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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양곡, 삼족오, 아황, 봉황, 복희
중국신화, 신화의 역사화
주周왕조(기원전 1100년-기원전 221년) 이전의 신화가 후대, 특히 한대의 학자들에 의해 역사화
Euhemerism: 그리스의 철학자이며 신화작가, Sacred History의 작자인 Euhemerus(기원전 300년에 활동,
Sicily 출생)가 주장한 학설.
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고대 전사와 영웅들의 왜곡된 표상으로 설명함으로써 최초로 신화적
인물과 사건들을 역사적 사실과 결부시킴. 말하자면 신들의 기원은 고대 영웅들을 신격화한 것.
중국신화: 중국의 경우는 Euhemerism과 정반대.
중국인들이 고대의 성왕(sage king)으로 받들던, 예를 들어 요 .순.우 등은 원래 신이었다.
신화를 역사화한 것.
<중국신화의 3대
계통>
중국의 신화시대를 형성하는 민족을 크게 세 집단으로 나눔.
이들 세 집단은 투쟁과 융합을 반복하면서
중국의 상고시대 역사를 이룬다. 중국의 고대 신화는 이들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Wolfram Eberhard's
The Local Cultures of South and East
China
(Leiden: E. J. Brill, 1968):
에버하르트는 일찍이 중국의 상고시대에는 지금의 우리가 인정하는 자기 동일적인 중국문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다만 다양한 지방문화 간의 교류관계만이 있었다고 가정.
1. 제준집단: 태양과 태양새 (봉황, 세 발 달린 까마귀‘삼족오三足烏’)를 숭배.
2. 염제집단: 불과 양을 숭배. 姜씨의 나라. 거인족 과보, 치우.
3. 황제집단: 곰과 용을 숭배.
이 세 집단 중 제준족은 동방의 부족(동이족)으로, 염제족과 황제족이 중원으로 진출하기 전까지 북으로
발해만, 남쪽으로는 양자강 하류, 서쪽으로는 하남성 동부에 이르는 중국의 연안지역을 지배.
반면에 염제족과 황제족은 서쪽의 섬서성과 감숙성 일대에서 발원하여 후에 염제족이 먼저 동천하여
황하중, 하류를 중심으로 한 광대한 땅을 차지했고, 동진을 계속하여 제준족과 충돌하게 된다.
염제족보다 늦게 동천을 시작한 황제족은 중원에서 염제족과 충돌하게 되어 이 두 집단간의 전쟁이 발생
하게 된다.
황제족과의 전쟁에서 패한 염제족은 남하하게 되고, 황제족은 동진을 계속하여 제준족이 지배하던 지역을
점거하여 결국 제준족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어 남하하거나 서쪽으로 이동한다.
<십일신화와
부상전통>
신화가 역사화 되기 이전의 신화
후한 허신의
설문해자-
“부상은 신비한 나무로서 태양이 떠오르는 곳이다”. 탕곡 위에
부상이 있으니, 열 개의 태양이 목욕을
하는 곳이라 그 곳은 검은 치아를 가진 종족의 북쪽 굽이치는 물 한가운데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으니,
아홉 개의 태양은 낮은 가지에 머무르고 하나의 태양은 가장 높은 가지에 머무른다.
광대한 황무지 가운데 얼요군저란 이름의 산이 있고 그 위에 부목이 있는데, 나무줄기는 300리나 되고
잎은 마치 겨자의 잎 같다.
또 온원곡이라는 계곡이 있고 그 탕곡 위에 부목이 있는데, 하나의 태양이 이르면 다른 태양이 떠오르며
모든 태양은 새들에 의해 옮겨진다.
산해경-
십일신화와 부상전통: 신화가 역사화 되기 이전의 신화
1. 부상과 양곡(탕곡)
동쪽 땅 끝에 위치.
양곡 위에 부상이 위치.‘탕(湯)’의 의미: 상나라를 창건한 탕왕. 끓는 물. 태양신.
탕곡은 열 개의 태양이 목욕하는 곳.
삼성퇴 출토 음양교미신화에서 가마귀의 발이 두개로 표현된 에이다.
그들은 음양론을 주장한 근거이다.
대신 세마리의 새로 양을 표현하고 두마리의 새로 음을 표현하였다.
그 가운데 용트림으로 교미를 표현하였다.(해설 구산)
양곡 부상목에 앉은 아홉개의 태양(삼족오)을 활로 떨어뜨리는 예 (가상현 무씨사당의 석판화) (해설 구산)
2. 약목과 매곡
약목: 서쪽의 해가 지는 곳.
함지: 해가 양곡에서 떠올라 함지에서 목욕한다. 태양이 목욕하는 곳.
우연(羽淵: Feather
Abyss): 약목의 아래에 위치. 후예의 화살에 맞은 황금까마귀가 깃털을 떨어뜨린 곳.
몽사: 우연의 아래에 있는 물웅덩이. 약수라고도 한다.
-초사.천문- “태양이 탕곡에서 떠올라 몽사에 머문다.”
몽사(蒙 水변+巳) 의 ‘사(.)’: 원천으로 되돌아가는 물줄기. 원천회귀.
3. 태양새 세 발 달린 까마귀 삼족오
계절을 상징하는 백호와 삼족오(현무)의 그림이다.
가을은 결실을 거두는 계절이고 겨울은 결실물을 저장하는 계절이다.
저장기간이 끝나면 다시 싹이 움트는 봄이 올것이다.한편 삼족오는 양의 음세계 즉 밤을 표현한다.
(해설 구산)
4. 건목:
중국 남쪽에 위치한 세계중심. 엘리아데(Eliade)가 말하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우주축 (axis mundi)
부목은 양주(陽州: 태양의 섬)에 있으니 태양이 타오르는 곳이다.
건목은 도광에 있으니, 많은 영령들이 오르내리는 곳이다.……약목은 건목의 서쪽에 있으니, 가지 끝에
열 개의 태양이 걸려 있어 아래로 땅을 밝게 비춘다.
5. 황천(黃泉) 약수는 황천이라 알려진
물로 가득 찬 지하세계. 황천은 양곡과 우연을 지하로 연결.
<제준신화>
제준(帝俊)의‘준俊’은
‘준조.鳥(삼족오: 태양 속 세 발 달린 까마귀)’를 뜻하며, 제준은 태양신으로 상고
시대 동방민족의 신이다. 제준족은 태양신을 숭배하고 새(봉황, 난새)를 토템으로 삼은 종족집단이다.
제준의 아내들 one:
희화(羲和)
(1)십일(열 개의 태양)
동해의 밖, 감수(甘水: 달콤한 물이 흐르는 강)의 사이에
희화국(태양의 나라)이 있다.
