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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에 있는 나라. 수도는 타슈켄트로 이슬람교가 국교이며. 1920년 러시아에 병합되었다가
1922년 구소련의 자치공화국이였으며 1991년 독립을 선언하고 우즈베크공화국이 되었다.
언어는 우즈베키어가공용어이며. 소련의 영향으로 러시아어도 소수사용. 독립국가연합의 일원.
주요자원은 석탄.천연가스.동.금등 자원이 풍부한 나라.
2010. 5.26. 22:15 분 인천공항 출발 6시간여 소요 타슈겐트공항도착 호텔 투숙
5월 27일
아침 07시 타슈겐트 출발 항공편 08:40우르겐치도착
호레즘(Khorezm)왕국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히바로 버스로 이동 약 30분 소요
히바는 기원전 2000년경 부터 인류가 살기 시작하여 호레즘인이 터전을 잡았던 곳이다
9세기부터 13세기까지 호레즘 왕국은 동서교역의 중계지로 번창하여 한때는 수도인 쿤야 우르겐치의 인구가 150만을 넘었단다
히바는 바로 호레즘왕국의 두번째 수도이다
호레즘왕국은 1210년 사마르칸트로 천도할 때 까지 히바를 수도로 하여 번창하였다
히바는 엷은 벽돌색 모래에 메말라 보이는 풀들이 뒤덮고 있는 붉은 사막이라는 키질쿰 사막의 한가운데 아무다리야강 하류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이다
지금도 남쪽과서쪽에서 모래바람이 계속 물어오고 있단다.
중국 장안에서 출발한 대상들은 우루무치를 거쳐 북쪽에서 북쪽으로 천산산맥을 넘어 오투라를 거쳐 사르다리아강을 건너
히바로 들어오거나 카슈카르를 거쳐 천산산맥을 넘어 샤마르칸트, 부하라를 거쳐 히바에 도착했단다
부하라에서 히바까지는 키질쿰(붉은)사막을 500Km나 통과해아 한단다
이러한 악조건을 극복하면서 동서 문물을 실어 날으는 대상들과 함께 번영을 구가한 Khorezm왕국은
13세기에 초원을 통일한 징기스칸이 대상로의 안전확보를 위해 협력하자는 제의를 묵살하고 사신들을 처형하므로써
징기스칸의 침략을 받아 멸망한다
실크로드의 동서양의 접점에 있는 히바는 한동안 번영을 구가하였으나 그에 못지않은 수난의 역사도 함께하고 있었다
티무르제국이 멸망한 후 3개의 한국으로 분할되었던 호레즘지역에 샤이바이 왕조의 한 왕후인 일바르스가
1512년 우르겐치를 수도로 독립왕국을 건설하고 히바왕국을 세웠다
17세기에는 히바로 수도를 옮겨 번성하였고 1920년 러시아에 멸망당할 때 까지도
실크로드 통로중 하나로 중요한 역할을 이어온 것이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히바의 내성 이찬칼라(Ichan-Qala)방문하여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미나렛(첨탑)인 칼라 미노르 미나렛트(Kalta Minor Minaret 이슬람인들의 기도시간을 알려주는
종소리를 울려주고 전망대역할과 밤에는실크로드 상인들에게 등대역할을 하였다함)는 거대하고 그 색감의 찬란함에 비해
미완성된 첨탑이 40도가 넘는 뜨거운 햇살아래에 정말 장대하게 우뚝 서 있었다.
17세기에 지어진 칸의 궁전 쿠냐 아르크(Kunya-Ark)겨울궁전을 둘러보고 여기저기 엄청 많은 오디나무들 (하얀색 오디나무를
처음 보았고 열매가 얼마나 많은지 짐승들이 먹는다는 오디들을 몇알씩 따먹고 그 단맛에 감탄 그러나 하얀색 오디는 먹고 15분
지난후 찬물을 마시지 않으면 배탈이 난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가끔씩 따 먹어가면서 둘러 보았다
220개의 제각기 다른 목각기둥이 세워져 있는 주마사원(Djuman Mosque)를 둘러 보다가
주마사원
그곳에 서있는 미나렛을
일행 모두가 완전히 골뱅이모양의 어둡고 경사 깊은 계단을 끙끙대고 올라가다 머리도 부딪혀 가면서 조심히
오르고 보니 히바의 내성 전체를 다 둘러 볼수 있어서 호레즘 왕국의 찬란한 역사를 어리짐작 할 수 있었다
무하멧 아민 칸의 신학교(Muhammad Amin_Khan Madrassah)를 방문하고 지금은 여기 저기 거의가 상인들이
점령하여 물건들을 파는라고 줄지어 늘어선 곳이었다.
