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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과(Chaendmeles. 木瓜. 木果. 花梨<日本>) (꽃말 : 平凡, 情熱, 誘惑. 2月 2日의 꽃. 中國 原産)
💢 西洋木瓜(Medlar) (꽃말 : 唯一한 사랑. 11月 1日의 꽃)
★ 傳說
(1)
中國의 어떤 마을에 일곱名의 子息을 둔 老人이 있었다.
일곱 番째의 막내는 10살이 되었을 때에 몸이 痲痺되는 病에 걸려서 知能發達도 좋지 않으며, 筋 및 骨이 萎縮되고 허리 아래가 뒤틀려서 걸을 때도 앉은뱅이 貌樣으로 異常하게 걸었다.
그래서 家族들은 그 아이를 `바보' 또는 `木瓜(머리가 잘 움직이지 않는 것)'라고 불렀고, 이웃사람들도 `木瓜'라고 불렀다.
한便 老人은 배나무 果樹園을 가지고 있었는데 많은 배나무 中에서 몇 그루는 맛이 없는 배가 열렸다.
시고 떫으며 쓴맛을 내는 배는 껍질은 普通의 배와 같지만, 果肉은 꺼칠꺼칠하여 배 같지 않은 배라는 意味에서 `木梨'라고 불렀다. 木梨는 돼지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每年 많은 量을 따서 버렸다.
어느해 배가 익는 季節, 木瓜는 배나무 밭을 지키다가 배 도둑이 오면 큰소리로 家族에게 알리는 일을 했다.
木瓜가 배나무 아래에 앉아 있으니 바람이 불어서 木梨가 아래로 떨어졌다. 木瓜는 그것을 泰然스럽게 먹었다.
知能이 떨어져서인지 단 것과 쓴 것도 區別을 못하는 것 같았다.
家族들은 그것을 보고 正말로 '바보'라고 말했다.
父母는 木梨를 모아 두었다가 겨울에 木瓜에게 삶아서 먹였더니 異常한 일이 發生했다. 木瓜의 四肢는 血이 通하게 되고 혼자서 걷게 되었다. 앉은뱅이 걸음을 걷던 木瓜가 걸을 수 있도록 된 것은 奇跡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所聞은 마을에서 마을로 퍼져 나갔다.
마을에 있는 醫師들도 所聞은 들었지만 自身들이 確認하지 않은 일이라 믿지 않았다. 어느날 醫師 한 名이 所聞을 듣고 木瓜의 집을 訪問했다. 分明히 只今까지 앉은뱅이 걸음을 하던 木瓜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일어서서 걷고 있었다.
醫師는 木瓜의 父母에게 木瓜가 몇年 程度 일어서지 못했으며, 무슨 藥을 服用시켰는지를 물었다. 5年 程度 됐으며 昨年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서 생것 과 끓인 木梨를 듬뿍 먹인 것 이외에는 다른것은 먹이지 않았다고 對答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血脈이 通하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木梨다! 都大體 木梨가 어떠한 것인지 보여줄 것을 醫師는 兩親에게 付託했다. 兩親은 箱子에 保管해 두었던 木梨를 갖고 왔다. 醫師는 木梨를 손으로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 보았는데, 좋은 냄새가 나는 程度였다. 이것이다! 醫師는 木梨를 藥으로 使用할 수가 있다고 생각해 팔라고 했지만, 父母는 그것을 그냥 醫師에게 건네주었다.
醫師는 木梨를 집으로 가져와 잘게 썰어 술을 담구었다. 醫師는 만나는 사람마다 앉은뱅이를 治療할 수 있는 술을 갖고 있다고 宣傳했다. 그 所聞을 듣고 발이 不自由스러운 사람들이 醫師한테로 몰려왔다. 醫師는 그 사람들에게 木梨酒를 마시게 했다. 어느 期間 동안 繼續 마신 앉은뱅이들은 일어나서 걸을 수가 있게 됐으며, 지팡이도 必要없을 程度가 되었다. 그래서 木梨酒는 有名해졌다.
다음 해에 醫師는 많은 돈을 支拂하고 木梨를 購入하여 술을 담아두었다가 筋骨의 病을 治療했다. 이렇게 繼續 反復 試驗한 結果, 木梨는 生藥의 하나가 되었다.
木梨는 木瓜의 앉은뱅이를 治療했기 때문에 木瓜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木梨酒는 木瓜酒로 불리게 됐다.
木瓜는 濕邪에 依해서 일어나는 발의 浮腫, 痛症을 治療하며 또한 발 筋肉의 痙攣을 治療하는데 使用된다.
(2)
옛날에 어떤 禪僧이 山길을 가다가 작은 통나무 다리를 건너게 되었는데 그 다리 中間쯤에 큰 구렁이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今方 스님에게 달려들 듯 毒을 쏘고 있었다.
스님은 할 수 없이 눈을 감고 觀世音菩薩을 부르며 도와 달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바람도 불지 않는 潛潛한 날인데도 다리 위로 뻗쳐있던 가지가 흔들리며 굵은 모과 열매 하나가 떨어져서 뱀의 머리를 맞추어 뱀은 다리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스님은 無事히 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禪僧을 잘 保護한 功으로 그 後부터 모과는 護聖果라는 別名을 얻게 되었다 한다.
🍎 牡丹(subshrubby-peony. 木芍藥, 富貴花, 木丹根皮, 花王, 富貴花) (꽃말 : 富貴, 榮華, 幸福한 結婚, 王子의 品格. 原産地 : 中國)
★ 傳說
(1)
新羅 時代에 唐나라에서 보내온 牡丹 그림을 본 어린 德曼公主( 뒷날 善德女王)가 “이 꽃에서는 香氣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고, 아버지 眞平王이 “네가 그걸 어찌 아느냐?” 하고 물으니 “무릇 女子가 뛰어나게 아름다우면 男子들이 따르는 法이고, 꽃에 香氣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 꽃은 무척 아름다운데도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이것은 分明히 香氣가 없는 꽃일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함께 보내온 석 되의 씨를 심었더니 正말로 그러해서 德曼公主의 英敏함에 모두가 놀랐다는 이야기가 傳해진다.
善德女王의 슬기를 알게 하는 세 가지 逸話인 知機三事 中 첫 번째로 나오는 이야기다.
그러나 牡丹에는 微弱하지만 香氣가 있어서 當然히 벌과 나비가 날아들고 品種에 따라 津한 香氣가 나는 것도 있다.
一般的으로 梅花의 香氣를 暗香, 蘭草의 香氣를 幽香, 牡丹의 香氣를 異香이라고 表現하기도 하는데 唐나라의 韋莊이라는 이가 읊은 詩에서도 牡丹의 香氣를 稱讚하고 있을 程度이다.
그러니 이를 모를 리 없는 唐太宗이 보내온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은 善德女王이 配偶者가 없음을 업신여기고 嘲弄한 것이라고 解釋하기도 한다. 牡丹 그림에는 元來 나비를 그려 넣지 않는다고 한다.
牡丹은 富貴를 뜻하고 나비는 80歲를 뜻하기 때문에 牡丹 그림에 나비 그림을 넣으면 80歲까지만 富貴를 누리기를 祈願한다는 뜻이 되므로 넣지 않느니만 못 하다고 한다.
卽, 永遠히 富貴를 누리라는 意味에서 牡丹만 그리고 나비는 일부러 登場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牡丹의 씨를 심어서 키워봤더니 正말로 香氣가 없더라 하는 말은 後世의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일 수 있다.
知機三事는 元나라의 干涉을 받던 忠烈王 때 一然 스님이 지은 三國遺事에 나오는 이야기이므로 歷史的 事實이라기보다 지어낸 이야기일 可能性이 높다.
