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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그리샴 가정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라스피노
Azusa Street Revival (1906-1931)는 현재 세계에 600 miilion의 인구가 영향을 받았을 정도로 20세기의 성령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또는 오순절 성령운동 이라고도 불린다. 특히 1906-1908 때 많은 사람들이 참여 하였다. 이 운동의 리더는 WIlliam J. Seymour 목사였다. 노예 출신의 아버지 밑에서 카톨릭으로 자라면서 청년? 회심하고 목사가 되기위해 백인주위였던 Charles Parham목사 밑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LA에 와서 주일날 첫 설교?에 성령세례를 설교하다 쫓겨나고 216 Bonie Brae St.에서 몇 사람들이 기도모임 인도중 성령님의 임재를 강하게 경험됨으로 이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성령세례를 중심으로 말씀, 축사, 예언, 신유, 전도, 선교 (세계 곳곳에 나갔음), 지역변화 등등이 일어났다. 더나아가서는 이시대에 인종차별의 벽을 허물었고 성차별 없이 여자들도 목사가 되고 가르치게 되었고 누구나가 성령으로 하나되고 인도받고 쓰임받는 모델을 제시 하였다.
씨무어 목사의 가르침은 1906도에는 방언 받음이 성령세례라고 믿었지만 1년뒤에는 오직 성령의 열매의 나타남이 성령세례의 참모습이라고 믿었다. 그는 나중에 백인주의 사상에 희생양으로 인간으로써는 빛을 보지 못하고 쓸쓸히 죽었지만
그의 겸손함과 말씀에 타협없는 헌신으로 말미암하 수많은 사람들이 현대에 사도행전 2장을 다시 경험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겸손함이 수많은 영적인 수확을 이루었다.
- LA시에서 정한 표지판 "세계적인 오순절 운동의 요람, 아주사거리 부흥의 자리 1906~1931
-LA다운타운 지금은 없어진 아주사 거리(Azusa Street) 그렇지만 표지판은 그때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 지금 일본문화센터 앞에 있는 공터, 바로 이 자리가 아주사 부흥 운동의 요람이 되었던 교회가 있던 자리다.
312 Azusa Street
보니 브래 거리의 집, 이 집이 바로 윌리암 시므어 목사를 모시고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곳이다.
이곳이 216 Bonnie Brae 거리이다. 이곳에서 역사가 일어나서 3개월 후에 아주사로 옮겨갔다.
1906년도에는 214 Bonnie Brae였다.
윗사진은 2008년 2월 13일의 모습, 아랫사진은 1910년대의 모습
다운타운 아주사 거리 교회 자리 한곳에 있는 오랜지 나무, 이 나무의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고 한다.
- 광장 한 켠에 있는 아주사 부흥운동 기념 동판
윌리암 시므어 목사와 사모인 제니 시므어를 기념하는 오랜지 나무
윌리암시므어 목사의 사진 - 아주사거리 부흥 운동의 시작은 흑인목사로부터 시작되었다.
Seymour과 Jenni 사모. 제니 사모는 214 Bonnie Brae에서 피아노를 치던 자매로
시무어 목사보다 먼저 성령체험을 하고 방언을 받았다고 한다.
LA다운타운에서 멀지않은 오래된 공원에서 만난 윌리암 시므어 목사와 사모의 묘비
William Joseph Seymour 목사는 아주사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흑인 출신 목사로 1870년 5월 2일에 태어났다. 루이주아나 주에서 태어난 씨무어 목사는 부모님이 노예출신들이셨다. 루이주아나 주가 옛 프랑스 영이었기 때문에 다수가 카톨릭이었고 씨무얼도 카톨릭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1890년도 쯤에 회심한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유난히 성경말씀과 하나님의 사랑에 관심이 많았고 배우기에 게으르지 않았다.
1900년도에 홍열을 앓고서 왼쪽눈의 시력을 잃었고 유리로 만든 모조눈으로 되신하게 된다.
이때의 사건을 씨무어 목사는 자신이 하나님의 복음전파 부름에 순종하지 않음에 일어난 일로 간주하고 그뒤 회개하고 목사가 되기 위하여 훈련하면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이후 아주사 부흥 운동을 부정적으로 본 사람들의 공격에는 씨무어 목사의 왼쪽눈에서 마술적인 혹 최면술이 나가 사람들을 혼란하게 만든다고 모함한 글들도 있다.