이후 석조로 꾸며진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타쉬 하올리 궁전(Tashk-Hauli Palace) 여름궁전을 보고
파클라반 마호멧트(Necropolis of Pahlavan Mahmud)영묘를 방문 유럽의 관광객들이 가득차 있어 기다리다가
우리도 신발을 벗고 들어가 메카를 향해 그들이 기도한다는 그곳에서 참배를 하고 나왔다.
아크 모스크(Ak-Mosque)를 방문하여 이미 이곳은 겉모양을 제외하고는 온통 커다란 시장이 되어 있어서
의류등 잡화 식품등을 팔고 있어서 우즈배키스칸 국민들이 누구나 집집마다 갖이고 있다는 작은 물주전자를 2200숨(1달러정도)을
지불하고 기념품으로 샀다
우즈백 주전자 1달러주고 구입.
이들이 사용한다는 그릇도 하나 담아왔다
40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날씨와 관광객보다 더 많은 잡상인들의 붐빔이 이곳 내성을 뜨겁게 끓어 올라 히바내성의 찬란한 색감들과 문양이
그 열기안에서 더욱 강렬하게 그 옛날을 뿜어 내고 있었다.
우리는 내내 물을 연신 들이키다가 하루 일정을 마치고 호탤로 들어왔다
저녁 해저믈때 쯤 호텔이 바로 옆에 있던 관계로 다시 혼자 나와서 히바성을 둘러 보고 그 옛날 이 길을 걸었을 사람들과
호레즘 왕가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서 길게 산책도 하고 저녁노을을 보다가 사진도 찍으면서 걸었다.
실크 섬유가 발달하여 색감이나 디자인이 멋진 가게에서 실크스카프를 두개 6달러를 주고 사면서 그들과 눈인사도 하고
그래도 뭔가 통하고 한국에 대해 상당히 호감을 갖이고 대하는 그들이 이곳에서도 대장금이나 주몽등 몇개의 드라마를 통해
한국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신드롬도 약간 있는듯하고 지나가는데 카리야(Korea)? 하고 묻고는 사진 같이 찍어 달래며 얼마나
좋아들 하는지 아예 순서를 기다리고 서있기도 했다.
가이드 말로는 이들 젊은이들은 한국을 가보는것이 소원이라는 사람도 많단다.
우리나라가 히바성에서 더 돋보이는 그 기대치가 결코 나쁘진 않아서 그들의 모델이 되어주고 좋아하는 그들과 인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5월 28일
아침9시 키질쿰사막(Kizikum Des : 모래 사막 으로 붉은모래사막과 검은모래 사막이 함께 있다)을 지나 부하라로 향하다.
가는 도중 호수가 펼쳐져 장관을 이루는 곳에 머물어 가이드말 그대로 " 뷰우(view)를 보러 내려오세요" 하더니
역시 사막속의 호수 앞쪽 호수는 약간 물이 탁하였으나 뒷쪽 호수는 빙하에서 흘러 내리는 것 처럼
온통 비취 빛깔을 이루면서 정말 멋지게 전망을 이루어 관광객들의 환호를 몸에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막속 그 호수가 사실은 사막 밑바닥에서 흘러 내린 물이 고여서 이루어진 호수라니...
이런 호수가 12개나 이 지역에 있다니 자연의 기의한 현상이 아닐수 없네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서 사막지역을 벗어난 곳에 빵(레표시카빵:이들의 주식) 을 직접 구으면서 양고기를 구워 파는
식당에 들러 기본 요리만 조금 시키고 (양고기 구은것 야채 등) 우리들의 햇반 누룽지탕 라면등에
물을 부어 김치랑 짱아찌랑 김들을 꺼내 성찬을 했다.레표시카빵맛이 얼마나 좋던지 지금도 그 고소함과 단백함이 입맛에 돈다.
운전기사가 한국에서 일하다가 왔다면서 김치를 달래서 주었더니 어찌나 맛나다고 야단인지 따라 다니는 동안 2번은 나눠 먹기도 했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무대중 하나인 부하라 도착
가는 도중 멀리 차창 밖으로 천산 산맥 설산이 보이고 끝없이 펼쳐진 마른 땅과 마른 풀들이 7시간여를
버스로 달리는 중에 이어져 있어서 삭막하고 고된 이들의 삶을 보는것 같아서 마음이 짠했다.
