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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비단 금강을 걸으며 꼭 한번 찾아오마 산과의 약속을 했지만 살다 보니 잊어버리고 얼마 전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
깽이님과 금강을 걸으며 올려다본 어류산 늦었지만 그곳으로 찾아간다.
이른 아침 기차로 영동역에 도착한 후 늘 알고 지내던 영동의 개인택시 기사분께 오늘 일정을 말씀드리고
금강을 건너 어류산 지척에 내린다
영동군 양산면 죽산마을 세덕문
까치발로 서서 안을 들여다보면 팔짝 지붕에 아래 현판에 원모재라 쓰여있는데 이름 모를 가문의 재실인 듯하다.
세덕문 왼쪽을 지나 시멘트 포장길 따라가다 보면 빈집이지만 멋진 기와집이 나타나는데
주인장은 어딜 가셨나 기와지붕 옆과 뒤쪽은 세월의 풍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 있어 금방이라도 여우 귀신이 나올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시멘트 길 따라 끝까지 올라오면 밀양박공분들의 무덤 3기가 나타나는데
금강 건너편으로 성산과 황악산 줄기와 민주지산 각호산 천만산 삼봉산 방향이 길게 이어진다.
무덤 뒤쪽으로 희미한 길 따라 거미줄을 온몸으로 제거하며 오르면 잔잔한 바위길의 오르막이 나타나지만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밀양 박공무덤에서 잠시 오르면 노고산(老故山)에 쉽게 도착한다
노고산은 충북 영동의 변방을 지키던 곳인가 봉화대인지 성터인지 정상 주변으로 돌무더기가 빙 둘러 쌓여있다.
이곳 노고산성은 삼국시대때 인근의 할머니들이 앞치마에 돌을 가지고 와서 쌓은 성(城)이라 전하는데
이곳에서 쌓은 기술을 바탕으로 할머니들이 마니산성까지 쌓았다고 하니 그 할매분들이 대단하기만 하다.
백두대간길에 만나는 고지가 높은 성들은 대부분 신라의 성이라면 대간길 변방은 대부분 백제의 낮은 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돌을 쌓아 놓은 곳이 자리하고
곧이어 갈 길은 돌 축대 아래로 숨어있어 길 찾기에 조금 신경 써야 할 듯하고
능선은 오르막과 내리막길 주위의 경치가 좋고, 막힘이 없어 바람이 잘 부는 곳을 지날 때마다 잠시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아참! 오늘은 전국적으로 비가 오는데 여기는 비가 오지 않고 구름만 잔뜩 끼어있는데
지난날 대간하면서 산신께 너무 대들었더니 요즘은 산에 들면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
바로 앞의 봉우리는 오늘 가야 할 어류산이고 그 앞에 시루봉이고 금강이 흐르는 끝 부분에 보이는 뾰족이는 산삼이 많이 난다는
초강천 옆의 박달산이다.
박달산 하면 덕대골이 떠오르는데 예전 KBS프로그램 중 전설의 고향에 "덕대골" 이란 이야기로 나왔던 무시무시했던 이야기
아시는지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죽은 지 3일이 지나지 않은 시체의 다리를 고아 먹이면 병이 낫는다는 스님의 말씀을 믿고
야심한 밤에 덕대골에 들어가 죽은 사람의 다리를 잘라오는... 엄청 무서웠던 이야기로 야간 산행할 때 가끔 덕대골의 전설을
생각하면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진다.
오늘 여기까지 왔으니 산행 마치고 저곳 박달산 덕대골인가 하는 곳에 한번 찾아봐야겠다. 덕대골 이야기는 대충 이렇고
그 뒤로 상주와 영동의 경계인 백호의 기운을 가진 백화산과 주행봉이 보인다.
그 옆으로 백마산과 지장과 봉대 그리고 백두대간 난함산과 눌의산 장군봉 황학으로 이어진다
무주의 청량산이 날개를 펼쳐두고 있고
덕유가 보였다가 사라진다. 아마도 덕유에 비가 오는 듯
가야 할 어류산과 금강이 흐르고 금강 끝머리에 높은 곳은 박달산과 그 뒤로 백화산
우측으로 백두대간길이 이어진다.
조망은 아주 탁월한 산이니 시간나시는 분들은 한번 찾아보시면 아주 좋을듯하나
마니산까지만 걷고 내려 가시길 ...계속 진행하시면 후회할 수도
멀미 날 것 같은 일렁임이 이어지고 끝으로 어류산이 있고 그 뒤로 국사봉이 보인다.