희화라는 여자가 있어 지금 감연(甘淵: 달콤한 연못)에서 해를 목욕시키고 있다.
희화는 제준의 아내로 열 개의
태양을 낳았다. -산해경-
(2)십일의 의미: (a)10일(한 주), 30일(한 달) (b) 제준족의 10개 방계집단
제준의 아내들 Two:
상희(常羲)
(1)상희는 동쪽 태양신 희화와 대응되는 서쪽의 달의 신이다.
어떤 여자가 지금 달을 씻기고 있다. 제준의 아내인 상희가 달을 열두 개 낳아 여기에서 처음으로 그것들을
씻겼다. -산해경-
(2)달의 신 상희 신화→후대 상아(남편 후예后.가 서왕모에게서 얻은 불사약을 훔쳐 달로 도망)신화로
탈바꿈. 위의 두 여성은 제준족에 태양을 숭배하고 달을 숭배하는 두 개의 집단이 있음을 의미.
제준의 아내들 Three:
아황(娥皇)
(1)아황은 태양신: ‘황皇’자의 금문金文(청동기에 새긴 문자)은 ‘햇빛이 비치는 모양’으로
‘호(昊: 큰 밝음,
현조玄鳥)’와 함께 고대에 태양신의 존칭으로 사용.
(2)아황과 삼신국(三身國) 제준의 처 아황은 삼신국을 낳았다. -산해경-
<삼신국의
의미>
(1)숫자 ‘3’: 음양오행에서 ‘3’은 양(태양)의 수.
(2)삼족오.
(3)십일은
한 달에 세 차례 순환.
(4)삼신국은 태양의 나라
상의 시조신화: 현조(玄鳥: 검은
새)신화
. 상의 시조: 제준의 둘째 부인 간적(簡狄: 제준 아내의 또 다른 전통)이 현조가 떨어뜨린 알을
삼키고
낳았다.
. 제준은 상의 선조: 중국의 저명한 학자인 왕국유의
주장.
곰과 호랑이
백민국(白民國)이 있다. 제준이 제홍을 낳고 제홍이 백민을 낳았다.
백민의 성이 소씨이고 기장을 먹고 살며 호랑이, 표범, 곰, 말곰 등 네 종류의 짐승을 부린다. - 산해경-
<상림과
야합>
상림은 상나라를 건국한 탕왕이 자신을 희생으로 바쳐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탕왕은 가뭄이 들어 상산(桑山: 뽕나무 산)의 숲(桑林: 뽕나무
숲)에서 자신을 희생으로 바쳤다. -회남자-
상나라가 하나라를 멸망시킨 뒤 상은 7년 동안 가뭄에 시달렸다.
그 해결책으로 탕왕은 자신을 희생으로 바쳐 기우제를 지내게 된다.
이러한 그의 행위는 샤먼의 입사의식에서
행해지는 시련의 한 형태로 해석될 수 있다.
뒤에 주나라가 건국하고
상나라의 후예들에게 그들의 조상에 대한 제사를 잇게 하기 위해 봉토로 준 땅이
송이며, 송의 제단이 있는 곳이 상림이다.
상림은 제단이 있는 신성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제사의식에서 신을 즐겁게 하는 행위의 한 형태로, 신의
강림과 우주자연의 음양조화를 자극하기 위해 남녀가 자유롭게 성행위를 하는 이른바 야합(野合)이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상림은 우주와 인간 두 세계의 음양 조화를 꾀하는 곳이다.
상림야합을 묘사한 중국 그림 복희여와도의 교미와 같은 생명의 잉태를 암시한
그림이다.(해설 구산)
<봉황: 태양과 새 그리고 알의 신화>
제준족은 태양새인 봉황을 숭배한 종족집단이다.
(1)태양신 제준과 태양새 봉황
. 제준의 ‘준俊’은 태양 속에 있다는 세 발 달린 까마귀.
. 제준족이 숭배하는 태양새 봉황
오색무늬의 새가 서로 마주 보고 너울너울 춤춘다. 이들은 제준의 하계 친구이다.
천제의 하계 두
제단을 오색무늬 새가 맡고 있다. -산해경-
여기에서 말하는 ‘오색무늬
새’는 신화 속의 봉황새를 가리킨다.
중국의 저명한 신화학자 원가에 따르면 제준의 신체(神體)는 현조인데 신화적 수식을 거쳐 난새나 봉황의
종류가 되었다고 한다.
(2)태양새 봉황은 바람과 빛의 신이다.
봉(鳳)은 신조(神鳥)이다.
천노(天老: 황제의 신하)가 말했다. 봉의 형상은 기린의 앞모습에 사슴의 뒷모습, 뱀의 머리에 물고기의
지느러미, 용의 무늬에 거북이 등, 제비의 턱에 닭의 부리를 하고 있으며 오색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동방의 군자의 나라에서 나와 사해 밖으로 날아 곤륜산을 지나 지주산에서 물을 마시고, 약수에서 깃털을
씻으며, 저녁에는 풍혈(바람구멍)에서 잠을 잔다.
이 새가 한 번 나타나면 천하가 아주 태평스러워진다. -설문해자-
여기서 말하는 태양새 봉조는 동방의 군자의 나라(꼬레아)와 관련이 깊다.
. 바람의 신: 갑골문에서 봉(鳳: feng)자는 풍(風: feng)과 통용. 따라서 봉조는 바람의 새이며 바람의
신이다.
. 빛의 신: 황(凰)의 본래 글자는 황皇이다. 황皇과 광光, 은 고음에서 통용된다.
따라서 황조는 빛의 새이며 태양새로서 태양이 생명화된 이미지다.
. 복희는 바람의 신이며 태양신이다. 중국신화에서 여와와 더불어 중국문화를 개창한 신으로 한족들에게
추앙
받는 복희(희羲는 태양신의 또 다른 명칭)의 성이 풍성風姓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준족의 분산> 한국 고대 신화와의
관련
염제족에 뒤이어 중원으로 진출한 황제족 계통의 전욱집단은 중원에
자리 잡고 있던 제준족의 소호집단을
격파하고 나서 이미 중원에 진출해 있던 염제족과 치열한 전쟁 끝에 이들을 격퇴시켜 염제족과 제준족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황제족의 제준족 계통
신화
왜곡 중원을 차지한 황제집단은 그들의 통치를 위한 목적으로 제준족 계통의 신화를 왜곡하여 황제족의
신화로 편입시킨다.
예를 들어, “황제가 희화로 하여금 태양을 점치게 하고 상희로 하여금 달을 점치게 했다.”와 같이 제준의
두 처가 황제의 수하에서 역법을 담당하는 신하로 변하게 되었다.