밭에 심어진 곡식들이 말라 듬성듬성 자라나고 있는 부하라 가는길은 지극히 허접하고 먼지만 폴폴 났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는 부하라
어제의 영화가 스물스물거리는 그 곳
부하라의 메드레세
부하라의 메드레세
주변시장에 들러서 상추를 사서 갖어온 된장 고추장 풋고추 섞어서 쌈장을 만들고
2Kg에 4달러쯤 주면 6명의 우리 일행이 실컷 먹고도 남을 체리를 씻고 우리나라에서 샀다면 10만원은 넘으리라고 애기하면서
살구도 2Kg에 4달러를 주고 (정말 맛이 부드럽고 달콤하고 향이 넘치는 살구) 사서 씻고, 식사후 (각자 갖어온 내 나라 음식들을
펼쳐서 가장 큰 룸에 모여) 과일로 포식을 했다.
저녁식사를하고 각기 제나름의 이야기들을 입으로 뿜어 내면서 정말 커다랗게 깔깔대는 시간들.
오늘이 내가 시집간 날(결혼기념일)이라고 이야기하고 멀리 두고 온 남자를 잠깐 기억하기도 했다.
5월 29일
부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아름다운 벽돌무늬가 돋보이는 샤마니왕의 영묘(Mausoleum of theSamanids)
지금은 아이들의 놀이 공원이 되어 벽돌 모양이 다채롭고 짜임이 너무나 특이한 건축양식들이 헤프게 관리되고 있음이
안타까웠다.
이나라 재정이 열악하여 보수는 하되 더디어서 그런다니 온통 혼란스런 분위기였다.
부하라의 상징이자 중앙아시아의 가장 큰 첨탑으로 사막의 등대 역할을 한 칼리안 미나레트(Kalyan Minaret)
미드 아랍 메드레세 (Mire Attari Mosque)는
여기는 최초로 여성을 신학생으로 받아들인 신학교였다.
규모도 상당히 크고 거대했으며 현재 보수중이라고 한다. 현재 학생들이 수업중이라고 해서 조용히 순례를 하고 나왔다.
메드레세정문
부하라의 가장 오래된 마고키아나리 사원(Magoki Attari Mosque)
2마리의 봉황이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과 태양중심에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독특한 장식의 나디라 디반 베기 메드레세
(Nadir Divan Beghi Madrassah)
여기도 신학교 였다는데 저녁에는 카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그 주변은 온통 섬유제품의 옷 머풀러 실크종류 의복들이
즐비했고 여타 지역의 물건들과는 약간 차이가 나는 고급(?)품들을 파는것 같아 보였다.
우리 일행 한명과 저녁민속춤과 식사를 예약하여 그들의 민속춤과 병행하여 멋진 모델들의 런웨이 행렬과 폐션 쇼를 보았다
키가 어찌나 크고 이국적인지 흠뻑 빠져 보다가 그들이 옷을 갈아입고 평범한 의상으로 갈아 입고 나가는 모습은 완전 대조되었다
역시 여자는 가꾸고 의복만 바꾸어도 하늘 땅이 되더이다. 후...
잠시 다시 낮으로 돌아가서
호수주변이란 뜻의 랴비 하우즈(Lyabi Hauz)에 들려 이지역 독설가 만담가 위트가였다는 동상앞에서 이 남자의 해학을 들으면서
어려워 이름은 기억못하나 이 시대까지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이 자리에서 위용을 자랑하고 서 있는것이 재미있었다
해학시인의동상
리비하우스카페
점심은 호수 주변 카페에 들려서 양고기구이 볶음밥(이들의 주식) 양고기 물만두 오이 도마토 양고기슾 양고기 야채슾등을 기호대로
시켜놓고도 생전에 여타 지역에서는 양고기 특유의 냄세 때문에 입에 대지도 못했던 양고기 요리를 제법들 먹어 보았다.
냄세도 물론이지만 우즈베키스탄만의 요리법으로 우리 입맛에 크게 어긋나지 않아서 조심스레 다가가다가 그런대로 먹을수 있었던것이다.