능선에서 보는 조망이 아주 좋고 우측은 거의가 절벽으로 이어져 바람이 거침없이 불어 주는 곳
아직까지 길이 좋고 어류산까지 이런 길이 쭉 이어지길 바라본다.
갈기산과 월영산 방향
가운데 동골산 우측으로 천태산이 지척이고
동골산과 천태산 사이로 흐르는 하천은 호탄천으로 노국공주가 나라가 평안케 한다는 뜻의 영국사(국청사)로 들어갈 때
신하들이 널빤지를 깔아준데서 이름을 찾을 수 있는 널판지 다리라는 뜻의 양산면 누교리(樓橋里) 마을이 지금도 있을 테고
홍건적에 쫓겨 도망 다니던 공민왕이 마니산성(충북 옥천 이원면과 영동 양산면 경계산)에 임시 수도를 마련하고
영동땅 양산면 죽산리에는 육조의 행정부를 마련하였다
왕가의 가족들은 천태산의 국청사 지금의 영국사에 거쳐를 마련했다고 전하는데 도망 다니며 목숨은 구했지만
목숨을 걸고 고려의 개혁하고자 했으나 훗날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한 비운의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의 수도에서 경상도 문경을 지나 안동 봉화로 이어가던 공민왕이 찾아온 곳이 이곳 영동지역인 듯 그리고 부산 통도사에 가서
부처님 진신사리 하나를 가지고 속리산 법주사에 들러 놓고 가시고
고려 공민왕 이후 조선시대에는 찌질이 선조께서 북으로 도망가시며 갖은 궁상을 다 떨쳤는데
그다음 인조께서는 남한산성에서 극한의 궁상을 떨다가 삼전도에서 삼배 구고두례까지 하는 치욕을 보여 주셨으니
공밍왕께서는 전국을 피란 삼아 간 곳 보다 안 간 곳을 찾으면 더 편안할 듯하다.
갈기산과 월영산 동골산 그 뒤로 천태산
갈기산이나 월영산 그리고 천태산은 어지간한 산꾼들은 거의 가봤을 정도로 이름난 산들이다.
우측으로 어류산 금강 멀리 뾰족한 곳은 박달산 그 뒤로 백화와 주행
그 옆으로 봉대와 지장이 있고 우측으로 눌의와 장군으로 이어니는 대간길
금강은 전북 장수군에서 흘러와 진안과 무주, 금산, 영동으로 흘러들어 와 있고
우리나라 4대 강 중에서 그나마 깨끗한 강이지만 대청호에 들어갔다 나오면 물은 많이 흐려진다.
다음에 갈산으로 상주의 백화산을 지척에 두고 있는 갑장산이나 노음산에서 동, 서로 보이는 산들을 구경해야 할 듯하고
대성산과 가야 할 마니산 방향
시간이 나면 대성산에서 서대산으로 한 바퀴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멀리 무주의 적상산이 보이고 그 옆에는 마향산이 금강으로 향하듯 서있고
그 앞으로 백화산에서 이어지는 능선이 갈기산을 만들어 놓았다.
갈기와 천태 사이에 금강이 흐른다면 그 뒤로는 금산 인삼의 전설을 간직한 진악산이 살며시 고개를 내미는 곳이겠고
가운데 산이 천태산 초입의 동골이 맞다면 그 옆으로 천년 사찰 영국사가 자리하는 곳이겠다
가야 할 마니산 정상 부근과 중심이재 옆으로 사자머리봉이 보이고
마니산 정면을 지키는 향로봉의 바위가 절벽을 이루며 서있다.
향로봉은 마니산 동쪽을 보며 제수를 한상 가득 차려놓고 엎드려 절하는 모습인데 산마루에서 보는 것보다
산 아래서 보는 모습이 더 웅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려 제31대 왕인 공민왕이 임시 거쳐를 마련했다는 마니산성
공민왕은 몽골 풍습을 금지하고 과거제를 실행하여 권문세족에 대항했으며
나름 열심히 했으나 노국공주가 아이들 낳다가 죽자 그때부터 변하기 시작하여 술과 향락에 빠져 부하들에게
죽음을 당한 비운의 왕이었고, 그동안 승려 신돈이 개혁에 열중했으나 권력에 힘이 생기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라 결국 공민왕 손에 죽는다.
마니산 아래 중대마을에서 천태산 영국사로 가기에 이 고개가 가장 빠른 길이니 이 길을 통해서 육조대신들이 한숨 쉬거나
우리가 지금 뭐 하는 짓거리냐며 투덜대며 넘어갔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마니산의 등로는 오르막과 내리막 길이 확연히 구분되고 오를 때 암릉 구간도 있어 재미를 더해준다.