中國에서는 예로부터 牡丹을 꽃 中의 第一이라고 하여 꽃의 王 또는 꽃의 神으로, 또 富貴를 뜻하는 植物로서 富貴花라고도 부른다.
(2)
唐나라 則天武后가 首都 長安에서 잔치를 하고 놀았다. 한참을 興이 나서 놀다가 自身의 强한 權力을 모두에게 보여 주려고 "百花가 모두 함께 펴서 나를 모셔라"고 命令했다. 그러자 다른 모든 꽃들은 順順히 則天武后의 命令대로 꽃을 피웠는데 單 하나의 牡丹만이 꽃을 피우지 않았다. 이에 則天武后는 크게 火를 내고 牡丹을 當場 작은 都市, 洛陽으로 모두 내쫓았다.
그러자 神奇하게도 牡丹이 洛陽에 到着하자마자 꽃을 활짝 피웠다 한다. 이를 안 則天武后는 더욱 火가 나서 참지 못하고 當場 牡丹을 불태우도록 命令했다. 그러나 牡丹은 오히려 더욱 아름답게 피어날 뿐이었다고 한다.
이 說話를 背景으로 牡丹은 權力에 屈하지 않는 節槪를 象徵하는 꽃으로도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中國을 象徵하던 牡丹도 政治, 歷史, 時代背景의 變化에 따라 中國人의 民族性을 象徵하기 힘들게 되었다.
只今의 中國人들은 牡丹보다는 梅花의 强靭함을 國民的 象徵으로 여기고 있는데, 이는 中國 紅軍이 毛澤東을 따라 革命했을 때부터였다. 中國 紅軍이 數많은 雪山大河를 건너 大長征을 마쳤을 때의 精神을 梅花로 比喩하였다. 이때부터 牡丹보다 더 아름다우면서도 强한 이미지를 주는 梅花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3)
그리스에 '파에온'이라는 公主가 이웃나라 王子와 사랑에 빠졌는데, 戰爭이 일어나면서 王子는 戰爭터로 떠났으며 公主는 王子가 無事히 돌아올 수 있기를 懇切히 기다렸다.
戰爭터로 간 數많은 사람들이 돌아왔지만 歲月이 흘러도 끝내 王子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날 기다림에 지쳐 心身이 弱해져 있는 公主의 宮闕 앞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앞 못보는 樂師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하도 구슬픈 노랫소리에 公主는 귀기울여 듣다가 깜짝 놀랐다.
가만히 들어보니
"王子는 戰爭터에서 公主를 그리워하다가 머나먼 異國땅에서 죽었다오.
王子는 公主를 그리워하다가 죽어서 牡丹꽃이 되었다네."
그 노래는 王子가 公主를 그리워 하다가 죽어서 牡丹이 되었다는 노랫말이었다. 公主는 노래를 듣고 머나먼 異國땅에서 牡丹꽃으로 變해버린 王子를 찾아나섰다.
너무도 힘겹게 牡丹꽃으로 變해버린 王子를 찾은 公主는 牡丹꽃 곁에서 다시 王子를 만날 수 있기를 懇切히 祈禱하였다.
懇切한 祈禱에 神들도 感動하여 王子의 牡丹꽃 곁에 파에온 公主를 한송이 붉은 芍藥꽃으로 誕生하게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그리스의 파에온 公主가 아닌, 中國의 어느 公主로 나온다)
🍎 木蓮 (Kobus Magnolia, 辛雉, 報春花, 辛夷, 木筆, 北向花) (꽃말 : 崇高한 精神, 友愛, 高貴, 自然에의 사랑. 原産地 : 아시아, <韓國, 中國>)
💢 白木蓮(學名 Magnolia denudata Desr. 北向花) (꽃말 : 이루지 못한 사랑. 原産地 : 韓國, 中國)
💢 紫木蓮(Lily Magnolia) (꽃말 : 自然愛, 崇高한 사랑. 7月 4日의 꽃. 原産地 : 中國)
★ 傳說
먼 옛날, 하늘나라에는 才色을 兼備한 公主가 살고 있었다. 白玉 같은 얼굴에 智慧롭고 마음씨도 고와 數많은 貴公子들이 짝사랑하였다.
아버지 玉皇上帝는 그 中에서 한 靑年을 골라 公主의 配匹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公主는 왠일인지 北쪽의 바다의 神만을 戀慕하는 것이었다. 바다의 神은 容貌는 빼어났지만 性質이 暴惡스러웠다. 玉皇上帝는 그런 바다의 神과의 結婚을 絶對로 許諾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公主는 아버지가 그러면 그럴수록 그에 對한 그리움이 더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公主는 몰래 宮闕을 빠져 나왔다. 그女는 물어 물어 北쪽 나라로 向했다. 生苦生 끝에 찾아간 北쪽 바다는 몹시 추웠으나 그래도 바다의 神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期待感에 다시 勇氣가 솟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다의 神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다. 너무나 失望한 公主는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도, 바다의 神 없이 살아갈 自信도 없었다. 公主는 얼음장 같은 검푸른 바닷물에 몸을 던져 버리고 말았다. 公主를 가엾게 여긴 바다의 神은 그女의 屍身을 건져 陽地바른 언덕에 묻어 주었다.
그리고 죽은 公主의 넋을 慰勞하고 冥福을 빌어 주는 뜻에서, 自己의 아내에게 毒藥을 먹여 죽게 한 後 公主의 무덤 옆에 나란히 묻어 주었다.
하늘나라에서 이 消息을 傳해 들은 玉皇上帝는 이들을 불쌍하고 가엾게 생각하여 무덤에 꽃이 피어나게 하였다. 公主의 무덤에는 白木蓮이, 바다의 神의 아내의 무덤에는 紫木蓮이 피어났다. 白木蓮은 只今도 얼굴을 北쪽으로 向하고 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公主의 넋이 꽃으로 피어난 것이라 하여 '公主의 꽃' 이라 부르기도 한다.
🍎 木花(Cotton Plant. 綿花, 棉實, 劫貝, 古終, 吉貝, 棉花, 木棉·木綿, 凉花, 草綿, 미영, 미면) (꽃말 : 優秀, 어머니의 사랑, 當身은 氣品이 높다. 12月 12日의 꽃. 原産地 : 아시아)
★ 傳說
(1)
紀元前 2,500年쯤의 古代 인더스 遺跡, 그리고 古代 안데스 遺跡에서도
發見되고 있는 木花는 印度의 木花栽培를 그리스에 傳한 것을 紀元前 400年쯤의 歷史家 헤로도토스이다.
그를 通해 地中海 沿岸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100 ~ 200年頃에 그리스의 이리스에서 木花솜으로 헤어네트를 만들어 썼는데, 마침내 十字軍이 木花에 關한 知識을 유럽에 傳한 것이라고한다.
우리나라에는 高麗 때 中國에서 文益漸이 씨앗을 붓두껍에 넣어 몰래 가져와 傳해지게 되었다.
(2)
옛날 中國 어느 마을에 '모노화'라는 이름을 가진 아리따운 處女가 살았는데, 많은 總角들이 美貌에 반하여 請婚을 했지만 모두 拒絶했다고 한다. 돈도, 權力도 拒否했던 그女는 어느 날 別로 가진 것 없는 商人이 건넨 꽃 한 송이를 받고 結婚을 했다.
모노화는 男便과 幸福한 家庭을 꾸렸고 예쁜 딸도 얻어 이름을 '소조챠'라 지어주었다.
그러나 그 幸福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나라에 戰爭이 일어나 徵集되어간 男便은 戰死하고 나라도 亡하고 말았다.