각자 물을 실컷 마시고 더워서 내내 쩔쩔매면서도 나머지 유적지들을 빠짐없이 딛고 다닌것이 힘들어서이다
인근의 바자르에 시간을 주어서 구경하다가 유적지 마그넷 몇개와 빵굽는 이곳의 우스꽝스러운 아저씨 흙자기그림
기술자들이 경영하는 오래된 전통의 가게에서 나름대로 장인정신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곳에서 거위같은 가위를 흥정하다가
않된대서 다들 포기했다
나는 서양인들이 줄지어 사가는 멋진 제법 사고싶어질 만큼 품위 있어 보이고 괸찮은 손칼을 하나 고르고 계산하니
그 칼에 자신들의 가게 문양과 내이름을 새겨서 주고는 17달러를 받아간다
가격에 비해 이들의 명성은 옛날 부터 유명하다는데..값도 싸고 가죽 칼지갑이 약간 허접했어도 2개를 얻어 흐뭇하게 담아왔다
티무르의 손자 울르그베그가 지은 가장 오래된 신학교 올르그베그 메드레쎄(Ulugbeg Madrassah)
다 낡아 여기저기 보수가 요하는 곳이라지만 지금도 그때의 명성답게 외장의 모습은 섬세하고 목공의 뛰어난 솜씨는 혀가 도리도리다
마지막왕이라는 알르크존의 여름별장
알부하리 기념관 책저자들과 과학자들의 기념관이 있는 영묘는 벽돌을 책을 쌓는 모습으로 미학적으로 만든 모습이 아주 특이했다
시토라이모히호사(원 발음이 제대로 맞는지...)
조로아스터교 지하교회가 있는곳
가이드의 어눌한 한국어 발음이 설명은 잘한다고 여겨지는데도 자꾸 못 알아듣고 지금 쓰고 있어도 엉뚱할수 있다는 생각이
자꾸 웃움나고 어이없을것 같다.
사실 그곳이 이곳이고 또 저곳일것같은 혼돈속에서 얄팍한 지식으로 이 문화를 받아듣고 이해한다는것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하고 서로가 묻고 대답 못하고 들고 나는 이곳이 모스크인지 신학교인지 들락날락 대답하면서 깔깔웃었다.
현지 여행사와 서울 여행사의 스케줄에 여러 차이가 있고 오히려 현지 여행사에서 더 많은걸 보여주었으나 자료는 無
가이드의 안내조차도 헷갈려서 부지런히 집중하지만 어렵기만 했으니 부끄럽기만 했다.
집에 오는길에 시장에 들려서 양배추(색깔 맛 탱탱함이 정말 기찬)와 풋고추 살구 체리를 사들고 와서
아직은 손님요구에 기꺼이 응해주는 호텔의 써비스에 감사하며(약갼의팁) 양배추를 익혀 쌈을 실컷 먹고
풋고추는 너무 매워서 찌개에 넣으면 좋은디 아까워라 하면서 버릴수 밖에 없었고
도르형님의 사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고 울고 두개의 침대에 5명이 앉아서 수다를 다롱다롱 메달고 정말 오랬만에
퍼지게 웃어댔다. 벼룩부부의 선보는 이야기와 2박 3일이후의 자진 교양 철회이야기는 두구두고 설거지통 앞에서도 웃을끼다.
체리는 질리도록 먹어도 남고 또 남아서 그래도 비싼 한국에 가면 못 먹는다고 살구랑 포식을 했다
5월30일
부하라출발 세계문화유산이며 티무르의 고향으로 알려진 샤흐리삽스 로 버스로 이동( 약 3시간30분 소요)
티무르의 동상이 있는 사흐리삽스
우즈베키스탄의 사람들과 함께 이 청년들은 한국을 잘 알고있고 매우 호의적이었다. 한국에서 일하다가 온 청년들도 있었다
같은날 5월30일
티무르 여름 궁전으로 웅장한 입구를 보여주는 아크시라이궁전(Ak Saray Palace)
입구에서 부터 정원이 아름답고 건물이 ㄷ 자 형으로 세워져 있는데 웅장함과 그 고유의 남빛 초록빛 온갖의 문양들이 대단히
아름답고 특이한 그림들이 새겨진 돔형식의 지붕이며 솔직히 무식해서 표현을 못하지만 미술이나 남다른 사학적 눈이나
역사적 눈을 갖인자라면 몇곱의 감탄이 이루어지리라 느껴진다.
