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6] 강정자 (姜禎資) - 말씀따라 모든 사연 뒤로하고
2. 기독교 신앙
1 나는 일곱 살에 창포초등학교(昌浦初等學校)에 들어갔다. 일제강점기라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 말을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한국말을 하지 못했다.
2 여덟 살 때까지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였다. 내가 1학년 때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됐다. 시골에서는 제대로 교육을 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아버지께서는 3학년 때 온 가족을 이끌고 경주로 이사를 하셨다.
3 그리고 내가 5학년 때 6.25사변이 터졌다. 그러자 피난민들이 물밀듯이 내려왔다. 피난민들은 몰려와도 지낼 곳이 없으므로 방이 여유가 있는 집들은 무조건 피난민들에게 방을 내주었다.
4 우리 집에도 방 두 개가 비어 그것을 피난민들에게 내어 주었다. 그중의 사랑채에는 여주(驪州) 이천(利川)에 살던 독실한 기독교인 가정이 지내게 됐다. 그 집에는 딸이 다섯이나 되었는데 나와 동갑짜리 친구도 있었다. 친구의 부모님은 나를 참 예뻐했다. 5 나는 그 친구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 듣고 전도가 됐다. 가족들 중에서 나 혼자 기독교로 개종을 한 것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앙심이 얼마나 돈독했는지 모른다.
6 매주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도 빠트리지 않았다. 주일학교를 졸업할 때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어린이로 뽑혀 담임목사로부터 가죽으로 된 성경 책과 찬송가를 상으로 받기도 했다.
7 하루는 주일날 아침 교회를 가려고 일어나 보니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눈길을 걸어서 교회에 갔다. 교회에 도착해 보니 눈이 많이 와서 200여 명의 주일 학생 중에서 20명 정도만 출석을 하였다.
8 내 친구의 언니가 교회 반사로 있었는데, 한번은 주일 말씀으로 성 프란체스코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내용은, 문둥병 환자가 성 프란체스코가 머물고 있는 천막에 찾아갔다고 한다.
9 추위에 떨던 문둥병 환자가 “나를 좀 안아 주소서” 하니까 성 프란체스코는 주저 없이 가슴으로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가 떠보니 문둥병 환자는 온데간데없고 그의 팔 안에는 예수님이 있었다. 10 이 이야기를 해주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면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아! 그러면 주님을 만날 수 있겠구나. 나도 성 프란체스코처럼 사람을 사랑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사람을 사랑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11 중학생이 되어서는 신앙심이 깊어져 십계명도 철저히 지켰다. 우리 집은 매달 제사가 있어 여자들도 제관으로 참여하는 집안이었다. 하지만 주 하나님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절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나는 핑계를 대고 절을 안 올렸다.
12 그러자 할머니가 교회에 가는 것을 반대하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반대가 심해지자 나는 마음 놓고 교회를 다닐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집 뒷마당의 살구나무 아래서 자유롭게 교회에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