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갈매기
ㅡ천상병ㅡ
그대로의 그리움이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기꺼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흘렀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날이 오르는 자랑이었다.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4》
★강물
ㅡ천상병ㅡ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5》
★구름
ㅡ천상병ㅡ
저건 하늘의 빈털터리 꽃
뭇 사람의 눈길 이끌고
세월처럼 유유하다.
갈 데만 가는 영원한 나그네
이 나그네는 바람 함께
정처 없이 목적 없이 천천히
보면 볼수록 허허한 모습
통틀어 무게 없어 보이니
흰색 빛깔로 상공 수놓네.
《6》
★길
ㅡ천상병ㅡ
가도가도 아무도 없으니
이 길은 無人의 길이다.
그래서 나 혼자 걸어간다.
꽃도 피어 있구나.
친구인 양 이웃인 양 있구나.
참으로 아름다운 꽃의 생태여
길은 막무가내로 자꾸만 간다.
쉬어가고 싶으나
쉴 데도 별로 없구나.
하염없이 가니
차차 배가 고파온다.
그래서 음식을 찾지마는
가도가도 無人之境이니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한참 가다가 보니
마을이 아득하게 보여온다.
아슴하게 보여진다.
나는 더없는 기쁨으로
걸음을 빨리빨리 걷는다.
이 길을 가는 행복함이여.
《7》
★나는 행복합니다
ㅡ천상병ㅡ
나는 아주 가난해도
그래도 행복합니다.
아내가 돈을 버니까!
늙은이 오십세살이니
부지런한 게 싫어지고
그저 드러누워서
KBS 제1FM방송의
고전음악을 듣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오. 그래서 행복.
텔레비젼의 희극을 보면
되려 화가 나니
무슨 지랑병(炳)이오?
세상은 그저
웃음이래야 하는데
나에겐 내일도 없고
걱정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찌 어기겠어요?
《8》
★나의 가난은
ㅡ천상병ㅡ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왔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9》
★난 어린애가 좋
ㅡ천상병ㅡ
우리 부부에게는 어린이가 없다.
그렇게도 소중한
어린이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난
동네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요놈! 요놈하면서
내가 부르면
어린이들은
환갑 나이의 날 보고
요놈! 요놈한다.
어린이들은
보면 볼수록 좋다.
잘 커서 큰일 해다오!
《10》
★날개
ㅡ천상병ㅡ
날개를 가지고 싶다.
어디론지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싶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
날개를 안 다셨는지 모르겠다.
내같이 가난한 놈은
여행이라고는 신혼여행뿐인데
나는 어디로든지 가고 싶다.
날개가 있으면 소원 성취다.
하나님이여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
《11》
★눈
ㅡ천상병ㅡ
고요한데 잎사귀가 날아와서
네 가슴에 떨어져간다.
떨어진 자리는 오목하게 파인
그 순간 앗 할 사이도 없이
네 목숨을 내보내게 한
상처 바로 옆이다.
거기서 잎사귀는
지금 일심으로
네 목숨을 들여다보며 너를 본다.
자꾸 바람이 불어오고
또 불어오는데
꼼짝 않고 상처를 지키는 잎사귀
그 잎사귀는 눈이다 눈이다.
맑은 하늘의 눈 우리들의 눈 분노의
너를 부르는 어머님의 눈물어린 눈이다.
첫댓글 천상병 시인님의 시를 읽다 보면...
어린 아이를 만난 듯 합니다. 그의 시는 별로 어렵지 않아서 좋아요... ㅎ... ^^*...
저도 시 읽기를 좋아합니다.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느끼는 감정을 정서를 읽을 수가 있으니까요.
만약에 내가 시를 쓴다면, 그 시를 읽어본다면 나라는 사람의 적고도 적은 감정풀이 만을 읽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