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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을 위한 패배, 승리와 패배를 넘어선 전환을 고민하기
하나의 이상(理想)으로서 교육의 생태적 전환은 풍부하면서도 매우 부담스러운 주제이다. 더구나 기능적으로 이질적인 영역들을 하나의 이데올로기하에 자의적으로 통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상력과 새로운 교육의 지정학적 좌표 안에 개인적이고 집합적인 주체성을 혁신적으로 재조성하는 실천들을 서로 지지하게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즉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 단순한 표면적 유행과는 다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실천 영역에서 집단적인 행동으로의 이행이 필요하며 지성, 연대, 책임 윤리의 구현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육의 생태적 전환은 이론적 탐구 만큼이나 경험적 연구와 실천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다시 말해 교육 현상에 대한 치밀한 분석만큼이나 주어진 현상을 새롭게 조명할 사고의 방식을 찾는 작업이 중요하다. 그래서 교육의 생태적 전환은 교육 현상을 치밀하게 분석하면서 주어진 현상을 새롭게 조명할 사고의 방식을 찾는 작업이며 교육에 대한 현상적 진단을 넘어 근원부터 찾아가는 노력이다. 이는 우리가 이제까지 교육이라고 말해 온 익숙한 사고방식을 이탈하고 진지하게 반성하고 사려 깊게 재해석하는 등 반복적 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의 교육》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 역시 교육의 생태적 전환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특히 이번 호에서는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 무엇이며 기존의 생태교육과는 무엇이 다른지,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들이 가능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특집으로 실린 글 세 편에는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 가진 세 가지 핵심적 주제가 녹아 있다. 첫 번째 주제는 근대적 교육과 맞닿아 있다. 어떻게 근대적 교육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교육 체제를 수립해 나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 그것이다. 특히나 국가와 지배, 간섭의 문제 속에서 교육을 생태적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이 주제 속에 녹아 있다. 두 번째 주제는 학교와 연결된다. 학교와 교육 불가능 학교와 민주주의 등과 연관 지어 볼 때 교육의 생태적 전환은 학교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실천이 가능할지에 대한 고민들이 이 주제 안에서 비판적으로 검토된다. 세 번째 주제는 환경과 연결된다. 이미 교육적 관점에서 환경의 위기가 다양하게 논의되었고 생태교육, 환경교육이 다양하게 실천되고 있다. 이러한 진단과 함께 환경적 관점에서 교육의 생태적 전환은 인간을 포함해 왜 우리가 보다 보편적으로 다른 종과 생태계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들을 제기한다.
우선 이계삼의 글은 그의 실천이 그러하듯이 매우 명확하며 선언적이다. 그의 글은 “환경 위기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우리가 함께 일하고 서로서로 보살피며 지내는 삶이 좀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깨달음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데 있다”는 이반 일리치의 말로 시작해 “미래는 현재의 무한한 연속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비타협적으로, 인간이라면 마땅히 살아야 한다고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방식으로 산다는 것 자체야말로 찬란한 승리일 것이다”라는 하워드 진의 말로 끝을 맺는다. 이반 일리치와 하워드 진을 연결하는 언어는 ‘파국’, ‘전환’, ‘기억’, ‘보살핌’과 ‘연대’이며 이계삼이 이 다리를 건너고 있다.
