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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호심경
에베소서 6:14
14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의는 우리의 영적 무기입니다. 우리의 호심경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의를 영적 무기로 말하고 있습니다. 11절을 보면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말합니다. 전신 갑주는 무기를 말하는 것인데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의 호심경은 영적인 무기입니다.
이와 같은 개념으로 구약에도 의를 전신 갑주로 말하는 곳이 여러 곳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 59장 17절은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라고 말합니다.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셨다”는 말은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라는 말과 똑같은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의’를 갑옷 또는 호심경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의가 우리의 갑옷이 됩니까? 이것을 이해하려면 로마 군병의 호심경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 군병의 호심경을 보면 온 몸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빛나며, 가장 찬란한 부분입니다. 누가 보아도 로마 병정을 볼 때 확 한눈에 띄는 것은 호심경이었습니다. 호심경은 목부터 무릎까지 이어지는 옷입니다. 호심경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 부분은 앞면에, 다른 부분은 뒷면에 있고 그 두 부분은 놋으로 만든 어깨의 연결 고리로 서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또한 호심경에는 두 종류가 있었는데 미끈하고 강한 동판으로 만든 것과 물고기 비늘처럼 매우 작은 동으로 여러겹을 연결하여 만든 것이 있었습니다. 무게는 일반 병정의 호심경은 약 40 파운드(18 킬로그램) 정도이고 대형 사이즈일 경우 75 파운드(35 킬로그램) 정도가 됩니다. 성경 연구가들에 의하면 골리앗 장군이 입었던 호심경(갑옷)은 비늘형으로 된 갑옷으로써 125 파운드, 즉 55 킬로그램이 넘었다고 합니다.
로마 병정이 호심경을 입고 다니는 동안 흥미로운 일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로마 병정이 호심경을 입고 다닐수록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동끼리 마찰하여 빛을 내기 시작합니다. 광채가 납니다. 특히 로마 병정이 밖에서 행렬을 할 때 태양빛이 비치면 얼마나 밝은 광채가 비치게 되는지 그 아름다움은 대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면에서 호심경은 방어용 무기일 뿐 아니라 사실은 적군의 눈을 잠시 멀게 만드는 공격용 무기였습니다. 로마의 전쟁 기사를 살펴 보면, 적군이 로마 군사의 호심경에 의해 반사되는 빛 때문에 눈을 똑바로 뜰 수 없어서 패전하게 된 사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호심경을 창고에 오래 둘 경우 신기한 녹이 슬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옷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로마 병사들은 호심경은 닳을수록 더 빛이 나기 때문에 평생 자기 호심경을 바꾸지 않고 매일 입고 다녔습니다. 아무튼 이처럼 최고의 광채를 내는 당당한 무기가 바로 호심경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왜 호심경을 차야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호심경이 주로 막아부는 부위는 가슴과 어깨와 등입니다. 의의 호심경을 찬다는 것은 누군가가 우리를 공격하여 파괴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 공격자는 누구이며 어디를 공격합니까? 11절을 보니 그 원수는 마귀입니다. 그리고 그의 공격 부위는 심장입니다. 가슴을 통하던 어깨 위에 무거운 짐을 두던 등을 공격하든 궁극적인 공격 목표는 심장입니다. 특히 가슴 부분을 공격할 수 있으면 상대는 곧 바로 땅바닥에 쓰러질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들을 공격하여 우리의 심장을 칼로 치려합니다. 우리의 심장을 죄와 악으로 썩게 만듭니다. 등 뒤에서 비수를 꽂으려고 합니다. 어깨에 무거운 짐을 끝없이 올려 놓아 결국 염려 가운데 우리 심장이 무너지게 만듭니다. 마귀는 어떤 방법으로든 심장을 파괴함으로 우리의 인생을 박살내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아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하여 의의 호심경을 입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신기한 것은 11절의 마귀라는 원어를 보면 ‘디아볼로스’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명사의 원래 의미는 비방이란 뜻입니다. 이 동사의 의미는 계속 쉬지 않고 비방과 헐뜯음으로 때리고 때려서 상대의 마음을 녹초로 만들어 무너지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마귀라는 뜻은 Slander, 즉 참소자입니다. 특히 그는 간계를 사용하여 비방하고 참소합니다.
