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 받을 짓을 했으니 퇴진해야 한다고 바람잡는 쪽은 금융감독원등 정부와
권력핵심이고, 징계감도 안되는 것을 징계하려는 것은 관치금융의
악습이라고 비판하는 쪽은 일부 주주와 언론들입니다.
그사이 국민은행 주가는 줄곧 하락했고, 일부 외국인 주주들은 정부개입에
분노하며 단체행동을 하려는 움직입니다.
논란의 핵심은 역시 다음 달 결정되는 김행장의 연임 여부입니다.
본인은 연임하고 싶어한다고 합니다. 연임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는
발언조차 없는 것을 보면 업적이 좋지않은 은행의 실적을 좋게 만들어놓은후
꽃으로 장식된 길을 승리의 찬가를 들으며 걸어나가고
싶은 욕심이 없지 않는 듯합니다. 금융인으로서 걸어온 성공의 이력서를
볼때 욕심 내볼만한 은퇴 시나리오입니다.
그러나 김행장은 이번에 은퇴를 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퇴진권고를 하기까지 개인적으로 적지않은 고민과 심리적인 갈등을 겪었지만,
역시 자진퇴임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입니다.
우선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거의 죽음을 맛 보았던 한 인간으로서
이제는 은행산업 발전이나 국민은행 성장보다는 본인 건강을 돌봐야 할 때입니다.
조직에 리더로서 뛰기엔 완전한 건강체가 아니라는 것을 부인하진 못할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내가 깨끗하므로 큰 하자없다'고 주장하다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다친다는 점을 들고 싶습니다.
달포 전에도 이헌재 부총리, 강봉균의원, 이근영 전 은행감독원장등이
국민은행에서 자문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분들에게 적지않은 부담을 주고 말았습니다.
이런 내용을 누가, 왜 그 시기에 언론에 흘렸는지는 김행장도 잘 알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권력을 가진 자들은 목적을 위해서는 온갖 지저분한
얘기를 가공해 유포하거나, 언론에 흘리곤 합니다.
이 때문에 김행장이 고집을 부린다면 주변의 누가 더 애꿋은
피해를 당할지 짐작할 수 없습니다.
국민은행장 후보로는 벌써 유력인사가 거론되고 있답니다.
또 작년에 정권이 바뀐 이후 권력 핵심부는 집요하게 국민은행장 교체를
희망했다는 조짐이 여기저기서 감지되었죠.
예를 들어 감사원과 국정원, 금융감독원이 이런저런 이유로 국민은행을
공개조사하거나 비공개로 내사했습니다.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조사에 조사를 거듭한 셈입니다.
또 대통령의 측근들이 김행장에 대해 이런저런 좋지않은 인물평을 해대곤 했습니다.
작년 어느때인가 김정태 행장은 거의 교체되기 직전
막다른 골목길에서 기사회생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행장의 교체에 반대하거나 미적거리던 이정재 전 금융감독원장이나
정찬용 청와대 인사 수석등 몇몇 사람의 입지까지 흔들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총력전입니다. 금감원에선 이미 최고층이 김행장 교체를 위해
권력 핵심부의 총대를 매고 총진격 명령을 내린 분위기랍니다.
이번 징계건도 실무자들은 소극적이었지만 금감원 임원-간부진
(두 세명의 실명이 거론됩니다)이 징계를 밀어부쳤고,
심지어 자기들에게 유리한 일부 자료만 거두절미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런 비열한 짓으로 징계를 밀어부치겠습니까.
권력자란 한번 부셔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반드시 폭탄을 떨어뜨리고,
한번 손봐야겠다고 작심하면 언젠가 꼭 보복하는 것을 우리는 보고 겪어왔습니다.
정권교체 이래 이토록 집요하게 국민은행장 자리를 노리는 세력이 있다는
것은 김행장에게는 큰 불행입니다. 한국 금융업계에도 비극이죠.
그러나 이쯤 해서 김행장은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영업실적을 더 좋게 만들어놓고 나가겠다는 욕심은 헛된 꿈입니다.
조직의 리더가 이미 권력자의 눈밖에 났다는 사실을 모든 조직원들이
알게된 판에 일사분란한 단결력이 생길 리도 없고,
행장자리를 노리는 세력은 이미 그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외국인 주주들이 퇴임을 막아주는 것처럼 움직이는 현실도 알고보면 허망한 일입니다.
금융 산업이란 원래 정치권의 반응에 민감하고, 정부규제에 따라 성과가 크게
달라지는 일종의 '정치산업'입니다. 미국와 유럽의 주주들도 은행장이
정부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있는 상황을 반가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언제 외국인 주주들이 이 정권과 타협, 외국인 주주들이 적절한 댓가를 받아간후
이 정권이 추천하는 인물을 후임행장으로 앉힐지 알수 없습니다.
표정 한번 바꾸지 않고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뒷거래도 마다하지
않는게 외국인 투자자 아닌가요?
김행장은 사실 IMF를 계기로 떠오른 신종 금융인입니다.
동원증권 사장시절에는 당시 만연하던 차입금 의존형 증권업을
무차입 경영으로 완전히 혁신, 아시아의 '떠오르는 지도자'로 뽑혔습니다.
이후 주택은행장, 통합국민은행장등을 거치면서 경영실적을 쌓고
'김정태 프레미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가맡은 은행의 주가는 좋아졌습니다.
외국인 주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된 것도 이런 과정에서 그가
나름대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경영을 하려고 애썼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김행장은 은퇴해도 그만두지 못할 겁니다.
국내외 금융회사들이 아마 서로 모셔가려고 경쟁 할 것입니다.
" 이만하면 정말 행복한 금융인생을 걸어온 셈이죠. 더 이상 뭘 바라는지 모르겠어요.
김행장이 말이 잘 안되는 이유로 징계 받고 자진헤서 물러난다면,
이 정권과 금융 당국에는 '미운 사람 몰아냈다'는 작은 승리를 안겨주는 반면,
김행장 개인에게는 더 큰 인간적인 승리를 안겨주는 셈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관치(官治)금융 분위기는 단번에 무르익고,
국제적으로는 '한국은 역시 그 수준 밖에 안되는군'이라는 악평을 듣겠지만요.