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단 빠지지 말고 열린 지평 향해야
깨친 몸 드러난 빼어난 양상
두드러진 모습 80가지 소개
‘부자지→음장’ 번역했으나
청량국사는 ‘유여마왕’ 주석
‘화엄경’ 구성작가는 이전까지 내려오던 소위 ‘깨친 이의 능력’에 관한, 즉 훌륭한 사람이나 신(神)들의 설화를 모아 제7회(총 11품)의 후반부 다섯 품에 배치한다. 배치 방법으로는 ‘불부사의법품 제33’에서 총론하고, 이후에는 각론으로 들어가, ‘여래십신상해품 제34’에서는 깨친 이의 몸에 드러난 빼어난 모습 중에서 아주 두드러진 양상[相] 80가지를 소개하고, 이상의 80가지처럼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좋은[好] 부분을 ‘여래수호광명공덕품 제35’에서 소개한다.
‘여래십신상해품 제34’를 먼저 소개한다. 품의 제목 속에 들어 있는 ‘10신(身)’이란 ‘화엄경’의 첫 품인 ‘세주묘엄품 제1’에서 교주의 불가사의함을 ‘지혜’와 ‘몸’의 측면에서 각각 논한 내용과 연결된다. 즉, ‘세주묘엄품’ 전반부에서 ‘화엄경’에 등장하는 부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⑴보리신 ⑵위세신 ⑶복덕신 ⑷의생신(意生身) ⑸상호장엄신 ⑹원신 ⑺화신 ⑻법신 ⑼지신(智身) ⑽역지신(力持身)의 측면에서 묘사하고 있다. ‘화엄경’은 전체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자, 그러면 부처님의 몸매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 거론 자체가 좀 ‘외람’될 수 있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직설적으로 말하면, 당시의 고대 인도인들이 좋게 생각하는 온갖 ‘멋진 몸매’를 부처님에게 가져다 붙인다. 총 97종의 거룩한 요소가 소개되는데, 그것을 신체 부위 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정수리(32상) ②미간(1상) ③눈(1상) ④코(1상) ⑤혀(4상) ⑥입의 윗잇몸(1상) ⑦오른쪽 뺨 아랫니(4상) ⑧오른쪽 뺨 윗니(1상) ⑨입술(1상) ⑩목(1상) ⑪오른쪽 어깨(5상) ⑫가슴(11상) ⑬오른손(13상) ⑭부자지(1상) ⑮오른쪽 볼기(2상) ⑯오른쪽 넓적다리(2상) ⑰오른 이니연(伊尼延) 사슴 장딴지(3상) ⑱발아래(13상)이다. 참고로 ⑰의 ‘이니연’은 ‘아이니야(aiņeya)’의 음으로 뜻 번역은 ‘녹왕(鹿王)’이다.
위에서 이미 ‘외람’을 자처했으니, 부처님의 ⑭부자지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도록 하자. 한문으로는 ‘음장(陰藏)’이라고 번역했는데, 운허 스님의 ‘한글대장경’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여래의 부자지에 거룩한 모습이 있으니, 이름이 부처 음성을 두루 내는 구름이라. 온갖 묘한 보배로 장엄하였고, 마니등 불꽃 광명을 놓으니, 그 빛이 치성하여 여러 보배 빛을 갖추어 모든 허공과 법계에 두루 비추며, 그 가운데 모든 부처님이 왕래하여 다니며 곳곳마다 두루함을 나타내나니,”
‘화엄경’ 본문의 해석만 보아서는 상상이 안 간다. 청량 징관 국사의 ‘소초’에는 “유여마왕(猶如馬王)”이라 간단하게 주석을 붙였다. ‘猶如’란 ‘~과 비슷하다’는 뜻이고, ‘馬王’이라 말들의 왕이니 말 중에서도 제일 크고 잘나고 힘센 말을 뜻한다. ‘말 거시기’처럼 생긴 것을 위의 인용문처럼 묘사해놓았으니, 청량의 주석을 보지 않고는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
참고로 대승 경전에 등장하는 한자 용어 중에, 명사(名詞) 뒤에 ‘~운(雲)’, ~해(海), ~왕(王) 등의 글자를 붙여 복합명사의 형태를 갖춘 단어가 종종 등장하는데, 이 경우 뒤의 명사는 앞의 명사를 형용하는 기능을 한다. 즉 구름처럼 드넓은, 끝없는; 바다처럼 넓은, 그 속에 별의별 것이 다 들어있는, 임금처럼 힘센, 높은, 다른 모든 것을 거느리는, 이렇게 앞의 명사를 뒤에서 꾸며준다.
고대 한어(漢語)로 번역된 경전을 읽을 때는 그 산스크리트어 대본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변형에 주목해야 한다. 청량국사의 경우는 40권본 ‘화엄경’의 번역 현장에도 참석했듯이, 산스크리트 텍스트를 보았고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남녀관계를 비롯하여 인도인들과 중국인들의 문화 문법 사고 등의 차이로, 번역을 에두르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래도 청량은 산스크리트 텍스트를 보았고 읽었기 때문에 주석에 ‘유여마왕(猶如馬王)’이라고 적을 수 있었다.
경학 연구는 다양한 언어 연구를 통해서 본래의 뜻에 주목하면서도 사상사적 의미에 주목하여, 믿음의 독단에 빠지지 말고 인간 연구라는 열린 지평으로 나아가야 한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