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바꾼 그때 그 한마디 - 마이클 아이즈너(월트디즈니 사장)
- 1984년 월트디즈니 사의 CEO로 취임한 그는 월트디즈니 설립자 윌트와 로이 형제의 사망 이후 지도력 부재와 경영 약화에 처한 회사를 살리기 위해 먼저 회사의 비전과 실천계획을 마련했다. 1년에 12편의 영화와 1편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디즈니의 고전을 이용해 캐릭터용품 전문점을 운용한다는 것. 하의상달실 의사구조, 스톡옵션제 등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고 창조적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집중 투자해 연이은 대성공을 이루면서 월트디즈니 제2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야생지역에서 3주를 보낸다? 그것도 일곱명의 다른 대원들과 진행요원으로 참가한 두 남자 외에 사람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는 곳에서? 식량이 담긴 '와니건(wanigans,벌목꾼의 보급품 상자)'을 짊어지고 3주 동안 야생지역을 헤매고 다니며 텐트를 치고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캐나다 알공킨(Algonquin)의 호수를 노 조어 가라고? 가장 어린 열다섯 살 어린 대원인 나더러 3마일이 넘는 거리를 노 저어 가란 말이야? 야생 탐험대 시니어 코스가 이런 거였단 말인가.
게다가 절대 중도포기란 없다니! 이제 남은 건 이틀. 이틀 후면 나이가 많아 봤자 나보다 아홈 달 위인 형들 일곱명과 함께 트럭에 올라야 한다. 카누 다섯 대와 무게가 수백 파운드에 이르는 필수품, 삽, 크고 작은 야외용 휴지 보따리(탐험 초보자를 위한 화장지와 종이타월을 말함.), 그리고 건조식품과 구급상자, 이 모든 장비를 싣고 버몬트(Vermont)에서 캐나다로 가야 한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간다.
나는 겁에 질려선지 배도 아프고 머리도 어지러웠다. 오직 어떻게 해야 이곳을 빠져 나갈까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사실 아픈 건 맞으니까 그걸 핑계 삼아 시치미 떼고 엄마 아빠한테 전화를 걸어 사정해 볼까? 그런데 도대체 뭐라고 변명을 하느냔 말이다.
열다섯 살의 나는 모 단체에서 주최하는 야생 탐험 캠프에 참가 하여 버몬트의 던모어(Dunmore) 호숫가에 앉아 있었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탐험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조르고 졸라서 온 여행이었다. 나는 캠프에 참가할 대원을 몇 명 뽑지 않는다기에 그보다 명예롭고 근사한 일은 없다고 생각해서 지원했고 결국 대원으로 뽑혔다.
하지만 점점 겁이 나더니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말고 다른 대원들은 잔뜩 들뜬 기분으로 식량과 노, 그리고 각자의 캠핑 장비를 챙기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괴로운 심정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저 말없이 앉아 있어야 했다.
난 너무나 무서웠다. 그렇다고 엄마 생각이 난다고 할 수도 없고. 그랬다간 코흘리개 꼬마라는 소리를 들을 터였다. 이런 상태로 계속 있자 뭔가에 홀린 기분이 들더니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처럼 점점 흐릿해졌다. 마치 안개가 끼듯… 그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기를 쓰고 캠프에 참가한 건 주위 어른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였다. 나무도 벨 줄 알고, 노를 저어 강을 건널 줄 알고, 그리고 별자리도 읽을 줄 아는 리더십을 지닌 아이라는 생각을 들도록 하고 싶었다. 실제로 참가 자격을 따냈을 때는 갈비뼈가 들썩들썩할 정도로 가슴이 뛰며 마음속에서 불끈불끈 용기가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제부터 뭔가 확실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많던 용기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옴짝달싹 못하고 호숫가에 앉아 있던 나는 결국 온몸이 마비되고 말았다. 반대쪽 섬을 바라보며 휴대폰이라고는 없던 시절답게, 어떻게 해야 엄마 아빠한테 전화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궁리만 했다.
'급성 맹장염은 어떻게 해야 걸리지?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병원에 실려가 수술을 받는다 해도, 어쨋든 저기 먼 캐나다의 폭풍우가 몰아치고 급류가 휘감기는 위험한 야생지역을 벗어나 버몬느의 미들베리 우리 동네에 안전하게, 진짜 안전하게 도착해서 수술을 받지 않겠어?'
