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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류격즙(中流擊楫)
강 가운데서 노를 두드린다는 뜻으로,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자 하는 굳은 결심 또는 가슴에 품은 웅대한 뜻을 비유하는 말이다.
中 : 가운데 중(丨/3)
流 : 흐를 류(氵/7)
擊 : 칠 격(手/13)
楫 : 노 즙(木/9)
(유의어)
격즙중류(擊楫中流)
출전 : 진서(晉書) 조적전(祖逖傳)
강의 중류에서 노를 두드린다는 뜻으로,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자 하는 굳은 결심 또는 가슴에 품은 웅대한 뜻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진(晉)나라 때 외적의 침입에 맞서 싸운 조적(祖逖)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격즙중류(擊楫中流)라고도 한다.
조적(祖逖)은 범양(范陽) 사람으로, 젊은 시절에 유곤(劉琨)과 함께 외적의 침입에 시달리는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며 함께 지냈다. 이때 조적(祖逖)이 한밤중에 닭 울음소리를 듣고 유곤을 깨워 함께 검술을 연마한 데서 문계기무(聞鷄起舞)라는 고사성어가 유래되었다.
그 무렵 진나라는 흉노에 중원을 빼앗기고 강남(江南)으로 옮겨 동진(東晉)을 세웠다. 조적(祖逖)은 뜻을 함께하는 젊은이들을 규합하여 원제(元帝; 사마예)에게 북벌(北伐)을 힘써 주장하였다. 원제는 북벌에 나설 의사가 없었으나, 그 뜻을 물리칠 명분도 없었으므로 조적(祖逖)을 분위장군(奮威將軍) 겸 예주자사(豫州刺史)에 임명하였다.
그러나 이는 이름뿐인 직책으로, 조적(祖逖)에게 주어진 것은 고작 1,000명 분의 식량과 3,000필의 베에 불과하였다. 그래도 조적(祖逖)은 조금도 낙담하지 않고 100명을 이끌고 배를 타고 강북(江北)으로 건너갔다. 의기가 북받쳐오른 조적(祖逖)은 배가 강의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 노를 두드리며 맹세하여(中流擊楫而誓曰) "중원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고 소리쳤다.
조적(祖逖)의 북벌군은 각지에서 백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마침내 황허강(黃河) 이남의 실지(失地)를 회복하였다. 이때 흉노와 갈족이 서로 싸워 정세가 동진에 유리하게 돌아갔으나, 동진의 조정에서는 내분이 일어나 조적(祖逖)을 지원하지 않았다. 조적은 결국 울분에 차서 병사하고 말았다.
이 고사는 '진서(晉書)'의 '조적전(祖逖傳)'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중류격즙은 나라의 실지를 회복하겠다는 굳은 결심 또는 그와 같은 웅대한 뜻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 중류격즙(中流擊楫)
나라를 굳건히 지키기 위해서는 장병들의 사기(士氣)가 높아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사기충천(士氣衝天)의 군대가 있으면 아무리 강국이라도 넘보지 못한다. 훌륭한 장수는 부하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상처까지 보듬는다는 연저지인(吮疽之仁)의 인자함과, 함께 창을 베고 갑옷을 입은 채 잠을 자는 침과침갑(枕戈寢甲)의 자세를 가졌다면 무적이겠다.
여기에 이런 기개를 더하면 말할 것도 없다. '예부터 영원한 삶은 없는 법(人生自古誰無死), 나라 위한 단심 역사에 비추고 싶구나(留取丹心照汗靑).' 중국 송(宋)나라 충신 문천상(文天祥)의 시 구절이다.
적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병사를 배로 인솔하고 강을 건넌다. 장수가 강 가운데서(中流) 노를 뱃전에 두들기면서(擊楫) 사기를 북돋운다. 동진(東晉)의 장수 조적(祖逖)의 이야기에서 나온 이 성어는 치욕을 갚고 실지를 회복하겠다는 기개를 나타낸다. 도강즙(渡江楫)이라 해도 뜻이 같은데 가슴에 품은 웅지를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이 나오게 된 4세기 전후는 사마염(司馬炎)이 세운 진(晉)나라가 16년간의 내란인 팔왕(八王)의 난 끝에 이민족에 쫓겨 양자강(揚子江) 이남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피 끓는 젊은이 조적 등은 외적의 침입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참상을 보고 실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당시의 원제(元帝)에게 북진을 주장했다.
