-28트로이안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결국 탑재량이나 방어력이 탁월한 해군소유의 스카이레이더가 태국의 특수작전항공단으로 도입되었다. 물론 도중에 대게릴라전기의 중요성을 인지한 미해군이 못 내놓겠다고 "실갱이" 하는통에 한때 공군은 이미 보유한 스카이레이더까지 도로 내주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만큼 대게릴라전기의 보유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사실 정글이나 커다란 수풀로 인해 목표확인이 어려운 베트남의 환경은 고속기체의 근접지원에 제약이 컸다. 실제로 고속기의 오폭사건은 수시로 일어났고 월맹군이나 베트콩은 그점을 십분활용 교전시 접전거리를 줄여 지상공격이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고속제트기의 이야기고 스카이레이더의 도입은 이러한 제약을 극복해 주었다.
↖ 플로리다 포트 월톤비치 상공을 날고 있는 A-1H(788) Hurlburt Field, Florida, 4407th CCTS 소속
↖ 플로리다 비치 상공을 날고 있는 A-1E(132-653) Hurlburt Field, Florida, 4407th CCTS 소속
스카이레이더는 대량 탑재량과 든든한 맷집으로 저공을 체공하며 화력을 퍼붓는 것이다. 천천히 날며 정확하게 퍼붓는 스카이레이더의 위력은 당시 월맹군 문서에 잘나타난다. 미군이 노획한 자료에 의하면 제트기가 오면 접전거리를 줄이라고한 반면, 스카이레이더가 보이면 흩어져서 지면에 밀착해 은폐하라고 하고있다. 그만큼 스카이레이더는 무서운 존재였던 것이다.
물론 단순히 저속으로 날기만 한다면 쉽게 격추될수밖에 없겠지만 스카이레이더는 2차대전방식으로 제작된 까닭에 제트기와 비교해 상당한 장갑을 채용하였고 그결과 웬만한 소총탄에는 격추되지 않았다.
↖ 37mm탄에 맞은 스카이레이더 .... 보다시피 구멍은 났으나 무사귀환하였다. 소총탄은 문제가 안되는 것이다. A-1(134-551), 1st SOS 소속, 1972년 3월 18일 Nail 31 SAR 작전중 피탄되어 돌아온 기체 사진
↖ 오른쪽 테일쪽에 맞아서 오른쪽에서 뚫고 들어가 왼쪽 안쪽에서 총알의 흔적이 툭 튀어나온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이사진은 플랩쪽 57mm 맞은 사진, 위와 같은 스카이레이더로 테일쪽에 37mm 플랩쪽에 57mm를 맞았습니다.
↖ 중구경 대공포에 맞은 모습... 팔뚝이 들어갈 정도다 일반 제트기면 귀환하기 힘들다. "Warlock 작전시 대공포를 맞고 돌아와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Jim Kelly 파일럿, 해군 A-6과 함게 SAR 임무를 수행하던중 대공포를 맞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수작전대대에 배속되어 위험한 상황의 지상병력지원을 담당하였다. 그들의 임무는 대개 건쉽등을 동원을 동원하기에는 지상병력까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나 굳이 건쉽을 동원하기에는 규모가 작은 경우에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전쟁초기 아샤우 계곡에서 벌어진 항공지원작전이다.
아샤우 계곡은 101공수사단이 69년 햄버거힐 전투로 유명해진 지역이다. 전쟁 초기만해도 미군은 특수부대 캠프를 두고 있었으나 월맹군의 주요보급루트에 위치한 이 기지를 함락시키기 위해 연대규모의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이날의 전투로 기지가 함락되었고 이후 아샤우 계곡은 월맹군의 관할하에 놓였다. 월맹군 소굴이라 미군도 단기정찰 정도만 가능한 지역이었다) .