예.는 -산해경-에서 “제준이 예에게 활과 흰 주살을 하사하여 그것으로 하계를 도와주게 하니 예가 비로소
하계의 온갖 어려움을 없애고 구제해 주었다.”고 비쳐져 원래는 제준 계통의 신화였으나
한대의 -회남자-에서 “요임금의 시대에 열 개의 태양이 동시에 떠올라” 요가 예에게 태양을 쏠 것을 명한
것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삼황오제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중국의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삼황(三皇)과 오제(五帝)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삼황에 대해서는 7종의 설이 전해져 내려오지만 중국의 고대사서《십팔사략》에 나오는 복희, 신농,
황제를 주로 말한다.
이 삼황은 맨 처음 세 명의 왕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고, 연속적인 세 명의 왕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각각 인류 문명에 필요한 획기적인 발명을 통해 후세에 큰 모범이 되었기에 “삼황”(三皇)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삼황의 첫 째인 복희는 태호(太昊 : 큰 하늘)라 불렸으며, 뱀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었으며, 사람들
에게 처음으로 사냥법과 불을 활용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복희의 뒤를 이어 염제 신농의 시대가 온다. 염제(炎帝 : 불꽃 임금)신농은 태양신이자 농업의 신으로
농경과 상업을 처음으로 백성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뒤이어 염제 신농의 자리를 이은 것이 바로 황제 헌원(軒轅)이다.
헌원은 사람들에게 집짓는 법과 옷 짜는 법을 가르쳤으며, 수레를 발명했다. 헌원은 글자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해 천문과 역산을 시작하고, 의료술을 시작한 황제였다.
그리고 황제 이후 황제의 다섯 자손이 세상을 다스리는 오제의 시대가 온다.
오제
오제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일치하는 설이 없지만 주로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그중 중국의 고대사서 《십팔사략》에서 나오는 황제의 뒤를 이은 다섯 자손인 소호 금천, 전욱 고양,
제곡 고신,제요 도당, 제순 유우 등을 말한다.
소호 금천(少昊 金天)은 황제의 아들로 황제가 승천한 후 바로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후 봉황이 날아들어 소호의 정치를 도왔다고 한다.
이 소호의 뒤를 이은 것은 전욱 고양(顓頊 高陽)으로, 전욱은 소호의 형의 아들이었다.
전욱 고양은 엄격한 법을 세워 하늘과 땅의 구별을 확실히 하고, 인간 세상에서도 주종관계, 남녀관계
등을 확실히 세웠다고 한다. 이 전욱 고양은 바로 조선(朝鮮)과 한민족(韓民族)의 우리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이 전욱의 뒤를 이은 것은 소호 금천의 아들인 제곡 고신(帝嚳 高辛)이었다.
그는 음악의 신으로, 각종 악기와 음악을 만들어 백성들을 즐겁게 하였다고 한다.
제요 도당과 제순 유우는 성군을 칭송할 때 관용적으로 쓰이는 요순임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삼황오제가 중국 신화 속의 대표적인 인물이지만, 이들을 동이(東夷)나 한민족으로 간주하는
주장이 있다는 것이다.
삼황오제가 동이였다는 중국의 사료들이 일부 존재한다.
중국의 사료 고사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동이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근원이 같다.
태호 복희, 제준(帝俊), 제곡(帝嚳), 제순(帝舜), 소호(少昊) 그리고 설(契) (은나라를 세운 탕임금의
선조)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 -고사변(古史辯)-]
이처럼 이 동이라는 존재를 모두 한민족으로 보는 역사관이 존재한다.
그러나 중국 진(秦)나라 이전의 동이와 한(漢)나라 이후의 동이는 전혀 다른 존재로서,
한민족이 속해 있는 동이는 한나라 이후의 동이이기 때문에, 진나라 이전의 개념인 삼황오제의 동이
여부와 한민족은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것이 강단사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우리민족의 역사서《삼국사기》에는, 신라인과 가야인은 그 조상을 소호 금천씨라고 했고,
고구려인은 그 조상을 제곡 고신씨 또는 전욱 고양씨라고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문 속에 나타난 조선(朝鮮)과 한(韓)의 의미
우리민족은 스스로 위대한 한민족이라 자처하며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이 위대한 한민족의 나라를 조선(朝鮮)이라 부른다.
그런데 우리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무엇이며, 한국이라는 나라가 무엇이며, 또한 조선이라는 글자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한국의 한(韓)이라는 글자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전혀 모른다.
이는 바로 우리민족이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자신의 정체성을 모두 버리고 죽어있는 식물인간과도 같다는 말이다.
우리는 조선(朝鮮)과 한(韓)이라는 말의 역사적인 전후배경을 민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이 조선(朝鮮)이라는 말을 우리민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단어이다.
조선은 4500년 전에 있었던 중국의 삼황오제 시대가 바로 조선의 시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삼황오제의 시대를 연 분이 바로 신농(神農)이라는 것이다.
이 조선과 신농의 역사적인 관계는 금문(金文)의 해석으로 풀어진다.
금문(金文)의 특징은 당시 지배계급의 성이나 이름, 관직명과 땅 이름, 혹은 간단한 그 시대의 역사적인
행위들에 대한 기록으로 만들어진다.
조선(朝鮮)이나 한(韓)이라는 글자도 삼황오제 시대 지배 계층의 이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조선이라는 문자는 언제 만들어졌을까?
1900년대 초 청(淸)나라 말기, 장개석의 국민당 초기에 하북성 청원 남향에서 당우 삼과병명(唐虞 三戈兵銘)
이라는 청동으로 만든 칼 세 자루가 발굴됐다.
이 칼에 새겨져 있는 글자는 삼황오제시대 제왕들과 그 친족들의 이름을 새긴 것으로, 동이족의 시조인
신농의 손자 전욱 고양(顫頊 高揚. 기원전 2467~2421)과 그의 아들, 그리고 또 3대에 걸친 손자들의
이름이 칼에 새겨져 나온다.
전욱(顓頊)은 고대 중국의 신화상의 제왕이다.
이름은 고양(高陽)이었고 고양씨(高陽氏)로도 부른다. 전욱 고양은 신농의 아들인 희화 주와 황제의 딸
상아 사이에서 태어난 오제의 한 명으로 소호의 뒤를 이어 세 번째로 왕위에 올라 78년을 재위했다고 한다.
전욱의 아버지는 창의(昌意), 어머니는 촉산씨(蜀山氏)의 딸인 창박(昌僕)이다.
창의는 황제의 아들이고 전욱은 바로 황제의 손자가 된다. 자식으로는 궁선(窮蝉)이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전욱 고양의 가문이 가지고 있던 이 세 자루의 칼 가운데 첫 번째 칼에서 전욱을 나타내는 조일주
(祖日珠)에 바로 ⌜조선의 조(朝)⌟자가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두 번째 칼에서 전욱의 자식대를 나타내는데, 이중 중부일계(中父日癸)는 전욱의 셋째 아들
중여 곤(衆餘 鯀)으로, 여기에서 ⌜조선의 선(鮮)⌟자가 등장한다.