지나온 능선과 오정저수지
멀리 보이곳은 청량산이고 그옆으로 덕유가 보였다가 사라지고 그 옆에 적상산이 보란 듯 서있다.
적상산 앞으로 백화산이 서있고 조망은 아주 좋은 산
가야 할 사자머리 능선들
마니산 정상부근의 성터
성터는 삼국시대에 백제가 축조한 것으로 보이며 성의 길이는 노고산에서부터 이곳까지 이어져 또 다른 곳까지 연결되는 듯한데 10km 이상이며 좌측으로는 아주 견고하게 쌓은 성으로 보인다
마니산 정상으로 가기 전에 만나는 마니산성
서남쪽에서 정상으로 이어진다.
마니산인가 마리산인가
정상에서 조망은 하나도 없고 영동군에서 세워둔 정상석이 시커먼 사람을 만나 까맣게 질린 듯 서있다.
대성산과 옥천의 개심저수지 월이산 방향
마니산성
복원을 하지 않은 예전 모습 그대로 잘 보전되어 있고
앞으로도 복원을 하지 말고 지금처럼만 잘 관리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니산성
백제의 할매분들이 앞치마에 돌을 담고 날라서 만든 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남정네들은 밥숟가락만 놓으면 산너머 신라인들과 싸우러 가느라 바빠서 그랫다나 뭐라나...
까칠한 산에서 성 쌓는 일보다 차라리 보리문둥이들과 싸우러 가는 게 더 좋을 듯
마니산에서 내려오면 너럭바위가 있고 그 아래 마을은 중심이 마을로 앞은 지나온 노고산
멀리 민주지산이나 석기봉 방향 가운데 멀리는 무주의 청량산인 듯 그 옆에 적상이 보인다.
바로 앞은 마니산 향로봉인데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보던 조망과는 다르게 명품 조망이 펼쳐진다.
이곳에 앉아 잠시 휴식 겸 조망 구경하고 일어나
가야 할 사자머리산과 좌측에 국사봉이 자리한다
가야 할 어류산 방향
벌목한 곳으로 기어오르면 되고
벌목봉 이후로는 등로가 조금 거시기 하니 지도 잘 보시고...
마니산과 사자머리산
등로는 조금 별로이나
여름에 오면 멘탈이 톡톡 털릴 것 같은 첫 번째 우거진 숲을 헤집고 오르면
아! 여기는 아닌갑다며 한소리 할 수 있는 곳을 지나
등로는 없고 무작정 앞만 보고 오르면 되는 어류산 오름길
지나온 사자머리산과 멀리 가장 높은 곳은 충남제일의 서대산으로 보인다.
어류산 정상에서 보는 조망
황악에서 삼도에서 민주지산 방향
좌측으로는 절벽이며 아차하는 순간에 저 아래까지 굴러 떨어질 것 같다.
가운데 멀리 보이는산은 백화산이고 그 앞에 보이는 산은 박달산 그 옆으로 월류와 굴봉 백마산 눌의산 장군 황악으로 이어지는 대간길
어류산 정상모습
아침에 오른 노고산
바로 앞에는 어느분의 무덤인지 작고 초라하게 꾸며놓았다.
하산길은 좌측은 절벽이고 우측도 급경사로 되어있어
자칫하면 맨탈이 올 수도 있고 참 난감하네
어류산에서 하산은 길은 없지만
산중턱에 자라하는 어룡사로 내려갈까 하고
절벽 옆 나무를 잡고 조금 내려가 보다가 이런 길이라면 점심도 못 먹고 저승행 골로 갈 것 같아 다시 기어오른다.
길이 있던 없던 그저 능선따라 와야 명대로 살 것 같다.
태소 마을에 내려와 본 어류산 모습
저곳으로 보이는 절벽으로 기어 내려오다가 골로 갈뻔했지만
대단한 산이며 기가 팍팍 느껴지는 산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태소 마을에 내려오니 비가 조금씩 내리는데 길가 버스 승강장에 앉아 20분 전에 호출한 택시 기사님을 기다린다.
물 한잔 하며 지난날 걷던 금강길을 지나며 써둔 사진이나 글도 들춰보고
자리를 옮겨오니 가랑비는 그치고
전설의 고향에 나왔던 박달산으로
초입은 초강천 이 흐르는 송천교에서 천천히 오른다,
박달산으로
등로는 아주 좋고 거의 평지 같은 오름길이 정상까지 이어진다.
