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6.木. 에어컨 없던 때가 더 시원했다고요
07월22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3.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여름밤이 가장 시원했던 때는 에어컨 바람을 쐬거나 냉 수박화채를 먹었던 기억이 아니라 감춰진 내 안에 따로 들어있었다. 사실이지 여름이 두려운 것은 더위와 모기 때문이었다. 날씨가 무덥고 후텁지근해지면 우선 생활이 불편해지고, 필요 없는 에너지 소비가 많아 매사에 집중이 되지 않고, 하려는 일이 매끄럽게 되지 않으면 짜증이 나고, 더 심하면 슬그머니 열을 받게 된다. 기계나 사람이나 열을 받게 되면 작동이 불안하고 효율이 떨어지면서 고장의 위험이 높아진다. 쉽게 말하면 자기제어나 통제가 점차 어렵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 상태까지 가기 전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조절調節을 하든지 순응順應을 해야 한다. 그런데 건강법을 몰라서 건강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여름에 대한 조절과 순응이 생각보다 간단치가 않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자신만의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이런 여름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보게 될까...’ 라고 말했던 하얗게 머리 센 영감님은 착한 사례가 될 수도 있다. 아무튼 나도 이제는 착한 그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 가능한 나이가 돼버렸다. 이럴 때는 나이 들어가는 것이 고맙기도 하다. 삼복三伏 중에 밤새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있다.
집이 크고, 앞마당이 넓고, 화단도 넓고, 뒤꼍도 넓고, 장독대도 크고, 텃밭도 널찍하고, 뽐뿌 물이 잘 나오고, 감나무와 목련나무와 후박나무가 무성하고, 다알리아와 맨드라미와 봉숭아와 채송화가 가득 피고 지는 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여름에는 마당 한켠의 감나무 옆에 평상을 놓고 긴 끈을 나뭇가지에 묶어 모기장을 쳐놓고 잠을 자면 새벽녘에는 추울 정도였다. 그런데 거기에서 혼자서는 잘 수가 없으니 아빠나 엄마 옆에 붙어서 자야했다. 하루 저녁에는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모기장이 쳐진 평상에 누워 있다가 그대로 잠에 들어버렸는데, 엄마께서 그곳이 시원하니 잘 자겠지 하고는 그냥 방에서 잠이 드신 모양이었다. 새벽녘에 으스스한 냉기에 잠에서 깨었는데 여기가 어딘 줄 모르다가 정신을 차리고서야 홀로 마당 한켠의 평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모기장 밖 주변에 바람이 불었다. 나뭇가지와 화초들의 잎사귀가 서로 부딪치고 부비 대는 소리가 깜깜한 어둠속에서 서걱~ 서걱~ 들려오면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고 알지 못하는 것은 일단 두려움의 대상이고, 거기에 상상력이 자극을 가하면 등줄기가 쒜~ 해지는 공포감이 느껴온다. 이런 상황을 맞으면 손바닥과 이마에 식은땀이 나고 머리칼이 곤두선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제부터 생물학生物學 이론을 사용하겠다는 이야기인데 듣는 입장에서는 더 복잡해질 수도 있음) 몸이 비상체제非常體制로 들어간다는 말이 된다. 몸의 자율신경계自律神經係의 교감신경交感神經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심박수가 늘어나고, 홍채산대근의 확장으로 동공이 확대되며, 침샘의 분비 억제로 입안이 마르고, 췌장의 분비 저해로 혈관 내 혈당이 증가하며, 부신수질세포 자극을 해서 혈중 에피네프린과 노르에피네프린 분비를 촉진하고, 요도괄약근을 수축해서 방광을 압박하고, 생식기를 자극해서 질 수축收縮 및 힘찬 사정射精을 유도한다. 동기 중에 이상한 놈이 하나 있었는데, 대학시험을 보다가 지나친 긴장감에 그만 사정射精을 해버린 녀석이 있는 걸로 봐서 공포감恐怖感에 교감신경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생식기를 자극한다는 이론은 맞는 것 같다. 그 동기는 그만한 장애 속에서도 정신을 놓지 않고 음습한 정열情熱을 학구열學究熱로 바꾸어 대학시험에 합격을 했다. 나중에 동기들 사이에 이 소문이 퍼지자 일약 야성野性과 지성知性을 겸비한 자랑스러운 동기가 되었다. 