더 以上 먹을 것도, 따뜻하게 지낼
곳도 없는 그女는 '소조챠'를 살리기
爲해 自身의 살점을 떼어 딸에게 먹였다. 그로 因해 모노화는 過多出血로 끝내 死亡하고 말았다.
周邊 사람들의 도움으로 葬禮를 겨우 치루었는데, 얼마가 지나자 그女의 무덤가에서 새싹들이 돋아나기 始作했다. 가뭄에도 그 植物은 神奇하게도 꽃을 피우고 열매도 맺었다. 그 열매가 터지면서 안에서는 하얗고 부드러운 솜이 나왔다.
사람들은 죽은 '모노화'가 딸을 잊지 못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솜을 보냈다고 여겼다.
이 植物을 사람들이 '모노화'의 이름을 따서 처음에는 '모화'라 부르다가 時間이 지나면서 '木花'로 불렀다 한다.
🍎 沒藥의 꽃(Myrrh. 아랍語로 '맛이 쓰다'라는 뜻의 'murr'에서 由來) (꽃말 : 眞實. 11月 9日의 꽃. 原産地 : 아라비아, 이티오피아, 소말리아, 地中海 沿岸)
★ 傳說
(1)
키프러스 王의 딸 밀라는 苦惱에 빠졌는데 이는 아버지를 사랑한 것이 그 原因라고 한다.
끝내 아라비아 沙漠으로 追放을 當한뒤 죽음을 맡게 된다. 神들은 밀라를 가엾게 여겨서 한 그루의 나무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다.
이 나무는 平生 後悔의 香氣를 내뿜는데 이것이 밀라가 흘리는 눈물이라고 한다.
(2)
沒藥은 硫黃과 함께 聖經에 자주 登場하는 貴한 香料의 하나다. 마 2:11에 "東方博士 세 사람이 貴한 禮物을 가지고 별을 따라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에 이르러 엎드려 敬拜하고 보배함을 열어서 黃金과 硫黃과 沒藥을 禮物로 드렸다"고 하였다.
마 27:34과 막 15:23에는 '예수님을 十字架에 못박고자 골고다로 끌고가서 沒藥을 탄 葡萄酒를 드렸으나 드시지 않으셨다.'는 記錄이 있는데, 그 맛이 얼마나 쓴가가 쓸개 탄 葡萄酒로 表現되어 있다.
沒藥은 뜨겁게 하거나 태우면 强烈한 香氣를 풍긴다.
沒藥은 猶太人 宗敎意識에서만이 아니라, 古代 애굽人도 寺院에서 燻製로 피웠고, 太陽神의 祭壇에 每日 正午에 피웠던 香이었다. 또 屍體를 防腐保存할 때도 香品으로 使用하였다.
값비싼 輸入品이었던 沒藥은 香料뿐 아니라, 治療와 香水로도 높이 評加받았다. 古代 그리스人이나 로마人도 猶太人 못지않게 많이 愛用했으며, 페루샤(이란)의 歷代王은 王冠 속에 넣어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 無窮花(Rose of Sharon. 槿花. 木槿. 舜花. 舜英. 花奴. 藩蘺草. 薰華草) (꽃말 : 微妙한 아름다움, 纖細한 아름다움, 一片丹心. 2月 22日과 10月 28日의 꽃. 原産地 : 韓國, 中國, 印度)
★ 傳說
옛날 어떤 마을에 詩書에 뛰어나고 재주도 많은 아름다운 女子가 눈 먼 男便과 오붓하게 살았으며, 情도 많아 周圍 사람들의 評判도 매우 좋았다.
그런데 이 女子를 貪낸 많은 男子들이 눈먼 男便 代身 自身과 살자며 하루가 멀다하고 請婚들을 했으나 모두 拒絶當했다.
그런데 어느 날, 고을의 員님이 所聞을 듣고 그女를 官衙로 불렀는데 人品과 姿態와 美貌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는 며칠동안 온갖 甘言利說로 請婚을 했으나 女人은 盲人이지만 어엿한 男便이 있다며 끝내 拒絶하였다.
참을 수 없는 侮蔑感에 火가 난 員님은 거짓 罪를 뒤집어 씌우며 自己를 擇하든지 죽음을 擇하든지 둘 中 하나를 擇하라며 威脅했다.
그러나 女人은 끝내 男便과의 節義를 擇했다. 더는 懷柔가 通하지 않자 罪를 씌워 女子를 죽이라고 命令했다. 佳人薄命이랄까 結局 女子는 捕卒들에게 끌려나가며, "自身이 죽으면 꼭 살던 집 울타리 아래 묻어달라"고 哀願했다.
다음해, 울타리 밑에서 꽃나무 한 그루가 자라더니 집 안에 있는 눈 먼 男便을 保護하듯 몇 해에 걸쳐 집을 둘러쌓며 자라 꽃동산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無窮花이다.
🍎 무릇(Scilla. 地棗. 地蘭. 綿棗兒) (꽃말 : 强한 自制力, 忍耐, 强靭. 5月 31日의 꽃. 原産地 : 아시아)
★ 傳說
옛날 어는 山골에 男便을 먼저 여의고, 아들과 살고있는 어진 어머니가 있었다. 어려운 家庭 形便에도 두 딸은 出嫁를 시켰으나 막내 아들에게는 媤집 오겠다는 處女가 없었다.
어머니는 마땅한 며느리감을 찾았으나 가난한 집에 들어가 苦生하기 싫다며 모두들 退字를 놓았다. 어머니의 시름도 깊어갈 무렵,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褓퉁이를 든 한 處女가 다가오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山 너머에 사는 處女로 病든 홀아버지를 혼자 奉養하며 살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내가 죽거든 山 너머 외딴집을 찾아가보거라."이런 遺言을 남기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이 處女가 아들의 天上配匹이로구나 하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렇게 해서 아들도 結婚하고, 孫子도 생겼으며 아들 內外의 至極한 孝道를 받으며 幸福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며느리가 그만 등瘡이 생겼다.
며느리가 등瘡으로 苦痛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속이 타들어 갔다. 가까운 마을의 醫員도 없고, 이렇다 할 治療도 제대로 할 수 없자 손수 며느리 등瘡에 쓸 治療 藥을 찾아 山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天地神明님께 貴한 藥草를 찾게 해 주십사고 數없이 祈禱를 올렸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이다 暫時 쉬려고 앉았는데 눈앞에 별처럼 생긴 꽃이 보였다. 처음엔 別생각 없이 그저 예쁘구나 하며 바라보다가, 어쩌면 이 特異한 풀이 며느리의 傷處에 도움이 되는 藥草일지도 모르겠다 싶어 그 꽃의 뿌리를 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뿌리를 으깨서 며느리의 등瘡에 붙여 주었더니 次츰 痛症이 가시며 며칠이 지나자 등瘡이 말끔히 낳았다.
그 植物이 바로 神이 준 무릇이다.
🍎 無花果(Fig-Tree) (꽃말 : 豊富, 豊饒한 結實, 熱心. 4月 5日의 꽃. 地中海 東部地域 原産)
★ 傳說
(1)
無花果 나무는 聖經과는 因緣이 많은 나무이다.
聖經에는 무려 60如回나 無花果 나무가 登場한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여호와(Jehovah)가 따먹지 말라고 하였지만 뱀의 誘惑으로 따먹은 後 부끄러움을 알게 되어 에덴 동산에서 쫒겨나게 만든 열매가 바로 無花果이다.
또 聖經에 無花果 나무는 이스라엘을 象徵하는 나무로 登場한다.