1905년에 씨무어는 휴스턴에 도착하여 류씨 파로 라는 흑인 자매의 권유로Charles Parham목사가 운영하는 성경학교에서 배우게 된다. 팔함은 백인으로 오순절 신앙적이고 사도적인 믿음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씨무어를 받어드려 배우게 하지만 그때 시대 법이 백인과 흑인이 함께 할수 었는 때이므로 씨무어는 창밖에서 어깨 넘어로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1906년도에 팔함의 권유를 뒤로하고 씨무어는 LA다운타운 산타페 길에 있는 흑인성결교회에 목회를 하러 오게된다. 그러나 첫 주일 설교가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자” 라는 설교을 했서 교회에서 쫒겨나게 되지만 그 교회 교인이었던 에드워드 리씨의 도움으로 리챠드 와 룻 아스베리 성도집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1906년 4월 9일 오후 6시에 씨무어는 에드워드를 위해 기도하고 안수하자 에드워드가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 그 즉시로 아스베리 성도가 사는 214 (지금은 216) Bonnie Brae집에서 7시30분에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씨무어 목사는 사도행전 2장 4절에 관한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자 다른 사람들도 성령충만함을 받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특히 이곳에서 제니 무어 자매가 피어노를 반주하였고 사람들이 “성령이 오셨네” 찬송을 밤10시 까지 부르게 된다. 제니 자매는 나중에 씨무어의 아내가 되었다. 씨무어와 제니는 1908년 5월 13일 결혼하게 된다.
소문이 퍼지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간구하던 많은 흑인과 백인 성도들이 참석하고 성령충만함을 받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4월 12일은 집앞에있는 배란다가 많은 인파의 무게로 내려안게 되었다. 더 이상 집에서 예배를 드릴수 없자 씨무어를중심으로 리더쉽이 세워지고 백인 성도들이 함께 교회터를 구하러 다녔다. 4월 15일에 다운타운에 있는 312 아주사 거리에 있는 비어진 흑인교회를 빌려서 예배를 시작하게 된다.
이때 교회는 밑에는 마구간이었고 위에는 교회였지만 씨무어는 아래를 예배당으로 쓰고 위에는 사무실과 기숙사로 써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 교회 공간은 12미터 x 18미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공간에 집회때는 300명이 들어가서 예배를 보았고 그외에 밖에서 서있는 사람들과 아이들이 있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특히 1906년 9월 기록에 보면 25명의 흑인과 300명의 백인들이 참석하여다고 써있었고 예배는 하루 3번씨 보았다고 한다. 씨무어는 주로 짧게 말씀을 전하고 장시간 (어쩔때는 9시간 동안) 상자깍 사이에 얼굴을 넣고 기도에만 전념한 적이 많다고 한다. 아주사 운동의 역사가로 책으로 기록을 남긴 프랭크 바톨맨은 아주사 운동은 “인종들의 색깔이 (갈등) 보혈로써 하나로 이기었다” 라고 씀으로 이때 백인 흑인들이 함께 사랑과 성령으로 예배함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아주사 거리는 현재 일본사람들이 중심이되어 상권을 이룬 Japan Town에 있다.
공식적으로 아주사 부흥운동은 1906-1913년도 까지 였지만 교회는 소수의 사람들로 1931때 까지 운영되었고 그후 제니 여사는 지병으로 운명하였다.
아주사 부흥운동의 절정은 1906-1909까지 약 3년간이었고 이 강한 성령운동을 통하여 세계선교와 미국에서의 전도운동이 강하게 일어나 기독교 역사와 사회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특히 아주사 부흥은 이 시대에 상상도 할수없던 백인과 흑인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여자들에게 리더쉽을 주어져 말씀과 사역에 헌신하게 하는 획기적인 운동이었다. 아주사 교회 리더쉽은 씨무어 목사를 중심으로 백인목사들, 흑인 자매들, 백인자매들이 함께 하였다. 더 나아가 다른 타인종들이 참여하여 은혜를 받고 말씀에 도전을 받았다.
아주사 운동의 특징은 강력한 말씀전파와 신유, 축사, 방언, 예언, 방언통역, 예배개혁 등등 이었고 조직적으로 전도단과 선교사들을 파견하였고 가난한 자들을 먹이는 사역도 하였다. 또한 성령의 역사하심을 알리려고 교회신문을 만들어서 국내 정기구독자들이 50,000명들이 있었고 해외에도 수만의 구독자들이 있었다.
씨무어의 삶은 겸손하고 진실하였지만 외부에서 오는 오해와 상처로 삶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부흥이 강하게 일어나는 1906년 10월에 스승인 팔함이 찾아와 부흥이 일어나는 예배의 모습을 보고 이것은 아프리카 신비주의라고 비판하였다가, 자신이 교회를 맡아야 한다고 ?을려고 하자 백인 리더쉽과 씨무어 목사의 반대로 저지가 되었다. 화가난 팔함은 근처에 교회를 차려
“더 고상하고 양반적인 부흥회” 라는 슬로건을 걸고 사람들을 불렀지만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그는 결국 택사스 주로 돌아갔다.
그후 팔함은 소년 성추행으로 고소가 걸렸다가 풀려났다. 또한 1909년에는 씨무어와 제니 자매의 결혼을 반대했던 클랄라 럼 자매가 구독자들의 정보 리스트와 헌금 리스트를 갖고 오르건 주로 이주하여 이때 부터 외부와의 유일한 연락망인 편지 사역이 중단되었고 이로 인해 사역을 도와주었던 헌금도 못받게 되었다. 또한 외부로 연락들이 없자 사람들은 부흥운동이 끝났다고 생각했고 아니면 오르건 주로 이주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돌발 상황의 이유는 럼 자매는 씨무어 목사와 결혼을 하고자 노력하였지만 리더쉽들의 반대와 그 시대 상황에 흑인 남성이 백인여성과 결혼이 현실화 되지않은 때이기에 앙심을 품고 아주사 사역에서 나온것이라고 역사가들은 본다.