큰 의욕이 없었던 왕의 명을 받자 조적은 군사를 모집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무기를 조달했다. 장강을 건너 북쪽으로 향하던 중 조적은 '뱃전에 노를 치면서 맹세했다(中流擊楫而誓曰).' 중원을 편정하고 적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자 부하들도 용기백배했다. 이후 조적이 이끄는 병사들은 황하(黃河) 이남의 땅을 수복하는데 성공했다. 당(唐)의 방현령(房玄齡) 등이 지은 '진서(晉書)'에 실린 내용이다.
우리나라도 적의 침략에 굳건히 대항하고 쪼그라든 고토를 회복하기 위해 애쓴 장군들이 많았다. 수(隋)와 당(唐)의 대군을 물리친 고구려의 을지문덕(乙支文德)이나 양만춘(楊萬春)에서 왜군의 야욕을 꺾은 조선의 이순신(李舜臣) 장군 등이다. 서희(徐熙)와 최윤덕(崔潤德) 장군 등은 잃어버린 땅을 되찾았다.
이런 빛나는 장군들의 전통은 오늘도 잘 지켜지고 있을까. 단호하게 대하지 못하고 중국과 일본에게 바다에서 밀리거나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쟁을 일으킨 북한에게 양보만 하다간 아무리 노를 두들겨도 호응을 얻지 못한다.
◼ 조적이 북벌을 주장하다
(祖逖中流擊楫)
흉노가 장안을 점령하고 서진이 멸망한 후, 중국은 역사상 '5호가 중화를 어지럽히는' 시기가 시작되었다. 또한 북방 한족이 대거 남쪽으로 이주한 '영가지란(永嘉之亂)'의 시기이기도 했다. 이때 조적(祖逖)도 피난을 떠나는 인파 속에 섞여 남하했는데 회수와 사수를 지나는 길에서 노인과 병자들을 자기 수레에 태우기도 하고 식량과 의복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리고 도적 떼가 나타나면 직접 가정(家丁)들을 데리고 나가 싸워서 물리치곤 했다. 그래서 남하하는 길에서 조적에 대한 칭송이 자자했다.
317년, 낭야왕 사마예는 사족 왕도 등의 보좌로 동진 왕조를 세웠다. 사마예는 조적의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라 그가 사구(泗口)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고 조서를 내려 서주 자사로 임명했다. 그러다가 후에는 군자제주(軍諮祭酒)로 임명하여 전략적 요새인 경구(京口)를 지키게 했다.
조적은 사마예에게 이렇게 진언했다. "중원에 난이 일자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지금 중원 백성들은 도탄 속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오랑캐들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출병의 영만 내리신다면, 대장 한 사람만 보내도 오랑캐들을 내몰고 잃어버린 땅을 모두 수복할 수 있습니다."
사마예는 장강 동남에서 안일하게 지낼 생각만 하고 있었을 뿐 북벌에 대해서는 큰 희망을 걸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도 일리가 있기에 조적을 분위장군(奮威將軍) 겸 예주 자사로 임명하고 1천 명이 먹을 식량과 피륙 3천 필을 내주었다. 그 밖에 필요한 투갑과 무기, 병사들은 조적이 자력으로 해결하게 했다.
