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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고린도 전서
A. 고린도 (역사와 도시)
-- 항구도시 (헬라 본토와 펠라폰네소스를 연결). 서(2km 지점에 레헤움 항구), 동(7km 지점에 겐그레아 항구, 롬 16:1). 남북으로는 육로, 동서로는 해로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 군사적으로 상업적으로 번창
--B.C. 146년에 폐허(시민들은 학살당하거나 노예로 팔려감)
--B.C. 44년에 줄리어스 시이져가 로마의 식민지로서 새로 건설.
--B.C. 27년에 로마 총독이 부임함으로써 아가야 지역의 행정 수도가 됨.
-- 행정 수도가 됨으로써 다시 국제적인 상업 도시로 번성.
: 다양한 헬라종교들이 공존하였고,
: 약 3만의 유대인들이 이곳에 거주: 49년의 Claudius황제의 칙령.
-- 당시 고린도에는 12개 이상의 신전이 존재.
: 사랑의 여신을 섬기는 아프로디테 신전 (1000여명의 종교적인 창녀)
: 사회적 종교적 환경이 고린도를 방탕하고 부패하고 만들었고
(Corinthiazo란 풍자적인 신종어)
B. 고린도 교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로마에서 고린도로 이주 (행 18장 참조).
--바울 18개월 머물며 교회를 개척(예외적).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행 18:5). --성공적 교회 확장중 유대인과의 충돌로 52년 쯤 아굴라 부부와 에베소를 거쳐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떠나고 아볼로가 후임으로 사역 (행 18:27-28).
--아볼로가 유대인과의 변론에서 이김.
C. 고린도 교회의 구성
-- 1:26 (상류층) vs. 1:27-28 (하류층)
--구성원의 대부분이 하층 노예 출신 이방인(1:26-29).
--계층간의 갈등과 위화감이 조성되어 있었음 (10:27; 11:17-34). 성만찬시
-- 교회의 지도자의 이름을 내세워 파당 (1:11, 12).
--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여러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
: 교회내에 계층간, 파벌간 갈등을 늘 안고 있었다.
D. 고린도 교회의 문제
--다양한 구성원의 상황(이원론적 영향, 이교 사회의 혼합주의)은 교회내에 많은 문제점을 야기: 성도덕의 문란, 우상 숭배, 지혜와 지식 자랑, 윤리등.
--대표적인 문제는 성령 열광 주의자들(pneumatic enthusiasm)에 의한 자유 방종주의(5-6장)와 극단적 금욕주의(7장): 성령의 은사를 구원받은 증거로 생각하여 지나친 열광주의에 빠지게 되었고 양 극단의 상황으로 나타남.
-- 분파 문제
아볼로파: 철학과 수사학을 숭상하는 문화의 영향으로 성경 해석의 능력과 수사적 기술을 가진 아볼로에 상당한 호감을 갖게 되어 따르게 됨 (행 18).
-- 부활 문제: 이원론적 사상의 배경에서 ‘육신의 부활’은 이해 불가.
:자신들의 영혼은 이미 구원받은 존재이기에 부활은 불필요없다고 봄.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영적으로 부활하였다고 생각하였을 수도 있다(4:8).
-- 은사 문제: 따라서 그들은 미래의 부할보다는 현재 자신들이 받은 ‘성령의 은사’에 관심을 갖게 됨. 경쟁과 질시와 교만과 상호 무시의 분위기 형성.
E.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관계
1) 50/51-52년동안, 행 18:1-3의 기록에 따르면 바울이 고린도에 와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천막업에 종사하면서 교회를 개척. 유대인들이 소동을 일으켜 proconsul로 있던 갈리오에게 끌고감. 바울은 풀려나고 소스데네는 태형을 당함 (행 18:12-17).
2) 52-56년. 바울이 52년에 고린도를 떠난 뒤에 다른 선교사들이 고린도에 도착.
3) 고전 5:9에서 바울이 언급하는 편지(현재 남아 있지 않음)를 바울이 보냄. 음행하는 자들에 대해 경고함.
4) 56년경 바울이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글로에의 집안 사람들을 통해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들음(고전 1:11; 11:18).
