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때기청봉, 사면 곳곳의 분홍은 이제 피기 시작하는 진달래꽃이다
아침저녁으로 기후가 변하고 昏旦變氣候
산과 물은 맑은 빛을 머금었네 山水含淸暉
맑은 빛은 능히 사람을 즐겁게 하니 淸暉能娛人
나들이꾼 흡족하여 돌아가기를 잊네 遊子憺忘歸
골짜기 나설 때는 해가 아직 일렀는데 出谷日尙早
배에 오르니 해가 이미 저무네 入舟陽已微
숲 우거진 골짜기에는 어둠이 깔리고 林壑斂暝色
구름과 노을은 저녁 아지랑이 거두네 雲霞收夕霏
――― 사영운(謝靈運, 385~433, 중국 동진), 『석벽정사에서 호수로 돌아가며 짓다(石壁精舍
還湖中作)』에서
※ 사영운은 등산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 산행일시 : 2014년 5월 24일(토), 맑음, 박무, 더운 날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18.5㎞
▶ 산행시간 : 9시간
▶ 갈 때 : 동서울터미널에서 06시 25분발 한계령 경유 속초 가는 특별 배차한 버스 탐
▶ 올 때 : 십이선녀탕계곡 입구 남교리에서 시내버스 타고 원통으로 와서, 원통에서 동서
울 가는 버스 탐
▶ 시간별 구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를 따랐음)
06 : 25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8 : 34 ~ 08 : 40 - 한계령, 산행준비, 산행시작
09 : 17 - 1,307m봉
09 : 45 - 서북주릉 진입, 삼거리
10 : 33 - 귀때기청봉(△1,577.6m)
11 : 13 – 1,443m봉
12 : 00 - △1,408.2m봉
14 : 00 - 1,284m봉
14 : 20 - 대승령(△1,210.2m)
14 : 46 - ┣자 안산 갈림길
15 : 55 - 용탕폭포
16 : 03 - 복숭아탕
16 : 52 – 응봉폭포
17 : 26 – 십이선녀탕계곡(탕수동계곡) 입구
17 : 40 – 남교리 시내버스정류장, 산행종료
1. 멀리는 공룡능선, 가운데는 용아능선
▶ 귀때기청봉(△1,577.6m)
양춘가절인 요즘 설악산 방면은 대성황이다. 한계령 가는 차를 주초부터 수배했는데 6시 30분
발 첫차는 일찌감치 매진이고, 6시 49분발 임시배차 좌석을 겨우 한 장 구했다. 오늘 그래도
혹시 첫차 차표 무른 사람이 있을까 하고 서둘러 나가 매표소를 기웃거렸더니 소득이 있었다.
설악산 등산객(?)을 위한 6시 25분발 특별배차가 있고, 좌석이 동나기 직전이다. 산에서나 이
른 아침 고속도로에서 24분은 엄청 크다.
확실히 6시 25분발 특별한 배차다. 경춘고속도로를 달려 동홍천IC로 빠져나가고 화양강휴게
소에서 잠깐 쉬었다가 냅다 달리는데 신남, 인제, 원통을 들리지 않는다. 장수대에서 등산객
한 사람 내리고 한계령에서 거의 다 내린다. 한계령에 오면 으레 그러하듯 건너편 흘림골 주변
의 연봉 실루엣 감상하고 나서 설악루 108계단을 오른다.
여기 오는 동안 내내 자욱하던 안개가 이만큼 걷히기 다행이다. 정덕수의 ‘한계령에서’ 서북주
릉 휘몰아온 바람 덕분이다. 산허리 돌다가 능선 돌길을 간다. 내 앞서가는 사람을 견디지 못
한다. 부지런히 걸어 앞지르다 경점일 데 나오면 꼬박 들리고, 그러다 보면 뒤처지고 다시 앞
지르기를 반복하여 마침내는 겔겔댄다. 암봉인 1,308m봉에 올라 장쾌한 서북주릉 일람하고
너덜길 내린다.
설악산은 그 이름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겨울산이다. 특히 너덜길 갈 때 작명이 적실함
을 절실하게 느낀다. 그때는 눈이 너덜 돌 틈을 꼭꼭 메우고 골라놓아 막 줄달음하였다. 두 차
례 산모롱이 돌고 대슬랩 덮은 데크계단 오를 때 뒤돌아보는 원근의 경치가 기상여건과 무관
하게 늘 아름답다. 오늘은 점봉산의 정좌한 윤곽이 뚜렷하게 보인다.
서북주릉 한계령삼거리. 줄 잇던 등산객들은 대부분 대청봉 쪽으로 간다. 나는 귀때기청봉으
로 간다. 이제야 한갓지고 발걸음이 편하다. 작년 이맘때 더산 님과 이 길을 갔다. 연중행사다.