聖經에 예수님이 無花果나무에 열매를 맺기 爲해 3年을 努力했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찍어 낸다고 하면서, 그 無花果나무에 다시 싹이 트면 救世主의 再臨이 있을 것이라 하였다.
이는 예수님이 이스라엘 百姓들에게 옳은 말을 傳하려 努力하였으나 成果가 없어 이스라엘을 滅亡시켜 苦生하도록 할 것이며, 이스라엘이 다시 만들어지면 곧 救世主의 再臨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2)
西洋에는 無花果나무에 對한 傳說이 많다. 禁斷의 나무 또는 生命의 나무 열매를 먹은 아담과 하와(Ḥawwāh)가 無花果나무의 잎으로 허리를 감쌌다고 한다.
예수께서 베타니아에서 멀리 無花果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열매를 찾았으나, 없기에 失望하여
“이제부터 너는 永遠히 열매를 맺지 못하여 아무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할 것이다” 라고 詛呪하였던 바, 다음날 弟子들이 그 나무가 송두리째 죽었음을 發見하였다는 이야기가 聖書에 실려 있다.
🍎 文珠蘭 (Crinum asiaticum.
文珠花, 海帶七,羅裙帶, 萬年靑) (꽃말 : 正直, 純朴, 淸純, 淸楚. 原産地 : 韓國. 熱帶아시아. 日本. 北아메리카 海岸)
★ 傳說
먼 옛날 濟州道 토끼섬 隣近에 5~6歲쯤 된 한 男子 아이가 물질하러 나가신 海女 할머니를 기다리며 토끼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아이의 家族으로는 오직 늙으신 할머니 뿐이었다.
할머니는 젊었을 때부터 물질을 해서 生計를 維持하였으며, 이젠 나이가 들어 물질하기도 힘겨웠지만 孫子와 먹고 살기 爲해서는 어쩔 수 없었기에 늘 아침 일찍 바다로 나갔다.
어린 孫子는 홀로 바닷가에 남아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조개를 주으며 할머니를 기다렸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올 時間이면 토끼섬 가까이로 마중을 갔다.
할머니는 늘 토끼섬 附近에서만 作業을 했으며, 아이는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이 되면 토끼섬까지 건너가기도 했다.
漸次 氣力이 衰해 가는 할머니는 自身이 오래 살지 못함을 斟酌하고 孫子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 차츰 집으로 돌아오는 時間을 빨리했다. 孫子는 할머니를 빨리 만날 수 있어 좋기만 했다.
할머니는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世上에 하나뿐인 사랑하는 孫子를 두고 떠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내가 없어도 살 수 있겠니?" 할머니가 슬며시 孫子의 얼굴을 쳐다 보고 물으면 "할머니와 萬年토록 함께 살건데요, 뭐"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날 할머니가 衰弱한 몸을 토끼섬에 暫時 뉘인 後로 永遠히 깨어나지 못하였다. 할머니의 魂魄은 孫子에 對한 걱정으로 토끼섬을 떠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렇게 서성이고 있는 사이 할머니 발에서 뿌리가 돋아나고 겨드랑이에선 잎사귀가 돋아 나기 始作하여 토끼섬을 가득 채웠다.
孫子의 말대로 萬年을 함께 살기 爲해 할머니의 넋이 萬年靑으로 일컫는 文珠蘭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只今도 濟州道의 토끼섬엔 文珠蘭이 가득 自生하고 있다.
🍎 勿忘草(Forget-me-not) (꽃말 : 날 잊지 말아요, 眞實한 사랑. 2月 7日과 5月15日의 꽃. 原産地 : 유라시아, 北아메리카 溫帶地域, 舊大陸 熱帶地域)
★ 傳說
(1)
中世 때, 獨逸에는 르돌프라는 騎士와 金髮의 美女 베르타는 서로 무척 사랑하는 사이였다.
어느날 그들은 幸福에 젖어 서로의 손을 잡고 도나우 江가를 散策하고 있었다. 그들은 문득 물가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되었고 베르타는 그 꽃이 너무나 아름답고 貪스러운 나머지 르돌프에게 그 꽃이 갖고싶다고 말했다.
르돌프는 그女를 기쁘게 하기 爲해 危險을 무릅쓰고 언덕을 내려갔다.
한 손은 雜草를 잡고 몸을 가까스로 依支하며 다른 한 손을 꽃을 꺾었다.
한瞬間 잡고 있던 雜草의 뿌리가 뽑히며 르돌프는 激流속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必死的인 몸부림을 치면서 "나를 잊지 말아주오(Forget me not)" 라고 그女에게 외치며 손에 꽃을 꼭 쥔채 激浪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베르타의 가슴에 굳게 안겼을 도나우 江가에 피어있는 파란 꽃 勿忘草는 只今도 傳해지고 있는 슬픈 사랑의 傳說花가 되었다.
(2)
프랑스 南쪽에 노르망디라는 平野가 있었다.
이 넓은 平野에는 해마다 軟보라빛 勿忘草가 끝없이 피어있어 그 곳을 지나가는 旅行者들에게 깊은 印象을 주고 있는데, 그 勿忘草에는 다음과 같은 事緣이 얽혀있다.
英國과 프랑스의 戰爭이 났을때 얘기다. 戰爭이 한창일때 도버海峽을 건너 프랑스에 遠征 온 英國의 騎士가 한 사람 있었다.
그는 熾熱한 戰場에서도 언제나 日記冊을 지니고 다니며 틈만나면 펼쳐보곤 했는데, 그것은 한 少女가 自己를 爲해 精誠스럽게 쓴 것이었다.
싸움이 甚해져 英國軍의 最後의 突擊戰이 始作 되던날 그 젊은 騎士는 不幸하게도 敵에게 一擊을 當해 깊은 傷處를 입고 말 위에서 떨어졌다. 이때 그의 품속에서 日記冊이 튕겨나가자 그는 숨을 거두는 그 瞬間까지도 日記冊을 잡으려 애를 썼다.
그때 冊 갈피에 끼어 있던 勿忘草 꽃에서 씨앗이 떨어져 나가 싹이 움트기 始作 했고, 오랜 歲月 피고 지며 퍼져나가 오늘날 노르망디의 넓은 平原에 勿忘草 꽃이 滿發하게 되었다는 한다.
🍎 물푸레나무(Retuse Ash. 梣木, 靑皮木, 水精木, 蜡樹皮, 秦白皮, 쉬청나무) (꽃말 : 謙遜, 熱心. 原産地 : 韓國. 中國. 日本)
★ 傳說
(1)
北유럽에서 傳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 해와 달의 運行을 管掌하는 最高의 神인 “오연”이 부엉이로 變하여 물푸레나무 꼭대기에서 世上을 살피고 있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물푸레나무의 키가 普通 40m까지 자라는 것으로 보아 神聖한 存在로 보였을 것이고, 키가 크다보니 그 위에 올라가서 보면 世上이 넓게 잘 보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自然스럽게 물푸레나무에 對한 敬畏心이 생겨났다.
키가 크다보니 그 뿌리도 엄청 크고 깊어 땅속에는 神이 살고, 巨人이 살고, 또 땅을 管掌하기 爲해 地上에 存在하며, 뿌리도 3個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뿌리 곁에는 各各 3個의 샘물이 있어 過去와 現在와 未來의 運命을 안다는 女神이 살고, 智慧의 神이 살고, 어둠을 좋아하는 毒蛇가 사는 샘물이 있다고 믿었으며, 물푸레나무의 가지에는 4마리의 사슴이 四方으로 뛰어 다니며 바람을 만든다고 보았다. 미루어 이 傳說을 通해서 유럽文化의 斷面을 볼 수도 있다.