5) 거의 동시에(혹은 약간 뒤에) 바울이 고린도 교회로부터 편지를 받음(고전 7:1). 이 편지는 아마도 바울이 먼저 보낸 편지에 대한 고린도 교회의 답장으로 보임.
6) 바울이 에베소에서 고린도 전서를 써서 보냄.
7. 고린도 후서
A. 바울과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 (고린도 전서에서는 1-6번, 연결해서 계속되는 것)
1. 교회내부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바울이 고린도 전서를 썼고 고린도 전서를 쓸 당시에 바울은 오순절 까지 에베소에 머물러 있다가 마케도니아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하고 나서 고린도로 와서 겨울을 나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고전 16:5-9). 디모데가 고린도 전서를 전달하기 위해서 고린도로 들어 갔다.
2. 바울이 고린도 전서를 보낸 뒤, 56/57년 초에 디모데가 고린도에 옴 (행 19:21-22; 고전 4:17-19; 16:10-11).
3. 고린도 지역에 위기 상황이 발생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심각한 신학적 문제가 발생하였음을 듣게 된다 (아마도 디모데로부터). 문제의 발단은 고후 11:13-15에 기술되어 있듯이 자신들을 사도라고 지칭하는 외부로부터의 대적자(침입자)들이 들어 와서 바울의 권위에 도전하였다.
--10:10
--11:12 (교회로부터 지지를 받기위해 사도권을 자랑)
이 거짓 사도들은 유대적 배경을 가진 자들이 었다. 아마도 예루살렘 교회와 연관이 있는 자들이 아닌가? 추측됨. 11:22하에서 그들은 유대 배경을 자랑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헬라파 유대인 이라기 보다는 예루살렘 (유대파) 유대인에 더 가까움.
--바울의 대적자들은 Jews, Jerusalem Jews, Judaising Jews로서 예루살렘 교회의 세력을 등에 업고 바울의 사도직에 도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cf.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성
--여기서 바울이 공격을 당한 빌미를 제공한 단초가 하나 있다. 고전 16:1-2
당시의 로마 사회에서 유사 이단 종교 단체들이 이러한 헌금 강요를 통하여 착취하고 있었다. 대적자들이 이런 문제를 들고 나와서 사도권 침해.
4. 상황이 심각한 것을 알게 된 디모데가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로 감.
5. Painful Visit: 디모데의 소식을 들은 바울이 긴급상황이므로 원래의 여행계획을 취소하고 (원래의 여행계획은 고전 16:5-7), 에베소에서 뱃길로 직접 고린도로 감.
이 방문에서 바울은 고린도인들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하였고 심한 상처를 입었다. (고후 2:5; 7:12; 12:21), 이에 따라 바울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고린도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잠시 냉정을 찾기 위해 마케도니아로 갔고, 다시 고린도로 돌아오지 않고, 마케도니아 방문 후에는 다시 바로 에베소로 돌아감.
9) 눈물의 편지: 고통의 방문에서 에베소로 돌아온 바울은 다시 고린도를 방문하는 대신 그의 고통스러운 경험(“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하였노니” painful visit, 그 구체적인 내용이 1:23-2:4에 나옴)에 대해 언급하는 편지를 에베소에서 써서 디도를 시켜 고린도로 보냄. 이것이 “눈물의 편지”(2:4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 눈물의 편지는 현재 남아 있지 않음. 이 편지는 디도에 의해서 전달 (고후 7:6-7). 디모데 보다는 디도가 강인한 성격을 가져서 이러한 편지를 전달하는데 적격자였기 때문이다.
10)디도가 돌아오지 않자 바울은 마케도니야로 건너가서 디도를 기다리다 57년 가을 경에 그를 만남(2:12). 디도는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좋은 소식을 전해줌 (7:6-7).
--눈물의 편지를 받은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로 돌아옴.
--디도는 고린도 교회의 위기가 해소되었다고 보고함(고후 7:5-16에 바울이 언급)
--연보 문제도 해결: (고후 2:14-6:13; 7:2-3) 7:2 참조
11) 마케도니아에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 문제가 잠잠해 진 후에 쓴 네 번째 편지가 바로 이 고린도 후서. 1:3-4에서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서신을 시작해서 13:11-13의 축도로 마침. 이 편지를 디도가 갖고 다시 고린도로 감.
