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Today’s Meditation)
본문 : 디모데전서(1Timothy) 4장 7절에서 11절
예전에 한국 교회는 제자훈련이라는 것이 나타나서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주로 선교단체에 의해서 그 프로그램들이 운영되었으나 선교단체에 영향을 받은 교회들에서도 그것이 적용되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제자훈련을 목회사역에 적용하는 교회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훈련이란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언급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4:7~8 망령되고(godless myths) 허탄한 신화(old wives' tales)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train yourself to be godly) 8 육체의 연단(physical training)은 약간의 유익(some value)이 있으나 경건(godliness)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the present life)과 내생(the life to come)에 약속이 있느니라.
에베소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을 숭배하는 신앙과 헬라철학 그리고 페르시아나 중동지방에서 나타난 종교들 그리고 흩어진 유대인들에 의해 전파된 유대교의 율법주의 등이 두루 퍼져있었고, 또 그 중에는 여러 문화와 신화와 종교들이 혼합되어 나타난 종교적 현상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백해무익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권면하는 말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성도들이 자신들을 연단(훈련)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건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는 말은 성도들의 삶 속에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은 현재 경건에 이르도록 우리 자신을 연단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육체의 연단과 경건을 대조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연단은 많은 신학자들이 주석하였듯이 율법을 지켜 행하며 그 율법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연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그러한 것도 아주 유익이 없는 것이 아니며 약간의 유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켜 행하는 것보다 더 유익하며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경건입니다. 경건은 앞서 설명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함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없이 아무리 노력하고 구약의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려고 노력한다 해도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삶은 이 세상에서 범사의 삶에도 유익이 되고 또한 장차 나타날 천국에 들어가서 살아가는 삶을 위해서도 유익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는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서 범사에 유익하고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주어진 경건의 삶,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4: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바울은 이렇게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연단하라는 말은 진정으로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말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길 외에는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연단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연단하는 것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가치가 있고 영원을 보장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4: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이를 위하여’라는 말은 4장 8절에 나온 ‘범사에 유익한 경건을 위하여’라는 의미입니다. 즉 성도들의 경건을 위하여 바울과 복음의 동역자들은 수고하고 힘썼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경건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과 순종의 삶이 경건인데 바울과 동역자들은 에베소 교인들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경건을 위해 수고하고 힘썼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고와 힘씀은 모든 사람들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이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도들의 경건을 위해 힘쓰고 애쓰는 일이 아무 소망이 없고 목적이 없다면 성도들의 경건을 위한 모든 수고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을 둘 수 있는 하나님, 즉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자이신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범사에 유익한 경건을 위해 힘쓸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종들은 성도들의 경건을 위해 우리의 소망을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이신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그러한 소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소망을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께 두고 행하고 계십니까?
4:11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바울은 디모데 목사에게 ‘이것들’, 즉 범사에 유익한 경건,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하나님의 뜻(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명령하고 가르치라고 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종들, 특히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훈련해야 할 은사와 사명을 가진 주의 종들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거하도록 권하고 격려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 순종하며 살아 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권면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종들은 성도들이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들 스스로 연단하도록 권면하고 격려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