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감사는 감사를 불러들입니다. 뇌 과학자들에 의하면 감사하면, 세로토닌이 온몸에 쏟아진다고 합니다. 활성화된 옥시토신, 도파민은 단순히 삶을 긍정적으로 보는 차원을 넘어 창의력과 삶의 열정을 가져온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우울증, 근심, 걱정, 불안, 시기심, 미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덜합니다. 평생 동안 ‘감사 합니다’라는 한마디만 모든 말에 더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성경에는 많은 감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감사란 은혜 받은 자가 은혜 베푼 자에게 고마움을 마음과 행동과 입술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마음으로 하고, 입술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끝나야 합니다. 큰병을 앓고 난 사람들은 작은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눈뜨고 숨 쉬는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17세기에 작성된 청교도 신앙문답서인 웨스트민스터 교리 문답 1번은 “사람 된 첫 번째 목적은 무엇입니까?” 정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문답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답은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는 첫째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히브리어 원어 ‘조 베아흐 토다’ 즉 감사함으로 희생 제사를 드리는 자는 복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제사는 창세기의 카인과 아벨의 제사입니다. 카인은 땅의 소산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카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습니다. 왜 그러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것에 대한 여러 해석에서 이단이 발생합니다. 어떤 학자는 카인이 이미 죄인이었다. 카인은 아담의 씨가 아니고 사탄의 씨였다. 어떤 분은 대부분 가나안의 다른 부족들은 농경을 했으므로 유목민인 이스라엘이 우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카인은 농사를 지었는데, 농경의 신은 바알이고, 아벨은 목축을 하였는데, 여호와는 목축의 신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생명이고‘ 생명은 피 에 있으므로, 피 흘리는 희생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의 표상이기 때문에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고 하기도 합니다. 히브리어 원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카인은 추수의 마지막 날에 한 번 제사를 드렸다. 그것도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땅의 소산을 바쳤고, 아벨은 반복적으로 희생제물을 바쳤기 때문이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약 히브리서 11장 4절에서 그 이유를 “믿음으로 아벨은 카인 보다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아벨은 감사함으로 제사를 드렸고, 카인은 의무감으로 드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제사의 행위 제물의 내용이 아닌 마음과 중심을 중요하게 보셨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구약시대의 짐승을 제물로 드리는 희생 제사를 말합니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자의 제사를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더 이상 짐승을 바치지 않습니다. 로마서 12:1 말씀처럼,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는 시대입니다. 자신의 삶을 실제적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 마음 생각, 시간, 재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자를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시고 축복하십니다.
두 번째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됩니다. 신.구약 성서에 나오는 인간들은 두부류로 정리됩니다. 1) 감사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들, 2) 불평하여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부류가 훨씬 많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출애굽 일 세대들입니다. 그들은 광야에 이르게 되자 계속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물이 없다. 고기가 없다.” 가나안을 정탐한 후에도 “그들이 우리보다 크고 힘이 센데, 우리가 어떻게 그 땅을 점령 할 수 있겠느냐? 왜 우리를 이 광야로 내몰아 죽게 하느냐?” 어찌나 거칠게 대드는지 모세와 아론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서 30절에 하나님께서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리라. 너희 시체가 광야에 엎드려질 것이다. 너희 중 20세 이상 나를 원망한 자들은 갈렙과 여호수아 외엔 결단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평소의 언어 습관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감사의 말을 심어 감사의 열매를 거두기 바랍니다.