성경은 사탄은 가장 악한 참소자로서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 정상적으로 동작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약점을 잡아 계속 비방과 거짓과 조롱으로 휘둘러 치는 자로 계시합니다. 등 뒤에서 공격하고 또한 쉬지 않고 비방과 거짓을 우리 어깨에 올려 놓아 염려로 지쳐 포기하게 만듭니다. 전쟁으로 비유하면 계속 틈도 주지 않고 가슴과 등을 공격하여 심장이 파장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의 호심경이 없는 사람은 사탄에게 계속 참소를 당하고 비방을 당하게 되면서 마침내 그 마음이 파장하여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참소자 사탄의 공격은 이러합니다. ‘너 같은 녀석이 무슨 신앙 생활을 해? 이 악한 놈. 너 전에 이러이러한 나쁜 짓을 했지. 너는 여차여차한 죄와 죄악이 있으니 너는 아주 나쁜 놈이요, 형편없는 놈이요, 죽어 싸며, 이제 너는 율법에 의하여 사형 선고다.’ 마귀는 자기 수하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수군수군하게 하여 그 공격 대상을 왕따 당하게 합니다. ‘저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해서 비참과 실패를 하였다고 해. 자녀들은 어떻고 가족은 그 일로 어떻게 되었고 그래서 저 모양이라나.” 물론 성령께서도 우리의 신앙 양심을 가책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우리 깊은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식하게 하면서 우리에게 회개하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함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죄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함이지 그 과정에는 비방이나 수군거림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비방과 수군거림은 사탄의 음성이며 공격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이 음성을 몽둥이로 만들어서 계속 그 몽둥이로 우리를 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탄의 공격에 수차례 얻어 맞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영적으로 병들어 패잔병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마귀의 유혹에 빠지만 가장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남의 약점을 잡아서 틈만 나면 그것을 들쳐내어 그것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즉, 마귀와 똑같이 참소자, 비방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눈 속에 들보가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티를 찾아 비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5).
사도행전 13장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구브로에 가서 바로라는 섬에 갔을 때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납니다. 그런데 이 박수 무당이 바울이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자 사도 바울을 비방을 합니다. 그러면서 공작을 펴서 총독으로 하여금 예수를 못 믿게 만드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이때 성경이 이 사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행 13:9-10). 바울이 바예수라 하는 거짓 선지자에게 마귀의 자식이라고 부르며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하다고 했는데 여기서 거짓과 악행은 다른 것이 아니라 거짓으로 바울과 바나바를 비방하고 대적한 일을 말합니다. 이처럼 비방은 마귀의 일이며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 일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비방은 사탄의 일인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8-30절을 보면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비방을 싫어하십니다. 수군수군거리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이는 사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수군거림과 비방에 대하여 베드로가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이 말씀은 갓난아이들처럼 순전하고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관심을 갖고 힘써 말씀에 노력하지 않으면 마귀의 유혹에 빠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기, 비방하는 말, 모든 악독과 기만과 외식을 행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언제나 “자기 자랑, 남의 흉”을 보는 것 밖에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의의 호심경을 입지 않고 전쟁에 나가면 그는 사탄의 비방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여 그의 가슴이 파장될 것입니다. 사탄은 쉬지 않고 정죄할 것입니다. 비방할 것입니다. 이 사람 입술을 통해서 저 사람 입술을 통해서 의의 호심경을 입지 않은 자의 마음을 칼로 칠 것입니다. 등 뒤에서 찌를 것이며 그 삶의 어깨에 계속 비방의 짐을 쌓아 올릴 것입니다. 지금 인터넷 시대는 더 무섭습니다. 인터넷 상의 비방과 수군거림은 인터넷을 붙든 마귀의 전쟁터가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비방의 공격으로 인해 자살을 택한 사람들도 이미 많이 있습니다. 사탄은 특히 그리스도인을 노리고 있다가 어떤 실책을 잡기만 하면 한번이 아니라 완전 쓰려져서 심장이 파열되어 폐인이 될 때까지 비방과 수군거림으로 그 사람의 심장을 때리는 것입니다.
