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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행복에 진력하는 인생을
(1977.01.06.) 제1회 창가반 총회에서
1977년 ‘교학의 해’는 1월 6일 목요일 저녁에 열린 제1회 창가반 총회로 본격적인 회전을 시작했다.
매서운 바람을 가르며 도쿄 시나노마치에 있는 학회본부에 모여든 청년들의 얼굴은 불게 상기되었고 눈동자는 늠름하게 빛났다.
저녁 6시 반, ‘창가반’의 파란색 단복으로 가득 메워진 창가문화회관 5층 대강당에서 개회를 선언했다.
신이치는 이날 저녁 무렵 도쿄 미나토구에서 열린 협의회를 서둘러 마치고 창가반 총회가 열리는 학회 본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이사장을 비롯해 몇몇 부회장에게도 이날 열리는 ‘창가반’ 총회에 참석하도록 일러두었다. 왜냐하면 청년들의 새로운 출발을 학회 전체적으로 축복하고 싶다는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신이치는 ‘창가반’을 비롯해 ‘아성회’와 ‘백련그룹’ 그리고 ‘무관의 벗’인 세이쿄신문 배달원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이 되어 분투하는 멤버들을 가장 칭송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직장 일을 마무리하고 필사적으로 달려와 야외 주차장에서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정리하는 ‘창가반’이 있다.
회관을 철저히 지키려고 심야까지 경비를 서는 ‘아성회’가 있다.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회합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백련그룹’이 있다.
모든 멤버 한 사람 한사람이 나날의 과제와 악전고투를 벌이며 존귀한 사명을 다해내고 있다.
신이치는 그 청년들에게서 보살의 행동을 보고 자비로운 부처의 마음을 느꼈다.
그렇기에 최고 간부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창가반 총회에 참석해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칭송하며 격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녁 7시 50분, 신이치가 모습을 나타내자 거센 파도처럼 우렁찬 박수 소리가 일어났다.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이곳 학회본부에서 새롭게 출발하고자 달려왔습니다. 제1회 창가반 총회를 이처럼 성대하게 개최할 수 있어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정말 축하합니다.”
신이치는 먼저 ‘광포의 영웅’을 축복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야마모토 신이치는 ‘창가반’의 출발에 즈음해 다시 한번 명확히 신앙의 원점을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어느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도 자연히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어본불 니치렌대성인의 유명(遺命)은 광선유포입니다. 이 점을 잊으면 이미 니치렌불법이 갖는 의미가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광선유포라는 본디 취지에 투철하기 바라며 불법의 진수를 민중과 지역 그리고 사회 속으로 전하는 존재가 되기 바랍니다.
‘창가반’은 광선유포를 추진하는 원동력이자 본체인 창가학회를 말법 만년에 걸쳐 반석 같이 구축하는 데에 모든 사명이 있음을 마음에 새기고 기억해 두기 바랍니다.”
니치렌대성인은 “이러한 자의 제자단나가 된 사람들은 숙연(宿緣)이 깊다고 생각하여 니치렌과 동일하게 법화경을 넓혀야 하느니라”(어서 903쪽) 하고 말씀하셨다.
대성인의 대원(大願)은 광선유포이고 대성인 문하의 근본요건은 광선유포를 실천하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니치렌불법의 불도수행은 자행화타(自行化他)이며 빼놓을 수 없는 과제는 포교다.
닛코상인의 유계(遺誡)에도 “아직 광선유포가 되지 않는 동안은 신명(身命)을 버리고 수력홍통(隨力弘通)을 해야 할 것”(어서 1618쪽)이라고 씌어 있는 그대로다.
끝까지 광선유포를 위해 사는 사람이 대성인의 진정한 제자이며 신심의 계승자가 된다.
제아무리 니치렌대성인의 일문이라고 자칭하며 권위를 휘두를지라도 광선유포를 위해 실천하지 않으면 그런 곳에는 대성인의 정신이 없다. 그것은 의식화(儀式化)한 ‘죽은 종교’와 마찬가지다.
광선유포의 사명을 자각하고 사람들에게 구제의 손길을 내미는 홍교라는 행동 속에 대성인의 위대한 정신과 지용보살의 거대한 생명이 맥동한다.
신이치는 여기에서 불법에서는 ‘시(時)’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창가반’ 멤버는 시대를 똑바로 바라보며 때와 기근에 맞춰 지휘하도록 기대를 걸었다. 또 그렇게 하는 데에 ‘창가반’으로 새롭게 출발한 의의도 있다고 말했다.
◇
신이치는 현대사회가 직면한 상황을 언급하며 세태는 삭막해지고 ‘말법이 극도에 이른’ 양상을 띠고 있음을 지적했다.
전해 2월에는 미국 록히드사의 항공기 판매를 둘러싼 대규모 정치 뇌물사건이 발각되었다. 이른바 록히드사건이다.
