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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학교 장년교과 보충교재(Ellen G. White Notes/예언의 신 인용구들)
(1) 이 보충교재(Supplemental EGW Notes)는 대총회가 매기 안교 장년교과와 함께 제공하는 자료이며, 매일의 교과 내용과 연결하여 살핌으로 새로운 통찰력과 관점을 얻도록 돕기 위한 목적으로 관련 ‘예언의 신’ 인용구들을 발췌한 것입니다. (한글 번역본이 없는 경우는 게시자가 번역함).
* 교재명: Ellen G. White Notes for the Sabbath School Lessons
(2) [활용방법] 매일 교과 내용을 공부한 후, 그날에 해당하는 부분을 연결하여 묵상하면 큰 유익이 됩니다.
<2024년 2기 – 대쟁투>
제5과 역경을 이기는 믿음
(Faith Against All Odds)
<4월 27일/안, 서론> 예언의 신 보충자료
◎ 박해와 투쟁과 흑암의 세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교회를 보존하셨다. 그분이 허락하지 않으신 어떠한 구름도 교회를 덮지 못하였으며, 그분의 사업을 대항해 일어난 어떠한 반대 세력도 그분이 모르시는 것은 없었다. 만사가 그분의 예고대로 일어났다. 그분은 그분의 교회를 버리지 않으셨으나 무슨 일이 발생할지를 예언을 통해 말씀하셨다. 성령께서 선지자들을 감동시켜 예언하게 하신 것은 성취되었다. 그분이 목적하신 바는 모두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의 보좌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어떠한 악의 세력도 그것을 파괴할 수 없다. 진리는 하나님께서 영감을 불어넣으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에 모든 반대를 물리치고 승리할 것이다.(행적, 11-12)
◎ 하나님께서는 견고하며, 든든한 목적을 가진 남녀, 위기와 시련의 때에 믿을 수 있는 사람, 영원한 산처럼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진리 안에서 터를 잡은 사람,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는 사람, 똑바로 나아가며 언제나 옳은 편에 서는 사람을 부르신다. …
우리는 영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하며, 자신을 하늘과 더 가깝게 연결시키고, 일상생활의 가장 사소한 행동에서도 율법의 원칙을 수행하여야 한다. (4증언, 75)
◎ 개혁자들은 파괴자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계획에 일치되지 않고 그들에게 동화되지 않는 자들을 파멸시키고자 결코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개혁자들은 후퇴하지 말고 전진해야 한다. 그들은 확고하고 단호하고 굳세고 굽힘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확고한 태도가 오만한 정신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원칙에 관해서는 바위와 같이 변함이 없되, 그리스도와 같이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기를 원하신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그들은 만일 그분께서 그들의 위치에 계셨더라면 하시게 될 그 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무례하고 비난하는 정신은 이 시대 개혁의 영웅적 행동에 있어서 요긴하지 않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나타나는 모든 이기적인 방법은 그분의 눈에 가증한 것들이다. (6증언, 151)
◎ 우리는 우리가 인정받는지 인정받지 못하는지 묻지 말아야 한다. 이것으로 우리는 할 일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방식을 보라. …
말씀을 취하라. 말씀대로 살아라.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말씀을 전파하라. 주 예수께서 그대에게 그분의 임재에 대한 약속을 주셨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라. 극기와 자기희생에 대해 보여지는 감사를 측정하는 것은 그대나 내가 할 일이 아니다.