또한 세 번째 칼에서는 전욱의 손자들이 이름이 나오는데, 이중 형일계(兄日癸)에서 한국이라는
⌜한민족의 한(韓)⌟자가 나온다.
이 한은 바로 삼왕오제의7대인 순임금을 나타낸다.
이처럼 당우 삼과병명(唐虞 三戈兵銘)이라는 청동으로 만든 전욱 고양의 가문에서 나온 칼 세 자루에서
조선과 한의 역사적인 유래가 금문을 통해 바로 밝혀진 것이다.
아울러 중국의 산동성 대문구(大汶口)에서 6~7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물레가락이 출토된다.
여기에서도 조선이라는 말이 또 다시 나온다.
내용은“ 태산이 있는 산동성 곡부는 신농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곳이며, 이곳에서 신농의 딸 뉘조가
누에를 치기위해 양잠을 가르친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뉘조는 신농의 딸이자 중국인의 시조 황제 헌원의 부인이다.
즉 신농이 조선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욱 고양은 바로 신농의 손자이다.
조선의 역사적인 의미를 찾는데 있어서 전욱 고양은 매우 중요하다.
이 전욱 고양의 정확한 이름자만 7자가 된다고 한다.
특히 고양의 첫 번째 이름 호미 조(鉏)에서 생겨난 네 번 째 배슬 이름 주(舟)라는 글자에서 신농이 세운
나라 이름이 조선(朝鮮)이었다는 사실을 유추 가능케 할 수 있다.
전욱 고양의 이름 주(舟)는 전욱 고양이 임금 자리에 않기 전, 당시 임금이었던 외삼촌이자 장인인 소호
김천이 내린 관직의 이름이다.
이 주(舟)자는 역사상 대단히 중요한 글자이다.
신농의 손자인 고양이 역사에 등장함으로서 조선의 조(朝)라는 최초의 글자가 처음으로 제 모습을 나타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양의 셋째 아들 곤이라는 글자에서 선(鮮)이라는 글자가 등장하며, 한(韓)은 고조선 제 7대
임금인 순의 이름 글자에서 만들어진다.
이 조선(朝鮮)과 한(韓)은 고양과 그의 아들 대에 생겨난 종묘제도를 반영하여 만들어진 문자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朝鮮)이라는 이름은 4300년 전의 중국고사서 ⌜산해경⌟속에서도 등장한다.
산해경의 34편중 ⌜해내경(海內經)⌟속에 24자 중에 조선이 나오는 것이다.
동해지내(東海之內) 북해지우(北海之隅) 유국명왈(有國名曰) 조선천독(朝鮮天毒)
기인수거(其人水居) 외인애지(偎人愛之)
이 글은 동해의 안쪽, 북쪽 바닷가에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가 있다.
하늘이 기르는 그 사람들은 구주에 살며 모든 이웃나라 사람들을 가까이 하고 사랑한다는 뜻이다.
이곳에서 말하는 조선은 바로 지금의 중국 산동성 태산의 남쪽 땅 곡부를 가리킨다고 한다.
산해경은 분명히 4300년 전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북부여 芻牟鏡(추모경) 慕漱帝紀(모수제기)중에서
芻牟鏡(추모경) 慕漱帝紀(모수제기)의 2~ 6 페이지
芻牟鏡 卷1
慕漱帝紀
北夫余不而城檀林山下 蒼松茂密 丹闕聳出 此乃天帝之殿也 帝以黃袍瓊帶 頭載綠幘金冠 坐於獤皮獅榻 朗
讀玉馬神經 羽衣扁遷 皀徒雀躍 民無鷄犬之驚 謳歌太平者幾乎千霜
北夫余(북부여) 不而城(불이성) 檀林山(단림산) 아래 푸른 소나무가 우거지고 빽빽한데 丹闕(단궐)이 솟아
나왔으니, 이것이 곧 天帝(천제)의 宮殿(궁전)이다.
帝(제)는 黃袍瓊帶(황포경대)를 입고 머리는 綠幘錦冠(록책금관)을 쓰고 담비가죽을 씌운 사자의 寶榻
(보탑)에 앉으셨다.
玉馬神經(옥마신경)을 朗讀(랑독)하고 羽衣(우의)가 扁遷?(편선)되니, 皀(조)의 무리가 雀躍(작약)하였다.
백성들은 개와 닭의 놀람도 없이 太平(태평)을 謳歌(구가)한 것이 거의 千霜(천상, 千年)이었다.
顓頊南下 其道神農黃帝 其地北辰南溟 偃皇北遷 其法堯舜禹湯 其土蟠木流沙 姬發東侵 西戎稱周 沛項渡江
南蠻爲漢 靑徐幽冀 中土之民 或東或北 唐虞夷也 夏殷胡也
顓頊(전욱)이 남하하니, 그 道(도)는 神農(신농)과 黃帝(황제)요, 그 地(지)는 北辰(북진)과 南溟(남명)이
었다. 偃皇(언황)이 북쪽으로 옮겨 가니, 그 法(법)은 堯(요), 舜(순), 禹(우), 湯(탕)이요, 그 地(지)는
蟠木(반목)과 流沙(유사)였다.
희발(姬發)은 東侵(동침)하였고, 西戎(서융)은 주(周)를 칭하였다.
沛公(패공)과 項羽(항우)는 강을 건넜고, 南蠻(남만)은 漢(한)나라가 되었다. 靑州(청주), 徐州(서주),
幽州(유주), 冀州(기주)의 中土(중토) 백성들은 혹은 東(동)쪽으로 가고, 혹은 北(북)쪽으로 가니,
唐虞(당우)시대의 夷(이)요, 夏殷(하은)시대의 胡(호)였다.
文生于紋 艮爲道宗 傳在渤海 震爲法本 連山歸藏 農工医藥禮樂射御書數之術 莫不備焉 召姜 姬旦之治得
於我而用於彼 久占肥溫之地 長爲安樂之計 安者怠而亡 勞者勤而興
文(문)은 紋(문)에서 생겨났다. 艮(간, 북동쪽)은 道(도)의 宗(종)이며, 傳(전)하여 渤海(발해)에 있었다.
震(진, 동쪽)은 法(법)의 本(본)이니, 連山(연산)과 歸藏(귀장)이다.
農(농), 工(공), 医(의), 藥(약), 禮(예), 樂(악), 射(사), 御(어), 書(서), 數(수)의 術(술)이 갖춰지지 않는
것이 없었다. 姜(강, 姜太公)을 초빙한 姬旦(희단)의 다스림은 우리에게 얻어서 저들에게 쓴 것이다.
