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야기
임병식 rbs1144@hanmail.net
가끔 한 번씩 찾아온 친구와 차를 타고나가 바람을 쐰다. 찾아오는 날은 미리서 어디 가지 말라며 시간을 정하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예정한 시간에 맞추어 차를 댄다. 이런 날은 순전히 나를 배려하는 날이어서 행선지며 들르는 식당에 대해서는 입 꼭 다물고 노코멘트다.
보아하니 지난번 들른 곳은 낯이 익던 곳인데, 이번에 향하는 곳은 오리무중이다. 아는 식당에서 포장음식을 시키더니 차에 싣고 서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향한다. 목적지에 이르니 의외로 전망이 좋은 정자가 나온다.
" 코로나도 수그러들지 않았는데 사람이 붐비는 식당에서 밥 먹기가 좀 그래서 생각해낸 아이디어네."
그의 배려가 따스하게 느껴진다. 나도 대찬성이다. 인적 없는 한적한 곳에서 둘만이 마주 앉아 식사를 하니 마치 소풍 나온 기분이다. 멀리 시선을 던져본다. 여수 바다경관이 한눈에 조망되는데 점점이 박힌 작은 섬들이 여간 정다워 보이지 않는다. 조발도와 둔병도, 낭도와 상하와도가 손에 잡힐 듯이 펼쳐진다.
한 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나는 그간 모르고 지냈던 감동어린 일화를 들었다. 이날은 주로 내가 온전히 청자(聽者)가 되었다. 들려주는 이야기가 사뭇 감동적이다.
친구는 평생 교편을 잡으면서 마지막에는 교장으로 퇴임을 했다. 나는 그가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제자들로부터 화분이며 선물을 받는 다는 이야기는 들어왔지만 제자들과 얼마나 소통하고 돈독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지내는 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풀어내는 이야기를 들으니 깜짝 놀랄 만한 흐뭇한 일화가 많아 부럽기만 하였다.
최근 이태동안은 코로나19 때문에 만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10여 년간을 쭉 스승의 날이면 제자들이 마련한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단다. 그런 과정에서 어느 해는 제자들이 한꺼번에 모이기도 하고, 재직한 학교 별로 따로 모이기도 했단다.
그런데 그 모임은 단출하게 사제 간에 만나서 밥만 먹고 해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부인들까지 대동하여 스승의 인사말을 듣고 제자들의 축하메시지를 나누며, 함께 한바탕 흥겨운 오락이 펼쳐진단다. 그러면서 선물을 하는데, 친구도 가만있을 수가 없어서 해마다 지역 특산물인 갓김치를 준비하여 나누어 준단다.
이 얼마나 흐뭇한 광경인가. 나는 사제 간에 펼치는 그 모임을 구경한 적이 없어 잘은 모르지만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끈끈한 정과 유대로 엉켜있는가를 짐작 할 수 있었다.
친구가 초임 교사시절이었다고 한다. 4월이면 가정방문이 잡혀있어서 연중행사로 나서게 되는데 이는 보통 고욕이 아니었단다. 무슨 일이나 대충하는 성미가 아니어서 일일이 집을 찾아가면 도회지는 그렇지 않지만 시골은 어려운 환경에다 대부분이 학력수준이 낮아 자녀의 학업성취에는 등한시 해, 애로가 많았단다.
그 시기는 마침 농번기가 시작되는 때라 가서보면 학부모가 일을 나가 빈집이 많고 기다리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면 식당이나 가게조차도 변변히 없는 곳에서 공부방을 살펴보고 나와, 들녘에서 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정환경이 어느 정도 인지 파악을 했단다.
이런 후에 학생을 만나면, 집을 둘러본 대로, 토끼는 잘 키우고 있는지, 부서진 사립문은 고쳐졌는지, 군대 간 형은 제대를 했는지 묻곤 했단다. 그러면 학생들도 마음을 활짝 열었다고 한다.
어느 집을 들렀는데 아버지는 이웃으로 머슴살이를 가고, 어머니는 서울에서 파출부로 일을 하는데, 시골에는 팔순이 넘은 눈먼 할머니가 어린 동생 네 명을 건사하고 있어 어린 학생이 가정역할을 하는 보고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단다.
또 한 번은 고교교사시절 토요일 어느 날 학생과 함께 가정 방문에 나섰다가 급보로 전해진 지인의 사망소식을 듣고 취소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이틀 후인 월요일에 다시 찾아가게 되었단다.
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엉덩이를 찧어 가며 어느 지점에 내려서 산비탈을 한참 걸어 오르니 듬성듬성 집이 보였다. 양철 갓을 씌운 싸릿대 문을 밀고 들어가니 구멍이 숭숭 뚫린 초가 마루에 오후 햇살이 가득 하였다.
인기척을 듣고 가까운 텃밭에서 일을 하던 나이 지긋한 여인이 막내의 담임을 보고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표정이 실로 난처하면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알고 보니 학생이 미리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온다는 말을 해주어서 대접을 할 닭을 삶아 변질을 막으려고 두레박에 끈을 매어 우물에 넣어 두었는데 오지를 않으니 방문 직전에 꺼내어 동네사람들과 먹어버린 것이었다.
그랬으니 얼마나 겸연쩍었을 것인가. 친구는 그런 순진무구의 훈훈한 인정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말하길, 사제 간의 끈끈한 정은 그런 하나하나의 사연이 쌓여서 견고해 진 것이 아닌가 싶다했다.
그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내가 다 기분이 흐뭇해졌다. 친구는 젊은 시절 고생을 많이 했다. 9남매 대식구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렵게 학교를 다녔다. 대학은 군복무를 하면서 파월을 자원하여 모운 돈으로 학비를 충당했다고 한다.
그만큼 투철한 의지를 가진 가운데 고생을 한 사람이라 그랬는지 어려운 제자들을 한명한명 보둠어 주었던 것 같다. 그랬으니 제자인들 그 마음을 모를 것인가. 그러니 스승의 날이면 해마다 그토록 제자들이 찾아와 은혜를 기려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에게도 그토록 마음 써 주는 있을까.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사는 일이 모두 오는 정 가는 정인데 그런 일이 없으니 있기나 하겠는가. 그것을 생각하면 친구는 스승으로서 얼마나 보람된 삶을 사는 것인가. 나는 그간의 일들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듣자니 친구가 여간 훌륭해 보이지 않았다. (2021)
첫댓글 그런 멋지고 존경스러운 분을 친구로 두신 선생님도 대단하시지요. 그의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사도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고들 하는데 젊은 시절의 온갖 간난신고를 꿋꿋이 이겨내신 바탕 위에서 사제지간의 정을 다지고 스승의 책임에 최선을 다하셨으니 제자들로부터 존경과 보은의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습니다. 감히 흉내내기도 어려운 인생역정에 부러움의 박수와 갈채를 보내드립니다. 한편으로, 그런 친구를 흠모하여 주옥같은 작품으로 소개해주신 선생님께 우정의 아름다움을 배웁니다. '송무백열'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지만 친구의 성공과 복락을 축복해주고 존경하기란 그리 쉬운 노릇이 아닐 것입니다. 선생님께 오랜 인고와 진실로 아름다운 희생과 사랑을 배웁니다.
친구의 감취진 이야기를 들으니 무척 감동스러웠습니다. 교직 초임에 그렇게 학기초 성심을 다하여 가정방문을 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런 끈끈한 인연이 사제지간의 정으로 끈끈하게 이어져 해마다 단독행사를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이 존경스럽기도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레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돌아봐지고 많이 반성이 되었습니다. '나는 과연 누구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던가'하는 생각이 스치더군요. 그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작품을 만들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