개혁 사업에는 인간의 지성이 감당할 수 있는 모든 믿음과 눈물과 기도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난의 침례를 받으시기를 갈망하셨던 바로 그 정신을 따라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This Day With God, 49)
<4월 28일/일, 오직 성경> 예언의 신 보충자료
◎ 고상한 웅변가인 스데반이 산헤드린회의 충동으로 돌에 맞아 죽었을 때, 복음 사업에는 전혀 손해가 없었다. 스데반의 얼굴을 영광으로 물들게 한 하늘의 빛과 그가 죽으면서 드린 기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긍휼은 곁에 선 완고한 산헤드린 회원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는 예리한 화살과 같았다. 또한 핍박하던 바리새인 사울은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는, 택함을 받은 그릇이 되었다. …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썩지 아니하는”(벧전 1:23) 말씀의 씨는 오히려 그것을 없애려는 사탄의 노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뿌려진다. 그분의 자녀들이 받는 비난과 핍박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이 찬양을 받게 되고 영혼들이 구원을 얻게 된다.(보훈, 33~34)
◎ 그 개혁자들이 주장한 위대한 원칙은 왈덴스인들과 위클리프와 얀 후스와 루터와 츠빙글리와 그들과 연합했던 동지들이 주장한 원칙들과 똑같은 것으로, 그것은 신앙과 행위의 표준이 되는 성경이 절대 무류(絶對無謬)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 그들의 권위는 성경이었으므로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여 모든 교리와 모든 주장을 시험하였다. 그 거룩한 사람들은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하나님과 성경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지탱되었다. 래티머는 그와 함께 곧 화형에 처해질 그의 동료에게 이렇게 부르짖었다. “안심하라. 내가 믿기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국에서 결단코 소멸되지 않을 촛불을 우리는 켤 것이다.”-Works of Hugh Latimer 1:8. (쟁투, 249)
◎ 뱃사람이 모래톱이나 바위가 많은 강을 건너기 위해 도선사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는 인생의 수많은 직선 구간을 안내할 수 있는 안내자가 필요하다.
해도와 나침반을 소지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사용하지 않는 선원은 배에 탄 사람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책임이 있다. 그의 부주의로 배가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안내서인 하나님 말씀이 있고, 그래서 천국으로 가는 길을 놓친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분명한 지침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성경은 품성의 완벽한 표준을 제시하며, 그것은 인생의 여정이 끝날 때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틀림없는 안내자가 된다. (My Life Today, 25.)
◎ 예수께서 구약 성경에 대하여 “이 성경이 곧 내(우리 영생의 소망의 중심이 되시는 구주)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라고 말씀하셨은 즉 신약성경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과연 성경 전체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 창조에 대한 첫째 기록 … 에서부터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계 22:12)라고 하신 최후의 허락까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적을 읽고 또한 그분의 음성을 듣는다. 만일 그대가 구주를 잘 알려고 하면 성경을 연구하라.
온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라. 하나님 말씀은 그대의 타는 목의 갈증을 없애 주는 생수이다. 그것은 또 하늘에서 내린 생명의 떡이다. (정로, 88)
<4월 29일/월, 성경을 전파함>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씨가 하늘의 이슬로 말미암아 생명으로 약동하기 전에는 복음의 씨 뿌림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성령께서 기도하던 사도들에게 임하신 것은 신약 성경 어느 한 책도 기록되기 전이었고,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어느 한 복음 설교도 설교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원수의 증언은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행 5:28)였다는 것이었다.(소망, 672)
◎ 비난과 핍박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들이 하늘에서 받을 상은 크다. 백성들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하늘의 상급을 가리켜 보이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 상급을 전적으로 내세에서만 받게 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세상에서부터 받기 시작한다. 여호와께서는 옛날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의 상급이다. 사람은 여호와 임마누엘, 곧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고”,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골 2:3, 9)는 분의 특성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마음을 더욱 넓게 열 때 그분과 조화를 이루게 되고, 그분을 알고, 그분을 소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과 능력을 깨달아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부를 소유하며,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엡 3:18~19) 하심을 더욱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54:17). (보훈, 34-35)
◎ 그는 말했다. “이스라엘 사람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시편을 송영한 것은 이스라엘 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국 말로 복음을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가? 교회는 대낮에 새벽빛보다 더 희미한 빛을 가져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인들은 신약 성경을 반드시 자국어로 읽지 않으면 안 된다.” …
그는 박해로 인하여 집에서 쫓겨나서 런던으로 갔다. 그는 얼마 동안 그곳에서 아무런 방해 없이 그의 일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그는 로마교도들의 폭동으로 다시 도망할 수밖에 없었다. 온 영국이 그에 대하여 봉쇄된 듯했으므로 그는 독일에서 피난처를 찾고자 하였다. 거기서 그는 영어 신약 성경의 인쇄를 시작했다. 두 번이나 그의 사업은 정지를 당했으나 이 도시에서 인쇄할 수 없으면 저 도시로 가고, 저 도시에서 인쇄할 수 없으면 또 다른 도시로 갔다. 마침내 그는 보름스를 향해 갔는데, 그곳은 몇 년 전에 국회에서 루터가 복음을 옹호한 곳이었다. 이 고대 도시에는 개혁 사업의 친구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틴들은 더 이상 방해를 받지 않고 그의 사업을 계속하게 되었다. 오래지 않아 3천 부의 신약 성경이 출판되었으며, 같은 해에 다시 재판까지 하게 되었다.