일본 정치가들도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7월에는 다나카 가쿠에이 전(前) 총리가 체포되었다. 정계와 재계를 중심으로 큰 충격에 휩싸였으며 국민은 더욱 심한 정치 불신에 빠졌다.
신이치는 힘주어 말했다.
“현대는 정사(正邪)와 선악(善惡)을 판가름하는 기준마저 애매모호해지고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빛을 찾아낼 수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야흐로 사회에는 희망도 없고 앞날을 밝혀줄 만한 존재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해도 좋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창가학회는 세계 민중에게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밝히는 ‘황금 등대’와 같은 존재가 되었으며 더욱이 학회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창가반’은 그런 학회를 비추는 ‘희망의 등불’이자 ‘창가의 등불’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은 학회라는 등대의 광원(光源)임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학회는 혼미한 시대에 정의로운 깃발을 드높이 내걸고 민중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달렸습니다.
부디 여러분은 그런 학회를 지키는 일이 ‘최고선(最高善)’이라고 강하게 확신하며 자신이 선택한 사명의 길을 용감하게 나아가기 바랍니다!”
이어서 신이치는 이렇게 강조하며 이야기를 끝맺었다.
“자기답게 동지와 함께 ‘강철 같은 연대’로 ‘창가반’ 제1기생으로서 훌륭한 증거를 남겨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어떤 화려한 현상과 지겨운 현실에도 분동하지 말고 ‘창가반’으로서 긍지 드높은 길을 똑바로 나아가기 바라며 40대와 50대에 인생의 꽃을 활짝 피우고 또 승리로 이끌기 바랍니다.”
결의가 담긴 커다란 박수가 장내를 감쌌다.
◇
‘창가반’은 결연히 일어섰다. 청년들이 지닌 젊디젊은 힘으로 전진하는 학회의 톱니바퀴가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창가반’ 수뇌 간부들은 회장 신이치가 제1회 창가반에서 언급한 지도를 바탕으로 ‘창가반이 야마모토 선생님의 마음을 명심해서 지키며 학회정신이 가득 넘치는 이상적인 인재육성그룹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야마모토 선생님이 ‘창가반’ 멤버에게 학회를 철저히 지키도록 지도 하셨는데, 선생님은 ‘수송반’ 시절부터 항상 ‘학회엄호’라는 정신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정신을 체현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하는 데도 힘을 쏟으셨습니다. 이 점은 앞으로도 반드시 이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훈련이라고 하면 어딘지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기 쉽지만, 한 가지 한 가지를 제대로 익히려면 몸으로 습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창가반’에서 받은 교육과 훈련을 바탕으로 하루하루 생활하는 속에서 더욱 자기 것으로 소화해 사회에서 힘을 크게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즉 ‘창가반’에서 ‘자기교육’과 ‘자기훈련’ 그리고 ‘자기계발’이라는 기반을 확립해야 합니다.”
성훈에는 “금(金)은 태우면 진금(眞金)이 된다.”(어서 1083쪽) 하고 씌어 있다. 인재도 거듭 단련하지 않으면 대지도자로는 성장하지 못한다. 대성하는 요건은 바로 단련에 있다.
‘창가반’ 멤버는 ‘수송반’ 시절부터 수송의 안전을 반드시 확보하고 학회원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시간엄수 등을 함께 확인하며 서로에게 엄한 훈련을 부과했다.
왜냐하면 만에 하나라도 수송반원이 출동시간에 지각할 경우 커다란 사고를 이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 휴가를 받아 출동하려면 직장에서 신뢰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직장에서도 하루하루가 투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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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반’ 임무를 수행하려면 사전에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드는 자기관리도 결코 소홀히 하면 안 된다. 또 출동할 때는 머리 모양도 단정하게 정리하고 셔츠 등도 청결한 느낌이 드는 흰색을 입도록 정해져 있었다.
왜냐하면 수송반도 학회의 ‘얼굴’이니만큼 차림새를 말끔하게 하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열차의 환승시간이나 도착시간 그리고 주의사항 등을 등산회 참석자에게 철저히 공지하는 일도 수송반 멤버가 맡은 중요한 임무였다. 그러려면 담당한 차량 구석구석까지 목소리가 들리도록 해야 했다.
그래서 열심히 발성연습에 힘쓰는 멤버도 있었다. 연락이나 보고의 신속함과 정확함에도 엄하게 훈련받았다. 모든 멤버가 요점을 정확히 보고하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익혔다. 왜냐하면 만일 등산회 참석 인원이 한 사람이라도 다를 경우, 수송하는데도 문제가 발생함은 물론 숙박에 필요한 침구나 식사 수량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확함은 모든 일의 기본이다. 정확하지 못한 정보는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원흉이 된다.
이탈리아 사상가 마치니는 이렇게 말했다.
“전체의 승리는 여러 가지 행동을 수행하는 정확함에 달렸다.”