(2)
옛날에는 마을 어귀에 물푸레나무를 심기도 했었는데, 나무의 特性上 理解하기가 어려우나 科擧에 及第하고 還鄕 할 때면 大體로 물푸레나무에서 절을 하였다고 하는데, 그 理由는 自身을 嚴하게 매질로 다스려주었던 물푸레나무 德澤에 科擧에 合格을 했다는 뜻으로 고마움을 表現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푸레나무는 硬度와 彈力性이 매우 좋아 회초리나 도리깨, 罪人을 審問하는 몽둥이, 도끼자루, 설피, 달구지바퀴를 만들었고 단단하고 適當한 무게로 野球 방망이를 만드는 나무이며, 野球방망이로 使用한 理由는 同一한 條件에서 記錄을 낼 수있게 하기 爲함이다. 그 外에 소의 코뚜레도 만들어 使用했다.
🍎 미나리아재비(Butter Cup. 米娜麗亞再費) (꽃말 : 天眞爛漫. 1月 20日의 꽃. 分布地 : 韓國, 中國, 臺灣, 日本)
★ 傳說
미나리아재비는 元來 하늘에 살던 별이었다.
별은 낮이고 밤이고 恒常 하늘에 있었지만 사람들은 별이 보이는 밤에만 별이 있다고 했다.
事實 낮에는 아주 큰 별인 해가 있어서 아무리 반짝거려도 사람들에게 自己를 보여줄 수가 없었다.
그 많은 별 中에서 아주 노란 별이 있었는데, 이 별은 한 가지 所願이 있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祈禱를 했다.
'하느님, 저는 낮에도 사람들이 예쁘다고 봐줄 수 있는 반짝이는 별이 되고 싶어요. 밤은 너무 추워요.' 라고.
그 祈禱가 얼마나 懇切했는지 하나님은 그 별의 所願을 들어주기로 했다. 노란 별은 별똥이 되어 땅으로 내려왔는데, 그 별똥이 떨어진 자리에서 사랑을 象徵하는 하트 貌樣의 이파리를 가진 꽃이 피기 始作했다.
그것이 미나리아재비다.
그런데 땅에 내려오니까 또다시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다.
그래서 몸이 가벼워지면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을까 해서 自身을 비우고 또 비웠다.
그래서 미나리아재비의 줄기는 텅 비워지게 된 것이고, 가벼워서 '애기젓가락풀'이라는 別名도 얻었다.
🍎 미모사(Humble Plant. 잠풀. 神經草. 美貌師. 感應草) (꽃말 : 銳敏한 마음, 纖細, 부끄러움. 1月 26日의 꽃. 브라질 原産)
★ 傳說
미모사는 몹시 倨慢스런 公主로 謙遜함은 찾아 볼 수 없고, 늘 自身이 世上에서 第一이라고 생각하며 콧대 또한 높았다.
美의 女神마저도 “참으로 어여쁜 얼굴을 가진 公主로구나”라며 미모사를 稱讚했다.
美貌에 歌舞도 뛰어나고 詩도 잘 지었지만 世上 살이를 따분해 하며, 可笑롭게만 여겼다.
이런 公主의 態度가 늘 못마땅한 임금님은 하루는 公主를 불렀다.
“公主는 듣거라. 世上에는 美人도 많고, 詩와 書며 歌舞 等 多方面에서 뛰어난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단다. 네가 아직 그런 훌륭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해서 네 自身만 最高인줄 잘못 알고 있단다. 앞으로는 人生을 살아감에 謙遜을 美德으로 삼아야 한다. 穀食은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임금님은 조용히 公主를 타일렀다.
“아바媽媽, 都大體 제가 相對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相對될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公主는 뉘우치기는 커녕 오히려 아버지인 임금님에게 말대꾸를 하였다.
“그 생각이 틀린 거야. 잘나면 잘날수록 謙遜하고 얌전해야지, 公主의 身分으로 어찌 그리 輕擧妄動하는고.”
“아바媽媽는 저만 惹端치십니다.”
公主는 버릇없이 살짝 눈을 흘기며 콧노래를 불렀다.
“公主야, 그럼 네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이 都大體 무엇이란 말이냐?”
公主는 어깨를 으쓱했다.
“많지요. 아바媽媽 德分에 돈도 많고 權力도 있고, 歌舞와 詩에도 能하며,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美貌를 지녔지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아름다움이라든지, 춤을 잘 춘다는 것은 그리 자랑이 될 수가 없단다.”
제가 第一이라고 믿고 있는 公主는 아버지의 訓育을 귀담아 듣지 않고 되레 아버지를 怨望스러워 하며, 마음을 鎭靜하려 庭園을 서성거렸다.
그때, 어디선가 너무도 恍忽한 旋律의 하프 소리와 詩를 읊조리는 소리가 公主의 귀청을 울렸다. 公主는 깜짝 놀라며 '나 보다 더 잘 타는 하프 소리가 있다니' 하며 귀를 疑心했다.
公主는 한참 동안 넋을 잃고 하프 소리를 듣다가 自己도 모르는 사이에
그 소리나는 쪽으로 발을 옮기다가도
깜짝깜짝 놀라며 멈춰 섰다.
“이 밤에 누가 저리도 훌륭하게 하프를 타고 아름다운 詩를 읊지?”
好奇心과 嫉妬에 찬 公主는 이제 그곳으로 달려갔다.
公主는 그만 소스라치게 놀랐다.
襤褸한 차림의 牧童 같은 少年이 바위에 앉아서 詩를 읊고 있었다.
“어머나, 어쩌면 저리도~" 公主가 더욱 놀란 것은 牧童 차림의 少年 옆에 아흡 名의 女人들이 둘러앉아 微笑를 머금고 少年이 읊는 詩에 맞춰 하프를 타고 있었다.
그 아흡 女人들의 얼굴을 본 公主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저렇게 예쁜 美人도 있었나?”
눈이 휘둥그래진 公主는 다시 詩를 읊는 少年을 보았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少年의 모습은 일찍이 이 世上에서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제서야 公主는 아바媽媽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것은 아무런 자랑이 될 수 없다고 나무라시던 그 모습. 公主는 只今까지의 모든 일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저 少年이 눈을 떠 봤으면·····. "
얼마 동안 詩를 읊고 있던 牧童 차림의 少年은 눈을 떴다.
눈을 뜬 少年은 唐慌하는 公主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별빛보다 차가웠고, 무엇을 꿰뚫어 보듯했다.
‘이 世上에서 第一 잘난 公主님······.’
이렇게 꿰뚫어 본다고 생각한 公主는 羞恥心에 어쩔 줄 몰라했다.
아흡 名의 女人들이 소리를 내어 自身을 비웃는다고 생각한 미모사 公主는 너무도 부끄러운 나머지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얼어버렸다.
가엾게도 미모사 公主는 그만 한 포기 풀로 變하고 말았다.
이때, 詩를 읊던 少年은 풀이 된 公主를 바라보며 “진작 謙遜할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씨만 지녔더라도..."하면서, 그 풀을 어루만지려고 하였다.
풀은 그만 부끄러워 몸을 말며 움츠렸다. 이때부터 公主는 미모사가 되었고, 사람이 만지려고 하면 살아 온 옛날이 부끄러워 몸을 움츠리는 것이다.
詩를 읊던 少年은 太陽의 神 아폴로가 變裝했고, 하프를 타던 아흡 名의 美人은 音樂에 天才들인 太陽神 아풀로의 侍從들이었다.