어디까지나 주산부채(主山副菜)다. 내심 주채부산(主菜副山)으로 장수대에서 대승령 얼른 올
라 응봉이나 김부자터 자락을 누벼 곰취의 손맛을 보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다.
작년에는 이슬비 같은 안개비가 자욱하게 내리고 바람이 정신없이 불어대 허벌나게 떨었다.
오늘은 박무가 끼었지만 능선에 서면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 하늘 가린 숲길 잠시 지나고 너덜
길을 간다. 암릉 같은 너덜길이다. 귀때기청봉 정상까지 1㎞가 너덜이다. 어디를 디딜까? 알맞
은 바위 골라 오르느라 눈과 발이 바쁘다. 야광 폴과 노끈이 등로를 안내한다.
이곳은 이제 진달래가 피기 시작한다. 바위틈 비집고 강풍에 맞서 꽃을 피우려고 얼마나 애쓰
는지 꽃잎이 붉디붉다. 가도(賈島)의 시 “스스로 흘린 피를 꽃송이에 떨어뜨려(自有霑花血)”
라는 구절이나 백거이(白居易)의 시 “두견새가 한 번 울 때마다 두견화는 한 가지씩 핀다네(一
聲催得一枝開)”라는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너덜 오르는 걸음마다 원근고저 전후좌우 경점이다. 공룡능선, 용아장성, 백운동계곡, 소청봉
대청봉, 끝청봉, 점봉산, 망대암산, 가리봉, 촛대봉, 주걱봉, 안산 ……. 아껴 걷는다만 어느새
귀때기청봉 정상이다. 삼각점은 설악 305, 2007 재설. 안산에 이르는 아득한 장릉 바라보며
아까부터 벼렸던 얼음물로 목 추긴다.
2. 서북주릉 오르는 도중에 전망
3. 가리봉
4. 한계령 삼거리 근처 서북주릉 남쪽 사면
5. 한계령 삼거리 근처 서북주릉
6. 멀리는 점봉산
7. 왼쪽 멀리는 가리봉
8. 뒤가 귀때기청봉
9. 한계령 삼거리 근처 서북주릉 1,382m봉
10. 멀리는 점봉산
11. 귀때기청봉
12. 멀리는 공룡능선, 가운데가 1,275m봉, 아래는 백운동계곡
13. 멀리는 점봉산, 가운데 안부가 한계령
14. 가리봉, 그 오른쪽은 주걱봉
▶ 대승령(△1,210.2m)
또한 홀로 산행인 등산객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내 먼저 수인사 하고 말문 텄다. 어디로
가시려느냐고 묻자 남교리로 간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고 하자 대승령 통과 마감시간이 14시
라고 들었다며 대승령에서 공단직원이 지킬 거라고 한다. 괜히 말 걸었구나 싶었다. 몰랐더라
면 편안했을 걸음이 갑자기 불안해진다. 대승령에서 장수대로 쫓겨 내려가기란 영 쪽팔리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당장 도중에 사면을 들려 곰취 근황을 살피려던 계획이 틀어지게 되었다. 귀때기청봉 너덜길
을 주춤주춤 내리고 여태껏 납작 엎드렸던 산릉이 꿈틀대며 일어나 갈기까지 세운다. 바윗길
이다. 손맛 좀 볼 만한 암릉은 데크계단으로 덮어버렸다. 지형도의 마치 물수제비 뜬 자국은
날카로운 암봉이다. 낙석구간의 암봉은 철망으로 감쌌다. 왼쪽 사면 비스듬히 돌아 넘는다.
연이은 잔봉우리 중 가장 되똑한 암봉이 1,443m봉이다. 너덜지대를 지난다. 금년에는 마가목
이 대풍년일 것 같다. 가지마다 꽃망울이 오지게 알알이 맺혔다. 숲속 부드러운 등로는 꽃길이
다. 철쭉이 한창이다. 앞서가던 사진동호회 일행들이 신났다. 협곡 대슬랩 덮은 데크계단 오르
고 살짝 내렸다가 두 번 더 데크계단 오르면 ┣자 능선 분기봉인 △1,408.2m봉이다. 삼각점
(설악 307, 2007 재설)은 등로 바닥에 있다. 오른쪽은 감투봉으로 간다.
암릉 살금살금 기다가 직하하는 긴 데크계단 내리고 ‘살아 천년’은 족히 넘을 것으로 보이는
노거수인 주목 그늘 아래 그만 털썩 주저앉는다. 혼자 산을 가면 허기져 더 못갈 지경이 되어
서야 멈추기 일쑤다. 밥맛이 있을 턱이 없다. 씹을 힘조차 없다. 물에 말아 아무튼 넘긴다. 휴
식 겸한 점심 소요시간 10분.