내부에 들어가면 그 위용과 조각 ,색채 ,압권이었다.
사실 이들의 역사에 맹인이나 다름없는 나인데도 이만큼 감탄이 이루어지는것을 보면 말이다
파란색 돔이 아름다운 굼바즈 모스크(Kok Gumbaz Mosque)와
티무르 친족의 묘지 다 둘러보고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사마르칸트로 이동 (약 1시간 30분 소요)
5월31일
중앙아시아의 진주라는 사마르칸트 탐방시작
티무르황제와 그의 자손들의 묘로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인상적인 구르 에미르 묘(Gur Emir Mausoleum)
주름진 것처럼 말린 돔에 온갖의 채색과 그림이 우뚝솟은 묘지는 깊은 ㄷ자 형식으로 깊숙히 지어져 있는데
맨 안쪽이 첫부인의 묘가 있고 형제들 누이들 손자들 부인들의 묘가 히바(세쩨부인묘;초록의 채색이 많고 별이 문양이 있다)와
부하라 (나무모양:첫부인 묘지) 코칸트(티무르가 사랑한 누나; 꽃모양이 새겨짐)식의 특성들을 살려 개성있고 복합적인
여러 형식으로 영묘가 널찍 널찍 석관을 이루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지하에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사마르칸트의 심장이라고 불리운다는 레기스탄 광장(Registan square)을 둘러 보면서 그 안에 함께 있는
알랑투시에 의해1600년대에 지어진 쉐르도르 신학교 건물 아취 아래 태양의 모습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데
머리는 호랑이모양이고 등은 사자 모양인 모습의 그림이 양쪽에 새겨져 있었다.
아프로시아브 박물관을 관람했는데 13세기 이전 부터 그 이후까지의 여러 유뮬들이 많았다
입구에는 고구려 벽화도 새겨져서 약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대로 따라 가 보니
흐릿한 그림들이 오랜세월을 잘 버티고 있었다.
특히 흙가마 , 항아리, 그릇들, 접시 등등도 많았는데 이곳을 지키는 사람도 자기 물건을 내놓고 장사하는 모습이 재밌었다.
틸랴칼리 메드레세(Tilya kari Madrassah)를 둘러보고
티무르 왕이 가장 총애했던 두번째 부인을 위해 지었다는 비비하님 모스크(Bibi Khanym Mosque)
비비하님모스크
외부에서 보여지는 영묘의 근사한 모습과 중국여자였다는데 영민하고 모든일을 현명하게 잘 해결해 나가는 지헤로운 여자
였던가 보다. 한 여자를 위해 지은 이 영묘의 아름다움이 인도의 타지마할에 버금갈 만큼 아름다웠다
인도가 흰색에 가까운 영묘였다면 여기는 고유의 남색 초록색등 티무르가 원래 좋아했다는 남빛깔이 많이 채색된
웅장하면서도 우아하고 왕궁같은 분위기와 모스크의 분위기가 어울린 그런곳이었다.
사방을 다 둘러 보아도 너무도 아름다운 복많은 여자가 거기에 지하에 어이 누워있을까,,?
14세기와15세기 사마르칸트의 아름다운 건축양식을 볼 수있는 샤하진다묘(Shahi-Zinda Mausoleum)와
티무르의 스승인 루하바드의묘(Ruhabad Mausoleum) 이 스승을 총애하여 영묘를 만든 티무르의 속정도 꽤 깊은건가?.
입구에서 부터 아이들을 안고 있는 젊고 예쁜 여인들이 많이 있었는데 가이없게도 구걸을 요구한다
정말 어린 갓난 아이들이 가여워서 1달러씩 몇명을 나눠주니 우루루 몰려들 오네..
가이드가 혼을 내고 나는 당황하고.. 나에게 1 달러가 이들에게는 10달러보다 더 크다는데 결국은 쏜살같이
버스로 달려 내려왔고 가이드는 그들에게 화를 내고 쫒아냈다니,, 마음이 넘 아파서 한참을 차장밖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이 구역에 살아 간다는 짚씨라고 하네.... 너무 예쁘고 갓난아이들은 왜 죄다 안고들 있는거야?
울루구베그에 의해 지어진 거대한 천문대(Ulugbeg observatory)방문
온갖의 별자리들이 다 전시되어 있고 그들의 망원경이나 온갖의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통시장 시압 바자르(Siab Bazar)를 가기로 했으나 쉬는날이라서 못가고 호텔로
가는길에 가이드가 혼자내려서 체리와 살구를 사와서 호텔 입소.