성이 오 씨인 이 동기의 별명은 결국 사오정이 되었는데, 그 사건을 모르는 사람은 별명의 근원을 추론해내기가 여간해서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에피네프린’은 ‘아드레날린’ 으로도 불리며 호르몬과 세포신호전달물질로 작용을 한다. 아무튼 이런 경계境界에 다다르면 안방으로 냅다 뛰어가거나 화장실에 번개처럼 다녀오고 하는 등의 모든 행동을 중지하고 담요를 푹 둘러쓴 채로 얼른 새벽이 오고, 닭이 홰를 치면서 꼬끼오! 울고, 오로지 날이 밝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닭이 홰를 치다’ 라고 써놓자 딱 하나 달린 댓글이 ‘닭이 스시도 잘 만듬?’ 이었다. 이 정도라면 언어적 감각이 넘치는 건지 자율신경계가 무신경한 건지 아무튼 이 댓글이 오늘 최고 댓글임에는 분명했다.
‘70년도쯤에는 충장로 입구 우다방郵茶房(우체국의 별칭)의 에어컨이나 무등 극장 에어컨도 시원했지만 몇 군데 은행과 사무실을 제외하고 아직 에어컨이 사치품으로 구별이 되던 때라 일반가정에는 에어컨이란 것이 거의 없었다. 물론 내 수준의 이야기라서 부유층이나 재벌층 집에는 가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 집들의 사정은 잘 모르겠다. 고등학교1학년이 되어 키가 우쭐우쭐 커버린 나를 아빠는 자주 앞장세워 함께 데리고 다녔다. 그래서 아빠 친구 분이었던 어느 사립 고등학교 이사장 댁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집 안방에는 잉~ 잉~ 소리가 나는 에어컨이 켜져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촌스런 박스 타입의 에어컨에서 소음은 심하게 나고 뭔지 표면에 물방울이 맺혀있었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방에 들어서자마자 칠리한Chilly 냉기冷氣에 약간 기가 죽은 상태였다. 널따란 정원이 잘 갖추어진 우람한 한옥에 집안 내부는 양식으로 개축을 한 실내장식이었고, 예쁜 미소를 띠면서 다과를 들고 들어온 아주머니와 이사장 아저씨의 나이 차가 꽤 많이 날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무더운 여름밤이라 방에 앉아 다과와 수박화채를 먹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에어컨 향기가 얼마나 강하게 온몸을 누비는지 사립 고등학교 이사장이란 지위가 엄청 부자인가보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 시간 남짓 어른들께서 대화를 하는 동안 일반 가정에서는 처음으로 맛보는 에어컨 바람에 몸을 충분히 맡기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른들의 이런저런 대화 도중에 여담餘談으로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내 귓속으로 들려왔다. 요약要約 하면 에어컨 집 아저씨께서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에 밤중이나 새벽이면 미확인물채가 나타는 바람에 숙직을 하는 선생님들이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사장 아저씨는 ’요새 젊은 놈들이란 대가 약한데다 간이라고는 좁쌀만 해서 도깨비가 방귀만 뀌어도 놀라자빠지는 게 능사니 헛것들이 사람을 우습게보고 아무데서나 날뛰지를 않나 북채를 함부로 흔들어 대지를 않나 참 꼴값을 떨고들 있단 말일세. 바람에 커튼만 날려도 귀신이 나왔다고 벌벌 떨면서 젊은 놈들이 더 이상 숙직을 못하겠다고 해서 교장이 아주 골머리를 앓고 있는 모양이어서 무슨 대책이 필요한 모양이더라구 말일세. 그래서 하루 날을 잡아서 내가 숙직을 하겠다고 소리를 쳤더니 숙직을 서네 못 서네 하는 소리가 쏙 들어갔거든. 아마 다음 주부터는 그런 쓸데없는 소리가 우리 학교에서 천리千里나 만리萬里나 사라져버릴 것일세.‘ 글쎄, ’70년이면 아직 우주선이 달나라에 가는 세상은 아니었어도 도깨비나 귀신놀이에 놀아날 만큼 녹록한 시절은 아니었을 텐데 의외로 학교나 도서관이나 극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대한 공공公共의 불안감이 공공연公公然하게 퍼져있었던 모양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아빠께 호기심에서 그 이사장 아저씨께서 밤에 학교에서 숙직을 서겠다는 말은 사실이냐고 여쭤보았다. 그랬더니 가타부타는 말씀하시지는 않고 단지 그 아저씨가 어려운 집안에서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홀로 힘들고 독하게 사업을 해서 자수성가自手成家를 한 분이라 마음이 굳세고 강단剛斷이 있는 사람이라는 정도로 이야기를 해주셨다. 여자의 미덕을 말할 때 조신操身하고 음전하다.라는 말이 최고의 칭송인 것처럼 남자의 경우에는 마음이 굳세고 강단剛斷있다.