박달산에서 본 구병과 속리산 방향인데 비가 오는지 안 보이고
박달산에서 본 팔음산과 백화산
날씨만 좋다면 상주의 노음산이 훤히 보일 듯한데
팔음산과 백화산 그 옆으로 지장산과 봉대산이 이어졌는데
봉대가 어디로 가고 백하만 천상천하 유아독존인양 우뚝 솟아 있다
이번 조망 구경 산행은 우리나라 남한 국토의 중앙 격이라 할 수 있는 충복 영동 하고도 조망 하나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백화산에서 시작했으며 백화에서 보는 조망 중 단연 압권이라 할 수 있는 곳을 골라 동, 서, 남북으로 찾아가며 즐기는 산행을 한다.
봉대산 월류봉 난함산과 눌의산 그리고 가장 높은 곳은 황악산
가운데 뾰족한 곳은 굴봉 그 옆으로 각호지맥길이 이어진다.
굴봉 근처는 황간면쯤 되겠고 그 뒤로는 상촌면의 고자리나 초강이 흐르는 곳이겠다.
박달산 깊은 골 덕대골에는 천년 묵은 동자삼(蔘)이 자라는
그 옛날 남편이 몸이 아파 누워있었는데 백약이 소용없고 덕대골 깊은 곳에 버려진 죽은 지 3일 된
시체의 다리를 잘라먹이면 낫는다 하여... 시체의 다리를 잘랐지만 이후에 내다리 내놓으라며 따라오던 산발한 귀신
우리나라 몇몇 곳에 박달산이 있지만 충북 영동의 박달산만큼 무서운? 전설을 간직한 산도 없을 듯
백달산에는 산삼이 많다고 하니 간 큰사람은 한번 찾아보시기 바라고
운 좋으면 덕대골의 천년 묵은 동자삼을 하나 얻을지
앞으로는 초강이 흐르고
좌측 멀리로는 눌의산 장군봉으로 이어져 황악산까지
황악산 앞으로 뾰족한 부분한 굴봉이고 그 옆으로 백마산과 지맥길이 이어지는 곳
인증 한 장 남기고
이제 된비알의 내리막길을 내려가야
미친척하고 한발 헛디디면 저 아래 마을까지 쉽게 내려갈 정도의 급경사가 기다린다.
내려와서 본 박달산
그리 높지 않지만 무서운 전설 하나 품고 있는 박달산을 뒤로하고
영동 택시를 불러 놓고 기다리는데 또다시 비가 내린다.
오늘은 하산때만 비가 내리니 대간길 산신분들이 이제 마음을 잡으신 듯
다음 갈 곳은 백화산 동쪽으로 보이는 상주의 노음산과 갑장산으로...
첫댓글 금강주변 산군들과 역사에 얽힌 산성의 의미를 되사겨 봅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노고어류 한바퀴랑 옵션으로 박달산까지 참 알차게 돌아보셨네요.
조만간 시간 나는대로
돌아봐야겠네요.
노고산과 박달산중
일출이 좋을것 같은산은
어디일까요?
바쁘다고 하시더니 잠시 시간이 나셨나 봅니다.
시간날때마다 주변 산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휘리릭 돌아보면 그게 더 즐겁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만의 산행코스를 만들어 돌아다니는
그 시간 만큼은 온전히 내 것 이니까....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방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산행도 안산하세요~~^^
앗!! 박달산!!
내 다리 내놔~~ 내 다리 내놔~~~
😱😱😱
멋진 조망이 줄줄이 터지는 근교산행 좋네요
역사의 이야기와 전설이 내려오는 금강 주변산을 다녀 오셨군요
대간길에서 산신분들이 마음을 잡으셨으니 방장님만 믿고 따라 다니면 비는 안맞고 잘 피해다닐듯 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구요 다음 산행지 노음산과 갑장산도 잘 다녀 오십시요
직업을 역사학자로 ㅎ
이번주에는 순서가 형님
어르신들 다보냈더니 ㅎ
작년에 아내와 더불어 둘러본 줄기를
친구님 설명을 들으며 다시 보니 사뭇 새롭고 얻는 게 많습니다. 고맙습니다.
노고산(老故山)을 노고산(老姑山) 또는 노고산(老高山)으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산에 '노고사(老姑寺)'와 '노고산성(老姑山城)이 있었다 하니 말입니다.
노고(老姑)는 우리말로 '할매'이고요,
이는 우리가 예로부터 '산'의 이미지를 '여성'으로 인식해 온 것과 관련된 일인 듯합니다.
한편, 노고(老姑)에서 '고(姑)'의 발음을 음차하여 '고(高)'로 쓰기도 하였는데,
예컨대 [조선지지자료]라는 책에는 영동의 노고산을 노고산(老高山)이라 적어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