내일은 타슈켄트에서 한식당이 있다고 해서 오늘 저녁까지 갖이고 온 모든 음식들을 다 나누고 치우기로했더니
다들 초라한 밥상이 이미 되버렸지만 그런대로 한끼 요기하고 체리를 나누어 먹고 일찍들 수면부족을 위해 해산
6월 1일
사마르칸트를 출발
타슈겐트로 이동 5시간 소요라는데 시내에서 밀려 6시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우즈베키스탄 수도이며 동시에 중앙아시아 최대의 도시인 타슈겐트는 우리가 늘 보아왔던 대도시의 자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고 높은건물 공원 가로수 도시 도로나 교통등이 지금까지 보아온 여러 도시와는 차원이 달랐다
난폭운전을 내내하던 우리의 운전아저씨 때문에 가슴이 썸찟했던 노파심도 조금은 덜어도 좋을 만큼 신호등도
있고 차선도 있어서 마음은 편하기도 했다
점심을 한국인이 경영하는곳에서 선지해장국 북어콩나물국 비빔국수 비빔밥을 시켜 나누어 먹고
이슬람 위주로 종합교육을 시키는 4년제 남학교 바라크 한 메드레세(Barak khan Madrassah)를 지나가면서 보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세번째로 큰 자미 모스크(Jami mosque)를 태양열로 쏟아지는 뜨거움속으로 들어가 맨발 벗고
들어가 우아하게 보고 나왔다
티무르 제국의 영광을 느낄수 있는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Amir Timur Museum)
지은지 얼마 안되서인지 아주 잘 정리된 자료들과 티무르의 업적 실크로드 경유지도와 티무르의 정복사와 경로지도등
그에게 바쳐진 異國의 조공물품들 그림으로 비치된 티무르의 초상과 그 가족들에 관한것들 등등
경계도 삼엄하고 촬영도 금하면서 까지 층층이 지키는 사람도 많은 박물관
우즈베키스탄 내에 있는 히바유적지 모형 부하라 유적지 모형 사마르칸트유적 모형 등등
모든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등을 다 수집 정리한 아주 중요하고 멋진 곳이었다
가장 오래된 코란을 보관하고 있는 하스트 이맘 모스크(Khast Imam Mosque)
삼엄한 통로를 줄지어 서서 나가고 아예 맨발을 벗고 들어가면 칸칸이 작은 방에 여러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중앙 센터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코란이 유리관안에 삼엄하게 전시되어 있고 아예 사진 촬영은 할 수도 없고
경비원들은 여러명이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는곳
신발 벗느라 늦게 들어간 탓에 설명을 반토막 들었는데 그 코란한 가운데 피가 쩔어 흘러 박혀있는데 그 코란을
지키기위해 죽어가는 자기 몸을 그 위에 얹고 죽었다나?
아닌게 아니라 책 한가운데 뭔가 거룩한 피가 흘러 깊이 빨아들인 흔적과 책 두깨 크기도 일반 책보다는 훨씬
크고 두껍고 .. 경건한 우리의 성경과 무엇이 다를까. 덩달아 경건해지고 하시딤이라도 된것 같으다
(도중에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결국 찍지못하고 담지 못했네요)
16세기에 바락칸이 건립한 신학교 바락칸 메드레쎄(Barak Khan Mmadrassah)를 올라가서 보면서
내년부터 학생들을 모집하여 다시 신학교를 운영할 계획이 있다는 말과 그 지역의 역사성과는 달리
주변에 시장과 거리의 소음들이 다소 혼란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토록 많은 신학교를 갖이고 있는 나라 이슬람을 살아가기위해 그 맥을 이어갈 이 나라의 청년들을
생각하면서 주변에 있는 출수 바자르(Chorsu Bazar)를 들려서 우리나라 동대문 시장정도 되는 큰 시장을
대충 훝어보고 이 나라 사람들의 먹거리나 기호품들을 알아보고 견과류 과일 치즈 고체요구르트 등등
생소한 야채나 여러 물품들을 보다가 우리네 고려인 3세나 4세가 운영하는 반찬 가게에 들려서 사진도 찍고
말도 나누어 보곤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우리여행자들을 졸졸 따라 다니면서 '카라야 까리야 '하면서
반가워 하고 줄줄 따라다니며 관심과 사진찍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375m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T.V송신탑(New Tashkent Television Tower)을 그래도
세계에서는 9번째로 높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차에서 내려 올려다보았다.