그는 ‘교육의 생태적 전환’을 ‘교육은 생태적일 수밖에 없다’는 당위로 받아들인다. ‘생태적 전환’은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시민사회에서 하나의 자명한 상식, 혹은 도덕적인 당위이다. 그가 인용한 엄기호의 말처럼 ‘그의 죽음’에서 ‘나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동시대인의 죽음’을 보는 것, ‘그의 몰락’에서 우울과 자기연민으로 침잠하거나 외면함으로써 연이은 수많은 재난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손을 잡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상’하는 것, 그래서 현재와 단절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공동의 모색을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 그리는 최종의 푯대라고 그는 생각한다. 이 점에서 교육의 생태적 전환은 엄기호가 사회의 특징을 설명하는 개념이 아닌 사회의 부재를 설명하는 개념으로서 단속적 삶의 전환과 관련되며, 우리에게 부재하는 지배와 간섭 없는 공공성을 구현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박복선의 글에서 그려지는 교육의 생태적 전환은 좀 더 골목적이고, 마을적이며, 공동체적이다. 그는 이것을 ‘간디의 물레’와 같은 것이라고 표현한다. 간디는 “실 잣는 물레를 건전한 마을 생활을 일으켜 세우는 기초로 만들 것”이고 “물레바퀴를 모든 활동의 중심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고 설명하는 그는 간디가 자기충족적인 소농촌공동체(마을)를 기본 단위로 마을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사회를 꿈꾸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간디에게 물레는 마을 자립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대중을 일깨우는 ‘교육 수단’이었고 ‘교육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라고 정리하면서 ‘교육의 생태적 전환’에 대한 사고 실험을 계속한다. 서로를 연결하는 삶의 방식을 가능하게 하는 마을 혹은 자립의 관계망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서 생태적 전환 말이다. 박복선의 이러한 생각은 이미 <안에는 길이 없다>(《오늘의 교육》 2012년 11·12월호)라는 글에서 드러난 적이 있다. 그는 이 글에서 국가, 시장, 사회 속에서 작동하는 학교와 배움은 필연적으로 스펙 쌓기, 더 많은 돈을 벌기, 취직하기 등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으므로 자립의 기술을 익히고 마을의 경제망을 만들어 그 속에서 안전을 보장받고 살아가는 새로운 사회관계망 속에서 교육이 작동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공현의 <‘녹색 없는’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라는 글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과 녹색을 분리시켜 보면서 교육의 생태적 전환을 비판적으로 사유한다. 그는 지금 한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중 다수의 삶이 그리 생태적이지 않거나, ‘녹색’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생태적이 아니라거나 녹색과 거리가 멀다는 말은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특히나 대부분의 생태적 교육이 기존의 교육이, 반생태적이라고 진단하고 생태적 교육은 마치 현실의 삶과 거리가 있는, 큰 결단을 요구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비판하며, 교육 자체가 삶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현재 사회의 조직 원리와 동떨어진 삶은 교육을 통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생태적인 삶이나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교육으로서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사회를 바꾸는 운동이 광범위하게 사회적으로 진행될 때 교육이 그러한 사회를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비판이다.
그는 《오늘의 교육》에서 교육의 생태적 전환에 관해서 논의한 것은 기존의 생태교육보다 더 넓고 다채로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생태적 전환의 현실이 학교에서 농사짓기, 에너지, 생명 존중 정도의 그림이 그려진다면 그것은 실천의 한계가 아니라 용어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라 지적하고, 도시에서 농사와 관계없이 살아갈 사람들에 농사를 교육하는 것이 옳으냐는 비판도 함께 검토해 보자고 이야기한다. 특히나 그는 학교교육이 생태적이지 않은, 학생들의 삶을 분절시키는 수용소적 속성을 지니고 있는 한 학교를 통한 생태적 전환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라는 표현 대신 지금 여기의 삶에서 출발하는 교육을 제안한다. 청소년 인권, 성소수자, 청소년 노동자, 학교에서 학생들의 삶에 관한 문제와 같이 지금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 우리 삶이 마주하고 있는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세 편의 글은, 새로운 교육 이론의 생명력은 교육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만큼 세상을 바꾸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말해 준다. 교육의 생태적 전환은 교조적 이론의 재생산이 아니라 가능한 최선의 실현에 달려 있다. 우리는 세상을 우리의 방식 대로 바꾸기 위해 우리의 이론을 선전하는 것에만 열심이기보다 자율성과 다양성을 통해 교육의 생태적 전환의 미래적 전망을 구성해 나가야 한다. 이것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 《오늘의 교육》을 읽는 독자들의 견제력(reader’s contestability)을 가지면서 독자들의 성찰적 균형(reflective equilibrium)이 이루어질 때 가능한 것이다.
존 던(Jhon Donne)의 유명한 비유처럼 우리 중 그 누구도 결코 사회적 섬이 아니다. 우리 중 어느 한 사람도 자연적 섬이 아니다. 우리는 물리적, 생물학적, 그리고 심리적 연속성 속에서 다른 인간, 다른 종들, 그리고 궁극적으로 좀 더 넓은 물리적 시스템 속에 함께 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공동의 자연성과 사회적 공공성을 확인하고 우리가 공유하며 살고 있는 자연과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능한 최선을 실현하려는 교육 이론은 동시대적 문제, 정치적 문제와 유리되어서는 곤란하다.