🍎 미치광이풀(Heterophylly Falsestarwort. 개별꽃, 들별꽃, 太子蔘, 孩兒參) (꽃말 : 미치광이, 귀여움. 原産地 : 韓國. 日本)
★ 傳說
옛날 어느 山골에 새색시가 飯饌으로 봄나물을 무쳐먹기 爲해 나물을 뜯으려 山을 올랐다.
한참 나물을 찾다가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는 풀을 發見하고 뜯어왔다.
이 풀의 强한 毒性을 모르는 색시는 生菜 겉절이를 해 먹고선 큰 苦痛속에 허우적대다 結局 죽고 말았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悲慘한 모습이 마치 미친 사람과 같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미치광이풀이다.
🍎 민들레(Dandelion. 僕公英, 黃花地丁, 蒲公英, 蒲公草, 금잠채, 문들레, 안질방이, 앉은뱅이, 앉은방이, 미염둘레) (꽃말 : 感謝하는 마음, 幸福, 사랑의 神托, 不死身. 5月 3日의 꽃. 原産地 : 韓國, 中國, 日本)
★ 傳說
(1)
아주 먼 옛날에 비가 몹시도 내리던 때가 있었다. 온 世上이 물에 잠기고 민들레도 꼼짝없이 물에 빠져서 목숨을 잃을 地境에 이르렀다.
민들레는 너무 무섭고 걱정이 되었기에 그만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다.
물이 턱밑에까지 차오르자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懇切히 祈禱를 드렸다. “하느님 너무 무서워요. 목숨만 살려주세요.” 그 때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민들레의 씨앗을 하늘 높이 날려 陽地바른 언덕에 사뿐히 내려놓았다.
그 이듬해가 되어 그 자리에는 민들레의 새싹이 돋아나서 새로 자라게 되었다.
민들레는 하느님의 恩惠에 깊이 感謝하며 봄이 오면 밝은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는다.
그래서인가 꽃말은 '感謝하는 마음'이다.
(★ 옛날 노아<Noaḥ>의 大洪水가 일어날 무렵의 일이다.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罪를 犯하자 하나님께서는 惡한 人間들을 滅亡시키기로 하였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40日 동안 온 땅에 비가 내려 洪水가 날 것이니 큰 方舟를 만들고 짐승 한 雙씩을 태우라고.
動物들을 차례차례 方舟에 태우고 나니, 正말로 하늘에서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洪水가 났다. 모두 몸을 避하자!"
方舟에 못 탄 짐승들은 뒤늦게야 野壇法席을 떨었다.
"진작 노아 할아버지의 말을 들을 걸 그랬어."
"노아 할아버지를 미친 사람으로 取扱하는 걸 보고 이렇게 될 줄 알았다구."
작은 꽃들이 떠들어 댔다.
민들레도 親舊들을 걱정을 했다.
"사슴이랑 토끼는 배에 탔을까? 발이 빠르니까 無事히 올라탔을거야."
어느덧 물이 민들레의 발꿈치까지 올라왔다. 발이 땅에 붙어 있는 민들레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민들레는 怯에 질렸다.
"아아,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이대로 가면 난 죽고 말텐데." 하늘에서 繼續 퍼붓던 장대 같은 비는 조금 있으려니까 민들레의 허리까지 찼다.
민들레는 얼마나 애가 탔던지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다.
"하나님, 이 보잘것없는 植物을 살려 주세오. 저를 救援해 주옵소서."
그 때 하나님은 민들레의 懇切한 祈禱를 듣고 불쌍히 여겨 救해 주기로 마음 먹었다.
갑자기 바람이 씽 하고 불어 오더니 민들레 씨를 멀리멀리 날렸다.
민들레 씨는 하늘을 날며 四方을 휘휘 둘러보았다. 世上은 온통 물로 뒤덮여 있었다. 살아 있는 生物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님은 민들레씨를 노아의 方舟 지붕 위에 살짝 올려놓았다.
方舟의 지붕 위에 앉아 있던 민들레씨는 조그만 구멍으로 方舟안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 있는 動物들은 모두 하나님께 感謝하고 있었다.
마침내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지기 始作했다. 민들레씨는 山中턱 陽地바른 곳에 내려앉아 다시 방긋 웃는 노란 꽃을 피우게 되었다. 민들레는 낮에는 어여쁜 얼굴로 하나님의 恩惠에 感謝하였으며, 해가 없는 밤이면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잠이 들며 하나님께 感謝하며 살게 되었다.)
(2)
옛날 어느 마을에 '민들레'라는 處女가살고 있었다.
민들레는 너무도 사랑하는 한 靑年과 結婚까지 約束했다.
그런데 갑자기 戰爭이 나는 바람에 靑年은 戰場으로 徵集되어 갔으며 結局 戰死하고 말았다.
사랑하는 戀人을 잃은 슬픔에 민들레는 몇날 며칠을 울다가 끝내 몸이 衰弱해져 죽고 말았다.
얼마後 민들레와 그의 戀人이 다녔던
마을 곳곳마다 꽃이 자라나기 始作했는데, 사람들은 그 꽃은 만들레의 넋이 깃든 꽃이라해서 處女의 이름을 따 민들레꽃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민들레 꽃을 두고 一片丹心이라 일컫기도 한다.
(3)
옛날 어느 나라에 王子가 宮闕의 庭園을 걷고 있었다. 父王은 王子에게 王位를 물려줄 생각을 않았으므로, 王子는 밤 하늘을 쳐다보며 王이 되게 해 달라며 懇切히 祈禱했다.
懇曲한 所願을 들은 하늘나라에서 별 天使가 내려왔다.
"그대의 所願이 하늘나라에 通했오. 그대를 王이되게 해주는 代身 한 가지 條件이 있오. 따르겠오?"
王子는 기쁜 마음으로 應하겠다고 했다. 그 條件은 王이되어도 3年間은 命令을 내리지 못하며, 3年 後에도 한 番만 許容된다는 것이었다.
王位를 繼承한 王子는 王이 됐으나 命令을 내릴 수 없어 沓沓하고 火가 치밀었다. 이를 꾹 참고 견뎌 3年이 지난 어느날 갑자기 별 天使가 미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린 命令이
"모든 별들아 내 발아래로 떨어져 꽃이되어라."였다.
하늘나라에서 對策會議를 열었으며 約束데로 하늘의 無數한 별들을 우수수 땅으로 떨어뜨려 민들레 꽃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 옛날 어느 나라에 매우 不幸한 運命을 타고난 임금이 있었다.
그것은 무슨 일을 하든지 平生에 但 한 番만 命令을 내릴 수 밖에 없는 運命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命令을 하고 싶어도 다음 일을 생각해서 命令을 할 수가 없었다.
임금은 自己의 運命을 그렇게 만들어준 별에게 언제나 不滿을 품고 있었다.
어느 날 임금은 自己 運命을 그렇게 만든 별을 向하여 처음이자 마지막인 命令을 내렸다.
"별아 듣거라! 너희들은 모두 하늘에서 이 땅으로 떨어져 꽃이 되어 피어나거라! 그때는 내가 너희들을 꼭꼭 밟아가며 내 運命의 怨讐를 갚겠노라!"
그러자 하늘의 별들이 모두 떨어져 노란 민들레꽃이 되었다.
그 뒤로 임금은 羊치기가 되어 羊떼를 몰고 다니며 민들레꽃을 실컷 짓밟고 다녔다고 한다)
(4)
옛날 어느 마을에 외동딸을 둔 富者집이 있었다.
그 딸에게는 큰 苦悶이 있었는데 젓가슴에 腫瘍이 생긴 것이었다.
痛症은 甚했지만 가슴이라 누구에게 보일수도 없어 戰戰兢兢 하고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본 딸의 몸종이 마님께 이 事實을 말해주었다.
