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사적 성경묵상 ● (둘째 해_2월 18일)
<욥기 18장> “위로자에서 비방자로 바뀐 빌닷”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말을 찾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 너 분하여 스스로 찢는 자야 너를 위하여 땅이 버림을 당하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기겠느냐.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그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그는 광명 중에서 흑암으로 몰려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그는 그 백성 가운데서 아들도 없고 손자도 없을 것이며 그의 거하던 곳에는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을 것이라.....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그러하니라” (욥18:1-21)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10:19)
“일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전5:3)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전5:7)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약1:2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약3:16-18)
『엘리바스의 뒤를 이어 빌닷이 다시 욥을 비난하고 있지만, 그의 논지는 앞서 욥에게 한 말과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즉 그는 욥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 그의 죄악으로 인한 것이라는 고착된 논리에서 여전히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 그가 욥에게 말할 때에는 비교적 온유하고 이성적인 태도로 말을 했지만, 이제는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욥을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욥이 자신의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께서 자기를 찢으셨다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 그를 찢은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욥 자신의 분노가 스스로를 찢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그는 욥을 가리켜 불의한 자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라고까지 공격을 하면서, 지금 욥이 겪고 있는 고난과 재앙들은 악인이 당해야 할 일을 당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처음에 욥을 찾아왔던 이유인 위로자로서의 위치와는 전혀 다른 비방자로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빌닷의 어조가 바뀐 것은 욥이 자기의 말을 듣고서도 자기 죄를 인정하여 고백하지 않고 자기의 의로움을 주장하는 데 대해서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욥을 교만한 자로 규정하면서, 악인에게 임하게 되어 있는 모든 재앙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악담을 하고 있습니다. 앞서 처음에 말할 때에는 욥에게 회개할 것을 권면이라도 했지만, 이제는 욥에게 거의 저주에 가까운 독설을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논쟁이 진행되면서 빌닷이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말을 쏟아내게 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 간의 논쟁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금지하신 선악과를 먹고 스스로 선과 악을 아는 존재가 된 이후로(창3:5) 모든 인간들을 각기 작은 하나님처럼 되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기조차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과 다르거나 자기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자신에 대한 적으로 삼고 공격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잠언이나 전도서와 같은 성경의 지혜서에서는 “말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아지고 우매자의 소리가 나타난다”고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의 주장과 생각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논쟁을 가능한 한 피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말이 나 자신의 옳음을 나타내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 피곤하고 곤고한 사람들을 위로하며 세워줄 수 있는 화평의 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나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자세로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생각에 대해 마음을 여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또 우리의 모든 말을 하나님께서 듣고 계시다는 믿음으로 온유하고 겸손한 자세로 우리의 입술을 제어하는 한편, 우리의 언어가 다툼의 도구가 아니라 화평을 이루는 도구가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 오늘의 기도 ● “다른 사람과 논쟁하기보다 위로하고 세워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https://cafe.daum.net/waterbloodholyspirit/MuKU/54
첫댓글 아멘
학자의 혀로 위로하는 사람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