여덟 명의 대원은 각각 네 조로 나뉘어 각자 다른 역할을 맡게 돼 있었다. 매번 야영지를 정하면 한 조는 텐트를 치고 한 조는 모닥불을 피우고, 매번 야영지를 정하면 한 조는 텐트를 치고 한 조는 모닥불을 피우고, 또 한 조는 음식을 준비하고 나머지 한 조는 먹고 난 그릇을 치우도록 돼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서로 역할이 바뀌었다. 내 짝인 베어드 모건(Baird Morgan)은 최상의 짝궁이었다. 힘도 제일 세고 나이도 가장 많아 배의 뒷부분에서 카누를 분담할 의무가 있었다. 우리에게 떨어진 임무는 텐트 수리였다. 하지만 둘 중 하나가 꼼짝하지도 못하는 판에 어찌 텐트 수리가 제대로 되겠는가?
내 모습을 보더니 브라우리(Brownie)가 다가왔다. 그는 탐험대의 리더였고 실제 마흔이 조금 넘은 나이였지만 내 눈엔 마치 백살은 돼 보일 만큼 노련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귀 뒤에 이상하게 움푹 들어간 곳이 있어서 늘 니게 두려움을 자아내는 사람이었다.
"얘야, 나도 이렇게 큰 모험을 앞두면 항상 긴장이 된단다."
그가 입을 열었다. 귀 뒤의 구멍이 보이기 전에 슬쩍 눈길을 돌렸다.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라 겁이 많이 나지."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머릿속에선 모든 상황이 실제보다 훨씬 위험하게 생각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다 보면 결국 아무
일 없이 안전하게 끝나더구나. 아주 좋은 경험을 하게 되지. 그리고 매변 '왜 그렇게 시작도 하기 전에 내가 겁을 먹었나'하고 스스로를 한심
하게 생각한단다."
"예."
"참 우스운 일이야. 안 그러냐?"
그러더니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버렸다.
이틀 휴, 우리는 캐나다로 떠났다. 군용 트럭을 덛어 타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여행길을 오르니 생각보다 그럭저럭 기분이 괜찮았다. 퀘벡(Quebec) 시의 풍광은 그야말로 '환상'이었지만 어쨋거나 그곳 역시 이제부터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황무지일 뿐 이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호숫가에서 브라우니와 이야기를 나눈 다음 부터 마비증세는 다소 줄어든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기특한 건 비록 쿤 물길은 아니었지만 폭포를 건너면서 배가 뒤집혔는데도 숨 하나 헐떡거리지 않고 멋지게 헤쳐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러자 조금 뒤에는 가슴이 조마조마한 증세도 사라졌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는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야생지역에 형제도 없는 3주 동안의 탐험은 오직 나 자신만을 의지하는 거침없는 모험이었다. 서로간의 협동과 더불어… 그랬다, 리더십을 기르는 모험이었다. 내가 그전처럼 호숫가에 혼자 있었던 시간은 양치질할 대뿐이었다.
우리는 마침내 버몬트의 출발 캠프로 돌아와 150명의 주니어 캠핑 대원들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았다. 브라우니가 방수복 정리를 마치고 곁으로 다가왔다.
"마이크(그땐 다들 나를 그렇게 불렀다), 정말 멋있었지? 안 그러냐? 이렇게 임무를 완수했다니 너 정말 굉장하다."
나는 비로소 그의 머리 뒤쪽의 움푹 파인 흉터를 들여댜볼 용기가 났다. 속에 뭐가 들어 있나 보려고 열심히 들여다보았지만 결국 내가 깨달은 건 이번 탐험에서 얻은 마지막 교훈, 즉 지혜란 남이 들여다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브라우니의 칭찬은 기분 좋았다. 하지만 줄곧 내 마음을 떠나지 않고 나를 지켜준 건 탐험을 떠나기 전에 그가 했던 말이었다. 물론 그날도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치과에 가거나 심장절개 수술을 받았을 때, 혹은 졸업식이나 입학식에서 선서를 하거나 할 때면 여전이 겁이 났으니까. 그렇지만 브라우니가 해준 단 몇 마디 말은 겁에 질려 있던 나아게 누구든지 두려운 일을 닾으면 긴장하지 마련이며, 누구든지 약점이 있고 그 약점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브라우니는 그때 내게 그런 충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참 우스운 일이다. 안 그런가?
- "나를 바꾼 그때 그 한마디 ( 말로 토마스 / 김소연 역 / 도서출판 이레)" 중에서 (P76~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