그런데 마님은 그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딸이 外間 男子와 놀아나서 그렇게 된것으로 생각하고 딸을 크게 꾸짖었다.
딸은 어머니의 侮辱的인 말에 羞恥心을 느꼈으며 病든 가슴을 안고 살아갈 方道가 보이지 않는다며 끝내 죽기로 마음먹고 江물에 뛰어들고 말았다.
그때 마침 그곳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漁父와 그의 딸 蒲公英이 물소리를 듣고서 배를 저어 가보니 어떤 女子가 물위에 떠있었다.
그 女를 救해내 집으로 와 젖은 옷을 벗겨 새옷을 입히려는데 가슴에 腫瘍이 보였다.
急히 漁父는 딸을 시켜 山에 올라가 어떤 藥草를 캐오도록 하였다.
며칠을 그 藥草를 달여 먹였더니 腫瘍이 사라졌다.
自殺한 딸이 살아있다는 消息을 듣고 어머니는 사람을 보내 딸을 데리러왔으나 그女는 漁父와 그의 딸이 너무 고맙고 情이 들어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漁父가 萬若에 또 腫瘍이 생기면 달여 먹으라며 藥草를 건네주고 집으로 돌아가도록 타일렀다.
處女는 그 藥草를 가지고 집에 돌아와 뒷뜰에 심었고 漁父를 잊지않으려고 그의 딸의 이름을 따서 "蒲公英"으로 불렀다.
(5)
옛날에 慶北 慶州에 한 老人이 孫女 민들레와 둘이서 살았다.
老人은 七十이 넘어서 허리는 휘었으나 두 食口는 먹을 糧食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程度는 되었다.
열 일곱 살의 孫女는 참으로 반듯하고 곱게 자랐다. 그러자 周邊에선 꽃다운 이 處女에 對해 慾心을 내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런 사람中에 "德"이라고 부르는 더꺼머리 總角은 그女를 아내로 삼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德이는 나무를 하려 山으로 가다가도 運이 좋아 민들레와 마주치면 몸가눌 바를 모르고 나무 지게를 쓸데없이 두드리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민들레를 思慕하는 마음만은 限이 없었다.
그러던 德이에게 偶然찮게 민들레와 한집에 살게되는 幸運이 찾아왔다.
이는 老人의 집이 냇가와 가까와 조금만 비가 와도 집으로 물이 넘쳐 들어왔는데 오랫 장마로 온통 물바다가 되고 집마져 허물어 지자 이를 지켜본 德이가 老人에게 自己 집으로 避身토록 勸했던 것이다.
老人은 아무말 없이 孫女를 데리고 德이의 집으로 避難을 왔다.
그렇게 민들레와 한 집에 살게된 德이는 어느날 민들레를 自己 품에 안게 되었고 夫婦로 살기로 했다.
德이는 사람이 誠實하고 勤勉하여 婚禮式을 치루지는 않았지만 老人을 모시고 민들레와 함께 살았으며, 糧食은 언제나 넉넉하여 남부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라에서 處女를 뽑아 간다고 마을을 샅샅이 뒤지기 始作하였다.
曲直不問하고 얼굴이 반반한 處女를 無條件 잡아 가는데 민들레도 같은 處地가 되었다.
軍卒들이 그女를 데리고 가려고 하자 德이와 老人은 길길이 뛰었지만 所用이 없었다. 민들레는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마침내 그女는 가슴에 품었던 銀粧刀를 꺼내 自殺하고 말았다.
그렇게 죽은 자리에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사람들은 이를두고 사랑을 못다이룬 민들레의 넋이 꽃으로 피었났다며 그女의 이름을 따서 민들레라고 불렀다.
(6)
먼 옛날, 하늘 나라에 蒲公英이란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仙女가 있었다. 仙女는 人間世上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고 나서 好奇心이 發動해 玉皇上帝 몰래 人間世上에 내려왔다.
仙女는 이山 저山을 날아다니며 아름다운 꽃, 新鮮한 꽃, 感動을 주는 아름다운 새들의 노래들을 들었다.
이렇게 즐겁게 遊覽을 하다 보니 自己도 모르게 黃昏 무렵이 되었다. 仙女가 하늘나라로 돌아가려 생각했을 때 큰 나무 뒤에서 호랑이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고, 暫時 지나자 며칠을 굶주린 듯 어슬렁 거리며 나타나 입을 크게 벌리고는 仙女를 向해 突進해 왔다.
仙女는 怯에 질려 그만 氣絶했는데 그 瞬間 어디선가 몇 個의 화살이 날아와 호랑이를 命中시켜 仙女를 救해 주었다. 그 主人公은 짙은 눈썹에다 큰 눈을 가진 英俊한 젊은 나뭇꾼으로 精誠스럽게 看護를 하며 仙女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仙女는 천천히 意識을 되찾았고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男子에게 몸을 依支한 채 看護를 받고 있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그의 목숨을 救해준 生命의 恩人이라 생각이 되어 큰절을 올리려 했다.
唐慌한 나뭇꾼은 얼른 仙女를 일으켜 세웠고 그에게 말을 했다.
“이러지 마세요. 當然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只今 날도 이렇게 저물었고 이곳은 森林이 우거져 危險합니다.
陋醜한 곳이나 老母와 둘만 있으니 저의 집에 가세요. 오늘을 보낸 뒤 날이 밝는 대로 모셔다 드리지요”
이렇게 마음 착한 나뭇꾼에게 仙女는 바로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仙女는 기쁜 마음으로 그를 따라갔다.
그의 母親은 仙女를 보자 親切하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仙女는 人間世上의 아름다움과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는 하늘나라의 生活이 寂寞함을 느꼈다. 그래서 仙女는 나뭇꾼과 百年偕老를 約束하고 人間世上에 남기로 했다.
이리하여 仙女와 나뭇꾼은 달콤한 新婚 生活을 始作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玉皇上帝에게 들켰다. 하늘나라에서 派遣된 神兵들에게 逮捕된 채 하늘나라로 돌아간 仙女는 監獄生活을 하게 되었다.
나뭇꾼은 每日같이 아내 생각에 몸부림치다 火氣가 위로 올라 結局은 高熱로 意識을 잃어 달포를 몸져 앓아 누웠다.
蒲公英이 하늘나라의 監獄에서 이 事實을 알고 매우 苦痛스러워 눈물을 하염없이 주룩주룩 흘렸다. 이렇게 그치지 않고 흘린 눈물이 봄비로 變하여 人間世上을 적셨다.
이렇게 하여 하루 저녁사이 萬山에 淸熱解毒을 할 수 있는 작은 野生花가 滿發하였다.
이튿날 아침 나뭇꾼의 집 앞에는 血書로 적힌 “治好情郞野花熬湯 (사랑하는 사람을 治療하기 爲해서는 野花로 만든 湯藥을 服用해야 한다)”란 쪽지 한 張이 날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野花를 캐어 湯藥으로 나무꾼에게 먹게하자 며칠만에 나무꾼의 病은 完全히 好轉 되었다.
사람들은 萬山에 피어난 野生花는 蒲公英이 變한 것이라 異口同聲으로 입을 모아 말을 하였고 그 野生花를 蒲公英이라 이름하였다.
(7)
어느 나라에 모든 百姓들이 稱頌하는 훌륭한 王이 있었는데, 나무들과 꽃들이 어우러진 庭園도 무척 아름답게 잘 가꾸었다.
그런데, 어느날, 庭園의 나무와 꽃들이 갑자기 시들어가는 것이었다.
王은 크게 걱정을 하며 온힘을 다해 보살폈지만 虛事였다.
