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처음은 항상 사랑하는 여자와의 안타까운 이별로 시작된다. 22세 청년 하멜은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기 위해 모두가 선망하는 증권 중개인 자리를 내던지고 전혀 새로운 미지의 세계에 운명을 건다. 암스테르담에서 자카르타를 거쳐 극동무역본부인 나가사키 네덜란드 상관을 향해 죽음의 항로로 가는 동인도회사 무역선이 그것이다. 가끔은 우연이 역사가 되기도 한다. 제주에 표류한 하멜 등 네덜란드 선원 36명이 그 주인공이다. 병자호란이 끝나고 17년이 지난 17세기 중반의 조선에 “그들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다”. 조선에서의 13년 동안 세계최강의 무역국 선원답게 조선(造船), 화포제작, 천문 역서, 의술 등 서양의 문물을 우리에게 전할 수도 있었다. 이미 27년 전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벨테브레가 박연이라는 이름으로 훈련도감에서 총포제작에 종사했듯이 말이다.
못난 조선의 미친 세월
그러나 그때 조선은 중국을 세상의 중심에 모시고 우리는 소중화(小中華)라도 열심히 해야 살아남는다는 세계변방의 청맹과니에 불과한 채 캄캄한 동굴 속에 살고 있었다. 세상으로 열린 창은 중국으로 이르는 동지사 사신과 조공을 바치는 무거운 발길로 뒤덮인 대륙으로 통하는 육로밖에 없었다. 이미 15세기 초에 세상을 뒤흔든 정화함대의 진취성은 배우지 못하고 실용성이 배제된 성리학만을 지존으로 삼아 그들만의 왕국 속에 칩거한 것이다. 세상은 지리상 대발견으로 무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심지어 일본은 이미 16세기부터 해외교역을 시작하여 칠기, 도자기를 유럽에 수출하고 서양의 과학기술, 새로운 학문을 도입하던 그때였다. 이 어둠에 익숙한 동굴의 질서에 새로운 빛줄기를 수용할 우리의 왕은 없었다. 오히려 전쟁에 지친 헐벗은 백성을 닦달하고 신하들의 충심을 결집해 왕권을 지키려고 청나라를 치려는 북벌정책이라는 망상의 안개에 싸인 효종의 나라였다. “도도한 변혁의 바람, 역사의 수레가 굴러가는 방향을 보지 못하는 이 나라의 혼암(昏暗)한 군주가 나라와 백성을 온전히 바람 앞의 등불로 내던졌다”고 저자는 개탄한다.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필요한 역사의 패러독스는 있을 수 있다. “한국인이 하멜의 이야기를 평정심을 갖고 읽기는 쉽지가 않다. 조선조정이 그들의 표착을 계기로 넓은 세상에 눈을 뜨고 미래를 준비했더라면 그 후 우리 역사는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라는 저자의 육성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안타깝게 바랐던 그때 17세기 중반의 ‘세기 뛰어넘기’는 3백 년이 더 지나야 했다. 서울신문 문소영 기자가 피를 토하듯 그려낸 〈못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도 경험해야 했고, 6·25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한반도마저 분단되어 고립무원의 섬이 되는 냉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 거친 뱃길을 개척하며 몸부림친 60년 동안의 장엄한 세월은 새삼 말해 무엇 하랴. 그러나 하멜의 후손 히딩크와 월드컵 4강의 축배를 들기도 하면서 이제 세계무역 10대국의 깃발이 우리 역사가 되고 있다. 이제는 암스테르담 어딘가를 떠돌 하멜의 영혼에게 우리는 야만의 나라였던 적이 있었다고 말해줘도 좋을 듯싶다. |
첫댓글 되게 흥미있을 것 같은 소설이네요~ 시간 내서 꼭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ㅋㅋ
교수님께서 학기초에 하멜이야기 해주셨었는데, 그새 잊고있었습니다. 부끄러운 것은 제가 배운 지식들을 늘 단편적인 상태로만 남겨두고 이를 가지고 오늘의 문제로 생각해보는 데 게을렀다는 점입니다..
뭔가 신선한 소설이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