1916년 도 까지 그래도 교회를 안정되게 유지해 오다 어느 시점에서 백인들이 다 떠난뒤 몇명의 흑인으로 목회를 이어온 씨무어 목사는 빚의 부담과 거절과 배신에서 오는 좌절속에 1922년 9월 28일에 심장마비로 소천하였는데 그의 부인도 혼자 교회를 이끌어 오다 1933년도에 병으로 사망하였고 장례를 치를수 없는 넉넉치 못한 관계로 남편무덤에 함께 장사되었다.
그의 무덤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가 최근 10년전에 발견되어 기념패가 놓여졌다.
현재 아주사 거리 에는 100년된 오렌지 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원래 교회 주변은 오렌지 과수원이었고 또한 땜목을 파는 곳이었다. 아주사 부흥운동에 쓰임받었던 교회는 1931년도에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자 불신자들에게 차압을 당하여 부셔지고 땅은 1938도에 다른 주인으로 이전이 되었다. 이땅은 원래 한인이 갖고 있다가 일본일들에게 비싸게 주고 팔았다는 역사적인 일담이 있다.
100년이 지난 후 아주사 오순절 운동을 볼때 그 시대는 쓰임을 받고 잊혀진 사건 같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 열매가 엄청나게 자라있었다. 특히 전통교단들은 성도숫을 잃어버리고 있는 반면 오순절-성령운동 계통은 급성장하는 추세를 현재에도 막을수가 없다.
현재 60억은 지구 인구중에서기독교는 약 20억으로 추산되면 이중에 카톨릭이 10억을 차지하고 6억은 오순절-성령운동권이고, 나머지 4억은 정통교단인 침례교, 장로교, 감리교로 구성되어있다고 한다.
아주사 운동의 특징은 현대 오순절-복음주의 성령운동의 뿌리를 시작하였고 1906도에 선교운동을 일으켜 지금 100년 지난 뒤에 본 영향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수없는 하나님의 운동이었다. 왜 아주사 부흥운동이 이 현대기독교 역사에 중요한 핵심을 이룰까?
그것은 세대주의와 개혁주의 에서 말하는 성령역사에 따른 은사와 성령의 나타남은 성경완성으로 끝났다는 주장에 반대되는 시대에 일어난 것이고 현대에 일어난 모든 영성운동을 조사해 보면 아주사의 영향을 받은것으로 나와있어 아주사 부흥운동이 하나의 ICON으로 보아지는 핵심이 있다.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기쁜소식중에 이런 백인-흑인간에 갈등등 좋은일 안좋은이 일어난것은 이 시대의 암적인 요소로 자리잡았던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 교단차별의 결과라고 볼수 도 있다. 그러나 항상 선하신 하나님은 인간들의 복잡한 상황도 은혜와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선하신 목자라고 우리는 경험할수 있다.
1906년도에 일어난 아주사 운동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파송을 받고 특히 신유사역으로 역사를 장식한 John G. Lake 과 F.F. Bosworth 목사님들이 아주사들의 리더쉽 중에 있었다. 이 남가주는 세계를 움직인 영성운동들이 많아 일었났는데 특히Aimee Semple McPherson (1890-1944), Kathryn Kuhlman (1907-1976), Chuck Smith (1927- 현재), John Wimber (1934-1997),
또한 현재 흑인 지역인 사우스 센트랄 에 있는 교회중에서 대형교회들이 아주사 운동의 후예들이다. West Angeles 교회 (Charles Blake), Crenshaw Christian Church (K.C. Price), Church of the Harvest (Clarence E. McClendon) 모두 2-3만명 되는 흑인 교회들이 모두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이요 이들의 자손들이다. 현재 미국에서 제일 큰 교단은 흑인 오순절 교단인 Church of God in Christ은 아주사를 다녀온 뒤 성령님으로 사역을 새롭게 인도함을 받은
C.H. Mason목사님이 만든교단이다. 역시 아주사 운동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성회 (순복음) 도 대형 교단으로 상승했다.
남미는 말로 할수 없을 정도로 거의 크리스챤들은 오순절 교단이거나 이 신앙을 따르는 성도들이다. 한국이 아주사 운동 출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은 것은 1928년 봄 아주사 부흥운동때에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으로 한국으로 가라는 음성을 듣은 Ms. Mary C. Rumsey여사가 순복음 교회를 소개함으로 시작된다.
현재 한국도 순복음 교회들은 물론 오순절 신앙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우리는 볼수있다. 현재 유럽도 강하게 복음을 전파하는 구룹중에 오순절 성격을 딴 교단들이 많은 것을 볼수있다. 이러므로 100년전에 아주사 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은 성령운동으로 또한 선교운동으로 주님의 마지막때에 재림을 준비하는 원동력과 발판을 마련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