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이 뛰어날수록 자존감도 높다."
자존감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견해죠.
이게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만, 자존감의 본질과는 다소 벗어난 이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존감은 내 가치에 대한 감정입니다. 이게 본질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능력이 뛰어날수록 가치있는 사람이다라는 "사회적 규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나의 능력 = 나의 가치 = 나의 자존감 이라는 "도식"이 생겨버린 것이죠.
한국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바로 이 도식이 뿌리깊게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부모들은 많은 걸 희생하면서까지 자녀들의 교육에 올인을 하게 되요.
높은 스펙을 만들어줘서 자존감 높은 어른으로 성장시키고 싶은 것이죠.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사회의 치명적인 오류가 탄생하게 됩니다.
스펙이 가치를 결정짓는 사회
유소년 시절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이 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세계관이 거진 완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교육열과 공부 성적 대학으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에선
그에 상응하는 세계관이 아이들의 내면에 자리 잡게 되요.
공부를 잘해야 부모님이 기뻐하고 주변 사람들이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세계에서는
아이들의 세계관 자체가 능력주의, 물질주의, 서열주의로 뿌리내리게 되죠.
맨날 보고 듣고 겪는 게 이런 것들이다 보니,
한국의 아이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평가할 때도 굉장히 가혹하게 자아비판을 하게 됩니다.
능력과 무능력, 쓸모와 무쓸모,
그리고 가치와 무가치 ...
상상해 봅시다.
어떤 모임엘 처음 갔는데,
사람들이 A라는 인물을 굉장히 존중하고 좋아하는 거에요.
그들이 A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는 몰라요.
그럼에도 나는 자연스럽게 A가 괜찮은 사람일 거라고 판단하게 되겠죠.
다른 사람들의 태도가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자, 이제는 그 A가 다름아닌 "나"라고 생각해 볼께요.
별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부모님이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줘요.
그럼 나는 자연스럽게 나란 존재에 대해 판단하게 되겠죠.
'오 나 괜찮은 사람인가봐?'
우리가 자존감에 대해 간과하고 있는 것이 바로 "관계"입니다.
완벽한 내 편으로부터 내 존재 자체를 인정받고 수용받는 느낌
바로 이 경험에서부터 '아 나는 가치있는 존재구나'라는 추론이 일어나게 되요.
내 인생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존재들인 부모님이 아무 이유없이 날 리스펙하니
세계관 자체가 "나는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다" 에서부터 출발하는 겁니다.
반면,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인정받는 아이가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아이는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할거라고 생각하지만 확신이 없습니다.
부모님의 나에 대한 사랑과 존중은 내 능력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 아이의 세계관은 "나는 뛰어나야지만 존중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에서부터 시작하게 되요.
바로 이 지점에서 부모의 진심과 의도는 언제든지 왜곡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아이가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가이기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푸쉬하는 거일지라도
아이의 입장에서는 "사랑받을만한 존재가 되려면 잘하라고" 푸쉬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거든요.
이런 환경 속에서는 다행히 아이가 능력을 갖췄다고 해도 상승된 자존감이 절대로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미 능력주의라는 세계관이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에,
매번 경쟁에 내몰리게 되고, 나보다 뛰어나고 잘난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고 한 트럭씩 튀어나오기 때문이죠.
살면서 매번 스스로를 타인과 가혹하게 비교, 평가하면서 "자존감의 등락"을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류가 스스로의 가치를 인지하는 경로는 결국 두가지더라는 겁니다.
① 능력을 갈고 닦음으로써 사람들의 존중을 이끌어내거나
② 완벽한 내 편들에게 둘러쌓여 무조건적으로 존중받는 삶을 살아왔거나
세계관이라든지 나에 대한 자아상(self-image)은 늦어도 10대까진 완성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면모들은 어린 시절 세상이 나를 어떻게 대했는가에 따라 조형되기 마련이죠.
