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로왕비 허황옥(許黃玉)은 아유타국(阿踰陁國)의 공주로 기원후 32년 생(生)이다.
이때는 신라 3대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A.D.23~55년) 9년이다. 즉 후한(後漢:東漢) 광무제(光武帝:劉秀, 建武. A.D.25~56년) 8년이다.
허황옥은 16세 때 아유타국(阿踰陁國)을 떠난 것으로 되어 있다.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발행한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보면 아유타국(阿踰陁國)은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전통적인 국가였음을 알 수 있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紀)제5권에 아유타국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당시 아유타국은 서장성 아리(阿里)지방으로 보인다. 중천축국의 제후국으로서는 제일 남쪽에 위치한 곳이다. 대륙 내륙지방인 서장성(西藏省) 서북부이다.
|
곤륜산 남쪽과 희마랍아 산맥의 중간지점으로, 6천 미터 이상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고원지대에 자리하고 있지만, 곳곳에 샛강이 있고 큰 호수와 분지가 있어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되어 있다.
소금과 철․광석․옥․금과 같은 광석을 생산했으며, 뽕나무를 심어 비단을 생산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신강성과 인도 등 서역과의 무역이 성했던 지역이다.
특히 중천축국은 전통적인 대승불교의 본산지로서 감숙성과 신강성 남부, 그리고 서장성 일대에 걸친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있어T다. 이 당시는 같은 천축국이면서도 바라문교와 불교간의 분쟁이 끊일 사이 없이 일어나는 시대였다.
아유타국은 인도 항하(恒河) 북부지역까지 강역이 미치고 있었지만 아유타국의 중심지는 서장성(西藏省) 서북부였다. 이곳은 아라(阿羅) 또는 아리(阿里) 지역이다. 아유타국에서 태어난 허황옥 공주의 고향은 바로 아리(阿里)이다.
중천축(中天竺)이 동남인 서장성으로부터 인도 항하 유역까지 뻗어 있을 때, 감숙성(甘肅省) 서쪽으로는 소월씨국(小月氏國)이 강성해져 서역으로 바라문교를 휩쓸고 대월씨국(大月氏國)으로 강성해갔다. 그리고 후한 때에 이르러 흉노(匈奴)를 격파시키면서 인도의 항하 유역까지 침공하였다. 한편 서역 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阿富汗〕동서까지 점령하는 등 대 전란이 일어났던 시대이다. 이때 아유타국 역시 몰락되는 비운에 놓이게 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아유타국 공주였던 허황옥은 살길을 찾아 동으로 동으로 불운한 고행길을 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어린 16세의 나이로 고향을 등지고 떠나올 때의 쓰라린 가슴이 오죽했으랴. 그때 생긴 슬픈 노래가 ‘아리낭’이다.
아리낭(阿里娘)
아리낭(阿里娘) 아리낭(阿里娘) 아라리용(阿羅里瑢)
아리낭(阿里娘) 고개로(高皆路) 염어간다(念御看爹)
‘아리낭’이란 아리가 고향인 젊은 계집이란 뜻이다. 아리낭이라고 두 번 반복한 것은 고국인 아리 고향을 떠나는 아씨의 애틋함을 강조하는 뜻에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라리용(阿羅里瑢)’ 하는 것은 아름답고 빛나는 아리의 고향을 떠나는 아씨를 보고 구슬프게 옥피리를 불어준다는 가락의 뜻으로 지어진 것이다. 그리고 반복하여 ‘아리낭’이라고 한 것은 애타게 다시 아리 낭자를 사모하는 뜻에서 강조된 내용이다. ‘고개로(高皆路)’ 하는 것은 높고 언덕진 고원의 여러 길로라는 뜻이다. ‘염어간다(念御看爹)’라는 말은 아비를 애틋하게 생각하면서 다시 후일에 모실 것을 기원한다는 내용이다.
다시 두 번째 구절을 싣고 풀이해 보기로 한다.
나아할(奈我割) 발리고(發離苦) 가시난임(可視難任)
십리도목가서(十里到鶩可徐) 발병난다(發病難多)
‘나아할(奈我割)’이란 내가 어찌 이 지경이 되도록 이그러졌는가라는 뜻이다. ‘발리고(發離苦)’라는 말은 고생길로 떠난다는 말이다. ‘가시난임(可視難任)’이란 언제 임을 다시 보고 만날 수 있을까라는 뜻이다. ‘십리도목가서(十里到鶩可徐)’라는 말은 십리길도 채 도달하지 못하고라는 뜻이다. 이 말은 아장아장 걷는 집오리가 멀리 갈 수 없는 것처럼 힘든 길을 갈 수 없는 것을 뜻한다. ‘발병난다(發病難多)’라는 말은 어려움이 많아 병이 날 것이다라는 애절한 가사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부언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노래 가사로 부르는 아리랑의 음은 본래 아리낭에서 유래되었다. 아리낭은 노래 가사로 부르면서 아리랑으로 음이 변형된 것이다. 물론 아리랑(阿里浪)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것은 단지 고향을 떠나면서 눈물을 흘린다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리낭(阿里娘)이라고 하는 것은 젊디 젊은 어린 계집아이가 아리(阿里)의 고향을 떠난다는 슬프고 슬픈 사연이 담긴 한자 특유의 깊은 사상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리낭 아리낭’ 하는 음이 그대로 내려오면서 음이 아리랑으로 변형되었음을 알 수 있다.
http://www.yulgon.kr/html/history02-1-3.php
전세계 한민족 커뮤니티의 중심 '한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