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로 가는 길 함께 한 가수들.docx
우도로 가는 길 함께 한 가수들
부제: 대중 가요- 미시사의 한 자락
서울에서 변산을 거쳐 완도에서 제주를 가로질러 성산일출봉에서 우도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우도에서 성산을 거쳐 한라를 넘고 제주에서 완도를 통해 강진 영암을 거쳐 변산에서 쉬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 그야말로 산넘고 물건너 우도로 왔다갔다 도합 1800킬로를 돌아다녔다. 하루에 3시간은 넘기지 않는 여정을 택해도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딸들에게는 기나긴 길임은 분명했다. 지루하지 않은 여행을 위해 음악도 틀고 영상도 보여주다 보니 결국 TV없는 우리 아이들이 들었던 음악들이 대개 엄마 아빠의 고리쩍 시절 음악들인 게다.
아내는 10대 학창시절부터 이승환의 열혈 팬으로 1999년 무렵 ‘무적투어’라는 이름으로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당시 대학생에게는 부담스러운 고액(?) 콘서트를 알바비 틈틈이 모아서 갔을 정도니. 어려서부터 이승환 삼촌을 진짜 삼촌처럼 알면서 자랐던 두 딸. 몇 년 전이던가 첫째 딸이 왜 다른 삼촌들과 달리 승환 삼촌은 우리 집에 초대하지 않냐고 타박을 주더라 하하!! 어쨌든 이승환의 노래만으로 기나긴 도로 위 지루한 여행을 채울 수 없어서 졸린 나도 힘을 낼 아빠의 소싯적 음악들을 함께 듣고 가게 됐으니 이름하여 해승태 메들리. 좋아했던 순서대로 중간 글자를 모아서. 신해철 이승환 서태지(본명은 정현철, 신해철과 6촌 관계로 얽혀있다)
그래서 여행 내내 둘째는 민물장어의 꿈을 틀어달라고 조르고 첫째는 난 알아요가 신난다느니 둘째는 시끄럽다느니 서로 듣고 싶은 음악이 갑자기 늘어나서 선곡을 하느냐고 진땀을 뺐다. 암튼 지루한 여행이 신나는 자동차 노래방처럼 지나갔으니 대략 성공은 한 셈이었는데. 그래도 졸린 두 딸이 기어이 잠이 들면, 방해가 될세라 조용히 나 혼자 메들리를 몇 시간이고 블루투스 이어폰에 취해서 듣고 가게 된다. 그러다보니 가사를 좇아 잡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게다.
그러다가 이 세 부류의 가수들이 참 다르면서도 묘하게 닮아 있는 점도 느껴지고 각양각색의 색깔과 30년 전과 지금의 차이도 극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들이 모두 한 곡씩은 썼었던 연애이야기를 담은 곡들을 보자.
신해철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중에서
친구들과 부모 모두 내게 말을해
너를 단념하라고
그렇지만 난 느껴
왜 내겐 꼭 너여야 하는지
아직 단 한번에
후회도 느껴본 적은 없어
다시 시간을 돌린대도
선택은 항상 너야
힘겨운 시간은 왠지 천천히 흘러
하지만 우린 함께야
지금보다 더 많은
세월을 견뎌 나가야 해
이승환
텅빈 마음 중에서
아침에 문득 눈 뜨고 바라보니
눈부신 햇살
내 곁에 잠든 건 지나간 추억
너무 허탈해
그대 그 미소
그때 그 마음
되살아나서 날 부르네
난 너를 느끼네
내 텅 빈 마음속
서태지
난 알아요 중에서
난 알아요 이밤이
흐르고 흐르면
누군가가 나를 떠나
버려야 한다는
그 사실을 그 이유를
이제는 나도 알 수가
알 수가 있어요
사랑을 한다는 말을 못했어
어쨌거나 지금은 너무 늦어
버렸어
그때 나는 무얼하고 있었나
그 미소는 너무 아름다웠어
전 곡을 다시 한 번 들어보면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지만, 암튼 가사만으로도 상남자 스타일의 해철, 떠나버린 연인을 한 없이 그리워하는 승환, 이제는 붙잡기 늦어버린 것을 쿨하게 인정하는 태지. 모두 90년대 전반기에 나온 노래인데 가수들의 그 이후의 삶의 궤적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갑작스런 죽음으로 세상을 떠나버린 해철이 남기고 간 별명은 마왕.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 스테이션의 열혈팬들과 함께 라디오 방송계의 기이한 행각들을 숱하게 불러 일으켰던 그야말로 대중음악계의 이단아이자 독불장군 카리스마가 전매 특허였던 가수. 셋 중에서 가장 사회 참여와 입바른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고,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에 일조한 바 있다. 신중현이 별다른 사회참여없이 검열의 시대 탄압을 상징했던 것과 달리 해철은 생전에 끊임없이 사회의 검열과 통념에 맞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대마초 합법화 찬성이나 동성애 옹호만으로도 90년대 그가 일으켰을 평지풍파는 가늠되지 않을 정도. 앞서 언급한 저 노래도 바로 동성애 커플의 힘든 사연을 받고 즉각 작곡한 노래다.