이날 월맹군 연대의 공격으로 아샤우 특수부대 캠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샤우 계곡은 원래 튜브처럼 생겨서 지원을 나온 기체는 계곡의 양쪽 정상부에서의 대공사격에 노출되도록 되어있었다. 이날의 공중지원에는 공군의 메이어즈 소령과 핏셔 소령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메이어즈 소령의 기체가 대공사격에 피격되어 아샤우 캠프의 활주로에 불시착 하였다. 메이어즈 소령은 캠프에 난입한 월맹군을 피해 즉시 기체를 이탈하였다. 순간 핏셔소령은 지금 구출하지 않으면 메이어즈를 다시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과감한 시도를 하였다. 박격포탄이 떨어지는 아샤우캠프의 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한 것이다. 핏셔가 착륙하자 믿겨지지 않는듯 쳐다보고 있던 메이어즈가 핏셔의 기체로 달렸고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우여곡절끝에 메이어즈는 핏셔의 기체에 탑승할수 있었고 둘은 포화를 뚫고 이륙 탈출에 성공하였다
↖ 야샤우 캠프 위치
↖ 동그란 원 부분이 메이어즈의 불시착한 기체이다. 이미 근처는 포격 흔적이 만연하다.
이날의 용기로 핏셔 소령은 명예훈장을 받았다.
이 외에도 스카이레이더는 미군의 라오스 비밀작전에서는 정찰팀의 탈출시 엄호사격을 담당하기도 했고 조종사 구출작전에서는 적 대공망 제압임무를 담당하였다.
특히 구조작전에서는 적들이 트랩을 쓰는 경우가 많아서 장시간 해당지역을 날며 적 대공망을 자극해서 사격을 유도하는 위험한 임무를 맡기도 했다. 이는 구조작전의 핵심적인 임무로 구출작전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었다. (여담이지만 종전 무렵으로 갈수록 노련해진 월맹군은 웬만해서는 사격을 유도하는 스카이레이더의 비행에 속지 않았다. 실제로 "배트21구출작전"으로 유명한 햄블턴 중령 구출작전의 경우 스카이레이더가 유도비행을 2시간 가량했음에도 월맹군 사수는 끝까지 기다렸다가 마지막에 구출작전에 나선 헬기를 격추시켜 전원전사 시키기도 했다. 그런 만큼 스카이레이더의 역할은 매우 컸다)
↖ 구조작전 출격적인 스카이레이더.... 구출작전에서는 "샌디"라는 콜사인을 사용한다. (602nd SOS - NKP/DaNang - 1970-71)
↖ 구조작전 출격적인 스카이레이더 (40th AARS Combat Rescue)
↖ 구출된 조종사와 함께... BOXER22라는 콜사인의 팬텀기 조종사들이 구출팀의 스카이레이더 조종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에서 1, 3번째가 구출된 팬텀기 조종사다.
= 아샤우 캠프 구출 보충자료 =
66년 3월9일에서 10일상에 벌어진 아샤우 캠프 함락사건 당시의 사진자료입니다.
정확히는 피셔소령이 의회명예훈장을 받은 사건이 벌어진 10일과 관련된 것이라 할수있죠.
↖ 플레이쿠 기지로 귀환후 촬영한 사진..... 앞서도 언급했지만 오른쪽의 메이어즈가 추락한 당시 이미 월맹군이 외곽진지의 와이어를 돌파한 상태였기 때문에 바로 구하지 않으면 포로가 되거나 사살될 가능성이 높았다. 당시 구조헬기는 30분 도착거리에 있었다고 한다.
↖ 당시의 기록화... 메이어즈의 뒤는 모습에서 볼수 있듯이 당시 기체는 복좌형 스카이레이더였다.
초기 도입 기체의 경우 복좌기가 많았으나 대량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단좌기들도 많이 보인다. 가운데 초상화의 주인공이 피셔소령으로 보시다시피 의회명예훈장을 받았다.