그리고 총본산의 건물 이름과 위치를 비롯해 지도를 모두 머릿속에 넣어두어야 했다. 참배로에 계단이 있을 경우에는 계단 수까지 기억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까닭은 만일 재해라도 일어나 어둠 속에서 대피하도록 유도할 경우에도 계단 수를 미리 알려주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숙박 시설로 사용하는 각 방(坊)을 비롯한 건물의 구조와 다다미 방의 크기 그리고 수용인원은 물론이고 소화기나 청소 도구를 넣어둔 곳과 비상구나 대피로 심지어 신발장에는 신발이 몇 켤레나 들어가는지도 철저히 외웠다.
진정으로 등산회 참석자의 안전을 책임진다고 생각하면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사태에 대비해 완벽하게 손을 써야 한다. 청년들은 이에 훌륭히 대응했다. 해외에서 하계강습회 등 등산회에 참석하는 멤버가 점점 증가하자 자주적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멤버도 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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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반’의 인재육성 중에 가장 경탄할만한 사실은 무엇보다 한 사람 한사람이 강한 책임감을 지니도록 육성했다는 점이다.
수송반원은 출동하기 수일 전부터 등산회가 무사고로 대성공하기를 진지하게 기원하며 창제했다.
등산회 날에 날씨가 좋지 않고 세찬 비라도 내릴 경우에는 수송반멤버 모두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반드시 맑게 갠 등산회로 만들자고 더욱 진지하게 기원했다.
보통이라면 날씨는 자연현상이기에 불가항력적인 문제하고 생각한다. 만일 날씨가 좋지 않았다고 해도 ‘수송반’이 책임질 일은 아니다.
하지만 수송반 멤버는 “교주석존(敎主釋尊)을 움직이시게 하면 흔들리지 않는 초목(草木)이 있으랴. 소란하지 않는 물이 있을 손가”(어서 1187쪽) 하는 금언을 마음속에 깊이 새겼다.
여기서 ‘교주석존’은 대우주의 모든 근원을 가리키며 어본존을 의미한다. 그 어본존에게 진지하게 기원하면 만물이 움직인다는 말씀이시다.
또 어서에는 “일신일념(一身一念)이 법계(法界)에 널리 미침이라”(어서 247쪽) 하고 씌어 있다.
우리의 일념은 대우주를 널리 감싼다. ‘수송반’ 청년들은 불법의 법리에 비춰 기원하는 일념은 날씨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모두 자신들의 문제라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세찬 비가 내릴 경우에는 자신은 비에 흠뻑 젖으면서도 ‘한 사람도 감기에 걸리지 않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임무를 수행했다.
그런 ‘수송반’의 자세는 참으로 신이치가 살아온 방식과 같았다.
신이치는 회장에 취임한 날부터 끊임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풍작을 거둘 수 있도록’ 그리고 ‘등산회가 무사고로 끝날 수 있도록’이라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기원했다. 이런 일념의 결합이 사제(師弟)다.
신이치는 이전부터 ‘수송반’이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대우주마저 움직이고 말겠다는 기백으로 창제하며 회원을 지키려고 하는 점에 깊이깊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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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숨은 힘은 훈련으로 발휘된다.”라고 말했다.
머리로 이해하고 아는 것과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지식은 있어도 정작 재해가 발생하고 보면 몸이 얼어붙은 듯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훈련을 되풀이해서 숙달되어야 비로소 배운 것을 실제로 쓸 수 있다.
훈련은 몸과 생명으로 습득하는 일이다.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제점 중 한가지는 청년들이 인명(人命)을 지키기 위한 훈련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창가학회는 청년을 단련하고 교육하며 사회에 공헌하는 중요한 연수기구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창가반’에서는 ‘수송반’ 때부터 이어진 현장훈련을 소중히 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며 더욱이 새로운 시대의 리더에 걸맞은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검토를 추진했다.
신이치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심혈을 기울여 ‘창가반’을 격려했다. 그 뒤에도 총회에 참석하고 직접 연수도 열었다. 메시지나 수필 그리고 시(詩)등도 선사했다. ‘창가반’을 기리며 읊은 시나 문장은 셀 수 없이 많다.
왜냐하면 온몸을 내던져 학회를 엄호하며 사명을 다해내는 ‘창가반’ 멤버에게 보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찬바람에
홀로 섰노라
창가반
‘학회를 지킨다’ ‘회원을 소중히’ 그리고 ‘음지의 투쟁에 철저히’를 기본정신으로 삼는 ‘창가반’은 명백히 신이치의 정신을 실천하는 제자다.
그렇기에 신이치는 창가반 멤버가 보물과 같은 후계의 인재라고 강하게 확신했다.
어쨌든 신이치는 1977년을 ‘창가반’과 함께 청년과 함께 본격적으로 출발했다.
그 사실은 타오르는 불길처럼 청년이 전면적으로 뛰어나와 싸우는 청년학회를 구축하려는 신이치의 결의를 표명하는 일이었다.
☞ <신∙인간혁명> 24권 ‘엄호’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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