쓰다보니 오늘 하루에 이 세 가수를 일별한다는 것이 헛된 망상임을 깨달았다. 하나 하나가 모두 우리 대중음악의 미시사에 모세혈관 수준에서 숱한 족적을 남겼음이 신해철 하나만으로도 오늘 얘기가 끝나지 않을 것임을 조금 전 깨달았으니. 보성고 시절 들국화 공연에 빠져 음악인으로서의 길을 걷기로 했던 철학도 가수. 그의 아버지는 그 때 음악에만 빠지지 않았다면 서강대가 아니라 서울대를 충분히 갔을 거라는 인터뷰를 남겼다. 다행이다. 먹물들의 아성에 대중음악의 보배가 제발로 무덤 찾아 가지 않아서. 이승환도 아마추어로 락음악을 좇다가 들국화 공연에 빠져 마찬가지로 직업 음악인으로으 마음을 다진 것이 공통 고리라는 것 정도로 마무리 해야겠다. 이어지는 기록들은 신해철이 록밴드 넥스트 활동을 중단하고 정치참여와 사회비판의 길로 향하면서 남겨놓은 흔적들을 모아봤다.
이제는 유튜브의 영상이 깨알같은 미시사의 자료가 되고 있다. 먹물들만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인민은 좌파든 우파든 유튜브의 세계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직 대학생의 티를 벗어나지 못했는데도 철학도 먹물의 심정을 대중가요에 이렇게 녹여낼 수 있는지 지금도 놀라운 내 10대 시절에 거울처럼 되새기던 노래
-길 위에서
https://youtu.be/98iJont-YR8
77년생인 내가 68년생 신해철이 10살 무렵에 벌어진 10.26 박정희 죽음에 대한 단상을 되새겨 본다.
-70년대에 바침
하늘이 그리도 어두웠었기에
더 절실했던 낭만
지금 와선 촌스럽다 해도
그땐 모든게 그랬지
그때를 기억하는지
그 시절70년대를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가위를 든 경찰들
지금와선 이상하다 해도
그땐 모든게 그랬지
그때를 기억하는지
그 시절70년대를
무엇이 옳았었고 (무엇이) 틀렸었는지
이제는 (이제는) 확실히 말할수 있을까
모두 지난 후에는 (누구나) 말하긴 쉽지만
그때는 (그때는) 그렇게 쉽진 않았지
한발의 총성으로
그가 사라져간 그날 이후로
70년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지
수많은 사연과 할말을 남긴채
남겨진 사람들은
수많은 가슴마다에
하나씩 꿈을 꾸었지
숨겨왔던 오랜 꿈을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가
하늘이 그리도 어두웠었기에
더 절실했던 낭만
지금 와선 촌스럽다 해도
그땐 모든게 그랬지
그때를 기억하는지
그 시절70년대를
무엇이 옳았었고 (무엇이) 틀렸었는지
이제는 (이제는) 확실히 말할수 있을까
모두 지난 후에는 (누구나) 말하긴 쉽지만
그때는 (그때는) 그렇게 쉽진 않았지
무엇이 옳았었고 (무엇이) 틀렸었는지
이제는 (이제는) 확실히 말할수 있을까
모두 지난 후에는 (누구나) 말하긴 쉽지만
그때는 (그때는) 그렇게 쉽진 않았지
https://youtu.be/fKMt7Dh2ub0
노무현 후보 시절 찬조연설자로 일약 장안의 화제로 떠올랐던 신해철. 문성근이 밝힌 바에 따르면,
“대통령 선거 TV 지원연설에서 대본없이 20분간 할 말을 한 사람은 백기완과 신해철뿐”
https://youtu.be/Mm-XNd8zzJ8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이후 고백과 절규를 잊을 수가 없다.