↖ 피셔소령의 명예훈장 수상기체... 베트남전 최초의 명예훈장 수상기체다. 작전 당시는 카모플라주가 되지 않은 상태였으나 이후 재도색되었다. 이기체는 그후 한동안 사용되었으나 추락사고로 2명의 사망자를 내기도 하였다. 이후 여러번의 수리와 재취역을 거듭한후 박물관에 기증되어 오늘날도 보존중이다.
↖ 추락사고 사진
↖ 메이어즈의 사진
이후의 스카이레이더의 이야기....
베트남전의 처음부터 종전시 까지 함께하게된 스카이레이더는 베트남화계획에 의하여 미군 보유량의 대부분이 월남공군으로 이전되었으며 72년 라인베커 작전무렵부터 취역하기 시작한 동급 차기 작전기인 A-7D로 서서히 대체되었다 (원래 해군기였으나 그 유용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공군이 개수를 통해 D형을 도입하였다. 스카이호크를 있는 경공격기 모델로 스카이레이더가 종래 수행하던 구조작전의 지상공격에 적합하게 발칸과 로켓을 운용가능한 기체였다)
그리하여 라인배커 기간에는 스카이레이더와 A-7D코르세어가 잠시지만 함께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후 73년 미군의 완전한 철수로 미군의 잔여 기체 대부분이 넘겨졌고 이들 스카이레이더가 주력이 되어 월남 패망시까지 2년간 공군작전을 담당하였다.
베트남의 패망이 명백해지자 상당수 기체들은 인근 태국으로 도주하였고 항복을 거부한 월남군 스카이레이더 2기와 AC-119건쉽1기가 수도 사이공 상공에서 마지막까지 항전하다 월맹군 미사일에 전원격추됨으로서 베트남에서의 스카이레이더 활약사는 막을 내린다.
미공군은 이후 A-7D코르세어를 스카이레이더가 맡았던 경공격과 구출작전 지원에 사용하였고 심지어 대 방공작전에도 투입하였다. 이들 코르세어는 91년 걸프전을 기점으로 항모 축소 항공기 단일화 계획에 의하여 퇴역하고 F-18호넷으로 대체되었다.
by 척탄병 (http://wertt0.egloos.com/10288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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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군 최후의 레시프로엔진(reciprocating engine) 전투기
A-1 스카이레이더(SkyRader)
번역 및 정리 미라지나이트 (미라지의 콤프방 www.compmania.co.kr)
2차대전개전 초기 미해군은 F2A 버팔로(Brewster F2A Buffalo) 나 F4F 와일드캣 등 자국이 운영중인 항공기가 최고의 전투기라 자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개전이 되고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해군의 제로 전투기를 마주하게 되면서 그것은 단순히 자신만의 착각이였음을 바로 깨달게 됩니다.
우습게 보던 일본해군의 전투기들은 생각외로 빠르고 경쾌했으며 특히 미해군이 탑재한 전투기들에 비해 항속거리나 속도면에서 월등했습니다.
자신했던 미해군은 일본군의 전투기들에 밀려 초반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이어 대전중반부터 F6F헬켓이나 F4U 코르세어 같은 신형전투기들의 투입으로 겨우 이를 만회하게 되지요 이후, 이들 신형전투기를 바탕으로 역전을 꾀하게 됩니다.
미해군은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의 막강한 해상전력을 격파하는데는 헬다이버 (Curtiss SB2C Helldiver) 같은 급강하 폭격기가 유용했는데 이중 SBD 돈트레스(Douglas SBD Dauntless) 급강하 폭격기는 일본해군에 있어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이들 급강하 폭격기도 빠르게 변화하는 전선의 요구에 이미 성능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미해군은 기존에 사용중인 헬다이버와 돈트레스 급강하 폭격기를 모두 대체할수 있는 새로운 급강하 폭격기의 개발을 의뢰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A-1 스카이레이더(SkyRader) 공격기 였습니다.