그는 큰 열심과 인내로써 사업을 계속하였다. 영국 당국자들이 물샐틈없이 각 항구를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런던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거기서 다시 전국으로 전해졌다. 로마교도들은 진리를 억압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쟁투, 246~247)
<4월 30일/화, 성령의 깨우치심으로>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성경을 연구하려는 사람은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알고자 성경을 페이지마다 연구해야 한다.
성경에 대한 참된 지식은 말씀을 주시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얻을 수 있다. 또한 이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이를 우리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을 모두 다 순종해야 한다. 그 말씀에 있는 모든 허락을 우리 것으로 주장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생애를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 그대로 살아야 한다. 이렇게 성경을 지지할 때만 그 연구가 실효를 거두게 된다. (교육, 188-189)
◎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거룩한 말씀을 준비하는 일을 유한한 인간에게 위탁하셨다. 신구약 성경으로 꾸며진 이 말씀은 타락한 세계 거민들에게 주신 안내서이며 후세에 남기도록 주신 것이며 지시하신 말씀을 연구하고 순종할 때 단 한 영혼도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영감으로 기록된 부분과 영감으로 기록되지 않은 부분을 인간의 한정된 표준으로 측정하므로 명백한 성경 말씀을 가상적(假想的)인 난해 거리로 만들려고 생각하는 자들은 마치 엘리야가 세미한 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의 목전에서 얼굴을 가리워야 할 것이다(왕상 19:12). 각 시대를 통해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은 인간에게 빛과 지식을 전해 주어서 저들이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일러주며 저들에게 흥미진진한 장면들을 전개 시켜 주고 상징, 징조 및 예화로 곳곳에 이정표를 두셨다. …
… 우리의 정신과 손이 성경을 비판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도록 하자. 이 일은 바로 그대들이 하기를 사탄이 바라는 것이며 주님께서 수행하라고 지적하신 사업이 아니다.
인류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살아 있는 말씀, 곧 거룩한 성경을 과거에 각 시대를 통해서 하신 것처럼 그분의 책을 친히 돌보시게 해야 한다. (1기별, 16~17)
◎ 성령의 계속적인 임재와 도움이 없이는 말씀의 전파가 전혀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분이야말로 거룩한 진리를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교사이시다. 진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함께할 때만 양심을 일깨우거나 생애를 변화시킬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소개할 수 있을 것이며, 모든 하나님 말씀의 명령과 약속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진리를 깊이 감명시키지 않으면 반석 위에 떨어져 깨어질 영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교육이나 유리한 지위가 아무리 위대하다 하여도 하나님의 성령과 협력함이 없이는 아무도 빛의 통로가 될 수 없다. (소망, 671-672)
<5월 1일/수,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예언의 신 보충자료
◎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대리자로서 고통을 당하셨다. 하나님 아들의 인성은 죄의 사악함의 공포 아래 마음이 흔들려 마침내 창백하고 떨리는 그분의 입술에서 “오,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하는 고뇌에 찬 부르짖음이 흘러나오게 하였다. 그러나 타락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으시다면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다. 만약 하늘로부터 천사들이 와서 힘을 돕지 않았더라면 그리스도의 인성은 두려운 죄의식 때문에 그때 거기에서 죽고 말았을 것이다.