조적은 군대를 모은 후 장강을 건넜다. 배가 중간에 이르렀을 때 그는 노로 강물을 치며(中流擊楫) 이렇게 말했다. "이 조적은 중원의 오랑캐를 소멸하지 않고는 강남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장강을 건넌 후 조적은 군대를 회음에 주둔시키고 무기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군사를 모집했는데 며칠 만에 수천 명을 모았다. 조적은 사기 왕성한 군대들을 이끌고 초성(譙城)을 쳐서 점령하고 이어 각지에 있는 석륵의 할거 무장들을 소멸했다. 조적은 장강 남북에 그 이름을 떨쳤으며, 북방의 융적(戎狄) 귀족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
조적은 승세를 타서 계속 북상했다. 부하 한잠에게 군대를 주어 하남 봉구(封丘)에 주둔하게 하고 자신은 군사를 이끌고 옹구(雍丘)를 쳐서 점령했다. 이렇게 해서 황하 이남 땅이 모두 동진에 속하게 되었다. 조적이 식량을 비축하고 군사를 조련한 다음에 계속 북상하여 황하 이북을 수복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사마예가 대약사(戴若思)라는 자를 예주 도독으로 임명하여 조적을 지휘하게 했다.
남방의 절반 강산에서 편하게 살려는 조정 인간들의 통제를 받게 된 조적은 북벌의 포부를 실현하기 어려워졌다. 그는 울화로 인해 끝내 몸져눕게 되었고, 결국 비통한 심정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 조적은 비록 북벌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장강을 건널 때 보인 북벌의 기개는 후세 사람들에게 길이 칭송받고 있다. 진서의 '조적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조적과 사공 유곤이 사주 주부로 있을 때 서로 마음이 맞아 같이 자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정에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조적은 유곤을 발로 차 깨우면서 '이건 나쁜 소리가 아니다' 하더니 검을 들고 춤을 추었다. 나라를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던 조적과 유곤이 서로를 격려하면서 자정의 닭 우는 소리에 일어나 검무를 추었다는 이 이야기는 훗날 뜻 있는 사람들이 제때에 분발하도록 격려하는 전례가 되었다.
▶️ 中(가운데 중)은 ❶지사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물의 한가운데를 상하로 통하는 세로 금으로 중심, 중앙을 뜻함과 형제를 위로부터 차례로 伯(백), 仲(중), 叔(숙), 季(계)라고 일컬을 때의 仲(중)으로서 쓰인 것이다. 또는 깃대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❷상형문자로 中자는 '가운데'나 '속', '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이전에는 中자가 무언가를 꿰뚫는 모습을 그렸던 것으로 해석했었다. 그러나 갑골문이 발견된 이후에는 이것이 군 진영에 깃발을 꽂아놓은 모습을 그려졌던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中자는 진지 중앙에 펄럭이는 깃발을 그린 것으로 '가운데'나 '중앙'을 뜻하고 있다. 中자가 '중앙'이라는 뜻으로 쓰이다 보니 때로는 '속'이나 '안', '마음'과 같은 사물의 중심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中(중)은 (1)일부 한자로 된 명사(名詞) 다음에 붙이어 그 명사의 뜻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과정임을 나타냄 (2)등급 같은 것을 上中下(大中小)로 구분할 경우 그 가운데 등급 중등(中等) (3)중국 (4)장기판에서 끝으로부터 둘째의 가로줄을 이르는 말 (5)마음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가운데 ②안, 속 ③사이 ④진행(進行) ⑤마음, 심중(心中) ⑥몸, 신체(身體) ⑦내장(內臟) ⑧중도(中途) ⑨절반(折半) ⑩장정(壯丁) ⑪관아의 장부, 안건(案件) ⑫가운데 등급 ⑬중매(仲媒), 중개(仲介) ⑭중국(中國) ⑮버금(으뜸의 바로 아래), 둘째, 다음 ⑯가운데에 있다 ⑰부합하다, 일치하다 ⑱맞다, 맞히다, 적중시키다 ⑲급제하다, 합격하다 ⑳해당하다, 응하다 ㉑뚫다 ㉒바르다, 곧다 ㉓가득 차다 ㉔이루다, 이루어지다 ㉕고르다, 고르게 하다 ㉖간격을 두다 ㉗해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바깥 외(外)이다. 