오래도록 비옥하고 따뜻한 땅을 占(점)하는 것을 오랫동안 安樂(안락)의 계책을 삼았으나,
안주하는 자는 게을러서 망하고, 애쓰는 자는 부지런하여 흥하노라.
以臣伐君 滅親爲義 周豈有道 分其父羹 解其妻袴 漢實無法 五伯尙淫 七雄嗜殺 書可以焚 儒可以坑 但知築
城 不知修德 蒙恬未死 秦已亡矣 徒事干戈 不事其親 病已未生 劉已絶矣
신하로써 임금을 치고, 친족을 멸하는 것을 義(의)로 삼았으니, 周(주)가 어찌 道(도)가 있으랴.
그 어버이의 羹(갱, 끊인 국)을 나누고, 그 처의 사타구니를 벗겼으니, 漢(한)은 실로 無法(무법)이였다.
五伯(오패)는 음란을 숭상하고, 七雄(칠웅)은 살육을 즐겼으니 서책은 불살라져도 될 것이고, 유생은 구덩
이에 파묻혀도 될 것이다. 단지 城(성)을 쌓는 것만 알고, 德(덕)을 닦는 것은 몰랐으니, 蒙恬(몽염)이
아직 죽지도 않았건만, 秦(진)은 이미 망하였도다. 방
패와 창을 헛되이 섬기고, 그 친족을 섬기지 않았으니, 病已(병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건만, 劉氏(유씨)
는 이미 끊겼노라.
奴中郞於北海 屠貳師於東社 李陵泣秋馬 遷腐刑 殺妻戮子 徹固惡矣 毒后納女 光豈忠哉 送女烏孫 賣笑之行
刺殺樓蘭 剽盜之爲 右渠未平 而彘璞先誅 汗馬不至 死者八九而
中郞(중랑장)은 北海(북해)에서 노예가 되고, 貳師(이사)는 東社(동사)에서 도륙당하고, 李陵(이릉)은
秋馬(추마, 흉노)에서 울고, 遷(사마천)은 腐刑(부형)을 당하였다.
처를 죽이고 아들을 도륙하였으니 劉徹(유철, 한무제)은 진실로 악독하였다.
后(후)를 독살하고 딸을 맞아 들였으니 光(곽광)이 어찌 충직하단 말인가! 딸을 烏孫(오손)에 보내어
웃음을 팔고, 樓蘭(누란)을 刺殺(척살)하고, 도적질을 베겼도다. 우거(右渠)는 평정도 안됐건만,
荀彘(순체)와 楊璞(양박)이 먼저 誅殺(주살)하니, 汗馬(한마)가 이르지도 않았는데 죽은 자가 열에 여덟,
아홉이였다.
于此渾世 慕漱帝作 非法非德 以潔爲治 四八溫井 百二洗女 香費千金 帨用万幅 身如白玉 齒如編珠 同庚之
后 來自黃龍 紀甲之妃 結於順奴 逍遙香林 沐浴醴泉 振羽投頸 如鴛如鴦
이러한 渾世(혼세)에 慕漱帝(모수제)가 일어나, 법도 아닌 덕도 아닌 깨끗함을 다스림으로 삼았다.
48개의 溫井(온정)에서 102명의 洗女(세녀)와 함께, 香(향)은 千金(천금)이나 썼으며 수건은 万幅(만폭)
이나 사용하였다. 몸은 白玉(백옥)과 같았고, 치아는 編珠(편주)와 같았다.
同庚(동경, 동갑)의 后(후)는 黃龍國(황룡국)에서 왔고, 紀甲(기갑, 띠동갑?)의 妃(비)는 順奴(순노)에서
맺어졌다. 향이 나는 숲에서 逍遙(소요)하며 醴泉(예천)에서 沐浴(목욕)하였다.
깃털을 떨며 목을 맞추니 鴛鴦(원앙)과 같았다.
安神閨房 思老玄虗 弄瓦弄璋 如龍如虎 重光荒落 五羊獻桃 我女如凰 來自丹山 飢不啄粟 貞靜幽閑 昭陽
協洽 又擧鸞主 似凰而肥 雖非后也 亦可以妃 旃蒙作噩 三禽子飛? 單于之歸 花草何爲
閨房(규방)에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老子(노자)의 玄虗(현허)를 생각한다. 딸을 낳고 아들을 낳으니,
용과 같았고 호랑이와 같았다.
重光荒落(중광황락, 辛巳, BC100년), 五羊(오양)은 복숭아를 바치니, 우리 딸들은 봉황과 같았다.
丹山(단산)으로부터 와서 굶주려도 곡식을 쪼지 않았고, 貞靜(정정)하고 幽閑(유한)하였다.
昭陽協洽(소양협흡, 癸未, BC98년), 또한 鸞主(란주)를 추천하니, 봉황과 비슷하나 뚱뚱하였다.
비록 后(후)는 아니나 역시 妃(비)라 할만하였다.
旃蒙作噩(전몽작악, 乙酉, BC96년), 三禽(삼금)의 아들이 날고, 單于(선우)가 돌아오니, 花草(화초)은
어떠한가?
웅녀는 환웅의 손녀이며 중국 신화속의 여와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환웅은 곰이 변하여 사람이 된 웅녀와 혼인했다.
그런데
[제왕운기]에 의하면 "환웅이 천부인 세 개를 받고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
내려 왔다. 이 분을 단웅천왕이라 이른다. 손녀로 하여금 약을 먹게 하여 단수신과 결혼시켜 아들을 낳게
했다. 이름을 단군이라 하고 조선의 땅을 차지하여 왕이 되었다 ."
웅녀
熊女는 환웅의 손녀로써 곰 熊이 아니라 환웅의 웅녀 雄女였던 것이다.
또 [태백일사]에 의하면
"웅녀 임금이 천왕의 신임을 얻어
세습하여 비서압의 왕검이 되었다. 웅씨가 나누어 진 것을 소전이라 한다."
웅녀는 웅녀국의 왕이며 그 나라에서 소전이라는 나라가
나왔다는 것이다.
과연 웅녀가 다스리던 나라가 역사 속에서 실존했던 나라였든가?
오늘날까지 수많은 역사가들은 이 웅녀의 나라를 하나의 신화로만 취급할 뿐 찾아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찾아보았다 하더라도 한반도에 국한 할 뿐이었다.
하지만 시야를 좀 더 넓혀 중국 사서를
본다면 웅녀의 나라 유웅국이 많은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우선 사마천의 사기 황제편을 보면 그 첫마디가 황제는 소전의 자손이다 하여 태백일사에서 말한 웅녀국
에서 갈라졌다는 소전국이 나온다.