보수하시는 공의를 인간의 대리자요 보증인이신 그분 위에 내리신 그 힘은 죄로 가득한 세상에 내려질 엄청난 진노의 무게로 고통을 당하는 그분을 견디게 하시고 붙들어 주신 바로 그 힘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 선고된 죽음의 고통을 당하고 계셨다. (화잇주석, 마 26:36-46)
◎ 하나님의 선물은 영원한 생명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은총을 받은 이들 모두가 그분을 완전하게 신뢰하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받을 보상이 무엇이냐를 따지지 않고, 순결함과 단순한 믿음을 행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을 행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심판하실 그런 완전한 신뢰심을 나타내면서, 우리는 그분을 섬기는 일에 온 마음을 기울여 일해야 한다.
심판의 광경을 짐작해 보면, 보상은 의인들에게 주어지고 형벌은 악인들에게 내려질 것인데, 의인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상급을 받을 만큼 일을 했던가 생각하며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한 믿음이 있었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하는 노력 없이도 그분의 성도의 한사람으로 확실한 보상이 보장되는 그런 봉사를 그리스도를 위하여 행했던 자들인데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던 것이다. 그들의 행함의 동기는 보상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처럼 일할 수 있도록 허락된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겼다. 그들이 행한 일은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고난받는 인간과 같다고 생각하신 그분께서는 이러한 연민과 사랑의 행위들을 마치 그분 자신께 행해진 것처럼 여기신다. (높임, 343)
◎ 예복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이 갖추어야 할 순결하고 흠이 없는 품성을 표상한다.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계 19:8)고,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엡 5:27)는 품성을 얻게 하려고 교회에 이것이 주어졌다. 성경에서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하였다. 이 세마포는 그리스도의 의, 곧 믿음으로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홈이 없는 품성을 표상한다. … 그리스도께서는 이 옷 곧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를 회개하고 믿는 모든 자에게 입혀 주실 것이다. (실물, 311)
<5월 2일/목, 순종: 믿음의 열매> 예언의 신 보충자료
◎ 하나님의 율법은 변경이 필요 없을 만큼 완전하므로, 죄악적인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표준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구속주로 오신 이유였다. 예수님의 사명은 사람들을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로 만들어 하늘의 율법의 원칙과 조화롭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죄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일 때, 율법은 높여진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라고 말한다.
새 언약의 약속은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히 10:16)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그분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가리킨 표상적 제도는 폐지되었으나, 십계명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된 의의 원칙은 영원한 보좌와 마찬가지로 변치 않는다. 율법의 한 조목도 폐지되지 않고, 일점일획도 변경되지 않았다. 에덴동산에서 생애의 큰 법칙으로 인류에게 알려진 그 원칙들은 회복된 낙원에서도 변치 않고 존재할 것이다. 에덴동산이 다시 지상에서 꽃 필 때, 태양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사랑의 율법을 순종하게 될 것이다. (보훈, 50-51)
◎ 하나님 말씀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생애에 드러난 순결과 거룩함은 인간의 죄악과 그 분명한 결과를 들춰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품성을 개혁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을 더 많이 갖고 있다. 십자가 위에 높이 달리신 구주를 끊임없이 바라보는 자는 능변으로 모든 과학적 설명을 늘어놓는 것보다 모든 더러운 것으로부터 마음과 정신을 더욱 정결하게 할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죄인은 자신의 품성이 그리스도와 닮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범죄로 인한 두려운 결과를 알게 되고, 자기가 행한 죄를 미워하게 된다. 그리고 살아있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단단히 붙잡는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나온 빛과 하늘의 지혜로 자신이 정결치 못한 위치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자신을 십자가의 표준으로 재어 보고 성소의 저울로 달아본다. 그리스도의 정결함은 추한 색으로 얼룩진 자신의 부정함을 드러내 준다. 그는 부정한 죄에서 돌아서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산다. (높임, 297)
◎ 어떤 사람들은 저희는 아직 미결(未決) 중에 있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려면 먼저 저희가 개선되었다는 것을 주께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저들은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복을 요구할 수 있다. 저들은 저희의 연약함을 돕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신을 받아야 하나니 그렇지 않으면 악을 능히 대적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죄가 많고 무력하고 도움이 요구되는 그러한 상태 그대로 그분께 나오는 것을 좋아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어리석음과 죄가 많은 그대로 나아가서 참회하는 마음으로 그의 발아래 엎드릴 수 있는 것이다. 그분의 사랑의 팔로 우리를 안으시고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고 우리에게서 모든 누추한 것을 깨끗이 씻어 주시는 일은 그의 영광으로 여기신다. …
아무리 죄가 많은 자라도 저희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 안에서 힘과 순결과 의를 얻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저들에게서 죄로 더러워진 옷을 벗기고 의의 흰 두루마기를 입혀 주시려고 기다리신다. 그분은 저들에게 살고 죽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정로, 52-53)
<5월 3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예언의 신 보충자료
◎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함” (아들과 딸, 45)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시 19:8).