용례로는 중도에서 끊어짐을 중단(中斷), 한가운데를 중심(中心), 사방의 중심이 되는 곳을 중앙(中央),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나 자리 중추(中樞), 일이 되어 가는 동안 중도(中途), 치우침이나 과부족이 없이 떳떳하며 알맞은 상태나 정도를 중용(中庸),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나 자리를 중추(中樞), 두 사물의 사이를 중간(中間), 일을 중도에서 그만 둠을 중지(中止), 중간에서 이어줌을 중계(中繼),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함을 중립(中立), 길을 가고 있는 동안 도중(途中), 하늘이나 하늘 가운데를 공중(空中), 마음 속을 심중(心中), 도시의 안을 시중(市中), 정신을 집중시킴을 열중(熱中), 눈의 안이나 마음속을 안중(眼中), 코의 밑과 윗입술 사이의 우묵한 곳을 인중(人中), 돌에 박힌 화살촉」이라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한 큰 힘이 나올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중석몰촉(中石沒鏃), 쏜 화살이 돌에 박힌다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한 큰 힘이 나올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중석몰시(中石沒矢), 터무니없는 말로 헐뜯거나 남을 해치려고 속임수를 써서 일을 꾸밈을 일컫는 말을 중상모략(中傷謀略), 일을 하다가 끝을 맺지 않고 중간에서 그만 둠을 일컫는 말을 중도이폐(中途而廢), 마음속의 욕망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외부의 사악을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중경외폐(中扃外閉), 중원의 사슴이라는 뜻으로 천자의 자리 또는 천자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중원지록(中原之鹿), 중립을 취하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중립불의(中立不倚), 보통 사람은 감당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중인불승(中人弗勝), 마음속에 일정한 줏대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중무소주(中無所主), 덕성이 발라서 과불급이 없는 화평한 기상을 일컫는 말을 중화지기(中和之氣), 시작한 일을 완전히 끝내지 아니하고 중간에 흐지부지함을 일컫는 말을 중도반단(中途半斷) 등에 쓰인다.
▶️ 流(흐를 류/유)는 ❶형성문자로 㳅(류)는 고자(古字), 沠(류)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㐬(류; 아기가 태어나는 모양)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流(류)는 아기가 양수와 함께 순조롭게 흘러 나옴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流자는 '흐르다'나 '전하다', '떠돌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流자는 水(물 수)자와 㐬(깃발 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㐬자는 물에 떠내려가는 아이를 그린 것이다. 育(기를 육)자가 그러하듯 流자의 상단에 있는 것은 '어린아이'가 변형된 것이다. 또 아래에 있는 글자는 물살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㐬자는 아이가 급한 물살에 떠내려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㐬자 자체도 '흐르다'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에 水자를 더한 流자는 본래의 의미를 더욱 강조한 글자이다. 