1966년대 지진에 의한 희생자들을 기리는 지진 기념비를 보러 가기위해 길가에 횡단보도가 아닌 길을 건넜다.
신호등 마저 없이 씽씽 달리는 차들을 기다리면서 건너뛰는 모험을 강행하고..
가이드의 순발력이 요구되는 지시에 따르면서 지진 희생자 기념비를 보다가 사망도 하겠구나 ,,
풀섶에 서서 진한 키스를 연이어 부끄럼 없이 나누는 이 나라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숨는 에티켓은 모르는구나
그리 생각하면서 돌아보면 또 그러고 있고 가다 보면 또 키스 진짜 오래도록 하고도 있더이다.
지진 기념탑을 보고나서 모든 일정을 끝내고 호텔행
지진기념탑
각자 가방들을 챙기고 가방은 일행중 제일 작은것을 들고 왔는데 이 나라의 색깔들과 디자인이 너무 고와서
접시와주전자하나를 보듬고 갈 생각으로 샀지만 어이쿠 정신이 아찔했다.
저녁은 아까 시장에서 산 빵과 과일을 먹기로 하고 우리 방에서 다들 나눠먹고
서로 7박8일의 일정을 축하하고 덕담 나누면서 마감.
6월2일
새벽에 일행 2명과 함께 간밤에 내린 비로 길이 촉촉하고 공기가 맑아서 산보를 하고
공원안에 있는 말타고 있는 티무르동상을 마주 보면서
이 시대 이 나라의 관광수입을 무시 못할 그 위대한 업적들은 과연 들먹일만 하고
알렉산더대왕 보다도 더 많은 정복의 꿈을 펼친 무사 정신과 그의 가족을 위한 여러 정서들을 우리나름
표현 방식으로 존경하고 치하하면서 나의 핸디캠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했다.
티무르광장
티무르여!!
다리를 절름거리면서도 어이 그리 엄청난 정복들을 하시옵고 장대하셨나이까?
이 나라에서는 결코 없어서는 안될 칸
그러나 당신은 칸 보다는 술탄을 더 좋아하셨대니 마음대로 하신들 누가 뭐라겠소
몽골의 칸? 투르크의 술탄?
34세에 옥좌에 오르고 69세에 사망할 때까지 쉬지 않고 정복하신 그대는 과연 칸이요 술탄입니다요. ㅎ
티무르는 역사저술가들의 글을 보면
1371년 아랄 해 인근의 호라즘 원정을 시작으로 모굴리스탄을 공격 하고, 호라즘 남부의 호라산을 1380년에 정복했다한다.
1386년까지 이란 동부를 손에 넣은 티무르는 다시 이란 서부의 공략에 나섰고, 카프카스 산맥까지 도달하여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아르메니아를 정복했단다. 1387년에 이란의 중심지 이스파한이 함락되었고,
그 뒤로는 다시 북상하여 킵차크한국과의 결전에 들어갔다고한다.
티무르는 호라즘 원정도 세 차례나 되풀이했고, 모굴리스탄의 반 티무르 전선이 침묵한 것도 1372년부터
여섯 번의 원정을 치르고 난 뒤인 1400년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란을 공격하다가 러시아로 진격하고,
서쪽의 카프카스 공략 도중 군대를 되돌려 동쪽의 위구르를 치는 등 티무르가 죽을 무렵
그의 제국은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 카프카스, 그리고 인도와 러시아의 일부에 걸쳐 있었으나
티무르는 이 판도를 넘어 소아시아, 시리아, 북부 러시아, 인도 중심부까지 한때 손에 넣었었다고한다.
티무르여!!
대단하셨습니다.
멋진 그대의 조국을 방문할수 있었음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침 8시에 공항을 출발 그 나라 시간 10시40분 출발하여
6시간을 타고 날아오니 시차 4시간 플러스하고 밤 8시50분 도착
아. 우즈베키스탄
아. 티무르여.
그 영광이여.
첫댓글 잘~보았습니다...한번 꼭 가보고 싶은 나라입니다...
짚시랑님, 또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셨네요. 따라 가고 싶어요.
푸른 빛의 사원이 신비로운 나라. 우즈베키스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