라는 말이 칭찬의 말씀인 것을 아는지라 나는 그 이사장 아저씨가 숙직을 선다는 말이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시간이 지나자 그 일들을 잊어버렸다. 고등학생들에게는 고등학생 정도의 일들이 훨씬 재미있는 법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초가을로 들어서는 계절이 되었다.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밤에 잠을 자기가 훨씬 편안해졌다. 그리고 매미 우는 소리도 한낮의 약간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서서히 사라져버렸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아빠께서 나에게 예전에 집을 방문했던 그 이사장이라는 아저씨를 기억하느냐고 물어보셨다. 네, 기억한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오늘 그 아저씨 문병을 가는데 함께 가겠느냐고 하셨다. 그 말을 듣자 그 아저씨의 숙직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네,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그때로는 귀했던 바나나와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들고 병원으로 갔다. 두어 달 만에 병실에서 본 그 이사장 아저씨는 두어 달 전에 만났던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모습이 달라져있었다. 퀭한 눈에 훌쭉 들어간 볼이 아주 중환자가 되어있었다. 아저씨께 인사를 드리고 어른들께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상상외로 들려오는 두 분의 대화 내용이 밝은데다 박수를 치기도하면서 가벼운 농담까지 주고받았다. 그리고 다시 아저씨께 인사를 드리고 병원을 나왔다. 집으로 오면서 아빠께서 말씀을 해주셨다. 한 달 전쯤에 몸에 열이 몹시 나고 두통이 심한 것이 처음에는 감기나 몸살인줄 알았다가 약을 먹어도 별다른 차도가 없이 너무 여러 날 그런 상태가 지속되자 병원으로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았더니 암이라는 판정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술을 받으려고 배를 열어보았는데 이미 손을 쓸 수 있는 단계가 지나버려서 그대로 열어놓은 자리를 다시 닫혀버렸다는 것이다. 담당 의사가 앞으로 길어야 3개월이라고 했다는데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치료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아빠께서 감탄하는 부분은 이런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는데도 이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운 일도 겪고 이겨왔는데 이런 정도로는 내가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는 굳은 신념이 있더라는 것이었다. 아빠는 정말 마음이 굳세고 강단이 대단한 분이라면서 한숨을 쉬셨다. 그리고 초겨울 무렵에 그 아저씨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지난 여름 학교 숙직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던 미확인물체나 헛것들을 학교에서 모조리 쫒아버리겠다고 숙직을 자청했던 쾌남아快男兒였던 이사장 아저씨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믿기지는 않았으나 사실이었을 것이다. 단지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죽음이 빨리 왔을 뿐이었다.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하느냐에 따라서 귀신의 존재도 이해하고 판단하는 방법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대체로 죽음이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귀신도 고통스러운 존재로, 죽음이 무심한 일이라면 귀신도 무심한 존재로, 죽음이 슬픈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 귀신도 슬픈 존재로, 삶과 죽음이 허망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귀신도 한갓 헛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