그래서 流(류/유)는 ①흐르다 ②번져 퍼지다 ③전(傳)하다 ④방랑(放浪)하다 ⑤떠돌다 ⑥흐르게 하다 ⑦흘리다 ⑧내치다 ⑨거침없다 ⑩귀양 보내다 ⑪흐름 ⑫사회 계층 ⑬갈래 ⑭분파(分派)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거침없이 흘러 통함을 유통(流通), 밖으로 흘러 나가거나 나오는 것을 유출(流出), 어떤 복장이나 언어나 생활 양식 등 일시적으로 널리 퍼져 유사해지는 현상이나 경향을 유행(流行), 흘러 들어옴을 유입(流入),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을 유리(流離), 물결에 비치는 달을 유광(流光), 널리 세상에 퍼지거나 퍼뜨림을 유포(流布), 이리저리 떠도는 것을 유전(流轉), 융통하여 사용함을 유용(流用), 액체 등이 흘러 움직임을 유동(流動), 물 위에 떠서 흘러가는 얼음덩이를 유빙(流氷), 하천이 흐르는 언저리의 지역을 유역(流域), 일정한 목적없이 떠돌아 다님을 유랑(流浪), 떠내려가서 없어짐을 유실(流失), 서로 주고 받음을 교류(交流), 물에 떠서 흘러감을 표류(漂流), 대기의 유동을 기류(氣流), 물이 흐르는 원천이나 사물이 일어나는 근원을 원류(源流), 물의 근원이 되는 곳의 부근을 상류(上流), 강이나 내의 흘러가는 물의 아래편을 하류(下流), 물의 원줄기에서 갈려 흐르는 물줄기를 지류(支流), 둘 이상의 흐름이 한데 합하여 흐르는 것 또는 그 흐름을 합류(合流), 혼탁한 물의 흐름을 탁류(濁流), 아무 근거없이 널리 퍼진 소문이나 터무니없이 떠도는 말을 유언비어(流言蜚語), 향기가 백대에 걸쳐 흐름이란 뜻으로 꽃다운 이름이 후세에 길이 전함을 일컫는 말을 유방백세(流芳百世),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며 사는 일을 일컫는 말을 유랑생활(流浪生活),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는 뜻으로 항상 움직이는 것은 썩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유수불부(流水不腐), 일정한 직업을 가지지 아니하고 정처없이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일을 일컫는 말을 유리표박(流離漂泊), 쇠가 녹아 흐르고 흙이 그을린다는 뜻으로 가뭄이 계속되어 더위가 극심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유금초토(流金焦土),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라는 뜻으로 가는 봄의 경치 또는 남녀 간 서로 그리워하는 애틋한 정을 이르는 말을 낙화유수(落花流水),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는 뜻으로 말을 잘못해 놓고 그럴 듯하게 꾸며대는 것 또는 이기려고 하는 고집이 셈을 일컫는 말을 수석침류(漱石枕流), 푸른 산과 흐르는 물이라는 뜻으로 말을 거침없이 잘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청산유수(靑山流水), 피가 강을 이루어 무거운 공이라도 띄울 수 있다는 뜻으로 싸움이 치열하여 전사자가 많음을 이르는 말을 혈류표저(血流漂杵), 흐르는 물과 하늘의 뜬구름이라는 뜻으로 과거사가 흔적이 없고 허무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수류운공(水流雲空) 등에 쓰인다.
▶️ 擊(칠 격)은 ❶형성문자로 撃(격)의 본자(本字), 击(격)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손 수(手=扌; 손)部와 음(音)을 나타내며 동시에 친다는 뜻을 가진 (격)으로 이루어졌다. 손으로 치다의 뜻이 전(轉)하여 치다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擊자는 '치다'나 '공격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擊자는 軗(수레 끌 수)자와 手(손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軗자는 車(수레 차)자와 殳(창 수)자를 함께 그린 것이다. 여기에 手자가 더해진 擊자는 전차를 몰며 창을 휘두르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擊자는 적을 공격하거나 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참고로 擊자는 약자로 撃자를 쓰기도 한다. 그래서 擊(격)은 ①치다 ②부딪치다 ③공격하다 ④마주치다 ⑤보다 ⑥두드리다 ⑦지탱하다 ⑧죽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칠 벌(伐), 칠 타(打), 칠 고(拷), 칠 당(撞), 칠 박(撲), 두드릴 고(敲), 칠 공(攻), 쇠몽치 추(椎), 망치 퇴(槌), 때릴 구(毆), 칠 토(討), 칠 력(轢),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지킬 수(守), 막을 방(防)이다. 