축구선수 황선홍이 교회에서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자신이 2011년 친정팀 포항 스틸러스에 감독으로 가서 선수들과 한 실험에 대해 애기 했습니다. 두 개의 화분에 각 각 고구마를 심고, 매일 같이 왼쪽 화분에다가는 “싹수가 노랗다. 너는 미워 못생겼어. 바보야!” 라고 하고, 오른쪽 화분에다가는 “초록색이 눈부시네, 넌 예뻐 최고야! 사랑해” 라고 말해주니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왼쪽 고구마는 덩이뿌리도 시원치 않고 잎과 줄기도 시들어 버렸고, 오른 쪽 화분의 고구마는 잎도 줄기도 생생하고, 덩이뿌리도 실하게 자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도 긍정과 감사의 말로 서로 격려하게하며 훈련을 진행했더니 결승까지 가게 됐고, 2013년 드디어 케이리그 클래식 우승, 에프에이 컵 우승까지, 케이리그 최초로 두 개 대회의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그것도 외국인 선수 하나 없이 국내 선수만으로 이룩한 결과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말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여러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고달프고 힘들어서 감사가 안 나온다고요? 억지로라도 하시면, 진짜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대표적인 이야기는 누가복음 17장 15절에 등장합니다. 10명의 나병 환자 이야기. 당시의 나병은 불치병이고 저주받은 결과라고 여겨져서 그들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마을에서 가족들과 같이 살지도 못하고, 혼자 외딴곳에서 살아야 했고‘ 사람을 만나면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고 외쳐야 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마을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선생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라고 소리 쳤습니다. 선생님이란 일반적인 단어는 그리스어로 ’디스칼로사‘ 인데 이들이 외친 단어는 ’에피스타테스‘입니다. 즉 나의 주인, 사령관이시여! 라고 부른 것입니다. 나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분이시여! 예수께서 그들의 간절함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나 고침 받은 사람 10명 중 1명만이 예수께 돌아와서 감사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는 사마리아인 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열사람이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나머지 9명이 모두 유대인이었는지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 유대인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께 오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만 구원 받는다는 선민의식이 깨졌습니다. 구원은 어느 민족에게 한 정된 것이 아닙니다. 감사로 영광을 돌리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습니다.
불평도 습관이고, 감사도 습관입니다. 불평하는 자에게는 행복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에 깃드는 것입니다. 뉴욕 빈민가의 어머니로 불리 우는 파머부인은 아버지는 감옥에, 어머니는 마약 중독자인 아이들을 모아놓고 ‘행복클럽’을 만들었습니다. 주변사람들이 다들 “얼마나 갈까? 저 아이들도 결국은 자기 부모처럼 될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파머 부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는 3가지 규칙을 세웠습니다. 1. 날마다 아름다운 것 한 가지 이상 본다. 2. 날마다 한 가지 이상 좋은 일을 한다. 3. 날마다 한 가지 이상 감사할 것을 찾는다.
이 세 가지 규칙을 적용하면서 아이들이 명랑하게 변화되었고, 행복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감사하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평강과 기쁨을 주시고 행복한 마음을 갖게 하십니다. 인류의 역사를 통털어 요즘처럼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시기가 없었습니다. 불과 몇 십 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을 누리고 삽니다. 휴대폰 하나로 전 세계의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사진. 동영상도 공유합니다. 끼니를 걱정하던 때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요즘은 너무 먹어서 비만이 걱정이고 다이어트가 화두입니다. 육십 세를 살면 장수했다고 환갑잔치를 했지만, 이제는 백세시대를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족함 없는 시대에 불만은 최고조에 달하고 우리의 삶에서는 감사가 사라졌습니다. 모든 것이 발달해도 상대적 빈곤을 느끼며, 불평하고 원망이 가득합니다. 감사가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불평 넘치는 삶을 삽니다.
진정한 감사는 어디서 올까요? 믿음에서 시작합니다. 지금의 내 삶에 만족하고, 구원의 확신이 있으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성도의 특권은 바로 감사입니다. 데살로니카전서 5:17 “항상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진정한 성도의 자세입니다. 입술로 감사하면 마음으로 감사가 전해지고, 내게 허락하신 많은 일들을 세어보면 감사할 일들이 아주 많습니다. 저의 감사는 1. 어제 아쿠아로빅 시간에 할머니들과 자리다툼 없었던 것. 2. 비록 마스크를 쓰고 하지만 3년 만에 여고 동창 합창 모임이 재개되어 연습하고,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하게 된 것. 3. 때마다 건강검진하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것. 등입니다.
찬양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기도로 감사를 굳건히 합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삶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신령한 복, 땅의 기름진 복, 건강의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정성으로 최선을 다해 감사의 예배를 올릴 수 있게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 연약한 저희들에게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주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이 없으면, 우리는 길을 잃고 마는 존재들 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떠나면 죄 가운데 빠져 헤매 일 것입니다. 성령님! 우리를 도우셔서 말씀을 붙잡고 빛 가운데로 걸어가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가족과 일터, 교회를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내게 주신 것들을 감사하게 하시고, 이웃과 평화롭게 살게 하옵소서. 단순하고 소박한 일상에 감사하며 늘 깨어있게 하옵소서.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볼 수 있게 도우소서. 우리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