12) 바울이 고린도에 감 (고후 12:14; 13:1-2). 57/58년 겨울을 고린도에서 보냄. 여기에서 로마서를 씀.
고린도 전서에서는 교회 내부에서 대적자들이 바울을 대적하였고 고린도 후서에서는 교회 외부에서 침입한 자들이 바울을 훼방하였다. 고린도 교회에서 당한 바울의 고통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실패하였다면 바울의 이방인 선교 사역 전체가 무너질 수가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바울과 함께 하였다. 그의 복음은 로마 제국을 거쳐서 지금 우리의 손에 전하여 져 왔고 우리의 손을 통하여서 세계로 전하여 지고 있다.
8. 갈라디아서
(교리 서신, Why?)
A. 바울의 사도권 논쟁
1:1에서 자신이 사도라는 것을 특히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갈라디아 교회들 안에서 누군가가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의심하면서, 그가 사도가 된 것은 “사람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바울이 그것을 편지의 서두에서 미리 반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누구로 부터 (source), 누구를 통해서 (agent) 바울이 사도가 되었다고 주장하였을까? 그들은 아마도 바울에게 사도권을 준 사람들 (그를 안수하여 이방 선교사로 파송한 사람들)은 안디옥 교회의 당시 지도자들(행 13:1-3)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사도가 되도록 중간에서 중개한 바나바 (행 9:27)와 같은 인물이 있음으로써 그의 반대자들의 눈에는 바울이 인간을 통해서 인간에 의해서 사도로 세움을 받았다고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혹은 바울이 1:17 이하 자신이 부활한 예수를 만난 후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그의 적대자들은 바울이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을 통해서, 예루살렘교회로 부터 사도로 임명되었다고 주장했을 가능성도 있다.
B. 바울의 적대자들
바울이 갈라디아 지방에 교회들(“갈라디아 여러 교회들”, 갈 1:2)을 세우고 나서 그 교회들을 떠난 뒤, 일단의 기독교인들(복수,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이 이 지역의 교회들에 나타났다. 이들은 할례를 주장하는(6:12) 유대주의자들(Judaizers)로서, 이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과는 “다른 복음”(1:7)을 전하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인종적으로는 유대인이었으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기독교인들이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이방인들이 구원받으려면 할례를 받아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5:2,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5:3) 유대인이 먼저 되고,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이 선포하는 복음은 “믿음”만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 할례와 율법준수(“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4:10)를 전제로 하는 구원이었다. 이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 동기는 “박해를 면하려는 것”(6:12)이었다 (당시 유대인회당에서 기독교인들이 박해받음. 바울도 고후 11:24에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다섯 번” 맞았음). 이들은 갈라디아교회의 설립자인 바울과 그 교인들의 사이를 떼어 놓으려고 했고(4:17), 심지어, 이들은 바울도 할례를 인정한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보인다(5:11).
바울의 적대자들의 출신 지역은 아마도 예루살렘교회인 것 같다. 바울이 두 번째로 예루살렘을 방문해서(2:1), “유명한 자들”(2:6, 야고보, 게바, 요한)과 만나 이야기 할 때, 그 자리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형제(들)”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그 거짓형제들은 디도가 헬라인임을 들어 그가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 때문에 바울과 논쟁이 벌어졌다. 갈라디아 교회들을 어지럽힌 사람들은 이 예루살렘의 “거짓형제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점은 2:11-14에 나오는 안디옥 사건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베드로는 안디옥에서 이방인들과 함께 식탁교제를 나누다가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2:12) 도착하자, 식탁에서 물러났다. 바울은 베드로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갔다”(2:13)고 말한다. 이 그룹은 베드로조차도 두려워하는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예루살렘 교회 출신들임이 분명하다.
바울의 적들은 구원이 믿음뿐만이 아니라, 할례, 율법, 유대교 절기 등을 지키는 것에 의해서 보충되어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방인으로서 할례를 받는 것은 완전히 유대인으로 개종하고 유대인으로 다시 태어나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바울의 적대자들은 이방인들이 사실상 할례를 통해서 완전히 유대인이 되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이다. 바울은 할례를 안 받아도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이 단일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3:28)을 다시 이 편지를 통해 강조하고 있고, 자신이 세운 교회들에 와서 이런 잘못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거짓형제들로부터 자신의 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