1,284m봉 오르고 오른쪽 사면이 깊숙하도록 펑퍼짐하다. 부채(副菜)하기 적당하다. 잠입한
다. 울창한 미역줄나무덩굴숲 뚫고 너덜을 한참 내린다. 신천지인 듯 드넓은 초원이 나온다.
박새, 큰연령초, 큰앵초, 산작약, 병풍취, 곰취 등속이 한데 어울린 초원이다. 한편 비처비경이
다. 곰취 함께 뜯자고 부를 이 없어 아쉽다.
대승령 통과 마감시간 14시를 훨씬 넘기게 생겼다. 잰걸음하여 다가간다. 아닌 게 아니라 건
장한 공단직원이 지키고 있다. 쫓겨 내리는 체하다가 멀리 우회할 요량이다. 그런데 안내판에
마감시간이 15시다. 지금시각 14시 20분. 공단직원 앞을 유유히 지난다.
15. 점봉산
16. 귀때기청봉
17. 왼쪽 멀리는 안산
18. 지나온 능선, 오른쪽 멀리가 점봉산
19. 귀때기청봉 남서쪽 사면
20. 귀때기청봉
21. 멀리는 점봉산
22. 서북주릉 남쪽 지능선
23. 왼쪽은 가리봉
24. 멀리는 가리봉
25. 오른쪽 멀리는 점봉산
26. 귀때기청봉 넘어 지나온 능선
27. 가리봉
▶ 십이선녀탕계곡(탕수동계곡)
대승령에서 ┣자 안산삼거리 오르는 1㎞ 남짓한 등로는 올 때마다 힘듦에 있어 하이라이트다.
그리 심하게 가파르지 않지만 막판 오름길이라는 심리적인 해이와 물리적인 기진이 작용하여
맥진하고 만다. 풀숲 휘저으며 해찰부리다 왼쪽 건너편의 주걱봉, 삼형제봉 연신 기웃거리며
팍팍함을 삭힌다. 바람이 등 떠미는 큰 부조한다.
┣자 갈림길. 휴식. 물 3리터를 마저 바닥낸다. 머지않아 계곡으로 떨어지고, 옥수가 흐를 터.
아무런 염려 없다. 직진하여 안산 가는 길은 출입통제구간이다. 금줄을 길게 둘러쳤다. 문득
안산을 가고 싶은 갈등 덜었다. 평탄한 숲길 잠시 지나면 ┤자 응봉 갈림길이다. 응봉 김부자
터 흑선동계곡 미련 떨치고 왼쪽 대로로 꺾어 든다. 박석 깔린 길이다. 길다.
이내 가파름 수그러들고 계류 괄괄 흐르는 계곡 소로다. 계류 주변은 백화난만하다. 여기는 백
화(百花)가 아니라 백화(白花)다. 미나리냉이가 군집하니 이도 볼 만하다. 함박꽃, 귀룽나무꽃,
여기에 개다래 백반 잎이 끼어든다. 고개 들면 응봉이 현란하다. 침봉군이 짙푸른 수해(樹海)
위로 솟았다. 굽어보니 어느 덧 용탕폭포, 그 아래 복숭아탕이다. 팔폭팔탕이 찰찰하다.
데크잔도 지나며 계류 대소와폭 담소 연신 들여다보고 상상의 알탕을 즐긴다. 소름 돋는다. 무
지개다리, 구름다리 건너다 더는 못 참아 암반 훑는 옥수로 다가간다. 발을 물에 담그자 금방
감미롭고 상쾌하고 시원하고 개운함이 머리끝까지 퍼진다. 응봉폭포 지나고도 탁족명소가 많
다. 이윽고 남교리공원지킴터. 환속한다.
남교리 시내버스정류장 가는 길. 선녀교 건너고 46번 신도로 가까이 다가가 ┳자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간다. 46번 신도로는 차들이 워낙 쌩쌩 달려 횡단할 수가 없거니와 횡단할 필요도
없다. 왼쪽 길로 쭈욱 가서 굴다리로 건너야 한다. 마을까지 좀 걸어 들어간다.
28. 산괭이눈(Chrysosplenium japonicum), 범의귓과의 여러해살이풀
29. 곰취(Ligularia fischeri),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웅소
30. 큰앵초(Primula jesoana var. jesoana),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31. 귀룽나무(Prunus padus), 장미과의 낙엽 활엽 교목
32. 미나리냉이(Cardamine leucantha), 십자화과의 여러해살이풀
33. 물참대(Deutzia glabrata), 범의귓과의 낙엽 관목, 댕강말발도리
34. 응봉
35. 용탕폭포
36. 복숭아탕
37. 복숭아탕
38. 응봉폭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