또 황제는 소전국의 자손이란 말의 주해에 보면 황제의 호가 유웅 有熊이라
했다.
유 有라는 글자는 접두사이며 한마디로 곰이라는 것이다. 왜 황제를 곰이라 했을까?
그 까닭을 사기 주해에 황제는 유웅국 有熊國의 임금
소전씨의 자손이기 대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말에서 황제헌원이 있기 전에 웅녀의 나라인 곰나라 즉 유웅국이 먼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웅녀의 나라가 있던 곳은 지금의 중국 하남성 신정이라는 곳이라 한다.
이 하남성 신정이라는 곳을 지금의 중국 지도에서 찾아보면 오늘 날 까지 유웅산이란 지명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실지로 곰산이라는 곳이 존재했던 것이다.
[제왕세기]에 의하면 신정현에 대해 "혹은 말하기를 옛날 유웅씨의 터이며 황제 헌원의 도읍한 곳이기도
하다."했다.
그 하남성은 염제 신농의 고향이라는 보계에서 황하의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는 곳에 있으며 환웅이 도읍했
다는 태백산과도 그리 멀지는 않다.
두계 이병도에 의하면
"단군설화 중의 같은 굴에서
함께 살았다고 (同穴而居)한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一熊一虎)란 것도
실상은 남(호랑이토템 남성) 녀( 곰 토템의 여성)를 의미한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즉 숫호랑이와 동거하던 암곰이 사람이 되어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을 탄생했다는 것이니 이것은 마치
하백녀를 중심한 해모수
금와 내지 단군관계와 유사한 것이다."
"이것은 다 모계중심 사회의 대우혼적(對偶婚的) 혼인형태를 암시하는 것으로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란
부계 남성사회 계통의 환웅족과 모계 여성사회 계통의 곰 또는 유웅국이 결혼에 의해서 하나의 정치적
결합체로 변형되어 갔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남성 사회 계통의 환웅족이 그 당시 모계사회였던 반파인과의 결혼에 의해 정치적 통합을 추진
하고 점차 황하의 유역을
따라 퍼져 나갔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려 했다는 것은 사람다운 사람으로서 도를 닦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당시
태호복희를 중심한 유목과 어로에 의한 생활에서 농경 중심의 사회로 변천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운급칠참]에 의하면 "복희씨 때에 노군 老君이 내려 와 가르침을 내렸다. 이 노군을 무화자 또는 울화자
라 한다. 복희씨에게 옛 법에 따라 음양과 팔방, 팔괘를 정하는 원양경으로 복희씨를 가르쳤다.
복희가 나오기 전에는 성씨가 없었다. 그때 사람은 아직 오곡을 기를 줄 몰랐다. 복희는 그물을 만들어
짐승을 잡아 먹는 법을 가르쳤다. 털로 옷을 만들어 입고 그 피로 몸에 좋은 약이 되게 했다.
남녀 사이에는 차이가 없으며 서로 시기하지 않았다. 여름에는 나무 위에 살고 겨울에는 동굴 속에서
살았다. 복희씨를 이후 여와씨가 일어났다" 하였다.
이러한
미개한 시대에 당시 서안시 반파와 하남성의 유웅산 일대에 남방에서 황하 일대로 이주한 화남인
들의 모계사회의 웅녀가 임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태호복희 이후에 여자 임금으로써 [보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여와씨가 있었다고 했다.
여와 역시 태호복희와 같이 동방을 뜻하는 나무(신단수)의 덕으로 왕이 되었다 한다.
여와는 태호 복희의 누이 동생이며 부인이었다가 태호복희를 뒤이어 삼황의 하나인 왕이 되었다.
이 여와씨와 웅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여와씨가 죽고 난 후 염제 신농씨가 일어났다. 그런데 염제 신농의 어버지는
소전이라고 했다.
소전은 태호 복희와 여와 사이에서 난 아들로 되어 있는데 이 말대로면 염제 신농은 여와의 자손이면서
소전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유웅국(곰나라-웅녀의 나라)에서 소전국이 나왔다."고 했다.
이를 보면 염제 신농은 유웅국의 자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유웅국의 자손이라면 웅녀의 자손이 된다는 말이 아니가?
그렇다면 웅녀와 여와는 어떤
관계인가?
[역대신선통감}을 보면 여와와 적송자라는 선인의 기록이 있는데 여와는 적송자라는 인물에게서 도를
배웠다.
"여와는 천제의 딸로써 마음바탕이 진리에 대해 깨우치기를 좋아하여 적송자에게 도에 대해 배우고 그
가르침을 받기 원했다."
이 말과 환웅의
가름침에 따라 동굴 속에서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채 마늘과 쑥만 먹고 도를 딲아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 했다는 웅녀의 기록은 일치하는
것이다.
또 여와가 적송자에게 물어 보고 배운 것은 무엇인가?
여와가 묻기를 "동해에 있는 산들의 모양이
어떠합니까?"하니 적송자가 대답하기를 " 봉래 ,방장, 영주가
발해 가운데 있는데 그 산들은 삼신산이라. 그곳에는 불사약이 모든 산에 있는데 캐먹을 수 있다.
그곳에 있는 물건과 짐승들은 모두 희다. 황금과 백은으로 궁궐을 꾸며 멀리서 보면 마치 눈 같다."
이 말에 의하면 그 당시 발해에 있었던 나라는 환인이 있는 환국이 된다.
고대로부터 우리나라를 중국인들은 군자불사지국이라 했는데 불사약에 대하여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염제 신농이 100가지 약초를 먹어 보고 의약을 개발했다 하는데 이 내용을 보면 여와 때에 불사약과 약초
에 대해서 배웠다는 결론이 된다. 또한 웅녀가 쑥과 마늘 등을 먹었는데 여와는 약초에 대해서 적송자에게
배웠으니 이 또한 일치하는 것이다.
적송자가
말하는 삼신산 중 봉래산에 대한 내용이 [운급칠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봉래산이 동해의 동북쪽 언덕을 오천리 돌아서 북쪽으로
가면 그곳에 닿는다. 이곳은 중국의 밖이다.
천제 임금이 다스리는 곳이다. 곤륜산과 같은 곳으로 옛날 우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 교차를 타고 약수를
지나서 이 곳에 도착했다. 상제에게 제사를 지내고 북쪽 땅에서 돌아 가 큰 공을 이루었다.
우임금은 다섯 산악의 돌에 그 산의 거리와 높낮이 등을 새겨 놓게 했다.
그런데 그 글자는 과두서 科斗書로써 중국 한족에 속한 것이 아니었다."하였다.
과두서는 한문이 있기 전에 옛 동이족들이 대나부를 쪼개어 만든 붓으로 쓰는 글자이며 그 글자 모양이
올챙이를 닮았다 하여 과두서라 부른 것이다.