편집위원장 정용주
오늘의 교육
2015년 7·8월호(27호)
4 바라보다 최승훈 기자
<특집>
지금 딛고 서 있는 발밑을 보라
- 다시, 교육의 생태적 전환 2
5 전환을 위한 패배, 승리와 패배를 넘어선 전환을 고민하기 편집위원장 / 편집위원장 정용주
8 ‘녹색 없는’ 교육의 생태적 전환 / 공현
23 단절, 이야기, 몸의 기억 - 무언가 ‘안정감’을 갖고 ‘기쁘게’ 살아가기 위한 중얼거림 / 이계삼
40 K시를 걸으며 - 골목과 시장과 텃밭, 그리고 교육 / 박복선
<연재>
삶을 위한 수학교육
47 수학을 지속하게 하는 힘 / 장홍월
교직, 마지막 1년
62 왜 고양이가 내 품에서는 안식을 취하지 못한 걸까 - 교사의 전문성에 대하여 / 안준철
청년, 땅에서 삶을 찾다 - 농(農)진로 이야기
75 좋은 삶을 위해선 좋은 공동체가 필요하다 - 경남 산청 민들레농장 / 김진하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
85 상처투성이 학생인권운동의 첫걸음 - 장여진, 2000년 전국중고등학생연합 노컷운동 / 공현
인터뷰
103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 민선 2기 김승환 전북교육감 / 정용주 / 김환희 / 공현
청년 이슈 / 기고
122 자취하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 21세기 표류 노예 : 젊은 세대의 주거 불안 / 최서윤
에세이
135 “미안해서, 두려워서 오지 못했다” -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짧은 삶을 기록하며 / 임정은
특별 게재
148 공립 대안학교를 통해서 본 새로운 교육의 틈새 / 이병곤
리뷰
155 수업을 넘어 교육 생태계를 보다 - 《한국의 교육 생태계》 / 함영기
167 거꾸로교실에는 없는 것 - 《나는 공짜로 공부한다》 / 겨울나무
181 새 책 나들이
183 잠깐 독서
185 주제가 있는 책_여성, 그리고 페미니즘 / 김혜림
첫댓글 잘 읽겠습니다ㅎㅎ
잘 읽읍시다.ㅋㅋㅋ
며칠 안 남긴 했지만 그래도 홀수 월로 당겼습니다
공현의 공이 지대합니다. 히히.
열심히 읽겠습니다.
넵. 언제나! 헤헤
발간일 당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닐텐데 정말 편집위도 사무국도 너무 고생많으셨겠습니다.
필자들과 고도의 심리전을....ㅋㅋㅋ
7월호가 7월에 나오다니!!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지내시지요? 곧 뵐 수 있길요!^^
수고하심에 늘 감사해요
여름연수에서 뵈면 또 좋을 텐뎅 ㅋㅋㅋ
계획한 시기에 계획대로 책을 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도서관에서도 도서관소식지를 만들면서 늘 느끼는 부분인데..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부산으로 가면 이계삼선생님의 몸의 기억 꼭지를 한번 더 더더 읽어보아야겠어요.
필진들과의 심리전이란 말에 격한 공감이 몰려와 빵터졌어요. ㅋㅋㅋ
ㅎㅎㅎ 그렇죠? 빵터지는 것도 있었으니, 참 좋죠? ㅋㅋ 몸의 기억, 마음의 기록 함께 잘 버무리버무리^^
전북에서 사는 벗입니다. 7~8월호 김승환 교육감님 인터뷰를 잘 읽었습니다. 교육감님께서 매우 전문적인 인터뷰어들 와서 강도높은 인터뷰를 했다고 하셨는데... 다방면에 걸친 깊은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지방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교육의 모습을 의미있게 재조명해주는 기사를 앞으로도 많이 접하고 싶습니다. 좋은 이야기 엮어내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
네. 한계가 전제된 인터뷰인데... 그럼에도 칭찬할 점(?)을 찾아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중앙정부에 휘둘리지 않는 지역의 정책이나 활동들을 조합원들이 서로 나누면 좋겠습니다. 그 사이에서 오늘의 교육도 제 역할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