이 때 사탄의 비방과 정죄의 공격을 받고 병들게 되는 마음은 그 생각이 비정상이 되고 그 감정에 공포와 의심과 두려움이 가득차게 됩니다. 따라서 쉽게 정신병 증세가 나타납니다. 이 정도가 되면 그 성도는 이미 사탄에게 패배한 패잔병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의 패잔병이 되었을 때는 사탄의 포로로 전락되어 비참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죽음을 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보통은 우울증에 걸립니다. 가장 흔한 일은 공격 당한 그 사람 역시 또다른 비방자가 되어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티를 찾기에 혈안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러한 영적 궤계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탄의 무기인 정죄와 비방과 수군수군거림에 대하여 영적 무기를 주셨습니다. 즉, 사탄의 비방과 정죄를 이길 수 있는 영적 무기는 의의 호심경이라는 것입니다.
전에 사업 욕심이 있어서 어느날 순식간에 남의 등을 쳐서 사기를 친 경력이 있는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같은 교회 교인에게 사기를 치고나서 들키게되자 그 교회에서 비방 거리가 되니 그 교회를 떠났습니다. 이곳 저곳 교회를 방황하지만 어떤 교회에 정착할 때 즈음 되면 자신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그 교회에 옵니다. 그러면 또 그 교회를 떠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교회를 다니지 않습니다. 지금 이 성도는 “의의 호심경”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가 어디를 가나 사탄의 공격을 당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의 신앙 생활은 파선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의의 호심경이 정확히 무엇입니까? 의의 호심경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의입니다. 우리가 입게 될 의의 호심경은 완전한 의의 호심경입니다. 이 의의 호심경을 입으려면 우리는 우리의 옷을 벗어야 합니다. 우리의 죄악에 대하여 먼저 회개함으로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우리의 헛된 알량한 자기 의의 썩은 옷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이 과정이 없이는 의의 호심경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의 호심경을 입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의입니다.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의를 전제로 하여 바울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3)고 말한 것입니다.
이제 의의 호심경을 입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사탄이 비방합니다.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 수군거립니다. “너는 안돼. 너는 죄가 많아. 그 죄를 다 어떻게 할 거야. 그러고도 뭐 교회를 다니겠다구? 그러고도 신앙 생활을 하겠다는 것이야? 그것은 위선이잖아.” 이때 우리가 의의 호심경을 입고 있으면 이렇게 마귀에게 대꾸하며 외칠 수 있습니다. “그래! 나의 의는 없다. 나는 죄인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았으며 나는 예수께서 이루신 완전한 의를 의지하여 산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롬 8: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다”(고후 5:21). “사탄아 더 이상 나를 정죄하지 말라. 비방하지 말라. 그래 나는 죄인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께서 내 죄를 해결해 주셨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나의 의를 의지않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호심경을 입었다. 와서 해 볼테면 해 봐라. 이 사탄아.”
분명, 믿음을 가지고 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의를 소유할 때 우리에게는 담대함이 넘칩니다. 자신감이 넘칩니다. 이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영원히 용서함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용기가 흘러 넘칩니다. 정신적으로 아주 강하여집니다. 이에 베드로전서 1장 13절을 보니,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고 말합니다. 더 이상 사탄의 비방과 궤계가 먹혀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비유를 들어 봅시다. 어떤 아들이 도박빚을 지고 빚쟁이를 피하여 도망다닙니다. 그 다음 날 빚쟁이들이 그 아들의 아버지를 찾아가서 다 빚을 받아냈습니다. 그 사실을 이 아들은 모르고 가족들에게 연락도 안하고 도망자의 삶을 삶니다. 빚쟁이처럼 생긴 사람이 어디에 있으면 무조건 도망하며 불안함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전화 통화를 하게 되고 사실을 알고 보니 자신의 아버지가 도박 빚을 다 갚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이 아들이 어디 길을 갈 때 조금도 두렵지 않게 됩니다. 자신이 지불할 모든 빚을 아버지께서 갚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여러분이 주 안에서 의롭다는 사실을 영적 무기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녀이기 때문에 나는 의롭다고 믿어야 합니다. 내 의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예수님의 의입니다. 이 의가 바로 의의 호심경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1-22).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의 호심경을 차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의의 호심경을 찰 때의 심리적 변화, 신분적 변화, 영적 변화를 보여줍니다. 로마서 5장 17을 봅시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선물을 받은 자들, 곧 의의 호심경을 입고 사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삶을 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왕노릇하는 삶이 무엇입니까? 자신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빚쟁이 때문에 노예로 사는 삶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삶은 산다는 뜻입니다. 분명, 의의 호심경이 없을 때는 조롱과 비방을 당하는 자리에 있었지만, 의의 호심경을 차니 왕처럼 풍성하며 자유 안에서 충족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 병정은 호심경을 차고 있을 때 아주 강한 자신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우리도 의의 호심경을 차고 있을 때 자신감과 담대함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3-14). 언제 담대하여진다고 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를 믿을 때입니다. 담대함이 생기면 힘찬 기도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의 호심경을 입고 있는 자! 그들은 담대한 기도, 능력있는 기도, 자신있고 권세 있는 기도,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내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힘 입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요일 2:8-29).