[운급칠참]에 의하면 봉래에는 중국과 별도의 천제가 있었으며 그 천제의 나라와 글씨는 동이족의 글씨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봉래산에 대해 가르쳐 준 적송자는 선인은 동이족이거나 동이땅에
살다 가 간 인물일 것이 분명하며 여와가 배운 것은 동이족의 나라에
대한 것을 배운 것이 된다.
환웅이 만일 요녕성 일대에 살다가 황하 일대로 옮겨갔을 때 그곳의 토착 소녀인 웅녀였다면 환웅은 웅녀
에게 만주 요녕성 과 발해 일대에 있었던 산천에 대해 가르쳐 주었을 것이 아닌가?
환웅의 나라가 웅녀의 나라 보다 문명이 발전 된 곳이라면 가능성은
더욱 높아 질 것이다.
이상과 같이 많은 점에서 여와와 웅녀는 같은 점을 발견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웅녀와 여와는 동일 인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누가 단군조선을 신화라 말하는가
심백강 박사, 중국 ‘사고전서’에 기록된 역사 밝혀내 … 역사학계 능력부족으로 실체규명 외면
"요(堯) 임금 때인 무진년(B.C. 2333년)에 신인(神人·성인보다 한 단계 위의 훌륭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
태백산 단목(檀木) 아래로 내려오니, 조선인(朝鮮人)이 그를 임금으로 모시고 단군(檀君)이라 칭했다.
이것이 조선이 나라를 세운 시초다.
정초(鄭樵)가 지은 ‘통지략’(通志 )에 이르기를 조선이라는 나라는 왕험(王險)에 도읍을 정했는데, 한(漢)
시기의 낙랑군이 그곳이다.
모씨(茅氏)의 ‘상서록’(象胥錄)에 의하면 단군과 아울러 기자(箕子)도 왕양(王壤)에 도읍을 정했다.
역사에서는 위만도 왕험에 도읍을 정했는데, 곧 평양이다.
(하략)”
단군의 실존에 관한 중국측 역사 기록 중 한 대목이다.
굴 속에서 21일 동안 마늘과 쑥을 먹어 여인으로 변신한 곰과 사람(환웅) 사이에서 단군이 태어났다는
식의 전설 같은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그것도 청나라 때의 유명한 역사학자
오임신(吳任臣)이 지은 ‘산해경광주’(山海經廣注)라는 정통 사서에
등장하는 글이다.
중국 진(晋)나라 학자 곽박이 지은 ‘산해경주’를 바탕으로, 오임신이 그 주석을 널리 보완하는 형식을 취
하며 지은 ‘산해경광주’. 현재 전체 18권이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수록돼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과연 ‘사고전서’란 어떤 책인가.
중국 청나라가 국력을 기울여 편찬한 동양 아니 세계 최대의 총서로, 선진(先秦) 시대에서 청대 말기에
이르기까지 역대의 주요 전적들을 가려 수록한 책만 무려 7만9000여권. 연인원 3000여명이 동원돼 무려
10년에 걸쳐 완성된 대작이다.
그래서 중국 학자는 물론 한국과 일본 학자들도 사고전서의 학술적 가치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지 않을
정도다.
단군역사
언급 9종류 확인
바로 그 ‘사고전서’를 일일이 뒤져 단군에 대해 기술한 저작들을 처음으로 밝혀낸 한국인 학자가 있다.
민족문화연구원(이사장·강동민) 원장인 심백강 박사(47·전 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그 주인공.
“사고전서는
경(經)·사(史)·자(子)·집(集)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 편찬된 체제입니다.
이중 단군의 역사에 대해 언급한 것이 자부에 3개, 사부에 4개, 집부에 2개 등 모두 9종류가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어요. 우리나라 강단 사학자들이 외면하는 단군 역사를 중국 정통 역사서가 뒷받침해 준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최근 심박사는 중국을 수십 차례 드나들며 찾아낸 것들을 ‘사고전서 중의
단군사료’(민족문화연구원 학술
총서 제7집)라는 자료집으로 엮어냈다.
원서 그대로 수록한 이 책은 대중서라기보다 역사학자들의 연구자료 성격이 짙은데, 단군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대목을 네모꼴 모양으로 굵게 표시해 두었다.
그중 한 대목을 찾아 띄엄띄엄 읽어보니 매우 충격적이다.
“전부(錢溥)가 지은 ‘조선국지’에 의하면 세 종류의 조선이 있다. 하나는 단군조선이요,
또 하나는 기자조선이요, 나머지 하나는
위만조선이다….”(‘산해경광주’ 18권)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가 단군이 B.C. 2333년에 조선(고조선)을 세웠다는 정도로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
가는 것과는 달리, 이 중국측 기록은 고조선이 하나가 아니라 단군조선에서 시작해 위만조선에 이르기
까지 세 단계의 역사를 밟고
있음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심박사는 더 흥미로운 사실도 지적한다.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널리 인정받던 단군의 실체가 일제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철저히 은폐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이전에 조선을 속국으로 여겼던 명나라도 단군 역사를 교묘하게 가리려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고전서 집부(集部) 편에 역대의 부(賦)를 모은 ‘어정역대부휘’(御定歷代賦彙·청나라 때 편찬
됨)라는 책이 있어요.
이중 단군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것이 조선부(朝鮮賦)라는 대목입니다.
저자는 명나라 효종 때의 동월(董越)이라는 사람인데, 조선에 사신으로 왔다가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고
또 관련 자료를 참고해 조선부를 지었다고 하지요.
아마 중국인의 입으로 단군조선을 직접 언급한 현존 자료 중 가장 시기가 앞선 기록일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고전서 사부(史部) 편에도 똑같이 실린 원래의 조선부에는 단군 기록이 쏙 빠져
있어요.”
“고조선은 하나 아닌 3단계 역사”
그러니까 명나라 때 처음 씌어진 조선부에는 단군 기록이 빠져 있는 대신,
그 후인 청나라 때 편집한
‘어정역대부휘’ 안의 조선부에서는 똑같은 저자의 이름으로 단군조선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객관성과 권위를 따져볼 때 어정역대부휘가 단연 앞섬은 두말할 나위 없다.
심박사는 이를 두고 “명나라에서 우리 단군조선의 역사를 부정하려 했던 모종의 음모가 있었다는 의심을
지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즉 동이족보다 그 역사가 짧은 한족(漢族)이 주도적으로 세운 명나라는 대국의 자존심상 동이의 후손인
조선을 깎아내려 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의 단군과 고조선 관련 사료는 명나라의 직접적 간섭을 받던 조선조 때 많이
인멸됐고, 이후
일제의 지배를 받으면서 거의 말살됐다는 게 심박사의 해석.