그 영향력은 부모로부터 오는 게 가장 강력한 것이구요.
인간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타인을 기준점으로 삼는 경향이 있습니다.
(ex. 처음 가 보는 나라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때 현지인들을 따라함)
모든 게 불확실한 아이들은 self-image를 확립해나가는 과정에서
나에 대한 부모님의 태도를 최우선적으로 참조하게 되요.
그렇게 형성된 아이의 자아상이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날 따라다니게 되는 겁니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키우는 것과 능력이 뛰어난 아이로 키우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전자를 원한다면,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이 필요해요.
그래야만 아이의 self-image가 나는 그 자체로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비추게 되죠.
지금 한국사회가 아이들에게 하고 있는 행동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건 서두에서 언급하였듯, 능력=가치=자존감이라는 도식에서부터 시작된 오해이죠.
능력을 푸쉬하는 환경에서는, 설혹 능력이 뛰어난 자들을 양산한다한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자존감이 반드시 상처입게 됩니다.
모두가 승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죠.
대다수는 무능력과 무가치라는 self-image를 덮어쓸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모든 부모들은 아이를 사랑합니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키우길 원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무조건적으로 아껴주고 존중해주면 되는 일이니까요.
내 아이인데, 그게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하지만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한국사회는 말로만 자존감을 외칠 뿐,
실제로는 그냥 능력있는 아이와 능력있는 인재들을 원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한국의 부모들이 이러한 자존감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아이 교육에 대한 그들의 태도와 방향성을 과연 바꿀 수 있을까?
한국사회는 자존감 높은 시민을 원하는가? 아니면 능력이 뛰어난 시민을 원하는가?
모든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스스로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는 아이러니
바라건데, 한국의 아이들이 조금 더 아이답게, 명랑하게 커 갔으면 합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이제 막 돌 지난 아들을 키우는 아빠로서 좋은 글 감사합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많이 돌아 보게 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천천히 다시 읽고 생객해봐야겠네요.
선댓글 후감상
잘읽을게여
너무좋은글 감사합니다
아ㅠ
좋은글 감사합니다
부모의 자존감도 생각해보고 싶어요..부모가 건강한 자존감을 갖고 아이를 양육하는지에 대해 고민 해보면 우선 저부터가 그렇지 않은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그렇게 자라왔기도 하구요)
자존감은 내가 소중하고 가치있는 존재인 만큼 타인도 그만큼 우리는 모두 똑같이 존중 받아야 마땅한 존재들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우리가 자존감이 떨어졌을 때 무의식 적으로 타인에게 전가 시켜버리는 정서적인 학대나 행동 등에 대해서도 무명자님 말씀을 듣고 싶어요..!!
두 딸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게 하는 글이네요 ㅠ
둘째한테는 이 무조건적 사랑과 지지가 잘 발현되는데 유독 첫째한테만 이유가 있어야 칭찬해주고 지지해주는 제 모습을 다시한번 돌아보고 반성합니다 ㅠ 알면서도 잘 안되요 ㅠㅠ 노력해봐야겠지요 ㅠ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세상 살아 가는데 가장 중요한게 자존감이라 생각 합니다. 제 인생 자체가 자존감 바닥 이던 때 와 그 이후로 나뉘어서요.
제가 애기들 키우면서 제 1 목표가 자존감 세워 주는건데, 그게 맘처럼 잘 안되죠, 오늘 도 도움 되는 글 너무나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k g s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는 가장 단순한 방법!
공부를 아주 잘했거나 운동을 엄청뛰어난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했던 나의 유년시절을 돌이켜보니 넉넉하지 않았던 환경에두 불구하고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은 있었다고 느껴졌네요~
고맙습니다 아버지,어머니
난 잘하고있군ㅎㅎ 좋은글 감사합니다~~부모도 완벽하지않기에 항상 고민되고 걱정하는데 제 행동에 확신이 들어 기분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