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
말을 잘해서 성공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말이 나쁘면 반드시 값을 치른다. 말의 원인은 마음이다. 굳이 성경으로 논증하자면 마태복음 12장 34절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고 전한다. 말의 원인은 마음이고 마음의 결과는 말이란 의미다. 마음은 요물이다. 분명 내 것인데 내 맘대로 하기 힘들다. 이유는 생각과 감정을 동시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세 가지를 직면해야 한다. 그것은 사실, 생각, 감정이다. 사실은 바꿀 수 없다.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생각은 바꿀 수 있다. 해석이기 때문이다. 삶은 해석이다. 해석이 어떠하냐에 따라 감정이 달라진다. 결국에 감정은 말과 태도로 표현된다.
관계의 8할은 태도다. 소통 강사 김창옥은 한 강연에서 말했다. “부부가 이혼을 결심하는 시점은 바라보는 눈 때문입니다.” 상대가 나를 기분 나쁘게 쳐다보는 눈, 멸시하는 눈, 벌레 보듯 쳐다보는 그 눈을 견뎌내기 힘들다는 뜻이다. 어쩌면 소리 없이 죽이는 총이 바로 ‘눈총’이다. 한비자는 “옳은 말도 미운 놈이 하면 폭력이다.”란 말을 한다. 여기서 미운 놈이 바로 그의 태도다. 옳은 말도 기분 나쁘게 하면 듣기 싫고 하늘의 메시지라도 거슬리게 전하면 외면한다. 이유는 태도가 나쁘기 때문이다.
감정이 태도가 되면 실수한다. 나는 잦은 실수를 한다. 그중 말실수가 가장 많다. 성경 야고보서 3장 2절은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전한다. 말의 실수는 감정을 거르지(filtering) 않기 때문이다. 때로 감정은 공감이 된다. ‘8분 12초’ 지난주 내가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한 시간이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다음은 나와 잘못 걸려온 전화, 모르는 여성과의 통화 내용이다.
‘여보세요.’
‘000 아닌가요?’
‘잘못 거셨습니다. 여기는 순천인데 어디에 거셨어요?’
‘순천이세요? 저는 대구에요.’
‘어디에 전화를 거셨는데요?’
‘20년 전에 헤어진 남편에게 전화 한 건데요.’
‘왜 헤어졌는데 전화하셨어요?’
‘아들이 하나 있거든요.’
‘아들이 무슨 문제가 있나요?’
이렇게 8분 12초 동안 통화했다. 내가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전화를 끊으며 여성은 말했다. “마음이 후련하네요. 다음에 한 번 만나요.” 작업인지 감사를 전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후련하다는 말만 기억하기로 했다. 삶은 해석이니까.
감정을 잘 사용하면 공감력이 상승한다. 하지만 감정이 곧바로 태도가 되는 건 위험하다. 이유는 상대방은 수시로 변하는 나의 기분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고, 상대방은 나의 감정을 버리는 쓰레기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관계망이 여럿이다. 가족, 교회, 친구, 사회적 관계가 있다. 사람은 답이 되기도 하고 짐이 되기도 한다. 사람을 통해 힘을 얻기도 하고, 사람 때문에 힘이 빠지기도 한다. 사람 때문에 가슴이 뛰고, 사람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 그동안 나에게 힘이 되었던 사람과 짐이 되었던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그리고 내려진 결론은 태도였다. 아픈 말을 해도 태도가 좋으면 힘이 되었고, 태도가 나쁘면 추켜세워주는 말도 다가오지 않았다. 칼이 날카로울수록 칼집이 좋다고 한다. 감정은 예리한 칼이다. 함부로 휘두르면 여럿 다친다. 태도는 감정의 칼집이다. 태도가 좋다고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태도가 나쁘면 반드시 관계는 나빠진다. 그래서 사람은 감정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 원하고 바라고 기대하는 것을 나의 태도로 삼아야 한다. 결국에 태도가 삶을 이끌어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