그러다 보니 강단 사학계 일각에서는 단군 역사를 실재로 인정하기를 거부해 신화로 취급하거나, 심지
어는 고려 때 항몽전쟁이나 일제 때 항일민족주의 감정의 소산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는 것.
바로 그 때문에 ‘사고전서 중의 단군사료’는 중국의 문헌을 근거로 단군의 실재를 찾아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심박사는 이 자료집 외에도
16∼17세기 문헌인 ‘조선세기’(朝鮮世紀)를 처음으로 발견한 학자로 유명하다.
명나라의 오명제(吳明濟)가 지은 이 책은 조선 영조 때 편찬됐다가 고종 때 중간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
獻備考)의 ‘역대서적’조에 제목만 전해져 오던 것이다.
지어진 지 4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빛을 본 ‘조선세기’는 특히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 등 삼조선의
역사를 차례로 소개하고 있는데, 위만조선부터 다룬 사마천의 ‘사기’나 기자조선 이후만 인정하는 대부분의
중국 사서들과 뚜렷한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또 단군왕조의 시작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도 곰이 사람으로 변했다는 신화적 내용 대신 “가화합(假化合)을
이뤘다”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의문점 하나. 우리나라 학자들은 광복 50여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국 고전 문헌에 산재한
단군 및 고조선 사료를 왜 찾아보지 못했을까.
심박사의 해석은 의외로 간단하다.
“첫째는 우리의 눈으로 역사를 보는 자주적 사관이 없었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한문 해독능력 문제를 꼽을
수 있을 거예요. 중국 원전을 해석하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아마 우리나라 역사학자 중
그런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세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 것입니다.”
이렇게 단언하는
심박사는 한학자 집안에서 자라 5세 때 천자문을 독파하고 16세 이전에 사서삼경을 독파
한 수재.
19세 나이에는 당대의 유명한 학승 탄허 스님을 만나 한문으로 문답을 나누는 등 뛰어난 한학 실력을 선보
이기도 했다.
1983년 정신문화연구원에서 연구하다가 10년 만에 교수직을 그만둔 그는 현재 민족문화연구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한국 사학자들의 단군 및 고조선 연구를 돕기 위해 주로 중국측 사료를 체계적으로 수집 정리
하고
있다.
"배달"(伯達)과 단백달(檀伯達)의 출전
송(宋)나라때 쓰여진 로사(路史)
路史 卷24
檀 武王時有檀伯達地志瑖丘檀城古灌檀也瑖丘今隶兖有檀鄉(輿地廣記)或作壇
단국(檀國)은 무왕(武王) 때에 檀, 즉
백달(伯達)이 있었다.....
“단(檀)은 무왕(武王)때 백달(伯達)에 있었다. 지지(地志: 지리지를 뜻함)에 의하면, 단구(瑖丘)(‘옥돌’의
언덕)는 단성(檀城)을 말한다고 하는데, 이는 옛날에 단(檀)에 관개(灌漑)하는 - 물을 대는 것을 뜻함 -
것을 말한다.
단구(瑖丘)는 오늘날 연(兗 - 강(江)을 뜻함)에 미치어 단(檀)의 마을을 형성함(=유향(有鄕))을
뜻하는데,
혹은 “단(壇)을 만든다.”라고도 한다.“
*단(檀)과 단(壇)
그런데, 단(檀) 혹은 단(壇)은
고대(古代)에 화백회의를 할때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서 주변에 신단수
(神檀樹)를 둘러 치는 것을 단(檀)이라고 했고,
이런 ‘나무’가 없으면 ‘흙담’을 둘렀는데, 이를 한자(漢字)로 단(壇)이라 합니다.
*단구(瑖丘)
그런데 이처럼 사람들이 둘러 않는 가운데에 제단(祭壇)이
놓인 것을 ‘옥돌 단’과 언덕 ‘구’를 합하여
‘단구’로 표현한 듯 합니다.
*고관(古灌)과 연(兗)
그런데 이런 단구(瑖丘) 사이에 물(=수(水))가
있었음을 고관(古灌)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무왕(武王) 이전에는 ‘도랑을 파서 물을 댄 정도’였지만, 무왕(武王)때에는
강(江)을 끌어대서
호수(湖水)가 이른 정도에 이르른 것으로 설명하는 듯 합니다.
왜냐하면 연(兗)은 강(江)이란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백달(伯達)은 ‘박달’의 음차(音借)인 듯 하며, 그 의미는 박(泊)과 통하는 듯 합니다.
관단(灌檀)이라는 것이 단국(檀國) 즉 고조선의 남쪽 지방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로사路史에 나온 단주(檀)은 고조선의 남쪽지방을 빼앗아 설치한 나라?
조선상고사를 인용해봅니다.
『전국을 동ㆍ서ㆍ남ㆍ북ㆍ중 5부(部)로 나누어 동부는 ‘순라’, 남부는 ‘불라’, 서부는 ‘열라’, 북부는 ‘줄라’,
중부는 ‘가우라’라 하니, 순나(順那)ㆍ관나(灌那)ㆍ연나(椽那)ㆍ절나(絶那)ㆍ계안나(桂安那)는 곧 ‘순라ㆍ
불라ㆍ열라ㆍ줄라ㆍ가우라’의 이두자인데, 관나의 ‘관(灌)’은 뜻을 취하여 ‘불(灌은 본래 부을관)’로 읽을
것이고, 그 별명인 ‘비류나(沸流那)’의 비류(沸流)는 음을 취하여 ‘불’로 읽을 것이니, 지나사의 ‘관나(灌那)’
는 곧 고구려의 이두자를 직접 수입한 것인데 삼국사기에는 관(灌)을 관(貫)으로 고쳐 그 뜻을 잃었다.』
*春秋左傳注疏卷二十七
昔周克商使諸侯撫封注各撫有其封内之地蘓忿生以溫為司寇與檀伯達封于河...蘇氏卽狄
옛날에 주나라가 상나라를 이기고 제후를 위무하여 봉했는데 , 소분생(蘓忿生)은 온(溫)에 봉하여
사구(司寇)로 삼았다 그리고 단(檀) 즉 백달은 황하에 봉하였다. 소(蘓)씨는 적인(狄人)이다.
*<蘓忿生以溫為司寇 與檀伯達封于河>
황하(黃河)의 지역 전체에는 소도(蘇塗)를 운영하는 <檀 伯達> - 아마도 배달화백을 뜻하는 듯 -을 봉
(封)하되, 이곳의 재판관, 치안관으로써 즉 사구(司寇)로써 옛 법도(法度)를 잘아는 소분생(蘓忿生)으로
하여금 총괄(總括)하게 한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