A-1 스카이레이더(SkyRader) 는 1944년 개발초기에는 시제기인 XBT2D란 기체명으로 시작되어 1945년 4월7일 첫 기체가 미해군에 인도되어 본격적인 운용이 시작되려는 찰나, 8월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2차대전이 종전되면서 당초 발주수량보다 주문도 팍 줄어들어버리고, 실전배치도 늦어져버려서 첫 기체 수령후 1년이 지난 1946년에되서야 겨우 완편 비행대대가 탄생할 정도로 계획이 뒤틀려 버립니다. 이미 1940년대 중반부터 제트엔진을 장착한 제트전투기가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이런 왕복피스톤엔진을 장착한 레시모프 전투기가 필요한가에 대한 회의론도 많이 고개를 들던 시절이였습니다.
이후 미해군의 함재기 명칭변경 작업에 따라 XBT2D 에서 AD-1 이라는 제식명칭을 부여 받은 스카이레이더 는 당시 대세인 제트엔진을 장착한 제트기에 밀려 사라질 운명에 처했으나 그래도 기술적으로 우수한 최후기 피스톤왕복엔진을 장착한 기체였던터라 높은 안정성과 우수한 저공비행성능, 기체크기에 비해 엄청난 폭장능력(무려 8톤이나 무장을 탑재할수 있었다. 당시 최고의 폭격기라 불리던 B-29가 9톤의 무장탑재량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무장탑재량이다) 과 항속거리, 그리고 웬만한 대공포화초자 버티는 견고함 이에따른 강한 생존능력 등 공격기로서 갖추어야 할 요소를 두루갖춘 우수한 공격기였습니다.
미해군은 이런 장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비록 구시대적인 레시모프 항공기였지만 이를 퇴역시키지 않고 제식 전투기로 사용하게 합니다. (사실 제트전투기가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었어도 당시 제트전투기는 다량의 무장이나 튼튼한 장갑을 둘러치기에는 아직 기술적으로 부족했던게 사실이라 이를 대신할 기체가 필요했다.)
한국전쟁에서 빛을 보게된 AD-1 SKY RADER
1950년 동아시아의 작은 변방국가인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의 김일성이 남한을 적극 침공하면서 일어난 전쟁이였죠..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AD-1 들은 바로 전선에 투입되어 미해군의 전투비행대 및 공격비행대 소속으로 22개 비행대가 참가하여 북한군을 작살내는데 큰 일조를 합니다.
특히 VA-195 소속 AD-1들은 1952년 4월30일 항공어뢰를 탑재하고 화천댐을 폭격 댐을 파괴하는 임무를 성공시키기도 합니다.(이 임무를 수행했던 부대가 VA-195 였고 이후 ‘Dambusters (댐 작살낸 애들)’이라는 예칭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 부대의 유명한 비행대장 마킹이 .바로 Chippy Ho 라 불리는 유명한 마킹입니다.)
이미 전투기로 소련도 개발에 성공한 미그15등에 밀리던 구형 레시모프 전투기인 AD-1 들은 한국전쟁에 공중지원임무기체로 투입되게 되는데, AD-1 스카이레이더들은 안정적인 성능과 높은 가동률로 예상대로 큰 활약을 펼치게 됩니다.
앞서 말한 높은 안정성과 우수한 저공비행성능, 기체크기에 비해 엄청난 폭장능력(무려 8톤이나 무장을 탑재할 수 있었다. 당시 최고의 폭격기라 불리던 B-29가 9톤의 무장탑재량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무장탑재량이다) 과 항속거리, 그리고 웬만한 대공포화초자 버티는 견고함 과 레시모프전투기 특유의 안정적인 가동률 그리고 이에따른 강한 생존능력 등으로 마땅한 지상지원기체가 없었던 미해군에 및 미해병대의 든든한 공중지원기체로 맹활약을 하면서 이 기체에 대한 시선을 다시 잡게하는데 큰 일조를 하게 됩니다.
결국 한국전쟁에서의 맹활약으로 스카이레이더를 다시보게 되면서 이후 AD-1들은 베트남전까지 무려 30여년이 넘게 사용된 최후의 레시모프 공격기로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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