용례로는 쳐 부숨을 격파(擊破), 적군을 쳐서 물리침을 격퇴(擊退), 북을 두드림을 격고(擊鼓), 적의 비행기를 쏘아 떨어 뜨림을 격추(擊墜), 몽매함을 일깨움을 격몽(擊蒙), 적을 쳐 물리침을 격양(擊壤), 징이나 꽹과리를 침을 격금(擊金), 쳐서 죽임을 격살(擊殺), 쳐서 끊음을 격단(擊斷), 적을 쳐서 없애 버림을 격멸(擊滅), 적군의 배를 쳐서 가라앉힘을 격침(擊沈), 서로 맞부딪쳐서 몹시 침을 충격(衝擊), 나아가 적을 침을 공격(攻擊), 때리어 침을 타격(打擊), 번개와 같이 갑자기 들이 침을 전격(電擊), 직접 자기의 눈으로 봄을 목격(目擊), 쳐들어오는 적을 되받아 공격함을 반격(反擊), 습격으로 사격을 받음을 피격(被擊), 갑자기 적을 엄습하여 침을 습격(襲擊), 뒤쫓아 가며 침을 추격(追擊), 공격해 오는 대상을 기다리고 있다가 도중에서 맞받아 침을 요격(邀擊), 급히 침을 급격(急擊), 총이나 대포 따위를 쏨을 사격(射擊), 태평한 생활을 즐거워하여 노인이 땅을 치며 노래함을 이르는 말을 격양노인(擊壤老人), 땅을 두드리며 부르는 노래라는 뜻으로 매우 살기 좋은 시절을 일컫는 말을 격양지가(擊壤之歌), 무릎을 치면서 탄복하고 칭찬함을 일컫는 말을 격절탄상(擊節歎賞), 종을 쳐서 식솔을 모아 솥을 걸어 놓고 먹는다는 뜻으로 부유한 생활을 이르는 말을 격종정식(擊鐘鼎食), 북을 치고 징을 울림을 일컫는 말을 격고명금(擊鼓鳴金), 무릎을 손으로 치면서 매우 칭찬함을 일컫는 말을 격절칭찬(擊節稱讚), 대나무를 다 사용해 써도 그의 악행을 다 쓸 수 없다는 뜻으로 필설로 다 할 수 없으리만큼 죄악을 저질렀다는 말을 격죽사난사(擊竹事難事), 배를 두드리고 흙덩이를 친다는 뜻으로 배불리 먹고 흙덩이를 치는 놀이를 한다 즉 매우 살기 좋은 시절을 일컫는 말을 고복격양(鼓腹擊壤), 계란으로 돌벽을 치듯이란 뜻으로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당해 내려는 일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이란격석(以卵擊石),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뜻으로 동쪽을 치는 듯이 하면서 실제로는 서쪽을 치는 병법의 하나로 상대를 기만하여 공격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성동격서(聲東擊西), 남의 신상에 관한 일을 들어 비난함을 일컫는 말을 인신공격(人身攻擊), 남의 장점으로 나의 단점을 고침을 일컫는 말을 이장격단(以長擊短), 수레의 바퀴통이 서로 부딪치고 사람의 어깨가 스친다는 뜻으로 거리가 번화함을 이르는 말을 곡격견마(轂擊肩摩), 스스로 장수가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싸움 또는 어떤 일이든지 남을 시키지 않고 손수함을 일컫는 말을 자장격지(自將擊之), 물결이 밀려왔다가 밀려가듯이 한 공격 대상에 대하여 단속적으로 하는 공격을 이르는 말을 파상공격(波狀攻擊), 급히 쳐서 때를 놓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급격물실(急擊勿失), 돌로 돌을 때린다는 뜻으로 힘이 거의 비슷함을 일컫는 말을 이석격석(以石擊石), 문지기와 야경이라는 뜻으로 신분이 낮은 관리를 이르는 말을 포관격탁(抱關擊柝) 등에 쓰인다.
▶️ 楫(노 즙, 노 집)은 형성문자로 揖(즙), 檝(즙)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 목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咠(즙)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楫(즙, 집)은 ①노(배를 젓는 막대기) ②배 ③노를 젓다 ④모으다, 수집하다(蒐集--) 그리고 ⓐ노(배를 젓는 막대기)(집) ⓑ배(집) ⓒ노를 젓다(집) ⓓ모으다, 수집하다(蒐集--)(집)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노 도(棹), 노 도(櫂) 등이다. 용례로는 타는 배와 삿대 배의 통틀어 일컫는 말을 주즙(舟楫), 강 가운데서 노를 두드린다는 뜻으로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자 하는 굳은 결심 또는 가슴에 품은 웅대한 뜻을 비유하는 말을 중류격즙(中流擊楫)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