-신해철의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에서 고백과 절규
우리의 적들을 탓하기 전에
물에 빠져죽은 사람을 우리가 건지지 않았더라는 죄의식을 우리는 버려서는 안될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더군다나 그 물에 빠진사람이 다른 물에 빠진사람을 구하러뛰어 들어갔다가 죽었는데 그 사람을 우리가 건지지 못했다라는 것..
죽을때까지 쇠사슬을 발목에 감겨있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난 다음에 저씹쌔끼를 욕을 해도 그다음에 해야된다고 생각해요.
노무현의 삶은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되돌려줄수있는 중요한 전기를 제공해줄수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런것을 위해 죽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목숨이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러분들께 이노래를 드립니다
저는 이 노래를 20년동안 불러왔고,
그리고 이노래 가사와 상관없이 아무대서나 불러었고,
노무현이 탄핵을 당했을때 광화문에서도 이 노래를 불렀었고,
그리고 여기서 다시한번 이노래를 보내드립니다
왜냐하면 이노래는 사랑하는사람을 위한 비탄보다는
앞으로에 있을 희망을 늘 얘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https://youtu.be/Ee5uxCr9CKA
GOODBYE MR. TROUBLE
詩.曲.唱... 신해철
노무현 헌정음반... '탈상 2012' 수록곡.
꽃은 지고 달은 기울어 가네
아무런 인사도 남기지 않고
날은 가고 맘은 아물어 가네
산 사람 살아야 하는 거겠지
화를 내면 진다 눈물 흘리면 진다
웃지 못하면 티를 내면 진다
백번 천번을 고쳐 말해봐도
천번 만번 매일 져버리네
탄식으로 단을 쌓고 한숨으로 향을 피워
이제 꽃 한송이 올려
희망이라 부르며 그대를 보낸다
누군갈 사랑하는 일도
몹시도 미워하는 일도
모두 힘든 거라면 어차피 고된 거라면
사랑함이 옳지 않겠냐만
아~~~ 아~~~~
나는 그대가 밉고 또 밉고 또 미워서
고맙다는 말 대신 미안타는 말 대신
그대가 남겨둔 화분에 눈물을 뿌린다
Goodbye Mr. Trouble~~~
남겨진 일들은~ 남은 자들의 것일 뿐~
Goodbye Mr. Heartache (Lonely heart)
우리 끝까지 살겠소
죽어도 살겠소
살아서 그 모든 걸 보겠소
https://youtu.be/Zd0r6xWzBlY
살아서 그 모든 걸 보겠다더니 갑작스런 의료살인을 당해 세상을 떠난 마왕,
물에 빠진 이를 구하려다 구경하던 이들의 외면 속에 승냥이 떼들의 해코지에 세상을 떠난 대통령.
이럴 때 역사 속에서 전율에 가까운 뜨거운 뭔가가 솟구쳐 오르는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첫댓글 세기말이라고 하는 10여년을 인민의 가슴 속에 추억들을 남긴 것은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가수들이었던가 보다. 독재와 군사의 코드를 넘어서는 탈코드의 징후들을 몸으로 뿜어내다가 IMF가 파의 흐름을 얼어붙게 했던 것 같다. 코로나19는 매끈한 공간으로 파고를 높이며 퍼져 나가고, 과학과 기술은 홈 파인 공간을 만들어 내려는 동안, 새로운 씨줄과 날줄의 짜임 제자리걸음만 한다. 좌와 우가 함께 하지 양축을 다하지 않는 한 짜임은 없을 수 있다. 90% 꽁들로 묶인 위치에서 소실점의 방향은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된 것 같다. 탈영토화의 길... 생태로... 토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