우리는 하나님 율법의 지극히 광대함에 관하여 미미한 빛을 가지고 있다. 이 마지막 시대를 위한 시험하는 진리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이 마치 하나님께서 그분의 거룩한 율법의 원칙에 대한 그들의 결례나 불순종을 나타내는데 주목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행한다. 율법은 그분의 의지의 표현이며 인간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받아들이도록 제안하시는 것은 그 율법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이다. … 하나님의 계명에 자원하여 순종함으로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도록 무한한 희생이 치루어 졌다. 우리의 구원은 지극히 큰데 이는 우리로 정결하고 완전하고 결함이 없도록 완전한 대비책이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 만일 인간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다면 하늘 보화는 우리가 마음대로 쓰게 될 것이다.
총명의 눈을 떠서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 율법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라. 찬미하라. 그리고 하늘과 땅의 최고 통치자인 창조주를 찬미하고 그분께 경의를 표하라. 사랑으로 그대들에게 허리를 굽히시는 구주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라. …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그대들이 세운 모든 목표를 향해 힘차게 매진하게 하며 언행일치하는 품성을 갖게 한다.
이생에서의 모든 행복과 평화와 기쁨과 성공은 하나님께 대한 참된 신뢰의 신앙에 달려 있다. 이 신앙만이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참된 순종을 촉진시킬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사랑은 모든 악습을 다루는 가장 힘 있는 제어책이며, 또 모든 선행의 동기가 된다.
그대들은 예수님을, 죄를 사유해 주시고 그대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집에서 행복스럽게 살기를 원하시는 분으로 믿으라. 주께서는 그대들이 그분의 존전에서 함께 살고 영생과 영광의 면류관을 받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이 세상에서도 큰 상급이 있다. 우리의 양심이 우리를 정죄하지 않는다. 우리의 심령은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고 그분과 화평을 누린다.
◎ “자비롭고 신실하신 대제사장” (높힘, 345)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죄의 담당자로서, 제사장으로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인류의 대표자로서,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혈과 육을 취하셨을 때 그분은 인간의 생명 속으로 들어오신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은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흘리신 그 피의 흐름 속에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생명을 우리를 위한 속죄물로 주심으로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다. 그분이 출생하실 때 그분은 단 한 점의 죄도 없으셨다. 하지만 우리 인간 가족들과 꼭 같은 모양으로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단지 우리와 비슷한 몸을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라 인성을 취하셨고 인간의 생명에 참여하셨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왕복과 왕관을 벗으시고, 인간의 대치물과 담보물이 되시기 위하여 신성에다 인성을 입으셨다. 이는 그분이 인간으로 죽으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가진 자를 멸하려 하심이었다. 하나님이라는 신분으로서는 이 일을 할 수가 없었고, 인간이 되심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실 수가 있었다. 죽음으로 그분은 죽음을 이기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죽음의 권세를 가진 자를 죽음에 처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자를 위하여 무덤의 문을 열어 놓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요셉의 열린 무덤을 향하여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셨다. 세상의 구주이신 그분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고 사람들에게 그 독사의 독을 느끼게 하던 모든 권세를 마귀에게서 박탈해 버리셨다. 왜냐하면 그분은 생명과 불멸을 가져와서 불을 밝히셨기 때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 앞에 영생의 문이 활짝 열렸다. 믿다가 자연사를 당한 모든 신자는 하나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그들 속에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 그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예수님은 그분을 믿는 사람들이 죽는 것을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으셨다. …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사시고 인간으로 죽으신 것은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함이었다. 만약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그는 영생을 잃을래야 잃을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의 생명은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대신하여 형벌을 당하시고 그 생명을 사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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