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단어에는 설렘과 기대감이 담겨 있다. 기간이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대로 그 맛이 각기다르다. 과천 대공원에 갈 때는 언제나 미술관 중심으로 다녔기에 이번에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몸을 쓰기로 하고 떠났다. 함께 할 친구들이 좋아서 그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떠날 때는 흥분되고, 만나면 일단 반갑고, 마나는 대상앞에서는 공감백배가 이루어지는 사이이니 일탈을 꿈꾸지 않을 수 없다.
내겐 같은 공간에서 같은 대상을 두고도 다양하게 상상을 펼칠 줄 아는 문인 친구들이 있다. 경우를 알고 타인에 대한 인간애를 가진 사람들이라 편하다. 예술혼의 교합 내지 개성의 발현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으므로 떠나기 전부터 상상놀이를 먼저 하게 된다. 이들 중 셋이서 하루 봄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지난 해, 이태리 여행 중에 카프리 섬 정상에서 리프트를 타고 내려올 때 그 친구들을 생각했다. 같은 경험을 하고 생각을 나누어보기로 했다. 섬 주변과 해안선을 위에서 내려다 보면서 조망하는 맛을 나는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가까운 곳에서 찾았다. 우리의 하루 나들이 장소를과천 어린이 대공원으로 정했다. 리프트를 타는 구간이 제법 길어서 단 한번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본디 여행의 맛은 동행인과 음식 맛 그리고 무엇인가를 감상하거나 해보는 일이 곁들여져야 뿌듯해져 돌아온다. 우리는 20년 전부터 해외여행을 같이 다니자고 기금을 모았지만 자녀들로부터 먼저 해방되는 순서대로 여행을 다니는 바람에 여행지 선정이 어려워서 포기했다. 그러자니 기금이 넉넉하여 회비가 없는 점심을 즐겨 먹을 수 있다. 문화를 향수하는 기호가 닮아서 전시회나 영화관 음악회 등 어딜가도 흡족해 한다.
서로 사는 곳에서 접근하기에 편리하고 도시 근교에 이러한 대공원이 조성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하며 즐겨찾는다. 대공원에서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풍경과 만나는 맛이 있다. 생각이 깊고 감성이 풍부해서 어느 곳에서건 화재가 풍부하다. 세 사람이 다 그림을 좋아해서 의견일치를 보기가 쉽다. 경비는 5만원씩 한 주머니에 넣고 수시로 꺼내 쓰며 남은 돈은 그대로 두었다가 다음 기회에 사용한다. 지출 내역을 기록하거나 영수증을 모으지는 않는다.
나의 준비물은 다양하다. 어떻게 하면 만나서 반갑고 받아서 행복하고 나누어서 기쁨이 커질지를 생각하며 마련한다. 주먹만한 모시 송편 세 개, 군고구마 세 개, 고흐의 그림이 프린팅된 유리잔 한 개씩, 사과 한 알, 풀밭에 앉을 때 사용할 보자기 세 장, 혹여 맑은 공기에서 자라는 쑥이라도 발견되면 캐볼까 하고 과도 3개, 비닐주머니 3장을 가지고 떠났다. 점심은 현지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리프트를 타러 가기 전에 짐을 나누어 가볍게 하고 출발하였다. 모두 그림을 좋아해서 '고흐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고 제목을 정하고 출발하였다. 대공원에 가면서 웬 유리컵인가 싶겠지만, 지난 번에 나의 신간 출판 기념으로 강은소 그림이 그려진 컵과 필기구가 끼어진 메모 노트를 주었기에
내게 있는 세 개를 나누어 가지기로 하였던 터다. 우리의 정 만큼이나 두꺼운 유리잔이지만, 의미있는 나눔이다. 그 잔으로 차를 마실 때마다 그 친구들과 함께 마신다고 이해할 것이므로 나는 그런 나눔을 즐겨한다.
리프트를 탔다. 죽음에 탑승한 것 같다. 모두를 뒤에 두고 공중으로 가는 길, 거기서 나는 미래를 상상해보았다. 기분이 묘해졌다. 공중에서 세상 사람들을 구경하듯 내려다 보면서 리프트는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리프트 아래 있는 사람은 리프트를 타고 가고 있다고만 여길 뿐이다. 하늘로 가면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홀가분했을까 외로웠을까.
리프트에서 내려 나는 생각을 정리하느라고 동행인들에게 기분이 어땠는지 묻지 않았다. 문인들이라 속에서 생각이 영글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우리는 유치원 원아들이 소풍 온 풍경을 마주 하면서 솔 숲 아래서 환담을 나누었다.
리티트를 타고 내린 자리에서 더욱 조용하고 한가한 장소로 찾아 걸었다. 숲은 점점 깊어지고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은 정밀하게 콧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넓은 공원에서 우리는 깊고 고요한 장소에 이르렀다. 아마도 동물원 쪽으로 옮겨 왔기에 그 곳까지 어린이들을 데리고 오지 않아서일 것이다. 우리는 등산을 하듯 오르막길을 걸어올라갔다. 오대산 설악산도 이런 발걸음의 연장선상에 놓이지 않던가. 길 옆으로 맑은 기운을 듬뿍 머금은 쑥이 자라고 있다. 먼지가 묻지 않았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슬금슬금 고개를 숙이더니 쑥을 캐기 시작했다. 봄이 왔다고 식품가게에서 쑥이 인사를 해도 나는 파는 쑥을 사 먹기가 주저되었다. 어디서 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구경만 했던 터다. 오늘 나는 한번 끓여 먹을 만큼 캤다.
어찌나 몰입을 하는지 조용하기 그지 없다. 도대체 여자들의 나물캐고 싶은 욕구와 그로부터 오는 만족감은 어디에 가 닿는 것인지 알 길 없으나 인류 초기부터 내려온 본능적 채취 욕구 해소가 아닌가 싶어진다,
그 쑥으로 나는 집에 와서 쑥 버무리를 했다. 메밀가루와 생콩가루, 밀가루를 고루 섞어서 쑥에 머무려 쪘다. 아름다운 그릇에 담고 한 쪽에는 생 두부를 잘라 놓았다. 달래 간장을 곁들여 한 끼 식사를 멋지게 치르고 공원에서 받아온 목련꽃 차를 유리잔에 울궈 여유를 즐겼다. 우리는 이심전심인가. 다른 사람도 같은 시간에 목련차를 담은 유리잔을 컵받침에 얹어 인증샷을 보내주었다. 이럴 때 참 많이 행복하다. 한 사람은 천으로 만든 컵 받침에, 한 사람은 둥근 나무토막 받침에, 한 사람은 공예품 나무받침에 올려두고 인증샷을 해보냈다.
몇 장의 사진으로 남은 나들이의 여운은 해질녁 그림자처럼 길게 늘여졌다. 보고 느끼며 서정의 샘은 깊어지고 간간히 선문답하듯 나에게 말을 걸며 하루가 저물었다. 이제는 서로를 알 만큼 알아서 이해의 정도가 크고 헤아림의 폭이 넓어져서 어지간히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지 않고는 서로가 서로에게 문제 삼지 않게 된다. 침울한 시기를 거칠 때는 잠시 빠져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면 된다. 하루 여행도 떠남이라 변화의 파장이 크다. 덧붙여 여행 후기가 이어지니 이 또한 누리는 자의 복이다. 복은 내 안에 남고 봄은 어디론가 사라져 가고 있으니 탑을 스쳐간 구름 한송이이겠거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