예수님의 의를, 의의 호심경을 차고 다니면 담대하여집니다. 대장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철저히 순종하게 됩니다. 그래서 담대한 마음이 더욱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요일 3:21).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히 10:35).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0-21).
담대한 믿음의 삶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통하여 의로운 삶을 드러냅니다. 이는 마치 로마 군인이 의의 호심경을 입고 다닐 때마다 더욱 빛나고 화려해지는 것처럼, 그래서 번쩍 번쩍하며 그들의 호심경이 사람들에게 확 드러나는 것처럼, 의의 호심경을 찬 그리스도인들의 착한 행실은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찬란하고 화려하게 드러내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마태복음 5장 16절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행 28:31)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의 더러운 옷을 입고 그것을 의로 삼는 자들은 의의 호심경을 입은 자들을 향해 질투하며 대항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의를 쌓으려는 자들의 특징은 교만 가운데 언제나 남을 흉보고 비방합니다. 우리의 대화를 잘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다른 사람들의 흉을 보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면서 자신은 의롭고 떳떳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나 정말로 내 들보를 못 보고 남의 티를 찾아서 큰 부집개를 가져와 그 티를 뽑아내겠다고 식식거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의의 호심경을 차는 자의 특징은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러므로 내 의는 없으니 오직 주의 의를 힘있어 제 삶을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야 말로 복음에서 떠나지 않으며 언제나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의의 호심경을 입지 않는 자들은 어떤 실수나 죄악에 빠질 때, 또한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심하게 풀이 죽어 자리에 드러눕는 특징을 보입니다.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끝없는 자학 가운데 스스로 무너지고 맙니다. 의의 호심경이 없는 사람들의 심장이 파열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마귀의 공격을 노골적으로 당할 때 쉽게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간 로마 군사를 마음 속에 새겨 보기 바랍니다. 그들은 공동체입니다. 다들 호심경을 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저곳에 철과 놋으로 만든 호심경이 아니라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망토를 차고 있다고 합시다. 하늘의 빛의 영광이 다른 곳에서는 반사되는데 의의 호심경을 입지 않은 자들 때문에 빛이 발산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아군의 약점이 그대로 노출됩니다. 즉, 의의 호심경을 차지 않는 자들 때문에 적군의 눈을 멀게 하는데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동체 회원 모두가 의의 호심경을 차고 있다고 합시다. 그 영광이 반영되는 자리까지 사탄이 발을 델 곳이 전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둠에 속한 사탄이 어찌 광명한 빛의 의의 호심경에 접근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교회는 의의 호심경을 모두가 차고 있어야 마귀가 근처도 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믿음으로 의의 호심경을 차기 바랍니다. 의의 호심경은 사용할수록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드러냅니다. 즉, 믿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따라 행하며 그 의를 나타낼 때에 적군 마귀의 눈을 멀게 하면서 더욱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이에 영적 전쟁을 이겨나가는 승리의 기쁨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의의 호심경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호심경을 차고 다니며 그 호심경을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순종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나타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여지고 더욱 빛을 내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의 인생은 자신감과 담대함이 넘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반영하는 영광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 이후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의의 호심경을 착용하기 바랍니다. 또한 그 호심경을 열심히 차고 다니며 사용하여서 하나님의 나라를 빛낼 뿐 아니라 복음을 확장시키시는 데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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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항상 감사합니다!! 샬롬!!
^^
설교자료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