王은 庭園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인 丹楓나무에게 가서 물어보았다.
"丹楓나무야, 너는 왜 이렇게 시들어가고만 있는게냐?"
그러자, 丹楓나무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庭園엔 아름다운 나무들이 너무 많아요. 다른 나무들은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죠. 제가 붉은 잎을 자랑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나는 차라리 죽는게 나을 것 같아요."
그 옆에 있는 香나무도 똑같은 對答을 했다.
큰키와 堂堂함을 뽐내던 전나무도 對答했다.
"나는 幸福하지 않아요. 차라리 이 庭園의 나무들이 다 죽어버렸으면 내가 堂堂함을 느낄텐데..."
아름다운 長點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調化롭게 살지 못하는 이들에 對해 王은 무척 失望을 하며 한便으로는 寒心한 생각이 들어 庭園을 抛棄하기로 했다.
"죽든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해"라며
宮殿으로 돌아가던 王이 돌階段 틈새에서 힘차게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있는 민들레를 發見했다.
"아니, 다들 아름다운 庭園에 살면서도 自身들이 잘났다는 걸 認定받지 못함에 火를 내며 죽겠다고들 하는데 너는 이런 곳에서 홀로 어떻게 이리도 健康히 꽃을 피우고 있느냐?"
민들레는 너무나 當然하다는 듯이 王을 보며 對答했다.
"저는 꽃을 피우고 씨앗을 영글게 하며 그 씨앗을 솜털에 매달아 바람에 실어 멀리멀리 보내는 것이 任務요 幸福입니다. 그들이 나를 理解 못한데도 저는 애태우지 않습니다"
王은 그 민들레의 모습에서 慰安을 받고 政事에 邁進 할 수 있었다 한다.
(8)
옛날 部族國家時代에 민氏 姓을 가진 王의 部族國家가 너무나도 平和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 나라의 임금에게는 참으로 어여쁘고 마음씨 착한 公主가 있었는데 이름을 “들레”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姓과 合쳐 부르면 “민들레”였던 것이다.
어느날 이웃 오랑캐 무리가 쳐들어와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閔氏 王家가 힘을 길러 自己 나라에 對抗치 못하게 볼모로 “민들레” 公主를 잡아갔다.
인질이 된 민들레 公主는 怨痛함에 몸부림치며 죽어도 오랑캐의 女人은 되지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떠한 懷柔도 물리치고 斷食끝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민들레 公主의 죽음을 알게 된 公主의 나라에서 派遣온 使臣이 公主의 무덤을 둘러보았는데 무덤위에 풀 한 포기가 돋아나 하얀 꽃을 피우고 있었다.
使臣이 돌아와 이 消息을 傳하자 王은 무척이나 슬퍼하며 公主를 그리워하였다.
다음해 그 使臣이 宮闕 뜰을 걷다가 公主의 무덤에서 보았던 것과 꼭 같은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며 王에게 이 事實을 告하였다.
王은 公主의 넋이 돌아왔다며 特命을 내려 그 꽃을 公主의 이름을 따서 “민들레”라 부르게 하였다.
민들레 公主의 넋이 솜털을 인 씨앗을 맺어 바람을 타고 故國으로 돌아와 여기 宮闕 뜰에 定着해 꽃을 피운것이었다.
(9)
어떤 나라의 임금이 이웃나라와 戰爭을 일으켰다.
戰爭이 길어지면서 많은 兵士들이 죽거나 다쳤으므로 그를 補充하기 爲해서 임금이 '나라 안의 모든 젊은이들은 戰爭에 參加하라'는 布告令를 온 나라에 내렸다.
어느 마을에 꽃신장이가 살았는데 그는 갓 結婚을 하여 아내가 姙娠 中이었다.
그에게도 戰爭에 나가라는 公文이 傳達되었다.
“임금님께서 戰爭에 나가라는 命令을 내리셨으니 戰場으로 떠나야겠소.
내가 없더라도 아기를 낳아서 잘 기르시오.”
“부디 살아서 돌아오세요.”
男便이 떠나고 아내는 쓸쓸하게 홀로 남았다.
그리고 이내 예쁜 딸아이를 낳았다.
아내는 男便에게 기쁨에 겨워 便紙를 띄웠다.
男便이 戰場에서 아내의 便紙를 받고서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짬이 날때마다 조그마한 꽃신한 컬레를 만들어 便紙와 함께 아내에게 보냈다.
“예쁜 딸아이를 낳았다니 나도 매우 기쁘오.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貴한 膳物이니 이름을 '민들레'라고 짓고 잘 기르시오. 짬을 내어 꽃신을 만들었으니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거든 신기시오.
내 꼭 살아 돌아가서 귀여운 아이의 모습을 보리다.”
아내는 늘 기쁜 마음으로 精誠스럽게 아이를 돌보아 길렀으며, 戰爭이 끝나고 男便이 無事히 歸家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懇切히 祈禱했다.
4年의 歲月이 흘렀다.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 다니게 되면서 男便이 보내준 꽃신을 신겼다.
아이는 그 신발을 매우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前처럼 떡 장수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보니 한쪽 신발이 없었다.
前에는 한쪽 신발은 머리에 이고 한쪽은 신고 있었는데 그 날은 兩쪽 다 맨발이었다.
“신발 한 짝은 어디 있니?”
“저~기...”
아이가 가리키는 쪽은 냇가였다.
쫓아가서 찾아봤으나 없었다.
아마 냇물에 떠내려가 버린 듯 했다.
"아버지가 만들어서 보내주신 꽃신을 잃어버리다니,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꽃신신은 예쁜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어머니는 火가나 瞬間的으로 感情이 激해져서 아이의 머리에 얹혀있는 신발을 뺏어서 아이의 등을 후려쳤다.
아이는 깜짝 놀라서 그만 까무러쳐 버렸다. 어머니도 크게 놀랐다.
“아! 내가 只今 무슨 짓을 한 거지?”
後悔를 하며 까무러친 아이를 看護했으나 그 後로 시름시름 앓다가 結局 죽고 말았으며 어머니는 그만 失性해 버렸다.
이웃사람들이 가엾이 여겨서 아이의 屍體를 묻어 주었다.
그러나 아이 무덤을 떠나지 못하고 울기만 하던 어머니가 아이의 무덤에서 작고 앙증맞고 귀여운 노란 꽃이 핀것을 보았다.
“아~아 우리 아기 민들레가 다시 살아났구나...”
失性한 어머니의 눈에는 그 꽃이 自己의 아이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남긴 신발 한 짝을 품에 안고서 “민들레야. 민들레야 우리아기 민들레야...”
노래를 부르면서 날마다 무덤가에 앉아있었다.
드디어 戰爭이 끝나고 꽃신장이도 故鄕으로 돌아왔다.
'아! 5年만이로구나! 우리아기 민들레는 얼마나 예쁠까?'
아내는 男便을 반겨 맞았다.
“여보! 戰爭터에서 苦生 많이 하셨지요? 無事히 돌아와 주셔서 고마워요.”
“當身도 나 없이 苦生 많이 했지? 우리 딸, 예쁜 민들레는 어디 있지?”
“暫時 기다리세요. 데리고 올께요.” 어머니는 다시 아이의 무덤으로 갔다.
“민들레야!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집으로 가자.”
민들레는 노란 꽃잎이 지고 하얀 솜털 날개가 되어 푸른 하늘로 저 멀리 훠~얼 훨 날아가 버렸다.
“민들레야, 민들레야. 내가 잘못했다.
다시 돌아와 다오. 아버지에게 너의 예쁜 모습을 보여드리자꾸나.”
어머니는 안타까워하며 限 없이 울기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